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제2공화국

 


'''그리스 공화국'''
'''Ἑλληνικὴ Δημοκρατία'''

''Ellinikí Dimokr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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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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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 1935
위치
그리스 일대
수도
아테네
정치 체제
공화제, 의원 내각제
국가 원수
대통령
언어
그리스어
종교
정교회
성립 이전
그리스 왕국
멸망 이후
그리스 왕국
1. 개요
2. 상세


1. 개요


Δεύτερη Ελληνική Δημοκρατία. 그리스에 세워진 두 번째 근대 공화국 체제.

2. 상세


터키 독립전쟁의 패배로 메갈리 이데아가 좌절되자 안 그래도 열강이 강제로 올려 놓았던 글뤽스부르크 왕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다시 커졌다. 패배한 그리스군 군인들은 1922년 군사 반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콘스탄티노스 1세가 퇴위하여 요르요스 2세가 왕위를 승계했지만 왕정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조국'을 처음 방문하게 된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의 그리스인 150만 명이 그리스로 유입되면서 그리스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와중이었던 1923년에 국민투표에서 7:3으로 왕정이 폐지되었다. 당시 국왕이었던 요르요스 2세는 망명을 떠났고, 그리스에서는 헌법 개정을 거쳐 1924년에 공화정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공화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터키에서 인구교환으로 쫓겨난 그리스인들이 대거 공화제를 지지했기 때문이며, 이들은 공화파의 거두였던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반면 인민당 등 왕당파의 세력도 건재했고 이들은 제2공화국 정치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베니젤로스는 콘스탄티노스 1세와의 극심한 갈등으로 망명을 가 있었는데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다시 귀국하였고, 베니젤로스 반대파의 총선 보이콧으로 초대 제2공화국 의회는 베니젤로스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베니젤로스는 군주제 지지자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다시 그리스를 떠났다.
1925년에는 테오도로스 팡갈로스가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사독재 정부를 세우고는 불가리아와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 오히려 배상금을 물어주고 국제연맹의 제재를 받아 국민 혁명으로 정부가 무너졌다.
이후 다시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선거가 실시되어 베니젤로스가 속한 자유당(Κόμμα Φιλελευθέρων)이 250석 중 178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고, 베니젤로스는 다시 귀국하여 그리스 총리가 되었다. 베니젤로스는 이전 정부가 주변국과 마찰을 빚다가 주변 국가에 고립되었음을 고려해 터키, 불가리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그 외 주변국인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와도 관계 증진에 노력했다. 또한 오랜만에 정국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은 짧은 안정을 종식시켰다. 자유당은 1933년 총선에서 패배했고 왕당파 내각이 구성되었다. 베니젤로스를 위시한 공화파는 크게 반발했고, 결국 공화파 장교들이 베니젤로스의 묵인 하에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고 베니젤로스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왕당파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베니젤로스파 정치인들과 관료들을 모조리 쫓아냈다. 그리고는 1935년에 다시 총선거를 치렀지만 계엄령의 강압적인 공포 분위기 하에서 선거 결과는 의미가 없었다. 베니젤로스파는 선거를 보이콧했고, 왕당파가 전 의석을 차지하고는 군주제를 골자로 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요르요스 2세가 그리스 국왕으로 복위했다. 이로서 제2공화국은 종말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