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inner child'''
1. 개요
2. 내용
3. 회의론
4. 관련 문서


1. 개요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한 자아가 있다는 상담기법. 카를 융의 원형(archetype) 개념에서 분리되어 나왔으며, 현대에는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과 함께 유사-정신분석적 치료법으로 분류되고 있다.
존 브래드쇼(J.Bradshaw)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Homecoming: Reclaiming and championing your inner child)가 이 분야 책으로 유명하다. 브래드쇼는 1980년대 미국에서 자기계발서와 심리테라피 수요가 광범위한 여성들에게 폭증하던 시대적 추이를 타고 어마어마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상담가이자 대중강연자였다. 이 시절에 브래드쇼 이외에 내면아이와 유사한 기법들을 활용했던 집단들로는 "California family therapy institute", "Women with multiple addictions", "Formerly employed mothers at loose ends", "National self-help clearing house" 같은 단체들이 있었다.

2. 내용


일단 어린 시절의 경험이 미래의 삶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친다는 걸 전제로 한다. 만일 당신이 어린 시절에 성범죄가정폭력등의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에 대한 억압이 나타나게 되는데,[1] 이것이 몇 년, 혹은 몇 십년 뒤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당시의 상처의 기억이 나와서 재발이 계속된다.
여기서의 상처를 수치심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수치심은 우울증, 편집증, 완벽주의등의 성격장애의 원인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수치심이 내면화 되었다면, 심리적 무감각 상태가 되어버린다.
또한 이러한 상태는 유아퇴행을 일으키기도 하며, 특정 행동[2]을 반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이걸 반복강제라고 부른다. 이건 나중에 불합리의 논리로 수정된다.

3. 회의론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지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상처받은 아이를 끄집어내는 것이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키는 중심 드라마가 되면서, 피해자 지위를 거부하고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대체로 밀려나 버렸다... 여성들은 상처받은 어린 소녀라는 자아를 '구출' 하려고 유년기의 진창에 뛰어들었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버렸다."

-

- 수전 팔루디(S.Faludi), 1991

'''이 분야는 대중적으로 심리학으로 분류되지만, 오히려 정신분석학의 상당히 예외적인 파생형에 속한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하기" 와 같은 슬로건이 학술적 접근보다는 도리어 대중적 운동에 가깝다는 현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몇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우선 내면아이 관련 이슈를 다룬 논문들은 거의 대부분이 '''석사학위논문'''이며, 방대한 인용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학술지 논문은 상당히 드물다. 또한, 이러한 논문들은 거의 대부분이 '''상담학'''[3] 분야, 즉 사회복지학이나 기독교상담학(목회상담학), 가정학, 가족치료학, 청소년학, 교육상담학 같은 것들뿐이지 실제 심리학계에서 진지하게 연구성과를 낸 경우는 많지 않다. 찾아보면 심지어 독문학과에서 이걸로 논문을 쓴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상담과 무관한 심리학분야[4] 전공자라면 내면아이 같은 단어는 한 번도 들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대중적으로는 심리학 주제라고 알려졌지만 정작 심리학도보다 사회복지학도나 심지어 신학생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주제. 심지어 정신분석학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할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접할 일이 없다. 정신분석학에는 수많은 파생형이 있고 그 중에서 호르나이나 설리반, 프롬, 아들러, 위니캇, 로르샤흐 같은 사람들을 한 번씩 짚고 넘어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해당 문서대중심리학(pop psychology)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회의주의자 사전》(The Skeptic's Dictionary)에서는 내면아이를 언급하는 풍조를 뉴에이지 심리치료법 항목에서 함께 다루었다. # 《유혹하는 심리학》 의 저자이자 현직 임상심리학자인 스콧 릴리언펠드(S.O.Lilienfeld)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보편적인 대중심리학 50가지를 선정하면서 49번째로 이를 다루었다.
이처럼 "억압된 유년기의 불행한 기억" 을 더듬어서 이를 통해 현재의 심리적 재난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실 굉장히 오래된 것이다. 미술치료사 루치아 카파치오네(L.Capacchione)가 1991년에 《Recovery of Your Inner Child》 라는 책을 썼을 때, 전미는 그야말로 "고통받고 끔찍했던 불행한 유년기" 를 파헤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시기였다.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 항목 참고. 해당 항목에도 서술되듯이, 유년기의 억압된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크고 오해의 여지도 다분한 시도이다. 게다가 세상에 심리치료가 없어서 이 방법을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다, 성인은 성인만의 발달과제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발달심리학적으로 가장 건강한 것이라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유년기의 기억에 성인이 골몰하는 것이 전혀 건강하지 못한 접근이라는 것. # 또한 일부 학자들은 내면의 문제를 유년기 외상의 억압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현대에 만들어진 문화적 학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5]
이처럼 학계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대중적 단행본 몇 권에 의지하여 하나의 "신드롬" 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와 책임을 느끼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람의 육체를 만지는 분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분야 중 끝판왕급의 연구방법론상의 난이도를 자랑하기로 유명하지만[6],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엄밀한 검증 시도가 미진한 형편이다. 물론 라포와 같이 엄밀히 측정될 수 없는 질적인 측면도 존재하기는 하고, 상담이라는 것이 누구나 겪듯이 완전히 전문가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부분인 탓도 있다.[7] 그렇기는 하지만 적어도 준전문가[8]의 타이틀을 걸고 있다면, 연구방법론상의 책임을 소홀히 한 채 "정신건강 전문가" 로 자청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애초에 학술지 논문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 채로 학위논문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벌써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9] 개별 학위논문들의 레퍼런스를 살펴봐도 제대로 된 학술지논문 인용은 내면아이와 무관한 가족치료, 집단치료, 웰빙 관련 연구뿐이고,[10] 내면아이 관련 서술에 대한 인용에서는 갑자기 대중서, 교양서, 단행본에 크게 의존하는 불균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부는 내면아이 관련 치료법을 유사과학적인 부화뇌동이라고 치부하기도 하나, 그보다는 내면아이와 같은 내러티브에 호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 것이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상담 자체가 생소한지라 "상담소" 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상태에서,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먼저 다가온 내면아이 치유법은 보다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더불어 2010년대 국내의 내면아이 열풍은 가정들이 무너져 가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부족한 현실을 비추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약간 다른 관점이지만 개신교 신학계 일부에서는 교리상 조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면아이 치유를 포함한 기독교상담학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점 종교코너를 둘러보면 이런 책들도 은근히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판단하자면,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대중들에게 급속히 퍼진 심리치료법이며, 그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유년기를 추억하고 자신을 추스르는 것도 개인의 내적 통합에 중요할 수 있으나, 주어진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며 자신의 연령에 맞는 발달과제를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바로 앞의 문장의 주장은 평균인에 대해서는 잘 맞아 떨어지나 그 외의 경우에서는 꼭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정상적으로 발달단계를 밟아 가며 자아를 형성해 간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을 겪으면서 그 시기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성장 아닌 성장을 한 사례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잘 극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수행하며 심리상담센터/정신과를 오가고(입원을 포함하여) 사는 경우가 많다.

4. 관련 문서


[1] PTSD와는 다르다. PTSD 환자들은 일상생활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의 폐인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내면아이에서 말하는 억압은 말 그대로 "억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장해가 나타나지 않는다.[2] 물론 부정적인 행동.[3] 심리학이라고 쓰지 않았음에 유의하라! 상담학과 심리학은 다르다. 어째서 대한민국에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서로 굳이 분리되어 있는지 상기해 보자.[4] 특히 생물심리(감각, 지각, 인지, 신경) 쪽은 말할 것도 없다.[5] 그들에 따르면, 이것이 정말로 인간 본성에 근거한 현상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근대의 수많은 문헌들에서도 유년기의 충격이 이후 성인기의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식의 묘사나 사료적 보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1800년대 이전의 그 어떤 문헌에서도 그런 식의 설명은 없었다고 한다.[6] 일부는 의학도 그럴듯한 통계나 이론에 잘 속아넘어간다며 오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자기교정성이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많은 자성이 이루어져 왔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것이다. 의학 및 관련분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이 방법론상으로 흔들릴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들을 고민해 왔고, 신속하게 자기교정을 함으로써 혼란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습득해 왔다. 사실, "아예 안 속아넘어가는" 걸로 따지자면 수학자들 외에는 전부 버로우 타야 한다. Eriksson(2012) 참고.[7]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 애인의 위로가 더 도움이 된 경우는 누구나 흔히 겪어 봤을 것이다.[8] 정신과 의사, 임상심리사, 상담심리사, 전문상담교사 외에 목회/불교상담가, 미술치료, 음악치료, 기타 세부적이거나 실무적인, 그리고 취득하기 쉬운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준전문가라고 한다. 물론 이 자격증들 역시 나름 공부를 해야 하는 자격증들도 많고, 정말 몇시간 돈 내고 들으면 따는 자격증도 있다.[9] 대부분의 석사논문은 대량의 학술지 논문으로 반복 검증되고 확인된 원숙한 이론에 대해 보완적 연구를 하거나 재현성 확인을 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적어도 심리학에서는 그렇다.[10] 당연히 이들 주제는 막대한 연구가 누적된 것들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