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
1. 지명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羅城洞) - 구 연기군 남면 나성리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나성리(라성리, 羅星里)
- 황해북도 금천군 덕산리의 마을 나성동(羅城洞) - 구 금천군 나성리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한자식 가차 표기(羅城). 나성에 가면의 나성은 이 곳이다.
2. 羅城
수도에서 가장 외곽에 있는 성. '''외성(外城)''', '''도성(都城)'''이라고도 한다.
나 자는 "벌여 놓다"란 뜻으로 임금의 궁궐, 수도를 둘러싼 성을 말한다. 나성 안엔 황성이 있다.
원 의미의 나성은 중국 당나라 때에 정립된 제도로 아성 > 나성 > 자성의 순서가 정해졌다. 나성이라고 부르는 데에 내포된 함의는 도성의 구성요소이면서 지형에맞게 형성되어 도성의 일부 생활공간을 방어하고 경계짓는 것을 뜻한다.
요즘에는 정의나 함의가 무색하리만치 도성제나 성곽을 논함에 있어 한국 도성제 뿐만 아니라 종주국인 중국 도성제를 논해도 당대(唐代)의 정의처럼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이제 나성이란 표현도 자주 쓰이지 않고 '''외성(外城)으로만 구분되고 있으며 굳이 나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즉 수도를 둘러싸기만 하면 다 나성 혹 외성이라 부른다는 것. 우리나라는 나성이 꽤 늦게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왕조들의 도성 체제의 독자성 때문이다. 고신백 삼국 모두 초중기엔 넓은 평지성을 쌓아 궁궐을 만들고 근처 산지에 산성을 쌓아 요새를 만드는 이중수도 체제였다. 이후 고구려는 장안성, 백제는 사비성을 쌓으며 기존 이중수도를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일원화된 종합수도로 변화시킨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의 초창기와 유사한 이중수도 체제를 끝까지 독자적으로 유지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삼국통일 직후 문무왕이 서라벌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할 때 지으려고 했다가 의상대사의 반대로 그만둔 수도 성곽을 이 나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1]
평지성과 산성을 합친 평산성식 나성은 고려,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개경 나성, 한양도성으로 이어진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나성은 여러가지가 있다.
3. 懶性
게으른 성질을 뜻하는 말.
4. 羅星
별이 죽 늘어선 것.
5. 트위치 스트리머 김나성
문서 참조.
[1] 이 통일기를 기점으로 경주도 당나라식 도시구조를 일부 차용하는데, 이 역시 일본이나 발해가 당나라식을 그대로 이식하다시피 도입한 것과 달리 고대도시 경주와 섞인 독자적인 형태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