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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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일 한화 이글스와 kt wiz의 청주구장 경기에서. 오른쪽이 추평호 심판이다.
전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이자 현 KBO 리그의 심판위원이다.
그가 다녔던 목포영흥고등학교[1] 야구부는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더불어 창단되었는데, 이는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인 전남 지역에 두번째로 창단된 야구부였다. 이미 같은 목포지역에 목포상고 야구부가 있었고, 이윽고 1986년에 순천상고에도 야구부가 창단되었던 데다가, 같은 도내 광주의 광주일고, 광주상고, 진흥고 등 이미 쟁쟁한 팀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1986년도까지는 전국대회 본선에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다.
그런데 1985년에 목포상고가 성적 부진으로 결국 야구부를 해체하였고, 뒤이어 1986년 11월에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되게 되면서, 전남 지역에는 경쟁자가 순천상고만 남게 되었고, 두 학교 중 하나는 반드시 본선행 티켓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였다. 영흥고는 1988년 황금사자기에서 8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이후 1993년까지 나름대로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마저도 순천상고 또한 1989년에 야구부를 해체하게 되면서, 1994년에 순천효천고 야구부가 창단되기 전까지는 전국대회 본선에 무혈입성을 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추평호는 이런 황금기의 시발점이었던 1988년에 입학하게 되는데, 외야수로 출전하여 그해 황금사자기 16강, 1989년 청룡기 16강 · 황금사자기 16강 · 봉황대기 32강, 1990년 황금사자기 16강 · 봉황대기 16강 등의 실적을 내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1989년 해태 타이거즈 연고지명에 1명이 뽑힌 것을 시작으로 199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그의 1년 선배 최향남을 비롯한 6명이 해태에 입단하였고, 추평호가 대학을 졸업한 1995년 신인드래프트까지 무려 영흥고에서는 해태 선수를 20명이나 입단시킬 수 있었다.
영흥고 졸업 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비록 대학에서 큰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당시 1년 후배였던 곽현희, 전병호 등과 선배인 김정민, 이민호 등의 활약으로 1992년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노림수가 있었던 선수였기에 종종 홈런을 때려내어 경기를 뒤집는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후 영남대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2차 6라운드에 지명되어 입단[2] 하였다. 내야수로 지명받았으나, 입단 이후에는 주로 외야수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입단 후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해태의 외야진에는 이순철과 이호성 등이 전성기는 제법 지났지만 제 몫을 해주고 있었고, 박재용은 지명타자로서, 박재벌과 김재덕, 김병조 등은 주전급은 아니지만 쏠쏠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또한 1996년에는 동봉철이 삼성에서 트레이드되었고, 장성호가 입단하였다. 1997년에는 김창희가 입단하고 조현이 LG에서 트레이드되어 오는 등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다.
그 결과 추평호는 해태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1995년에는 단 2경기 나와 2타수 0안타, 1997년에는 6경기 나와 3타수 0안타 3삼진 이라는 몹시 안습한 성적을 남기고 1997년, 비로소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그 후 2002년 4월부터 KBO 리그의 심판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대 최장이닝 경기인 2008년 9월 3일 두산-한화 경기 당시 2루심이었고, 역대 최장시간 경기인 KIA-LG 경기 당시 주심이었다.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윤상원,김성철,오훈규와 같이 한국 대표 심판으로 참여 하였다.
2019년 KBO 올스타전 주심을 맡았다.
여담으로 오심으로 유명한 심판이다.
대표적으로 2007년 4월 22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연장 12회말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형이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을 때렸으나, 이대형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1루에 쇄도하였으나 결국 아웃 판정을 내렸다. 이때 느린 화면을 보면, 1루수의 포구보다 이대형의 손이 먼저 베이스에 닿았음을 알 수 있지만, 심판의 퇴근본능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 아웃 판정을 내렸다. 참조 당시 상황을 다룬 블로그 글
2020년 10월 2일 기아와 두산전 주심을 보면서 두산 알칸트라 공은 존 바깥쪽 공도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만 KIA 양현종은 존에 걸치는 공도 안잡아주면서 멘탈붕괴의 1차적 원인이 되었다.
2017년 6월 29일 한화 이글스와 kt wiz의 청주구장 경기에서. 오른쪽이 추평호 심판이다.
1. 개요
전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이자 현 KBO 리그의 심판위원이다.
2. 상세
그가 다녔던 목포영흥고등학교[1] 야구부는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더불어 창단되었는데, 이는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인 전남 지역에 두번째로 창단된 야구부였다. 이미 같은 목포지역에 목포상고 야구부가 있었고, 이윽고 1986년에 순천상고에도 야구부가 창단되었던 데다가, 같은 도내 광주의 광주일고, 광주상고, 진흥고 등 이미 쟁쟁한 팀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1986년도까지는 전국대회 본선에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다.
그런데 1985년에 목포상고가 성적 부진으로 결국 야구부를 해체하였고, 뒤이어 1986년 11월에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되게 되면서, 전남 지역에는 경쟁자가 순천상고만 남게 되었고, 두 학교 중 하나는 반드시 본선행 티켓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였다. 영흥고는 1988년 황금사자기에서 8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이후 1993년까지 나름대로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마저도 순천상고 또한 1989년에 야구부를 해체하게 되면서, 1994년에 순천효천고 야구부가 창단되기 전까지는 전국대회 본선에 무혈입성을 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추평호는 이런 황금기의 시발점이었던 1988년에 입학하게 되는데, 외야수로 출전하여 그해 황금사자기 16강, 1989년 청룡기 16강 · 황금사자기 16강 · 봉황대기 32강, 1990년 황금사자기 16강 · 봉황대기 16강 등의 실적을 내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1989년 해태 타이거즈 연고지명에 1명이 뽑힌 것을 시작으로 199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그의 1년 선배 최향남을 비롯한 6명이 해태에 입단하였고, 추평호가 대학을 졸업한 1995년 신인드래프트까지 무려 영흥고에서는 해태 선수를 20명이나 입단시킬 수 있었다.
영흥고 졸업 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비록 대학에서 큰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당시 1년 후배였던 곽현희, 전병호 등과 선배인 김정민, 이민호 등의 활약으로 1992년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노림수가 있었던 선수였기에 종종 홈런을 때려내어 경기를 뒤집는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후 영남대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2차 6라운드에 지명되어 입단[2] 하였다. 내야수로 지명받았으나, 입단 이후에는 주로 외야수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입단 후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해태의 외야진에는 이순철과 이호성 등이 전성기는 제법 지났지만 제 몫을 해주고 있었고, 박재용은 지명타자로서, 박재벌과 김재덕, 김병조 등은 주전급은 아니지만 쏠쏠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또한 1996년에는 동봉철이 삼성에서 트레이드되었고, 장성호가 입단하였다. 1997년에는 김창희가 입단하고 조현이 LG에서 트레이드되어 오는 등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다.
그 결과 추평호는 해태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1995년에는 단 2경기 나와 2타수 0안타, 1997년에는 6경기 나와 3타수 0안타 3삼진 이라는 몹시 안습한 성적을 남기고 1997년, 비로소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그 후 2002년 4월부터 KBO 리그의 심판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대 최장이닝 경기인 2008년 9월 3일 두산-한화 경기 당시 2루심이었고, 역대 최장시간 경기인 KIA-LG 경기 당시 주심이었다.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윤상원,김성철,오훈규와 같이 한국 대표 심판으로 참여 하였다.
2019년 KBO 올스타전 주심을 맡았다.
여담으로 오심으로 유명한 심판이다.
대표적으로 2007년 4월 22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연장 12회말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형이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을 때렸으나, 이대형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1루에 쇄도하였으나 결국 아웃 판정을 내렸다. 이때 느린 화면을 보면, 1루수의 포구보다 이대형의 손이 먼저 베이스에 닿았음을 알 수 있지만, 심판의 퇴근본능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 아웃 판정을 내렸다. 참조 당시 상황을 다룬 블로그 글
2020년 10월 2일 기아와 두산전 주심을 보면서 두산 알칸트라 공은 존 바깥쪽 공도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만 KIA 양현종은 존에 걸치는 공도 안잡아주면서 멘탈붕괴의 1차적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