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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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在號
1923년 ~ 1985년 (향년 61~62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1923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났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입교하였다. 이후 5.16 군사정변 때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김종필, 김형욱, 오치성, 신윤창 등과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군사정부 때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법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금산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내리 3선(제8대는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군사정부 때 전라북도에 있던 금산군을 충청남도로 편입시키는 데 힘을 썼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금산군에는 해평길씨의 주요 집성지인 부리면이 있다.)
1966년 1월부터 1969년 7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으로 있었는데, 1969년 7월 사무총장직을 사임하기 직전 3선 개헌 논의를 제기하였고, 1971년에는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길재호는 김성곤,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민주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손잡고 당내에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견제하면서 3선 개헌을 성사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1971년 10월 2일 김성곤 등과 함께 야당인 신민당이 제출한 오치성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가결시키기로 하여 가 107, 부 90, 무효 6표로 가결되었다.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이에 분노한 박정희에 의해 김성곤처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여 정계를 은퇴하였다.
이후 1980년대 생명보험협회 회장을 역임하다가 1985년 사망하였다.
길전식 사무총장과 육사 - 5.16 가담 - 예편후 1963년 등원 - 사무총장 행에서 비슷한 정치행보를 보였다. 사실 해평 길씨의 분파에서는 좀 차이가 있다. 길재호 사무총장이 평북 영변 집성촌에서 태어나 충남 금산의 길씨 집성촌을 정치기반으로 했다면, 길전식 사무총장은 전남 장흥의 길씨 집성촌을 정치기반으로 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