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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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약력
3. 행보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치학자이자 교수. 정의당 前 공동대표. 작고한 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동생이기도 하다.[1]

2. 약력



3. 행보


1947년 경상남도 진주시 태생. 진주중학교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출처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때 같이 구속된 인물이 한명숙, 이우재, 신인령 등등.
노회찬의 증언에 따르면 1997년 국민승리21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하기도 했다.
1999년 기고문을 통해 국민승리21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 '국민승리21이 주축이 된 진보정당의 건설은 한국 진보정치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인데, 당시 29살의 젊은 활동가였던 박용진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당시 기사 김세균, '국민승리21 어떻게 볼 것인가 박용진, 김세균 비판-진보정당은 당면투쟁 핵심
2013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명예교수가 되지 못할 뻔 했으나 다행히 재심사를 통과했다. 기사
2014년 12월 24일 105인 국민선언에 참여했다.# 이 105인 국민선언은 2015년 3월 29일 결성한 국민모임 창단준비위원회로 이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국민모임 항목 참조.
국민모임은 2015년 11월 22일 정의당, 평등사회네트워크, 노동정치연대와 4자 통합을 통해 정의당과 합당했는데 이때 김세균 교수도 정의당에 입당했다. 입당 이후 나경채와 함께 정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의당 3기 10차 전국위원회에서 정의당 문예위와 관련한 특별결의문이 원안으로 채택되었을 당시 수정안인 "혐오 발언(남혐,여혐)발언을 배격한다." 라는 말을 받아 들이지 않자, 김세균 공동대표는 표결직전에 여성주의자들이 메갈리아와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상 반대를 표명했다. 과거에 맑스주의자였으나 현재는 정동영과 같이 신당을 차리는 등 많이 온건화하여 리버럴, 사민주의자에 가까워졌다.
2016년 9월 공동대표직을 사퇴했다. 공동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원들께 드리는 글(당원만 열람 가능)
2017년 4월 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기사
2017년 6월 출범한 정의당 내 의견그룹 '진보좌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기사
2019년 1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학계 및 법조계 성명에 참여했다. 기사
2019년 7월 정의당 동시당직선거에서 양경규 당대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기사
조국 장관 임용으로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 자유주의 세력수구 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임을 자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논평했다. 기사

[1] 김진균 교수도 동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참여에 힘쓴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