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근(야구)
1. 소개
전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kt wiz의 투수코치이다.
2. 경력
2.1. 선수 시절
1984년에 MBC 청룡에서 데뷔, 1992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커리어를 마쳤다. 1984년 9승 7패 2세이브 ERA 2.52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이후로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2.2. 지도자 시절
은퇴 직후부터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투수코치로 더 유명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롯데(1993-1998), 그 다음엔 삼성(1999-2000), 그리고 김성한 감독 밑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코치를 맡았다.
(이하 내용은 김 코치의 스포츠 2.0의 인터뷰를 본 후 그 기억만 가지고 쓴 글이라 다소 편향적일 수 있음)
투수코치로서 김봉근 코치는 주로 초반에 구속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해 오던 폼을 자신의 폼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되 구속을 높일 수 있고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수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을 해 주면 고교 때보다 보통 2~3km/h, 최고 5km/h 정도까지 구속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며, 코치로 처음 활동한 1990년대 초반부터 체인지업[1] 에 크게 관심을 보였고 대부분의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을 꼭 가르친다고 한다.
구단 입단 후에 들어온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직구 구속을 높임으로서 파이어볼러들을 양성하고,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등에 무리가 덜 가고 직구 구속 저하와 영향이 적은 체인지업을 가르치는 것인데, 직구 - 체인지업의 두 구종만으로도 수싸움만(빠른공 - 느린공) 잘 해 주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투수의 부상을 덜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투수의 부상방지를 위해[2] 투구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그로 인해 투수를 혹사하는 유형의 감독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 김성한 감독 시절 (2001-2001년) KIA의 투수코치로 있다가, 투수를 혹사하는 김성한과 충돌을 빚고 SK로 가서 조범현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했다. 이후 조범현 SK감독이 물러나자 다시 KIA로 돌아와 서정환 감독 밑에서 투코를 했으나, 이 때(2007년) 야인으로 있던 조범현 감독을 개인적 친분으로 KIA의 배터리 코치로 시즌중 영입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서정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났고, 야구인들의 예상대로 조범현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하자 계속 함께 갈 것 같았으나, 2009년 시즌 중 2군으로 좌천되었고, 2009년 기아 우승 직후 조범현 감독에 의해 해임된다. 모종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확실한 건 두 사람만 아는 것이라서..
KIA 타이거즈 팬들은 KIA의 암흑기에 서정환 감독을 깔 때 같이 까는 경향이 강하지만 꼴찌를 한 시즌에도 기아의 마운드는 리그 4위 수준의 준수한 마운드였으며, 09년에 보여준 기아 팜의 수많은 파이어볼러들에게 있어 김봉근 코치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간과하는 것 같긴 하다.
야인으로 있다가 2013년 10월 7일 kt wiz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9년 강릉영동대 코치를 맡게 됐다.
3. 평가
위와 같이 젊은 투수들을 성장시키는 데는 어느정도 능력이 있는 듯 하나 시즌 중 투수운용은 안습인 측면이 있어서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1] 1990년대 초반에는 주로 속구-슬라이더 형태, 또는 속구-커브 류의 투피치가 대세였다.[2] 김봉근 코치 자체가 부상으로 선수 경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투수에 대한 보호가 각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