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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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生
1933년 2월 8일 ~ 1996년 3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1933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리에서 태어났다. 안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다가 1.4 후퇴 때 중공군에 끌려가면서 동상을 겪어 발가락 10개를 모두 절단하였다.
이후 탄광 막장 일을 하였다. 1971년 연탄 제조업체인 태웅공업을 설립하였다가 대명연탄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72년 제일탄광을 인수하여 태영탄광으로 개편하였다. 1978년 대한탄광협동조합 이사장이 되었다. 한편 의성군 안계중학교-안계고등학교 장학회도 운영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안동군-의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권정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한국국민당 정책연구실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민주정의당 권정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선거 직후 치러진 한국국민당 당직 개편으로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2월 당직 개편으로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인 정창화에 밀려 탈락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김동권에 밀려 탈락하였다.
金永生
1933년 2월 8일 ~ 1996년 3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1933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리에서 태어났다. 안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다가 1.4 후퇴 때 중공군에 끌려가면서 동상을 겪어 발가락 10개를 모두 절단하였다.
이후 탄광 막장 일을 하였다. 1971년 연탄 제조업체인 태웅공업을 설립하였다가 대명연탄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72년 제일탄광을 인수하여 태영탄광으로 개편하였다. 1978년 대한탄광협동조합 이사장이 되었다. 한편 의성군 안계중학교-안계고등학교 장학회도 운영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안동군-의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권정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한국국민당 정책연구실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민주정의당 권정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선거 직후 치러진 한국국민당 당직 개편으로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2월 당직 개편으로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인 정창화에 밀려 탈락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김동권에 밀려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