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균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클럽 경력
2.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일찌감치 청소년 대표 및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는 등 재능을 인정받은 박충균은 1996년 건국대 졸업 후 신생팀 수원 삼성에 우선 지명으로 입단하며 K리그에 입문하였으며, 입단 첫 해 수원서 측면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팀의 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지만 챔피언 결정전 2차전서 전반 30분만에 퇴장당하며 수원 삼성의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1998년 이기형과 신홍기, 이병근 등에 밀려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1999년 군복무 차원에서 상무에 입단했으며, 군복무 후 박충균은 족저근막염이란 부상으로 인하여 팀에서는 물론 국가대표하고도 멀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2.2. 성남 일화 천마
결국 2001년 박충균은 황인수와 트레이드로 성남에 입단하였으며, 2002년까지는 부상 등의 이유로 입지가 좁았지만, 2003년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하였고, 수원 시절 동료였던 이기형과 함께 성남의 양쪽 풀백 자리를 책임졌다. 지구력과 기동력, 묵직한 슈팅을 무기로 한 이기형과 함께 균형을 이루면서 큰 활약하였고, 성남의 K리그 3연패에 공헌, 레알 성남의 시대를 열었다.
2.3. 부산 아이파크와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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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박충균은 성남을 떠나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으며, 베테랑인 박충균은 팀의 중심을 다잡으며 2004시즌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2005시즌에는 노쇠화의 한계를 드러내며 입지가 좁아졌고, 2006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박충균은 대전에서는 주로 센터백으로 기용되었고, 어린 선수들 위주였던 대전 선수들을 이끌며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 센터백 자리를 오가며 진두지휘하였으며, 1년간 대전에서 활약한 후 박충균은 2007년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고,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박충균은 선수 시절 풀백이였지만, 때때로는 센터백으로도 기용됐으며, 특출난 민첩성과 왼발 스킬로 안정적인 볼키핑으로 터프한 수비, 빠른 스피드와 패스가 강점이다. 또한 공격적인 성향인 강한 수비수였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감정이 격해질 때 심판에게 지나치게 심하게 항의를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이는 은퇴 이후 지도자가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4. 지도자 경력
4.1.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이전
은퇴 후 박충균은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2009년 성남의 유소년 산하학교인 풍생중학교의 코치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2010년 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2011년 울산 현대의 2군 팀을 지도하였다.
2012년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하며 최강희 감독을 보좌하였다.
4.2.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2013년 최강희가 전북의 감독직에 복귀하자 최강희를 따라 전북 현대의 수석 코치가 되었다.
하지만 박충균은 전북의 코치 생활을 하면서 선수 시절처럼 자신의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특히 2015년 6월 전북과 수원 삼성과의 경기서 박충균은 흘러나온 공을 가지러 온 수원 삼성의 양상민을 보자 그 공을 뒤로 던져버리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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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FC 서울와 경기에선 심판의 판정에 흥분하며 물병을 차는 등 거센 항의를 함으로서 퇴장을 당했는데, 밖으로 나가면서 대기심 근처에 있는 의료 기구를 주먹으로 훼손시키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보였고, 이에 리그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이후 알 아인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에서 주심의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던 중 상대 팀 감독인 즐라트코 달리치와 말다툼을 벌였고, 격분한 달리치는 박충균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둘은 동반 퇴장당했다. 이후 스포티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혈질 탓이 일부 있긴 하지만, 최강희 감독 대신 자신이 의도적으로 상대 감독을 도발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퇴장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8 시즌에는 포지션이 바뀌었는지 코칭스탭 소개에는 나와있지만 벤치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4.3. 톈진 취안젠 감독
2018년 10월 12일, 성적부진으로 파울루 소자 감독이 물러난 중국 슈퍼 리그의 톈진 취안젠의 임시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보도가 중국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특히 한국의 수원 삼성에서 뛴 바 있는 지한파 중국축구인인 리웨이펑이 톈진 취안젠의 프런트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박충균 임시 감독을 보좌한다고. 중국 언론에 의하면, 최강희 전북 감독이 오기 전에 정지작업을 한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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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상하이 선화와의 원정으로 펼쳐진 데뷔전은 1-1로 비겼다. 이날 톈진의 양쉬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 만회골을 내주었다.
10월 27일, 광저우 푸리와의 원정경기에서 알레샨드리 파투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6-2로 대승하고, 일단 급한 불은 끄면서 감독 데뷔천 첫승을 올렸다. 경기를 패했으면 진짜로 강등권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톈진의 8연속 무승(가시마와의 아챔포함)을 깬 귀중한 승리였다.
11월 3일의 베이징 궈안 원정에서는 강팀 베이징과 무승부를 기록하여 강등권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11월 7일의 창춘 야타이전은 2-0으로 앞서나가다가 공격일변도 전술의 틈을 창춘이 공략하여 2-2로 비겼다.
11월 11일의 상하이 상강 홈경기는 우승이 확정된 상하이를 3-2로 이겨서 최종순위를 리그 9위로 마쳤다.
잘못했으면 강등될 수도 있던 상황에 와서 2승 3무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톈진 취안젠팬들도 매우 호평하고 있다.
2019년 부임하는 최강희 사단의 일원으로 톈진 취안젠을 계속 지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고사했다고 한다. 박충균 감독이 감독커리어를 염두에 두고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인의 인터뷰에서는 알레샨드리 파투를 포함한 톈진의 여러 선수들이 박충균이 남기를 희망했으나, 자신의 스타일과 최강희 감독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리더쉽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떠난다고 밝혔다.
4.4. 톈진 톈하이 감독
한편 톈진 취안젠은 2019년 1월 모그룹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시당국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갔다. 부임 예정이었던 최강희 사단도 계약을 해지하고 다롄 이팡으로 옮겨갔다. 구단 부단장을 맡고 있던 리웨이펑은 자신의 인맥으로 여러 한국인 감독[1] 을 모셔오려고 했으나, 모양새가 안좋아서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국인 감독이었던 선샹푸 감독이 팀을 맡아 2019년 시즌에 들어갔는데 사기가 폭락하데다가, 주요 선수들을 모두 다른 구단에 팔아치워서 계속 강등권을 전전하였다. 5월 25일에 우한 줘얼에 1-2로 패하여 최하위로 전락했다. 다만 해임이 결정된 28일의 중국 FA컵 5라운드에서는 을급리그의 타이저우 위안다를 맞아 1-0로 이기고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렇게 5월 28일 FA컵전을 끝으로 선샹푸 감독이 경질되면서 톈진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8년 부임 당시보다 상황은 훨씬 좋지 않은데, 구단 프런트측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강등만은 막아보려는 듯 하다. 현재 이 구단은 시당국이 임시로 운영과 자금을 대고 있는데, 만약 강등된다면 아무도 이 구단을 사갈리 없고 바로 해체수순으로 들어가겠지만, 일단 강등은 넘긴다면 인수기업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충균의 능력에 따라 톈진 톈하이의 해체/존속의 갈림길이 달려있는 듯.
구단에 강력히 요청해서 군복무 문제로 한국으로 복귀한 권경원 대체 선수로 경남 FC의 송주훈을, 그리고 전북 코치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레오나르도를 데려왔다. 구단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강등을 면하기 위해 힘을 써주는 듯. 중국 보도에 의하면 구단이 잠시 재직하던 최강희의 총애를 받았던 왕융포를 상하이 선화로 팔아버린 것에 불만을 표하고 사임설이 나오긴 했는데, 클럽이 송주훈과 레오나르도를 데려온 것을 보면 어느정도 무마한 듯 하다.
2019년 7월 무승이 계속되자 중국언론에서는 경질설이 나돌곤 했는데, 구단은 강력히 부인했다. 일단 박충균 뜻대로 빠듯한 재정형편 하에서도 송주훈과 레오나르도를 박충균 뜻대로 데려왔을 뿐만 아니라, 어차피 슈퍼리그에서 유일한 시민구단인 톈진 구단의 재정 형편상 모시기 어려운 거액의 명장을 데려오지 않는 이상, 팀을 맡아 악전고투하는 박충균보다 잘할 가능성이 적기 떄문이다.
7월 28일 슈틸리케가 지휘하는 톈진 터다를 맞아 1-0으로 승리했고, 8월 3일, 강팀 상하이 상강을 맞아 0-0으로 비겨서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9월말 25R 종료시점에서는 다시 강등권으로 떨어졌고, 결국 10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10월 8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5경기 1승이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구단 모기업이 공중분해되는 와중에 어떤 명장이 오더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주류.
5. 여담
- 2002년 한겨레21 특별부록 K리그편에 따르면 그림 그리기가 취미다.
- 2003년 코엘류호 당시 소속팀 성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기형과 함께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출전했다.
- 2016년 ACL 결승전에서 자신과 다퉜던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이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툼이 영광스럽기까지 하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