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행진곡(일본)
1. 개요
간주 부분에 '바다에 가면'이 있지만, 후반부에 반주만 나오는 버전.
해군 식전(式典)용 반주
작사 : 토리야마 히라쿠(鳥山啓; 1837-1914)
작곡 : 세토구치 토키치(瀬戸口藤吉; 1868-1941)
1897년에 작곡되어 1900년에 공개되었다. 일본 제국 당시부터 불렸던 일본 해군의 군가(軍歌)로,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에도 해군의 명맥을 이어 재조직된 해상자위대의 각종 식전에서 가사만 없애고 연주되고 있다.
원래 곡 제목은 토리야마의 가사 제목을 따라 '이 성(此の城)' 이라고 했었지만, 1900년에 처음 연주되었을 때 현재 제목으로 바뀌어 소개되었다. 초연 직후 이 곡은 일본 제국 해군을 상징하는 공식 군가로 자리잡았고, 세토구치도 작곡 공로로 군악장 직함을 수여받았다.
피아노 소품집 악보에도 실려 있고, 지금이야 음반 취입 등이 뜸하기는 하지만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던 20세기 초중반에는 원본인 취주악 외에 합창, 독창, 중창, 기악 독주, 관현악 등등 별의별 버전의 음반들이 미친듯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1935년에는 독일의 본좌 관현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도 취입했다. 편곡과 지휘는 1930~40년대 도이체 그라모폰의 녹음 전속 지휘자로 활동했던 알로이스 멜리하(Alois Melichar)가 맡았다. 원곡과는 가락과 화음이 좀 다르다.
일단 일본 군가들 중에선 비교적 곡이 현대에도 먹힐 만큼 괜찮은 편이라, 서구권에서도 이런 식으로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이렇게 행진곡 모음집에 자주 수록되다 보니 가끔 초등학교 운동회 등에서 이 곡이 흐르기도 한다(!). 2006년 경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 공장에서 점심식사 벨소리로 간주 부분을 사용한 적이 있다. 물론(?) 연주곡 버전으로.
이 곡의 마이너 체인지판은 미얀마군의 군가 Tot Ya Tatmadaw라는 곡이다. 미얀마에서는 이 곡이 꽤 유명한 지, 군부 통치 기간 동안 해단되었던 미얀마 국립 교향악단이 재창단된 뒤 2013년 3월 2일에 일본 지휘자 후쿠무라 요시카즈의 지휘로 개최한 첫 공연에서도 연주된 바 있다. 교도통신의 공연 보도와 동영상 다만 군함행진곡이라는 제목으로 연주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대륙에서는 이 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옛 뮌헨 육군사관학교의 교가를 작곡자 세토구치가 표절했다는 주장인데 , 증거도 불충분하고 중국 내에서만 발견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전후에는 파칭코에서 군함행진곡이 쓰인 적도 있다. 그래서 전쟁을 겪고 자라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이 곡의 악명을 모른 채 '뭐야 이거 도박장 싸구려 배경음 아냐' 라고 캐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패전 후 파칭코 등에 탐닉하게 되어 버린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약으로는 히로뽕, 음악으로는 군함행진곡이었던 것일까(...).
2. 음원 및 가사
군함행진곡 자체는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부분이 없고, 같이 포함하는 바다에 가면은 그 부분이 있다. 버전에 따라서는 1절과 2절의 가사에 3절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가사는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라는 전혀 다른 군가의 것으로 원래의 것이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2]
또한 위에 세번째 동영상 버전에 따라서는 바다에 가면을 안 부르고 다시 1절을 부르기도 하여 3절과 4절 둘 다 기재했다.
3. 여담
- 아돌프 히틀러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대만 등 1920년대와 그 이전 출생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전시체제때 너무 지겹게 들었다.'고 말할 정도(...) 그래서 많은 식민지 백성이 지겹게 들었던 탓에 당시 만들어진 여러 노래가 군함행진곡에서 가사만 바꾼게 많았다. 물산장려가[3] 나 찬송가, 심지어 독립군 군가들 중에서도 일부 곡들은 군함행진곡에서 가사 바꾼게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s-2라는 것은 아니다. 당시엔 작곡가 인력도 부족했고 선무해야 하는 민중들이나 대원들이 가장 잘 아는 곡조를 찾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것이다. 일본 군가는 아니지만 당시 일본의 유행곡을 개사한 용진가도 있었으며 보병의 본령, 용감한 수병 등의 군가도 그렇게 유용되었으니 오해는 하면 안된다.[4]
- 또한 앞서 말한 곡조 차용뿐 아니라 군함행진곡의 가사를 일본 제국과 총독부를 조롱하는 내용으로 바꾸는 개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군함행진곡이나 애국행진곡 등의 일본 군가들이 보급된 식민지 조선에서도 당시 조선인들이 보급된 군가들을 일제를 까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불러 조선총독부가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5]
- 일본 극우파들이 각종 시위에서 항상 시끄럽게 틀어대는 노래중 하나이다.
- 대한민국 국군이 처음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면서 1진으로 도착한 비둘기부대의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이 도착했을 때, 사이공에서 이들에 대한 환영행사가 열렸는데 여기 도열한 남베트남 군악대가 환영의 음악으로 군함행진곡을 연주하는 당황스런 사건이 있었던 적이 있다.
- 1983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카소네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가 위해 도열한 미군 의장대가 이 곡을 연주했다. 베트남 전쟁 때의 국군의 경우처럼 실수는 아니었고, 나카소네가 일본 해군 경리담당 장교로 구레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
- 2.28 사건당시 대만 본성인들이 중화민국 국군에 맞서 반대 시위를 전개하면서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하고 이 곡을 틀어 외성인에 대한 본성인의 단결과 저항을 유도했다. 본성인들에게는 일제 하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그걸 노리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시기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면... 결국 본성인을 매국노로 몰아 학살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 전시뉴스 즉 대본영발표에 삽입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개전을 알리는 뉴스. 초반에 삽입된 곡은 후술할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며, 본 곡은 후반에 삽입되어있다.
- 국내 음원 서비스 멜론에서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정확히는 영화 군함도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곡이다.
-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원아들이 군함행진곡에 맞춰 율동을 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계획을 입안했던 교사는 "인터넷에서 괜찮은 노래를 찾아 틀게 되었다"고 해명했으나 학부모들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원장과 함께 자아비판후 직위해제 되었다.
- 2011년 하와이에서 연주되었다!!!
3.1. 매체 속 군함행진곡
- TV 프로그램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 11월 29일분에 삽입되었다. 당연하지만 방영 후 미친 듯이 까였다.
- 게임 파로디우스다! - 6번째 스테이지 필드 BGM이다. 이 스테이지의 컨셉은 파칭코이다.
- 드라마 야인시대 - 1기 마지막회에서 미와 경부가 죽기 직전에 쇼와 덴노에게 '옥쇄를 결정했다'며 비장하게 최후 인사를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배경음으로 나온다. 일본인인 미와의 입장에서는 순국을 앞둔 비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경음악은 경쾌한 행진곡이니 아이러니하면서도 분위기가 잘 맞는다. [6] 바로 전 회인 49회에도 나오는데, 부민관 폭탄의거를 실행한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폭약을 빌리려다 감독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그 전에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종로 거리에서 헌병들이 행군하는 모습과 함께 삽입된다.
- 영화 꽁치의 맛 - 주인공이 해군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주요한 극중장치로 기능한다. 가령 술집에서 이 노래가 연주되자 술집 손님들이 이걸 듣고 거수경례하며 추억에 잠기는 씬이 있다. 극이 흘러감에 따라 군함행진곡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변화도 눈여겨볼 부분.
- 영화 장군의 아들 2편 - 종로에서 일본군이 행진할 때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 애니메이션 메존일각 TV판 - 고다이 유사쿠와 대학 친구 사카모토가 파칭코 가게에 같이 있는 장면이 있다. 그 부분에서 들을 수 있다.
-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 - 주인공 남매의 아버지가 해군 장교였는데 오빠인 세이타가 군함행진곡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7]
- 영화 군함도에서도 초반에 여러 차례 나온다.
- 영화 귀신이 온다에도 등장. 중일전쟁와중에 포로(?)로 잡힌 일본군[8] 에 대한 영화인데, 포로로 붙잡힌 마을 근처에 일본군 해군군악대가 주둔해 있어서 이 곡을 자주 연주한다. 또한 영화 후반에 포로에서 풀려난 후 중국인 마을에서 일본군들에게 잔치를 베풀 때 그때 해군 군악대가 연주하는데, 경쾌한 행진곡에 맞춰 마을사람들을 학살한다(...).[9]
-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이 휘파람 부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4. 관련 문서
[1] 영어로는 'Warship March', 혹은 'Japanese Navy March'로 표기한다. 그래서인지 현대 일본에서는 이 곡의 제목을 '軍艦マーチ'로 표기한다.[2] 만엽집에 수록된 시이다. 참고로 바다에 가면'은 따로 곡이 있으나(2차 대전 당시는 사실상 제2국가), 여기에서 이 가사에 붙은 곡은 그것이 아니라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편곡한 가락이다. 곡은 1880년에 붙여졌고 최소한 2개의 버전이 있다.[3] 조선의 동포들아 이천만민아 두손들고 두팔들고 나오너라~~로 시작되는 노래. #[4]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 부대가 불렀다는 혁명가중 상당수도 일본 군가의 곡조를 따와서 가사만 바꾼게 많다.[5] 일례로 애국행진곡의 경우 "보라 도조의 대머리" 라는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식의 저항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유행가나 군가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한국에 민주화가 실현되는 90년대까지 노가바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오월의 노래가 대표적.[6] 동생이 육군임을 떠나서 애초에 동생이 군인이었기에 이 노래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자살하기 전에 김두한한테 동생이 청산리 전투에서 죽은 후에 독립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에 투신했던 것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랬기에 군인이었던 동생을 따라 죽는다는 뜻으로 이 노래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7] 당연히 이 장면은 한국 방영시 편집되었다.[8] 이 역할의 배우가 카가와 테루유키다.[9] 포로가 된 이후 부대에서는 죽었다고 생각해 전사로 처리하였는데 몇 달만에 멀쩡히 살아돌아온 것을 보자 중국인들과 결탁한 것으로 생각해 카가와 테루유키와 중국인 마을 사람 모두를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