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2600년
1. 개요
紀元二千六百年. 일본 제국 시기에 국민봉축가로 작곡된 노래로, 일본군에서 군가로도 보급되었다.
서기 1940년은 일본의 진무 덴노가 일본을 개국했다고 알려진 해(기원전 660년)로부터 2600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의 일본은 전시 체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극도로 긴축적인 재정 정책을 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신민을 단결시키기 위해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빡빡했던 분위기를 좀 풀어볼 목적도 있었던 모양.
위 노래에 입혀진 영상도 기념 행사 당시의 영상이며, 당시 육군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와 당시 수상이자 도조 히데키 급의 고노에 후미마로, 해군대신 요나이 미쓰마사, 쇼와 덴노, 고준 황후의 모습도 보인다.
이 곡 역시 이러한 행사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939년 8월 내각 봉축위원회와 일본방송협회는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봉축가 곡과 가사를 공모하였다. 약 1만 8천 명이 여기에 공모하여, 서적상인 마스다 요시오(増田好生)가 작사하고 음악 교사 모리 기하치로(森義八郎)가 작곡한 곡이 당선되었다. 이어 도쿄음악학교에 일본 정부가 촉탁한 기원2600년 송가와 함께 공식 봉축가로 선정, 1939년 12월 20일에는 각 레코드 회사에서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하였다. 이 곡 외에도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곡들을 촉탁하여 '황기 2600년 기념 봉축곡' 모음집을 만들었으며, 관련 음반들이 발매되는 한편 군가나 행진곡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2. 가사
3. 풍자와 노래가사 바꾸기(…)
1절 가사에는 당시 일본 서민들이 애용하던 담배명인 '킨시(金鵄)'[4] , '히카리(光)' 등의 단어가 들어 있었는데, 전비 충당을 위해 일본 정부에서 담뱃값을 인상하자 1절의 가사를 '노가바'[5] 한 사회풍자 개사가 일본 전역에서 구전/유행했다.[6] 구전되던 노래 답게 영상의 노래와 예시의 가사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4. 이야깃거리
이 곡의 작곡가였던 모리 기하치로는 이후 초등학교 교가 등을 작곡하며 명성을 이어나가는가 했지만 술버릇이 나빠 사고를 치고 다녔다. 그 중 가장 하이라이트가, 만취한 채 "오쓰카의 홍등가에서 창녀를 안았을 때의 허리 리듬을 모티브로 하여 '기원2600년'을 작곡했다"라고 내뱉었던 것이다.
[1] 일본 신화에서 진무 덴노가 일본을 건국할 때 도왔다고 전해지는 금빛 솔개. 메이지 시대에는 이 신화에서 유래한 금치훈장이 만들어 졌으나 종전 직후에 GHQ의 지시에 의하여 1947년에 폐지되었다.[2] 참고로 이 1억은 일본 제국 시기 일제의 머릿수를 강조할 때 쓰던 숫자로 정작 당시 일본열도의 인구는 약 7천만에 불과했다. 나머지 3천만은 조선과 대만에서 끌어왔다.[3] 더욱 크게 번성함을 의미함[4] JT에서 생산한 담배중 장수 브랜드인 골든뱃(ゴールデンバット)인데, 이 제품이 2차대전 전시동안 이 이름으로 시판되었었다. 이름이 바뀐 이유는 당시 일본 정부에서 귀축영미의 언어로 된 외래어를 대대적으로 배격하면서, 외래어 공산품명을 순화하기 위해서 였다고. 골든뱃은 '''1906년''' 출시되어 '''2019년''' 10월 단종되었다.[5] '''노'''래 '''가'''사 '''바'''꾸기에서 앞글자를 딴 표현으로, 개사를 뜻한다.[6] 심지어 일본 군가인 애국행진곡에 도조 히데키를 비난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기도 했다. 이런식의 풍자와 저항은 조선에서도 유행해서 조선인들이 애국행진곡, 군함행진곡 등 일본 군가를 일제를 까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불러 총독부가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조선에서는 이런 식의 저항이 해방 후에도 이어져 유행가나 군가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한국에 민주화가 실현되는 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오월의 노래가 대표적. 이런건 서구권이라고 다르지도 않아서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같은경우 전쟁 당시의 나치 항거자/독일공산당원(나치스 정부 입장에서는 정치범), 현대의 안티파 등지에서 나치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개사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