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카와 카츠히로
1. 소개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걸 몸소 알려주던 투수'''
일본의 야구 선수. 프로에 들어와 줄곧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뛰어온 투수. 2003년, 2006년, 2009년 총 3번 올스타전에 출전한 베테랑 투수이며, 히로시마 구단 역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통산 165세이브) 보유자이기도 하다.
2.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 현 신조 고등학교, 아지아대학을 거쳐 2002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구단 사상 최초로 자유획득범위 제도를 통해 입단했다. 대학 리그 통산 15경기 5승 4패 2.03을 남겼다.
3. 프로 입단 후
2003년, 2000년 토마베치 테츠토 이후 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전해 30세이브를 올리며 마무리로 활약하던 오야마다 야스히로가 부상을 입어, 그를 대신에 마무리 투수로 활약해 구단 신인 최고 기록인 25세이브를 거둔다. 이 해 올스타전에도 출전했고, 41이닝동안 16개의 볼넷을 내줄 동안 50개의 삼진을 잡았다. 신인왕 경쟁에서 10승을 올린 기사누키 히로시 와 25홈런의 무라타 슈이치와 경쟁을 벌여 결국에는 기사누키 히로시에게 신인왕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2004년에는 비록 4월에 4세이브를 올렸지만 부진했고, 5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역전패를 당해 결국 원래 선발투수였던 외국인 선수 존 베일에게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해 5월에는 세이브를 거두지 못했다. 8월에는 1군으로 승격되어 한신 타이거즈전에선 첫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선발로 뛰면서 점점 본인의 장점인 속구 구위가 떨어져갔고, 결국 오른쪽 어깨 통증이 겹치며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05년에는 마무리 존 베일로 연결하는 셋업맨 역할을 맡았다. 캠프에서 배운 투심 패스트볼과 교류전 종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슬라이더로 투구의 폭을 넓혔다. 8월에 다시 부상을 입어 한 달 가량을 날려먹었지만 57경기에 등판해 히로시마 시민구장[2] 이라는 좁은 구장을 사용하면서도 피홈런은 단 2개에다 평균자책점은 3.13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이단투구 규정에 따라 투구 폼을 수정하면서 제구가 이전보다 안정되기 시작했다. 개막 당초에는 중간계투로 시작했지만, 마무리 존 베일이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마무리 보직을 다시금 맡게 되면서 리그 최다 67경기에 등판해 이와세 히토키에 이어 세이브 부문에서 27세이브로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나가카와는 오노 유타카이후 구단 사상 두 번째 2년 연속 25세이브, 세이브 구단 신기록인 31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제구력이 지난 시즌보다 불안해져서[3] 2경기 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하는 등 세이브 기회를 10번이나 날려먹으면서 팬들에게는 '''나가카와 극장''' 이라고 불리게 된다.
2008년엔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는 아픔을 겪었으나, 4월 하순즈음 복귀해 포크볼에만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투구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구원에 실패한 것은 단 한 번 뿐이라는 안정감 발군을 보인다. 8월엔 오노 유타카 이후 구단 사상 두 번째로 3년 연속 20세이브를 기록했고, 9월에는 2년 연속 30세이브를 거두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후지카와 큐지와 함께 리그 2위의 38세이브를 거두었다.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두 배로 뛰어 1억 6천만엔을 찍게 되는데, 이는 팀내 최고 연봉이었다.
2009년 5월 24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는 오노 유타카의 기록을 경신하는 구단 통산 139세이브를 올리고, 같은 해 8월 1일 요코하마 전에서는 사상 7번째로 통산 150세이브를 달성했다. 9월 10일 야쿠르트 전에서는 구단 최초로 3년 연속 30세이브를 기록했다.[4]
하지만 2010년에는 부상으로 10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2011년에는 데니스 사파테라는 걸출한 마무리 투수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마무리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2012년에는 폼이 올라오지 않아 아예 2군에만 머물렀다.
2013년 이후에는 주로 셋업맨을 맡고 있다. 이미 전성기는 지난지 꽤 오래되었고, 이치오카 류지, 이마무라 타케루, 나카자키 쇼타 등 어린 투수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에 다시 클로저로 돌아갈 일은 없을 듯.
2014년 이후로는 부상과 부진으로 주욱 2군에 머물렀고 2017년에는 아예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2018년 6월 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8회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카프 불펜투수진의 중핵이던 이마무라 타케루나 제이 잭슨이 부진하던 와중이라 다시 기회를 잡나 싶었지만 22경기에 등판해 4점대 후반의 ERA를 기록하며 올해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에는 1군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9월 6일 은퇴할 것을 밝혔다. 9월 23일 홈 경기에서 은퇴경기를 가졌다.
4. 플레이 스타일
흡사 놀란 라이언이 떠오르는 하이키킹 투구폼으로 최고 153km/h의 직구와 포크볼을 던진다, 특히 타자의 얼굴 높이에서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낙차 큰 포크볼이 주 무기. 이 포크볼이 전체 투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해, 탈삼진 비율이 높은 편이다. 다만, 포크볼의 제구가 되지 않는 날은 사사구를 잘 내준다. 포크가 제구가 되지 않을 땐 슬라이더를 던지기도 한다. 또한, 독특한 투구폼으로 인해 한번 폼이 무너지면 다시 수정이 어려운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볼질과 제구난으로 명성을 떨친(...) 투수답지 않게 등번호 20번은 정밀한 제구력으로 유명했던 카프의 레전드 투수 키타벳푸 마나부에게서 물려받았다.
포크볼 포구 하나는 잘 하는 이시하라 요시유키와 자주 배터리를 짠다. 이시하라가 아닌 다른 포수와 배터리를 짜면 포크 비율이 줄고 사사구를 남발한다(...). 이에 구단은 '삼자범퇴' 옵션을 넣어 계약을 맺고 있다.
마운드에선 의식적으로 무서운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본인은 무서운 얼굴을 해서 득을 보는 건 있어도 손해 보는 건 절대 없다고. 타자를 잡더라도 투구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납득하지 않는 완벽주의적인 일면도 있다.
5. 인물
특이하게도 중학교 3년 동안은 '''농구부'''에 속해 있었다. 또한 팀 동료인 소요기 에이신과는 같은 소년 야구팀에 소속되어 있던 소꿉친구이기도 하다.
7살 아래의 동생 나가카와 미츠히로(永川勝浩) 역시 야구선수로, 이쪽은 우완투수인 형과 달리 좌완투수이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에 의해 육성선수로 지명되었지만, 2014년까지 1군 등판은 한 경기도 없이 방출되었다.
지병으로 요통을 갖고 있다고 한다.
6. 기타
성을 우리말로 쓰면 '나가카와(永川)' 인데, 자주 나카가와(中川)와 혼동되곤 한다. 당장 이 나무 위키에도 나카가와 가즈히로라고 적힌 문서가 좀 된다.
7. 연도별 성적
8. 관련 문서
[1] 구단 최초로 자유획득범위 제도를 통해 신인으로 입단한 케이스.[2] 지금의 마츠다 줌줌 스타디움으로 옮기기 전의 구장이다.[3] 특히 폭투는 개인 최다 기록인 11개를 기록했다. 이 선수가 1년에 많아야 70이닝 정도를 던지는 마무리 투수란 걸 감안하면...[4] 물론 이 때도 투구는 나가카와 극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