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민당(1981년)

 

민주공화당

한국국민당

신민주공화당
(개별 합류)
유신정우회
신정당
(개별 합류)


해산



한국국민당
공식명칭
한국국민당
(韓國國民黨, Korean National Party)
약칭
국민당
창당일
1981년 1월 23일
해산일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해산)
선행조직
,
정당 성격
구색정당 관제야당
해산 전 총재
이만섭
의석 수
0석 / 299석 해산 직전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소문길11 50 (정동)
당 색
초록색 (#498C00)
노란색 (#F8C050)
당기
[image]
1. 개요
2. 상세
3. 역대 총재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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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정희 계열의 민주공화당의 잔존 세력이 1981년에 만든 정당. 약칭은 '국민당'이며 상징은 문서 상단의 당기에 새겨진 거북이 등껍질 문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북이였다.
중앙당사는 창당 초기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동 11-3 풍전빌딩에 터를 잡다가 9월에 정동길 33 구 신아일보 별관을 거쳤으나, 1985년부터 서소문길11 50 신아빌딩으로 옮겼다.

2. 상세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의 정치금지법으로 해산된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 당원들 중에서 정치활동금지를 피한 인사들이 1981년 1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동 풍전빌딩에서 창당하였다. 초대 총재는 김종철[1]이었다.
민주한국당과 함께 사실상 허수아비의 얼굴마담 관제야당이었다. '1대대 민정당, 2중대 민한당, 3소대 국민당' 드립이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흥했다.
국민당 창당의 실무 책임자를 맡았던 김한선 전 의원은 훗날 김종철이 자신에게 창당 참여를 제안하러 와 "신군부 고위층 인사가 자신에게 제1·2여당, 제1·2야당, 반공당 등 5개 정당을 만드는 구상을 밝히며 나보고 제2여당을 책임지고 만들라고 했다, 참여 인사는 공화당·유정회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명단이 넘어올 것이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국민당 창당 작업에 신군부가 얼마나 깊이 관여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기사
여당의 후신인 만큼 원내 제2당을 목적으로 했으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에서만 당선자를 내면서 총 25석으로 민주한국당에게 밀려 제3당이 되었다. 1985년 이만섭이 2대 총재로 취임하였으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돌풍에 밀려 20석으로 당세가 위축되면서 원내 4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민한당 소속 당선자들이 거의 다 신민당에 입당하고, 민한당에는 3명의 의원만이 남으면서 다시 원내 3당이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종필이 정계에 복귀하여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현직 국회의원 8명과 대부분의 당직자, 지역조직이 신민주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와해되었고, 남은 국회의원 중 8명도 집단 탈당하여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이만섭 총재를 포함한 4명의 국회의원만 남는다. 결국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서 등록취소되었다.[2] 그래도 왕년의 경쟁자 민주한국당, 지난 선거에서 약진한 신한민주당보다 2배나 많은 65,032표를 얻었다. 6위 민중의당(65,650표)보다 근소하게 뒤진게 함정. 5위는 한겨레민주당이었다.
마지막까지 한국국민당 총재 자리를 지켰던 이만섭은 이후 김영삼민주자유당국민신당 총재를 거친 것을 거쳐 김대중새천년민주당으로 소속을 옮겨 두 번 국회의장을 지냈다.

3. 역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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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화그룹 창업주인 현암 김종희 회장의 형이다. 즉,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큰아버지.[2] 2014년 헌법재판소가 득표율 미만 정당 해산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