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겸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인
현역 시절에는 오른쪽과 왼쪽을 따로 가리지 않고 미드필더나 수비수 등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했으며, 스피드나 공수 가담력이 출중했고 쓸만한 파워와 수비력, 폭주기관차와 같은 거친 돌파력으로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며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1999년 전남드래곤즈에 입단하여 2003년 FA컵 우승에 일조하였고, 전북 현대, 포항스틸러스에서 활약하며 공격이 능한 수비수로 이름을 높였다. 2003년 9월 AFC 아시안컵 예선전 A매치 데뷔를 하였고, 2004년 AFC에 참가하였다.
2. 선수 활동
1999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2년차인 2000년에 리그 22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후 무릎 부상으로인해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2002년에는 리그에서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뒤 2003년 왼쪽 풀백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영수를 제치고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움베르투 코엘류에 의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베트남과의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지역 예선 경기에서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A매치 데뷔 무대를 치렀다.[1]
이후 조 본프레레 체제 하에서도 중용되어 AFC 아시안컵 본선에도 참가했으며, 2005년 박재홍과의 맞트레이드로 전력 향상을 꾀하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그 뒤에는 부상 등으로 미비한 활약을 펼치다 2008년 전북과 포항 스틸러스의 2대2 트레이드로 인해 과 함께 포항으로 팀을 옮겨서 박원재의 백업으로 주로 출전하다 2008 시즌이 끝나고 박원재가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한 이후 2009년부터 주전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다. 팀내 고참급 선수로서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에 공헌했다.
이렇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라운드에서 묵묵히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활약하며 '''빛나는 조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3. 승부조작
2011년 6월 2일, 소속팀 포항과 계약이 갑작스럽게 해지되었다. 해지 사유는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뒤 친인척을 통해 '''불법 토토 배팅'''을 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2]
그 해 6월 28일, 징역 10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협회와 FIFA로부터 5년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김정겸의 부친이 포항 구단 홈페이지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잘못"이라며 팬들에게 대신 사과하였다.
5년의 자격정지 기간의 자숙기간을 거쳐 AFC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 한 후 축구지도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