권오원
1. 소개
부산상고 시절 좌완투수 이혜천과 동기생이며, 동아대 (1998학번) 시절 우완투수 이정민과 동기생으로 대학 야구를 평정했다.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 현역 시절 별명은 봄오원[2] , 권커브[3] .
참고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우승을 하던 시절에 목격되었다. 하지만 엔트리에 든 건 아니여서 우승반지를 끼진 못했다.
2. 선수 시절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중간계투로 활약한 선수. 상무 복무 시절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를 오가는 전천후 투수 역할을 했고, 상무 제대 후인 2007 시즌 초반에 권혁-권오준과 KKK 트리오[4] 를 만든다며 삼성의 꽤 괜찮은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2008년 시즌 초반에 선동열이 컨디션이 좋았던 권오원을 마구 굴리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구위가 떨어지며 결국 1군에서 말소됐다.
2009 시즌 중 어깨 수술을 받고 2011 시즌 복귀해, 2군 경기에 등판하였다. 그 동안 경기 등판을 못해서 경기 감각을 잃었는지 성적은 그럭저럭이었다.
당시 상무는 선수층이 얇다는 이유[5] 로 투수를 꽤 혹사시키는 운영을 했는데, 제대하자마자 선동열까지 권오원을 굴리면서 상무 시절의 좋았던 구위를 부상으로 잃게 된 것이 봄오원이라고 불린 핵심 원인이었다. 어깨 부상이 고질이 되면서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것. 이로 인해 겪었던 재활로 인해 트레이닝 코치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
3. 지도자 시절
결국 2011년 9월 1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군 트레이닝코치로 잠깐 있다가 2012년 3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에 트레이닝 코치로 합류해 코치 연수를 받고 8월말 귀국했다. 1군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 건 2년 정도고, 그나마도 통산 100이닝을 넘기지 못했던 걸 감안하면 상당히 운 좋은 케이스.
2020년에는 2군 투수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는데, 삼성 2군의 투수 유망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서 정현욱, 황두성, 오치아이 에이지, 조규제와 함께 삼성 유망주 폭발의 일등공신으로 불리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1] 1998학번[2] 시즌 초인 봄에 반짝 활약하여 삼성 팬들을 기대하게 하고 여름부터 폭망. 왠지 투상수가 삼성 시절 이 성질을 물려 받은 듯하다.[3] 상무 전역 후인 2007년 초 팀내 최고의 커브를 가진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윤성환과 정현욱이 복귀하면서 그대로 묻혔다.[4] 권오원이 셋 중 나이가 제일 많다. 하지만 인지도는 제일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한 시기도 제일 늦다.[5] 선수를 뽑는다->부상으로 선수가 쉰다->남은 선수를 굴린다->굴린 선수는 부상을 입고 쉰다의 무한 반복이었다. 혹사에 대한 이해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시기였다. 결과적으로는 201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상무에도 관리라는 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혹사는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