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기니비사우 관계
1. 개요
기니와 기니비사우의 관계. 양국은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 독립이후에 수교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프랑스의 지배 이전, 기니 지역은 말리 제국, 졸로프 왕국외에도 여러 소왕국들이 존재했다. 말리 왕국, 졸로프 왕국은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아랍어도 받아들였다. 지금의 기니비사우 지역은 초기 역사가 적었지만, 주변 민족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기니비사우 지역의 민족들도 마찬가지로 아랍의 영향도 받았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다만, 아랍의 영향을 받아도 기니와 기니비사우의 이슬람교는 수피즘과 샤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대항해시대부터 포르투갈인들이 기니 지역과 기니비사우 지역을 발견했고 기니비사우 지역에 정착지를 세웠다. 그리고 기니비사우 지역을 지배하면서 수많은 흑인노예들을 카보베르데 지역을 통해 브라질, 유럽으로 끌고갔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기니 지역은 19세기부터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0세기가 되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독립 열기가 높아졌다. 또한, 포르투갈령 지역에서도 독립 열기가 높아졌고 독립군이 포르투갈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에 기니 지역이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기니비사우 지역은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독립 이후, 양국은 공식 수교했다.
2.2. 현대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과 독립 전쟁 당시에 소련, 중국외에도 기니를 포함한 주변국의 지원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기니와는 교류가 활발하다. 양국은 프랑코포니, 아프리카 연합의 정회원국이다.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의 지배와 영향으로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이지만, 기니와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프랑스어가 주요 외국어에 포함되어 있다.
경제적으로도 밀접해서 CFA 프랑을 공동으로 쓰고 있다.
2014년 에볼라 유행으로 인해 양국은 큰 피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