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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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재홍 (朴載弘 / Park Jae-Hong)
생년월일
1978년 11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포지션
수비수
신체조건
184cm
유스팀
명지대학교(1997~2000)
소속팀
상주 상무(2001~2002)
전북 현대 모터스(2003~2004)
전남 드래곤즈(2005~2006)
우니베르시타테아 클루지(2007)
경남 FC (2008~2009)
장쑤 슌톈(2010)
경남 FC(2011)
폴리스 유나이티드(2012)
경남 FC(2013)
국가대표
30경기
1. 소개
2. 선수시절
2.1. 클럽
2.2. 국가대표
2.3. 은퇴후


1. 소개


1978년 11월 10일, 서울특별시 태생. 포지션은 수비수이다.
유망주 시절부터 체격이 좋아 공중볼 다툼에 능하고, 그 키에도 발이 빠른 편에 속해 수비수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주로 쓰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뛰었으며, 경남 FC 시절에는 왼쪽 풀백으로도 출전했었다.

2. 선수시절



2.1. 클럽


2000년도에 벨기에로얄 앤트워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실패, 바로 상무에 입대해 일찍 군 문제를 해결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이후 한 차례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맛본 뒤 과 맞트레이드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해 다시 한 번 FA컵 정상에 오르는 데 공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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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7년 김종천과 함께 루마니아 2부 팀인 우니베르시타테아 클루지로 이적했고, 총 14경기에 출전해 시즌이 끝난 뒤 팀이 1부로 승격하는 데 공헌했다. 이 때 45미터 거리에서 장거리 골을 터뜨리는 등 총 14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지만 겨울 이적시장에서 경남 FC로 이적해 1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1]. 이후 2010년 중국 슈퍼 리그장쑤 슌톈으로 이적해서 1시즌을 뛰고 2011년 다시 경남으로 복귀했으며, 그 뒤 2012년 태국 프리미어 리그의 폴리스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겼다가 1년 만에 경남으로 다시 컴백했다.

2.2. 국가대표


박동혁, 심재원 등과 더불어 축협에서 맘먹고 키우려고 했던 장신 센터백이'''었'''다. 그러나 축협의 기대와 다르게 국가대표 생활은 정말로 처참. 공중볼에는 능하나 수비진 조율과 위치선정이 안습이고, 다른 선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약해 자주 실수를 일으켜 물의를 일으켰다. 그래도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도 전인 대학 시절에 허정무가 발탁해서 2000년 골드컵2000년 AFC 아시안컵에 연속으로 참가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때문에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었으나,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조 본프레레가 부임하면서 재발탁되어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2004년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어이없는 핸들링으로 인한 페널티킥[2]과 실점의 빌미를 내준 프리킥 벽 세우기에서의 실수 등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장면을 남기는 등 안습한 활약을 이어갔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초반에 주전 수비수로 발탁, 베트남과의 경기에서 선제 자살골을 넣는 대형사고를 쳤다.(...) 이 경기에서 차두리도 거친 몸싸움을 벌이다 퇴장당하면서 일대 위기를 맞았으나, 이동국의 동점골과 이천수의 프리킥 역전골이 터지며 박재홍의 목숨은 구원받았다[3]. 최종예선 쿠웨이트와의 홈 경기에선 무실점 2-0 승리를 이끌었으나 사우디 원정에선 상대 공격수 사미 알 자베르야세르 알 카타니를 각각 호나우두리오넬 메시에 빙의하게 하는 마법을 보여주었다.(...)[4] 결국 0-2 완패 이후 그 뒤 그의 자리를 유경렬이 대체하여 세간에서 잊혀졌다... 야구선수에 많이 밀린 듯.[5][6]
박동혁과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때 부터 콤비였고, 앞서 언급된 전설의 독일전에서도 함께 출전했다. 박동혁은 이 경기에서 롱 패스로 이동국의 인생골을 간접적으로 이끌어냈지만, 박재홍의 활약은 상술했다시피(...)

2.3. 은퇴후


2014년 발목 부상으로 무적 신분으로 있다가, 2015년 부천 FC의 스카우터 겸 코치로 합류하였다.
2002년 맴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 중인 지구방위대FC 군대스리가[7]의 맴버로 뛰고 있다. 여기서도 수비 못한다고 놀림 당한다.(...)
[1] 루마니아 시절 연봉은 K리그에 있을 때보다 더 적었는데, 이 때문에 박재홍에게 K리그 연봉을 들은 루마니아 선수들은 어떻게 한국에서 뛸 방법이 없냐고 문의하기도. 요즘 강원이나 인천 같은 시민구단들이 임금 체불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데, 대체로 K리그 팀들은 급료 지불에 있어 양호한 편이다. 상당수 남미팀이나 동유럽 팀들은 재정이 열악해서 체불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터키나 동유럽 리그에서 뛴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임금 때이고 국내로 돌아온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2] 하지만 이 페널티킥은 이운재가 멋지게 막아냈다. 미하엘 발락의 커리어 역사상 유일한 PK 실축이었다고...[3] 농담이 아니라 이 경기 지거나 비겼으면 최종예선에도 못 올라갈 판이었다. 이전에 이미 몰디브 쇼크를 당한 터라... 거기다 아시안컵 예선으로 베트남쇼크를 당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4] 사실 혼자만 털린 것이 아니라 수비진 전체가 털렸다. 이영표조차도 알 카타니의 개인기에 농락당하며 돌파당해서 추가골로 이어진 페널티킥 허용의 빌미를 내줄 정도였으니...[5] 다만 축구선수 박재홍이 한창 국대에서의 삽질로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을 당시에는 '박재홍? 그 발빠르고 잘치는 야구선수?'라는 물음에 '요즘은 축구선수가 더 대세임다'라는 반응이 돌아올때가 많았다. 마침 당시 야구선수 박재홍이 한창 트레이드다 뭐다 하며 경기내외적으로 침체되어있던 때라... [6] '박재홍 결혼' 기사가 났을 때, 헤드라인만 보고 야구선수 박재홍으로 착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빵형이 노총각 생활을 청산하는구나!'라며 기뻐했지만. 아, 현실은 시궁창.[7] 맘스터치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