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본프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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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축구인.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친선경기에서 독일 대표팀을 3-1로 이긴 전적이 있어서 한국 축구팬들의 뇌리에 콱 박힌 감독이다. 가장 최근의 감독 경력은 2017년 중국의 바오딩 룽다.
일단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제3세계 위주로 지도자 활동을 한데다[2] 재임 기간 동안 미숙한 미디어 관리 능력 탓에 뒷말이 많아 슈틸리케급 감독으로 오인받지만, 네덜란드 축구계의 아웃사이더임에도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감독 시절 각각 올림픽 축구 금메달(199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2000년)과 지역 예선 6전 전승으로 여자 월드컵 첫 본선행(1991년)을 이뤄내서 명장 소릴 들은데다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 '피지컬이 강한 축구'를 관철하며 조직력을 다졌을 정도로 명확한 철학이 있는 인물이다.
2. 특징
2.1. 이름과 별명
성(姓)인 '본프레레'는 프랑스어로 '좋은 형제(good brothers)'를 의미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를 비추어 볼 때, 그의 선조는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로 보인다.
한국화된 별명이 붙여졌는데, 굉장히 한국스러운 '조봉래(趙鳳來)'이다.[3][4] 이런 한국식 별명은 본프레레 외에 또다른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인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도 가지고 있었는데 히딩크는 희동구, 아드보카트는 아동복이었다.
2.2. 외모와 목소리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번즈 사장과 닮았다.
목소리는 다소 중후한 편이며, 영어 인터뷰시에는 음절마다 또박또박 끊어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영상
2.3. 언어 구사
네덜란드 출신답게 무려 4개 국어를 구사한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 동안에는 주로 영어를 사용했지만, 독일과의 평가전 후의 인터뷰에서는 독일 기자를 향해 독일어로 답변했으며[5] 그외 프랑스어, 아랍어까지 할 줄 안다.
2.4. 체격과 축구 실력
체격적인 면에서 기골이 장대한 수준이었다. 원래부터 체격이 좋은 탓도 있지만 평시 체력 관리를 잘 해서인지 다른 외국인 감독과 비교해서도 매우 좋은 편.
본프레레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 훈련에 직접 참여하면서 프리킥을 선뵈기도 했는데, 상당히 날카로웠다.
2.5. 카메라 기피증과 다혈질
한국 언론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 원정경기 당시 킥오프 전 카메라가 들어오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젓고 쫓아냈고,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 때는 경기 도중 물을 마시다가 카메라를 들어오자 화내며 카메라를 돌리라는 손짓을 했다. 다수 감독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본프레레의 성향이 특이한 편이다. 카메라를 수차례 내쫓은 탓인지 성적이 안 좋아지자 축구팬들과 언론들로부터 득달같이 까임을 당했다.
성격도 다혈질이었다. 부임 후 지옥훈련을 진행하던 중 선수들에게 자주 호통을 쳤다. 기사 당시 찍힌 사진들을 보면 화난 표정이 대부분. 경기 도중에 골이 터져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6] 다만 축구팬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다고 한다. 싸인 요청에 일일이 다 응해줬다고.[7]
2.6. 대인관계
마틴 욜과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친분이 있다. 특히 판 마르베이크는 MVV 시절 후배였고, 또한 본프레레는 감독으로서 그를 지도한 적도 있다.
반면 딕 아드보카트, 루이 판 할과는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본프레레는 아드보카트가 후임감독으로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판 할에 대해서는 "그는 자기가 뭘하는지도 모른다"#며 "멍청한 감독"#이란 원색적 비난을 했다는 썰이 나이지리아 인터넷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3. 축구인 경력
3.1.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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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V에서 데뷔한 이래 원클럽맨으로써 평범한 선수 생활을 보낸 뒤 은퇴했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뛰지는 못했지만, 청소년 대표로 선발된 적은 있다.
알려진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지만, 마틴 욜은 본프레레를 두고 "선수 시절 최고의 윙백이었다."이라며 추겨세우는 걸로 봐서는 윙백도 맡은 듯.
3.2. 감독 경력
3.2.1. 나이지리아 대표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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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V 감독 시절.
1980년대, 두 차례나(1983년, 1985년) 친정팀인 MVV 감독을 했었고, 1991년에는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여자 월드컵에 진출시켰다. 참고로 이 당시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선수였던 치오마 아준와는 이후 육상으로 전향하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 육상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건 나이지리아의 유일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로 남아있기도 하다. 아래 언급될 본프레레와 나이지리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3.2.2. 나이지리아 대표팀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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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감독시절 초기 내내 주목을 받지 못 하던 그의 인생을 뒤바꾼 터닝 포인트적인 사건이 터진다.
1994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던 본프레레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1996년에 감독직이 공석이 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승격되고,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에서 준결승 브라질, 결승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격파하며 '아프리카 최초의 국제대회 우승'과 '아프리카 최초의 올림픽 축구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8]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임 감독이 만들어놓은 팀이고 당시 카누, 바방기다, 바바야로[9] , 올리세 등 스타 선수들이 제 몫을 했을 뿐 별로 본프레레가 한 일은 없다고 폄하하지만, '''아무리 선수들이 잘 뛴다 해도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면 폭삭 무너지는 게 축구에서는 비일비재하며''', 당시 브라질팀에는 호나우두, 베베토, 히바우두, 주니뉴 파울리스타, 호베르투 카를로스 등이 있었고, 아르헨티나팀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클라우디오 로페즈, 하비에르 사네티 등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화려하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팀 모두 격파했다는 점에서 본프레레의 업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다.[10]
3.2.3. 카타르 대표팀
1996년,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노리는 카타르축구협회로부터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계약을 맺는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최종예선에 합류했을때까지만 해도 그 전망은 밝았다. 하지만 최종예선 초반 '''무승행진'''을 달리며 최하위로 추락하자 급해진 카타르는 그를 경질했다.
물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11] , 이란, 중국(!), 쿠웨이트라는 강호들이 같은 조여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카타르는 그를 경질한 이후 쿠웨이트와 중국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선 이란를 물리치며 급상승세를 탔다는 것...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월드컵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12]
3.2.4. 나이지리아 대표팀 2기
1999년, 나이지리아 축구 협회로부터 연락을 받고서는 다시금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2000년, 홈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승부차기에서 카누의 실축 등의 불운이 따르며 라이벌 카메룬에 홈에서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땐 세계적인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 선수 조지 웨아가 월드컵 나가보겠다라는 각오로 나온 라이베리아와 모하메드 칼론이 이끄는 시에라리온에 지며 탈락위기에 몰려 카타르에서처럼 또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는 연승행진을 달렸고 마침 가나가 라이베리아에 2-1로 이기는 덕분에 극적인 승점 단 1점 차이로 마지막으로 남은 아프리카 할당 월드컵 티켓을 획득한다.
사실 당시 나이지리아 축구 협회와 불화가 있었다고 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당시 한국팀 감독은 허정무. 두 차례 평가전을 가졌는데 5-1로 한국에 진 경기에서 야쿠부[13] 가 페널티킥을 넣기도...
3.2.5. UAE 대표팀과 알 아흘리
2001년부터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에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지만, 이란에 패하며 월드컵에 또 참가하지 못한다.[14]
이어서 2002년, 이집트 리그의 명문팀 알 아흘리 SC 감독을 맡지만, 준우승에 머무르며[15] 해임된다.
3.2.6. 대한민국 대표팀
3.2.7. 대한민국 대표팀 이후
딕 아드보카트가 히딩크와 동급의 명장이 왔다는 등의 본프레레와 다른 호의적인 여론 속에서 화려하게 출발하면서 본프레레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발끈해서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짜놓은 팀을 쓰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조원희는 아드보카트호에 A매치 데뷔전을 뛰긴 했지만, 실제로는 본프레레가 먼저 발탁한 선수다. 2006년 초에는 본프레레도 2-0으로 이겼던 UAE와의 경기에서 아드보카트호가 첫 패를 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아드보카트를 비난했다.
본인의 주장으로는 축구협회 고위층과 선수 선발을 가지고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16]
이후 2006년 봄, 가브리엘 칼데론[17] 과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지원했으나, 밀란 마찰라[18] 가 선임되면서 칼데론과 함께 탈락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둔 당시 전지훈련을 하던 한국 대표팀의 경기에 여러번 나타나서 친분이 있는 오토 피스터 감독이 맡고 있던 토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심지어 토고 선수단 불화가 심해질 때 본프레레가 감독에 부임했다는 헛소문까지도 돌았다.
이후 중국의 다롄 스더와 아랍 에미리트의 알와다 감독을 하기도 했으나,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쉬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부진한 샤이부 아모두 감독을 경질하자 자신에게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맡기면 결승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며 감독직 지원을 했다.# 그러나 씹혔다.(...) 그러고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하자 디스를 했다.# 결과적으론 나이지리아가 한국에 밀려 탈락해서 맞는 말이 되었다.(...)[19][20]
그러다가 2011년 7월, 중국의 허난 젠예 감독으로 복귀했다. 묘하게도 경질된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것이어서, 한국 축구과 간접적인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오만 국내리그 팀 도파르 SCSC로 이적하였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아무리 뉴스를 찾아봐도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찌라시였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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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프리카 쪽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모습. 확실히 많이 늙었다.
2016년, 알랭 페랭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지원을 했으나, 공한증을 최초로 깬 가오훙보 감독에게 밀렸다.#
3.2.8. 바오딩 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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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딩 룽다 감독으로 부임.
2017년 5월, 중국 갑급 리그의 바오딩 룽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팀은 2017년 을급 리그에서 승급했으나, 리그 동네북으로 계속 연패해 꼴지를 달리고 있다. 옌볜 푸더에서 연초에 방출된 하태균이 뛰고 있다.
부임한지 얼마 안된 7월 5일, 본프레레는 주심에게 격렬히 항의했다는 이유로 2게임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구단 전체가 중국 축협에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7월 1일 바오딩 룽다는 우한 줘얼과의 대결에서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심판이 로스 타임을 7분이나 주었고, 이때 우한이 한골을 넣어 2-2로 비겼는데, 이에 본프레레는 격렬히 항의했고, 여기에 바오딩 선수들은 한술 더 떠 탈의실에서 불을 끄고 주심과 부심을 폭행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중국 축협은 바오딩에 대대적인 징계를 내렸고, 본프레레에 대한 징계 이외에도 구단측에 홈경기 1게임 몰수 및 26만위안의 벌금을 내렸다고.
막판까지 강등권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폈으나, 결국 바오딩은 안타깝게 강등되었다. 사실 14위인 다롄 차오웨와 승점 31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승자승 원칙에 의해 다롄 차오웨가 14위, 바오딩 룽다가 15위를 하여 강등되었고, 본프레레도 계약이 끝나 짐을 싸게 되었다.
이후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 감독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이도 이제 70대에 접어들었으니 은퇴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3.2.9.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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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2년 전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기고 집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서야 받게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에 있는 집이라고. 나이지리아에서는 여전히 영웅 대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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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같은달 나이지리아에서 축구해설을 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21] 시기상으로 보면 2018 러시아 월드컵 시즌.
4. 명언
4.1. 3골 먹으면 4골 넣으면 됩니다
4.1.1.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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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부터 보면 된다.
2005년 6월,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 대비 훈련 중 인터뷰를 하다가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질문에 "우리 수비라인에서 3골을 먹으면 공격진이 4골을 넣으면 됩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다시 말해 부족한 수비력을 막강한 공격력으로 보완한다는 뜻. 당시에는 워낙 당연한 소리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후 이 장면이 짤방으로 쓰이면서 간간이 주목받았다.
4-3 스코어가 나온 경기, 특히나 역전승을 거둔 경우에 이 짤방이 쓰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4.1.2. 사례
그로부터 5년 후 그의 발언이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제대로 실현되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결정전인 '대한민국 대 이란' 경기에서 대한민국 U-23 대표팀이 후반 초반까지 1-3으로 밀리다가 후반 막판에 3골을 몰아치며 동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로 인해 "본프레레는 시대를 앞서나간 명장"이라면서 재평가론이 줄을 잇게 되었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 감독(기사, 이미지)과 야구 도쿄대첩 등 야구에서도 적용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K리그에선 제주 유나이티드가 이를 잘 실천했었는데,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6월 6일에 있었던 FC서울의 원정경기다. 전반 막판에 0:1로 앞서다 후반에 3:1로 뒤쳐지더니 이윽고 3골을 더 넣어서 3:4로 승리한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제주의 K리그 FC서울 원정 첫 승리다.
2017년 5월 16일 EPL 첼시 vs 왓포드 경기에서 첼시가 4-3 승리를 거두었다.
2017년 8월 16일 EPL 개막전인 아스날 vs 레스터 경기에서 아스날이 4-3 승리를 거두었다.
2018년 1월 15일 EPL 리버풀 vs 맨시티 경기에서 리버풀이 4-3 승리를 거두며 맨시티의 리그 22경기 무패 행진을 마감시켰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또다시 제대로 실현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수비진의 어이없는 실수로 2골을 먼저 넣었음에도 3골이 먹혀 2:3으로 우즈베키스탄에게 밀리고 있었으나 황의조가 해트 트릭에 이은 연장전 후반에 페널티킥까지 얻어내고 이를 황희찬이 넣어서 4:3으로 대한민국이 승리한 것. 각종 커뮤니티에는 또다시 본프레레 감독의 발언을 재조명하고 있다.
2018-19 UCL 4강전 리버풀vs바르셀로나 에서 1차전에 3-0으로 패했던 리버풀이 2차전을 4-0으로 승리하며 '''3골차 열세를 뒤집고 결승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 발언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 자세한 경기 내용은 안필드의 기적(2019년) 참고. 여담으로 같은 해에 강원FC가 리그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4대 0으로 뒤지다가 후반전에 5골을 내리 넣으며 5대 4로 대역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자세한 경기 내용은 송암의 기적 참고.
최근에는 세리에A의 아탈란타가 조봉래 선생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팀은 리그 25라운드 기준 70득점 34실점으로, 경기당 1이 넘어가는 실점을 경기당 3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득점력으로 커버하고 있다. 게다가 챔스에선 에이스 일리치치가 발렌시아를 상대로 3골먹고 4골을 혼자 넣어서 승리하기도 했다.
4.2. 본프레레의 5대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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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본프레레의 5대 예언'이란 제목의 짤방이 돌아다녔다. 저 중 '''4개'''가 맞았다.
- (O): 프로 입단을 준비하던 2005년 초의 박주영에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며 서양 선수들과 경합할 피지컬이 없다고 지적한 게 과장된 것 같다(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싫다 한들 자기 밑에 있는 선수한테 대놓고 병신이라고 욕할 감독은 없다). 하여튼 실제로 2006년 본선 합류는 했으나 유럽 선수들의 피지컬에 밀리며 특별한 활약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점의 빌미까지 제공했기에 결과적으로는 적중.[22] 다만 해당 발언 이후 정작 본프레레 본인이 박주영을 직접 발탁하고 '많이 발전했다'는 평까지 했기에 애매하다면 애매한 케이스.
- (O): 이동국은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꼽히던 선수였다. 부상으로 2006년 최종 엔트리 합류가 불발되긴 했지만 후배 조재진 등으로부터 그가 있었으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중요한 전력이었다.
- (X): 이 부분은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김진규는 실제로는 본프레레가 가장 신뢰한 선수 중 하나였다. 특히 본프레레가 한국을 떠나면서 자신이 발탁한 어린 선수가 월드컵 무대에 설 거라고 말했는데, 정황상 김진규가 확실해 보인다. 본프레레는 김진규가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패스 미스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자 오히려 그를 치켜올리기도 했다. 즉, 이 케이스는 예언의 적중 여부는 둘째치고 아예 본프레레의 의견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
- (O): 토고 대표팀은 독일 월드컵에서 승점자판기였다. 토고가 3전전패를 해버려서 토고는 당연히 잡아야 하는 데다 오히려 큰 점수차로 못 잡은 한국이 스위스, 프랑스에게 밀린 모양새가 되었다.
- (O): 아드보카트호는 스위스 대표팀에 패배하며 16강행이 좌절되었다.
5. 평가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2000년, 대한축구협회에서 새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서 우선협상자를 선정했는데, 이때 1순위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에메 자케였고, 2순위가 거스 히딩크, 3순위가 조 본프레레였다. 그 다음 4순위는 역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를 이끌었던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였다고 한다. 당시 축구협회의 판단이 정확했다면, 이는 곧 본프레레가 한국 내에선 인지도가 낮더라도 실력만큼은 인정받고 있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또한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감독 생활을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가 대한민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일례로 식당에서 김치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이거보다 더 매운 것도 먹어봤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축구협회 인사들과 등산도 함께 했으며, '''무엇보다 K리그 경기를 꾸준히 관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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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때는 식사를 김밥으로 해결하는 등,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 무엇보다 음식 적응을 굉장히 잘 한 편이었다. 가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잘 먹는 편이지만, 해삼만은 보고 개깜놀한 뒤에 백기를 들었다고...[23] 이 부분에서는 갈비와 생선전 정도 말고는 한국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히딩크와는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올 때부터 히딩크로 인해 눈이 지나치게 높아진 대중들에겐 저 듣보잡 감독은 누구냐는 편견이 자리잡았다(...). 하필 전임자들인 히딩크와 코엘류 둘은 모두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감독들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선임 당시 실책으로 인해 몸값이 떨어졌을 때 낚아채온 인물들이었다. 그러다 한껏 높아진 눈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선임에 들어서야 국내 축구 예산의 녹록치 못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 다소 누그러졌다. 게다가 직전 감독이 나락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고... 게다가 울리 슈틸리케마저 개선해주는가 싶더니만 오히려 정체만 왕창 시키면서 경질된 이후에 계속 재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언론을 상대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심한 행태를 보였으며, 이렇게 비롯된 언론과 불화가 심한 것도 부정적 평가에 한 몫 했다. 경질될 즈음에는 아예 언론에서 대놓고 매장을 해버린 수준.[24]
그리고 그를 지지해줄 강력한 인맥도 없었다. 히딩크는 부임 당시 기세가 좀 꺾이긴 했지만, 이미 세계적인 감독이었고[25] 그와 한배를 탄 정몽준 회장과 이용수 기술위원장[26] 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었다. 하지만 본프레레는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 경력 대부분도 비주류였기 때문에 그와 친분이 있는 축구계 인물들 중에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와 제이제이 오코차 정도가 그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들이 분명 유럽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아프리카 선수들이 맞지만, 디디에 드록바와 사무엘 에투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엔 판 마르베이크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 전이었기에 한국에서는 페예노르트 시절 UEFA컵에서 우승하고 송종국을 지도했던 감독이라는 점 외엔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었고, 재정난으로 암흑기에 시달리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본프레레 본인 스스로가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슈틸리케는 감독으로는 좋은 소리를 전혀 못 들었지만, 선수 시절엔 레알 마드리드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했을 정도로 본프레레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기 때문에 인맥이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렇게 감독의 국제적 인맥이 부족하면 월드컵 본선 준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27] 결과적으로 이래저래 불운한 감독이었다.
본프레레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노력하는 3류 감독(...)으로 평하기도...실제로 본프레레호의 성적을 자세히 보면 아시아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스웨덴, 콜롬비아, 독일, 파라과이 등의 강팀 혹은 강호급 팀에게는 '''1승 2무 1패'''로 상당한 선전을 펼쳤다. 특히 독일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둔 것과 스웨덴, 콜롬비아에 선제골을 넣은 것은 2016년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까지 맡고 이동국이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본선에 같이 갔다면 한국팀은 더 좋은 성적을 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삽질할 때마다 그와 비교를 하기도 하는데, 2017년, 슈틸리케호의 개막장스러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들 때문에 최소한 슈틸리케보다는 위로 평가받을 듯 하다. 축구협회로부터의 지원은 슈틸리케호가 더 많았고, 연봉도 20억원으로 본프레레의 2배나 되었으며, 팀을 지도한 기간도 훨씬 길었다. 허나 본프레레는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월드컵에 진출시켰는데 반해, 슈틸리케는 중국, 카타르 등 조 내의 약체 팀들에게도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까지 처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중에 어찌어찌해서 겨우 본선에는 갔지만...
또한, 본프레레는 K리그 관람도 슈틸리케보다 훨씬 많이 했고, 형식적인 관람이 아니라 필요한 선수를 잘 골라서 썼으며[28] , 팀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자세한 건 이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슈틸리케는 2016년 10월 이란 원정경기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한 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없는 발언까지 하며 팀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또한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전성기가 다 지났고, 한쪽 눈이 실명되어 공간 감각이 떨어지며,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되어서 K리그에서도 심각하게 부진하고 있는 곽태휘를 기술위의 반대에도 뽑고 선발로 기용까지 하여 카타르전 패배의 큰 원인을 제공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선수 기용까지 생각하면 본프레레랑 비교하는 건 본프레레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곽태휘 뽑으면 안 된다고 기술위에서 말했는데 뽑았다는 기사.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어난 대 이변 덕분에 다시 재조명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감독 사퇴 이후 오랜 기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술고문 및 코치 자리에 있었던 허정무는 '그 동안 거쳐간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제각각 배울 점이 있었지만, 본프레레 감독에게만은 본받을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허정무나 본프레레나 악의적인 까#s-2들이 많기 때문에 이래저래 왜곡당하기 좋은 발언인데, 사실 허정무 입장에선 맞는 말이고, 본프레레 입장에선 억울한 말이다.
본프레레 이전 거쳐간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봤자, 데트마어 크라머(1991~1992),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1996), 거스 히딩크(2001~2002), 움베르토 코엘류(2003~2004) 4명이 고작인데다, 이들은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다. 크라머 감독은 과거 한국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축구, 말하자면 본가의 적장자였고, 비쇼베츠는 구 소련 축구의 계승자이다. 히딩크 감독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토탈 풋볼 네덜란드,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이였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대한민국 축구계로선 감독이 외국인으로 바뀔 때마다 신세계를 경험했던 셈이다.
특히 크라머 감독은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팀에 동메달을, 비쇼베츠 감독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 축구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 코엘류 감독은 유로 2000 4강을 달성한 만큼 모두 '확실한 성과'로 검증받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본프레레도 이래봬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나이지리아팀으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최소한 비쇼베츠랑 동급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아무나 따나? 거기다 아프리카 대륙의 축구 최강국을 다루는 대회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코치로 우승 경험 한 번, 감독으로 준우승 경력이 한 번 있다. 유럽에서 경력을 쌓지 않아서 유럽 쪽에서는 듣보, 3류로 인식되고 있었을 뿐이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예선부터 레바논에게 역사상 처음 패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고전하는 조광래호를 보면서 '''조봉래 감독이 차라리 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습게도 이 본프레레를 마구 까던 게 그 조광래라서 곱배기로 까임 역습 중.
그리고 홍명보호가 조별예선에서 꼴찌로 탈락하면서 다시 거론되었으며, 본프레레에게는 본받을만한 게 없다던 허정무는 축협 부회장직에서 잘렸다(...). 이후 브라질이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침몰하자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본프레레의 업적이 다시금 추앙받기도 했다. 그리고 4년뒤 미네이랑 대첩을 이끈 짭태용은 원조태용에게 후반추가타임에 그대로 떡실신당한다.
6. 여담
- TE31에서 2005년부터 현재까지 13년간 친근한 봉형으로 모셔지고 있다. 댓글만 3천여개가 넘게 달려 있는데, 죽 읽다 보면 국대 경기결과는 물론이고, 2006년~2014년 월드컵은 물론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최근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이명박이 구속된 것 등을 포함해서 온갖 일상생활을 미주알고주알 고해성사 하듯 봉형에게 상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소. 단순히 묻혀있던 옛날 글을 발굴해낸 것도 아니고 꾸준히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 그리고 2018년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에서 3골을 먹히면 4골을 넣으면 된다는 명언이 다시 한 번 실현되며 봉형앓이에 정점을 찍었다. 하여튼 이 사실이 FM 코리아등 다른 몇몇 커뮤니티에도 공개되며 좀 더 주목을 받나 싶더니, 2019년 10월 22일 확인한 바로는 글이 비공개 처리되어 있다. (...)
[1] 現 에이스던마르흐라턴[2]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한중일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이 오히려 아프리카 - 중동보다도 더 변방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이런 곳을 전전한다고 해서 일부 축구팬들처럼 국내 감독보다도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팀 컬러에 큰 영향을 주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일본을 16강에 올린 필립 트루시에나 한때 한국 국대 감독으로 유력했던 브루노 메추도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3] 그 덕에 본프레레를 극도로 깐 조광래와도 자주 얽힌다.[4] 이 별명은 당시 WWE에서 맹활약한 프로레슬러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도 붙여진다.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의 이니셜이 JBL이기 때문.[5] 00:59 부터.[6] 2004년 독일 대표팀을 털 때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본프레레가 '쟤네들 왜 이렇게 잘 하냐?'며 황당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 정도.[7] 한 축구팬이 본프레레가 묵고 있던 그랜드호텔에서 무서운 표정의 본프레레를 발견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싸인 요청을 했는데, 별다른 말 없이 싸인을 해주고서는 제 갈 길을 갔다고 한다.[8] 거기에 1996년에는 이런 대기록을 바탕으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월드 사커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그것도 무려 유로 1996 우승을 차지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유벤투스 FC를 제치고 수상하였다.[9] 3B의 그분 맞다.[10] 실제로 당시에는 축알못이 작성한 이런 식의 글이 여러 포털 댓글이나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경질론이 우세해졌다. 그때는 전임 히딩크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에, 웬만한 감독은 대중의 성에 차지 않았고, 이런 식의 선동이 잘 먹혀들어갔다.[11] 당시 감독이 넬루 빙가다였다.[12] 4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란과는 불과 승점 2점 차. 1위로 올라온 사우디아라비아와는 4점차. 그러니깐 초반 부진만 아니었으면 본선 진출이 가능했단 말.[1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니가가라 16강 슛을 시전한 그 분이 맞다.[14] 결국엔 이란도 아일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득실차로 밀리며 탈락했다.[15] 라이벌 자 말렉도 만만찮은 강팀이지만, 알 아흘리는 이집트 국가대표가 다수 있는 과장되어서 말하면 우승은 밥먹듯이 하는 팀이다. 물론 본프레레 시절 뿐 아니라 이 무렵은 한동안 암흑기였다.[16] 정몽준이 선수 기용에 크게 간섭했다고 밝혔는데, 정몽준은 부인.[17]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 지역예선을 치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는데, 팀을 본선에 진출시키고도 2005년 겨울에 있었던 서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해임되었다. 이후 2006년 봄에는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탈락했으나, 정작 2007년에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2008년까지 맡았다.[18] 한국 킬러로 명성이 높은 체코 출신의 감독이자 그 유명한 오만 쇼크의 장본인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본의 아니게 경질시킨 감독이다. 이후에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7년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인도네시아에게 져서 탈락 위기에 내몰린 후 다음 경기인 한국을 상대로 1-2로 꺾어 기사회생하게 만든다. 마찰라 쇼크는 마찰라 감독이 쿠웨이트를 맡았을 때 한국을 꺾었고, 그 이후의 그 유명한 오만 쇼크와 바레인의 역전승을 포함하는데, 이 정도면 가히 한국축구계에 천적이자 악연 중에 악연이라고 봐야 한다.[19] 참고로, 당시 나이지리아가 한국과 같은 조에 추첨되었는데, 본프레레 본인으로선 전임 담당 팀을 적으로 만날뻔할 수도 있었다.[20] 한편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스웨덴 감독으로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나이지리아 감독으로 16강 진출도 못 하였고 결국 사퇴, 이후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완전히 한물 감독으로 여겨졌으나...아이슬란드를 유로 2016에 진출시키는 예상을 뒤엎는 쾌거를 일으키면서 부활했다. 게다가 히딩크 감독이 맡았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탈락시켜 히딩크는 물론 본프레레에게도 충격을 줬을 듯.(...) 참고로 2005년 연초 평가전에서 본프레레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그냥 의례적으로 떨떠름하게 악수를 하는데 이후 연말 평가전 때 아드보카트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유로 2004 때 상대팀 감독으로 만나 안면이 있는 탓도 있고 원래부터 아드보카트가 유명한 감독이라서 그런지 반갑게 악수한다.(...)[21] 다만 영상과 사진은 축구해설이 아닌 별개의 프로그램.[22] 이후 2010년 월드컵 16강 진출의 주역으로 성장했던 박주영이 극심한 부진으로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주역이 되고 이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게 되면서 본프레레의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23] 사실 해삼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24] 심지어 경질 전 지상파 뉴스에서 본프레레를 까는 뉴스를 내보냈을 때 처음으로 틀어준 자료화면이 히딩크 시절 2002 월드컵 영광의 순간들을 먼저 보여준 후, 본프레레 체제하에서 선수들이 삽질하는 장면만 모아 아예 화면까지 흑백처리해서 내보내며 이 모든게 감독탓인양 선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좀 어이없는게 2002 월드컵 영광의 순간과그런식으로 비교한다면 역대 그 어떤 감독도 다 무능한것처럼 비쳐진다는 것.(...) 당시 이 뉴스를 시청한 축구팬들도 본프레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런 악의적인 편집을 두고 '언론이 사람하나 병신 만드는거 일도 아니다'며 혀를 찼을 정도였다.[25] 2002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할 때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히딩크와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 다음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참고로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는 등 한국 선수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으로 잠깐 인터넷에서 말이 많기도 했다.[26] 조별리그 통과 못한 최초의 개최국이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이 내놓은 특별 대책이 외국인 감독이었다. 히딩크가 낙마하면 그를 영입한 이용수와 정몽준의 입지도 흔들리게 돼 있었다.[27] 사실 2013년 선임되었던 홍명보는 당시 국내파 감독에 비해 해외 인맥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기도 했다. 전임 감독들인 조광래와 최강희는 차범근과 홍명보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지고 해외 인맥이 있는 편은 아니다.[28] 특히 이동국이 본프레레가 떠난 후 무려 15년 가까이 된 현 시점까지도 K리그에서 꾸준한 걸 넘어 '''매년 두 자리수 득점을 할 정도로''' 레전드급에 오른건 본프레레의 공이 상당하다. 본프레레가 부임할 당시 이동국은 그나마 광주 상무(現 김천 상무 FC)에서 활약하는 정도였지 사실상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이 0에 가까웠지만, 본프레레가 다시 발탁하여 기회를 지속적으로 준 결과 재임 내내 가장 큰 활약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힘이 되어줬고, 이후 K리그를 호령하는 레전드급 선수로 발돋움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