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목의 제목인 "대중심리학"은 엄밀하게 정립된 학술적 용어가 아니며, 나무위키에서 특정 주제에 한정하여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임의로 동원한 단어임을 먼저 밝힌다. 영어로는 대략 "Pop Psychology" 에 대응한다. 엄밀히 말하면 '학'이 아니라 '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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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리학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서 및 대중매체 등을 통해 널리 퍼졌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들. 즉, 대중적 오해, 대중매체의 곡해, 흥미 위주의 곡해로 인해 만들어진
유사과학이다. 심리학 비슷하게 생겼지만 심리학이 아니다.
2. 상세
우선 대중심리학의 생산자들이 의도적으로 심리학의 내용물을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첫째 원인이다. 흔히 책장사나 강연, TV프로그램 등에서 접할 수 있으며,
심리학의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실제 심리학과는 무관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정립된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라는 권위를 빌려다가, 아무런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의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다른 원인으로는 심리학의 연구방법론적 특성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들 수 있다. 심리학, 즉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은 종래
인문학의 범주에 속했으나, 1879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빌헬름 분트(W. Wundt)가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라는 세계를 열었고, 거기에다 1950~60년대 이후 과학적 방법이 인간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강력한 방법론이라는 인식이 영미권 지성세계를 휩쓸었다. 곧이어 찾아온 인지혁명은 이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가늠할 수나 있었던 인간의 정신활동을 계량화, 가시화하여 보여주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입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최첨단 장비들은 인간의 뇌에 대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실 밖에서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은 과학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무엇보다도, 심리학이 주로 다루는 주제들은 '''이미 평범한 일반인들도 그들의 삶을 통해 나름대로의 정의와 통찰을 내린 주제들'''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원인이다. 이미 익숙하게 느껴지는 주제에 대해 과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일반인들도 자신들의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기억,
지각(perception), 학습, 발달,
지능과 같은 주제들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심리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인간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통찰과 설명을 "지향적 태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자본주의의 논리로 인해 선정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은 몇몇 심리학의 파편들
[1] 예를 들면 스톡홀름 신드롬이나 뮐러-라이어 착시처럼 대중적이고도 재미있는 사례들.
만을 접하는 환경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심리학을 자기 자신의 성찰과 인간이해의 도구로 쓸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정보의 바다에서 섣불리 관련지식을 접하게 되는 문제, 일부
자연과학도들이
사회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경성과학적 편견 역시 문제를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보수 개신교계에서도 대중심리학에 기반한
기독교상담학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인데, '인간적인 요소'를 곁들여
성경의 무오성은 물론, 기독교 교리를 뒤흔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3. 종류
여기서의 종류는 실제 학술적 논의와는 무관하며, 나무 위키에 한정하여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보기로 한다. 심리학에 대한 오해들도 있지만, 심리학이라는 세계에서 다루어지는 여러 아이디어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도 있다.
참고로 많은 내용을 "유혹하는 심리학(Scott Lilienfeld 외 3인, 타임북스, 2010)"에서 발췌하였다.
3.1. 밑도 끝도 없는 오해
가장 처참할 수준의 오해이지만, 오히려 정말로 심리학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물론 심리학자들도 최면에 대해 나름 할 말은 많다. 일례로 EEG(
뇌전도) 연구에 따르면 최면에 걸린 사람은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또한 최면 상태에서는 뇌의 '전대상피질'이라는 부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최면 연구는 이 문단에서 문제시 하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최면과는 아주 아주 다르다.
[2] 어쩌면 '흥미롭긴한데 돈이 비싸서 방문하지 않는다'는 현재 한국 상담, 임상심리 분야의 쓰디쓴 현실을 내포하는 농담이긴 하다.
심리학과 재학생들을 가장 빡치게 하는 한마디
[3] 심리학과에 다니는 위키러라면 알겠지만 사실 윗 질문보다 이 질문이 더 많다.
특정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은
초능력의 영역이라 불가능하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논문을 쓸 거리가 아니라서 학자들의 관심사에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들이 쓰는 논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원리를 찾아내고자 하는(nomothetic) 시도에 가깝다. 이를 위해 심리학은 통제와 처치 등을 활용하는 실험법을 그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심리학의 다양한 분과 중에서도 상담심리 쪽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데 실제 상담심리 실습 과정에서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척 기대 앉으면서 '당신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군요'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생각/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제게 알려주세요'라는 뉘앙스의 질문을 많이 하도록 훈련 받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심리학을 너무 얕볼 필요는 없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관찰자는 상황을 보고 생각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관찰자는 신체를 검사하고 생각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cold reading이라 부른다. 범죄심리학만 따지자면, 전자가 하는 일이
프로파일러이고 후자가
거짓말탐지기이다. 물론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완벽하지는 않다. 프로파일러의 생각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고, 훈련을 통해 거짓말탐지기를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숙련된 관찰자가 이런 수단을 여러 개 사용하면 정확도가 점점 높아진다.
[4] 일례로 민간군사기업에서는 아프간에 가는 미군에 인류학자를 패키지로 팔아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미군을 상대로 사기치려는 시도를 잡아내어 폭탄테러의 위협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특히, 정보기관에서는 특정인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평생동안 한 지도자의 모든 행적을 관찰하고 육성을 들어 가면서 데이터를 수집한다.
3.2. 심리학의 범위
-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꿈을 설명하면서, 원초아가 자아를 향해..." 가 심리학인가?.
심리학의 역사상 한때 프로이트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타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계에서 프로이트는 더 이상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심리학의 세계에서 프로이트의 한계는 그가 명백히 과학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 시대 이후에도 그 뒤를 이은
자크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이 존재하긴 했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 철학자로 분류되며,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영역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프로이트는 현재 언어적 기반 상담치료의 기본이 되었으며, 치료적으로도 유효한 분야 중 하나이긴 하다. 또한, 현재 뇌신경과학과 연계하여 연구를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여전히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실효성과 실용성이 부실한 탓에 굳이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적 치료는 매우 약해지고 있다.
- 심리학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조언해주기 위한 학문인가?
아니다. 일선 심리치료사들의 업무 중에
이와 같은 활동도 일부 포함될 수는 있으나, 이것이 심리학의 목적이나 본분인 것은 아니다.
[5] 심리상담은 내담자 내면의 거울을 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조언과 위로보다는.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두 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다. 첫째, 심리학의 간판을 내건 대중 강연사들과 상담가들이 심리학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오해하는 경우이다. 둘째,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그려지는 것과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의 상담기법들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오해하는 경우이다. 실제로 해당 영화의 명대사인
"It's not your fault." 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나, 이것만 믿고 심리학과에 진학한 학부생들이 아세틸콜린이니 편도체(amygdala)니 하는 용어들 앞에 좌절하곤 한다. 오히려
심리치료사는
내담자의 증상에 따라 상담자가 전문 병원으로 가는 것을 연결해주거나 내담자가 이미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부 과정부터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약물 이름들과 작용기전을 달달 외워야 한다. 그리고
심리치료사들은 따뜻한 조언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REBT 상담기법만 해도 상담 중에 논박이 포함된다.
지금까지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을 밝혀내는 것은 심리학이다. 하지만 신기한 현상들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끝내는 것은 심리학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틀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이나 효과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어떤 원리로 그러한지, 이런 원리로 볼 때 지금까지의 틀로 설명하지 못하는 다른 새로운 현상을 밝혀낼 수는 없는지가 심리학자의 연구이다.
예를 들어
폰조 착시(Ponzo illusion)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지각의
항등성(perceptual constancy)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지만, 해당 착시 그림을 보고 "와 신기하네"로 끝내버리면 심리학의 본질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로르샤흐 검사나
주제통각검사(
TAT)와 같은 검사들 역시 이미 심리학자들이 여러 한계점을 지적했고, 따라서 이런 류의
심리검사를 할 때에는 이를 감안한 보완 연구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검사들은 검사자 또는 피검사자의 주관성이 개입되거나, 피검사자가 검사자를 속이는 문제가 고질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태이다.
최면 요법도 마찬가지 맥락.
-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어쩌고저쩌고... 따라서 남보다 노력하는 만큼 그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객관적 권위를 끌어오기 위해 애꿎은 심리학자들을 마구잡이로 인용하는 경우이다. 사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여러 사회현상들에 대해 개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없지는 않다. 심리학의 일부 이론들은 실제로 자기계발서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6] 예를 들어 심리학에서 통제의 소재(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은 일견 의지드립을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일부 책들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개념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무조건 버티고 이겨내라며 채찍질을 하기도.
그러나 흔한 자기계발서들의
의지드립에까지 호응할 수 있을 만한 심리학적 연구결과는 쉽게 찾기 어렵다. 당장의 달콤한 유혹을 잘 참아야 성공한다던 저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도 오늘날에는 많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3.4. 대중심리학에 혹한 심리학과 지망생
이런 대중심리학에 혹해서 "좋아, 내 길을 찾았어! 난 앞으로 심리학을 전공할 거야!" 라고 각오를 다지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개발서나 대중 교양서로 심리학 '''비슷해 보이는'''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다음을 추천한다.
- 원격대학이나 정규 대학에서 제공하는 심리학개론 인터넷강의를 들어보거나, 정식 학술서적 심리학 개론 책을 읽어본다. 4년동안 지겹게 공부할 분야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30시간 정도의 시간투자가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다. 한국심리학회 홈페이지에서 지망생들을 위하여 추천도서 리스트를 준비해두고 있다. 자신의 현재 처지와 관심있는 분야로 2단계 필터링을 해서 목록화하므로, 미래의 심리학도를 꿈꾸는 중학생 및 고등학생 꿈나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상한 자기개발서나 '마음을 위로하는' 책 정도를 읽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 심리학과 졸업장만 따서 나갈 계획이 아니라 심리학으로 직업을 갖거나 심리학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통계학은 필수이다. 심리학이 사람의 심리를 연구할 때 많은 부분이 통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학과 학부생들이 "이건 내가 원하던 공부가 아니야" 라며 좌절한다. 통계학을 하고 싶지 않다면 심리학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
- 심리학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역시 필수이다. 심리학계에서 권위있는 논문의 80% 이상이 서구권 선진국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학과 대학원생들이 언어의 장벽에 막혀서 좌절한다. 일단 산더미 같이 쌓인 영어 문헌들을 수용하거나 비판하며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두각을 드러내기는커녕 중간도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하고 마는 것이 이 바닥이다. 영어를 읽고 싶지 않다면 연구자가 되지 않는 것이 좋다.
- 심리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심리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열망이 전공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학부 전공은 자신이 원하는 다른 전공을 취득하고 부전공, 복수전공, 학점은행제, 독학학위제, 사이버대학 등을 통해 심리학과 학위를 취득할 수 있으니 "난 반드시 심리학과를 가야 해"라거나 "난 절대 심리학과를 가서는 안 돼" 같은 극단적인 판단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하는 게 좋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유아교육과를 전공하며 간접적으로 접하거나, 경영학의 조직행동론 등을 통해 심리학적 지식들을 현장에 응용한다면 오히려 더 즐겁게 공부할 가능성이 있다.
심리학 교수들은 대중심리학을 매우 비판한다.
"놀랍게도 이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지식이 바로 심리학이라는 분야다. 내가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중략)'' 겉으로는 대중매체의 상당한 주의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이라는 영역과 대부분의 일반 대중 사이에는 장막이 쳐져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심리학적" 지식이라는 것은 대체로 착각이다. 많은 서점의 "심리학" 서가에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심리학계에서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중매체가 "심리학자" 라는 딱지를 붙여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심리학회에서는 "심리학자" 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겉으로 보기에 심리학 "전문가" 인 듯한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이라는 영역이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데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심리학적" 주제에 쏟아붓는 대중매체의 요란스러운 관심은 그저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심리학 영역에서 진정으로 성장해 가는 데이터베이스를 흐리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일반 대중은 어느 것이 심리학이고 어느 것이 심리학이 아닌지를 확신할 수가 없으며, 심리학적 주장에 대해 독자적인 평가를 내릴 능력도 없다. ''(중략)''
학기말에 최종적으로 개관할 때 또는 개인 면담시간에 교수는 첫 강의시간이라면야 예상할 수 있지만 14주 동안 심리학적 사실들을 소개한 후에는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듣고는 쇼크를 받아 낙담하게 된다. 예컨대 '그렇지만 심리학 실험은 실제가 아니잖아요. 실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심리학은 화학과 같은 진정한 과학은 될 수 없잖아요, 안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심리치료사가 우리 교과서에 쓰여진 것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거든요. 내 생각에 이 이론은 멍청해요. 내 남동생은 이 이론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실험은 심리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심리학은 단지 상식일 뿐이고요. 불안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아는데, 그것을 정의하느라 애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심리학은 단지 견해의 문제가 아닌가요?' 많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심리학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만 가지고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암묵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K.E.스타노비치 외, 《심리학의 오해》(How to Think Straight About Psychology), 6th ed., (신현정, 혜안, 2003, 서울), pp. 9~12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이 대부분 진실이 아니다.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심리학 자료 대다수가 신화와 오해들로 가득 차 있다.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는 심리학의 '오해' 도 올바른 지식 못지않게 널리 퍼져나간다. 안타깝게도 대중심리학에서 진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어려운 작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계발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구루' 나 TV 토크쇼 진행자나 자칭 정신건강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고, 또 이들은 '온전한 진실' 과 '절반의 진실' 과 '명백한 거짓' 이 뒤섞인 심리적 처방을 남발한다. 우리는 심리학의 신화를 진실과 구별해 주는 믿을 만한 길잡이 하나 없이, 오해의 밀림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대중심리학의 유명한 신화들을 믿다가는 인간 본성을 잘못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억압한다" 는 잘못된 심리학 지식을 믿게 되면, 있지도 않은 어린 시절 외상 경험을 캐내느라 일생을 허비할 수 있다. ''(중략)'' 이성을 만날 때 "정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 는 잘못된 정보를 믿으면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영혼의 동반자를 찾아 헤매다가 뒤늦게야 "그런 조합이 나에게 어울리기는 힘들다" 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이들 심리학적 오해는 문젯거리다. ''(중략)''
이 책에 소개하는 신화가 오히려 현실에서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인간 본성에 관한 폭넓은 관점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의 10% 만 쓴다는 거짓 믿음은 "인간은 지적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는 믿음과 연결된다. 또 "낮은 자존감이 부적응의 주된 원인" 이라는 거짓 믿음은 "자신감만 있으면 뭐든지 성취할 수 있다" 는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7]
참고로 실험심리학에서 발견되는 사실들만으로 인간의 인지, 정서, 행동의 모든 부분을 다 파악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다. 실험이라는 연구법이 심리학 전반에서 그런 식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이 요구하는 건 하나다. "다 파악했다" 고 자신하는 그 사람에게 가서, "그게 맞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해 봅시다!" 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S.릴리언펠드 외, 《유혹하는 심리학》(Common Traps of Psychology), (문희경 외, 타임북스, 2010, 서울), pp.10~12
" '그래, 무슨 공부를 하시죠?' 누군가가 묻는다. 상대방은 물리학과의 새 주임교수다. 불행히도 '인지신경과학자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상황을 지연시킬 뿐이다. 그래서 내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열심히 설명해 주면, 상대방이 하는 대답은 이렇다. '아하, 그러니까 심리학자로군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해석하자면 '진짜 과학을 하는 건 아니란 말이네요' 정도가 된다.
인문학 교수가 대화에 끼어들면 화제가 정신분석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프로이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에 대해 말한 많은 추론들이 대부분 헛다리 짚은 것이라 말하여 파티장 분위기를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중략)''
'프로이트가 문학비평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겠죠.' 나는 인문학 교수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증거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요. 저는 심리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기계적 이성이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중략)'' 결국 과학 전공자든 문학 전공자든 나에 대한 반응은 똑같다. '과학은 정신을 연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C.프리스,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Making Up the Mind), (장호연, 동녘사이언스, 2009, 파주), pp.16~18
"혹자는 심리학이 단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전문용어로 포장하여 진술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도 알고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멋진 방법을 사용하고 돈을 받는다는 사실 말고, 도대체 새로운 것은 뭐가 있나요?' 또 다른 사람들은 직관을 맹신함으로써 과학적 접근에 조소의 눈길을 보낸다. '직관적 경영' 의 주창자들은 사원을 고용하거나 해고하거나 투자를 할 때 통계적 예언들을 무시하고 직관에 눈을 돌리라고 강요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우리 내부의 힘을 신뢰하여야만 하는가? ''(중략)''
과학은 대부분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들을 영구운동 기계, 기적의 암 치료제, 과거로의 영혼 여행 등과 같이 잊혀진 주장들로 가득 찬 유형지로 추방시켜 버린다. 실제를 환상과 구분하고 사실을 넌센스와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태도, 즉 회의적이지만 냉소적이지 않으며, 개방적이지만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학자로서 심리학자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회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행동의 세계에 접근한다. 이들은 다음의 두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무슨 뜻이죠?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업의 좌우명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 라면, 과학의 좌우명은 '증거를 보여 주어라' 이다."
D.G.마이어스, 《심리학개론》(Psychology), 8th ed., (신현정 외, 시그마프레스, 2010, 서울), pp.21; 24~25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생활이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질수록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화된 생각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중략)''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방대한 양의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위치에 따른 수많은 정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혼란스러운 정보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작업, 즉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엉터리 심리학의 중요한 단점은 이것이 별자리 운세보다도 훨씬 덜 정교하고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질서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급박한 나머지 우리는 동그란 못을 네모난 구멍에 억지로 밀어넣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2차원적 분류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만다. 우리는 배우자의 일부 특징들에 집착하며 상대방이 실제로 화성이나 금성에서 왔다고 증명하려 하면서, 실제로 그 특징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애써 무시해버린다. ''(중략)''
우리를 가르치고 일깨워준다고 주장하면서, 사실 엉터리 심리학은 끊임없이 우리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더욱 안전하다고 느껴진다는 이유로 현실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 만족하게 만든다."
S.브라이어스,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 Exploding the Myths of the Self-Help Generation), (구계원, 동양북스, 2014, 서울), pp.15~16
3.6. 다양한 왜곡과 오용
여기서는 심리학에서 정상적으로 다루어지거나 다루어진 적이 있는 주제들이 심리학의 바깥 대중의 영역에서 심리학의 탈을 쓰고 어떻게 오용되는지를 약간 살펴본다.
해당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MBTI는 사실 심리학에서는 그렇게 큰 역할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알아간다는 재미와 함께, 실제로 여러 삶의 현장에서 MBTI의 필요성이 종종 대두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MBTI는 심리학자들에게보다 더욱 친숙한 것이 되었다. MBTI는 그 한계점이 명확하며, 현대의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밝혀낸 여러 사실들과도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이런 물건을 가지고 섣불리 오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현대 성격심리학이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성격요인이론
[8] 성격"유형"이론이 아니라 성격"요인"이론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다.
은
Big5 모형이라고도 하고 OCEAN이라고도 불리는 5요인 이론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미 저 유명한
앨버트 반두라(A.Bandura)의 보보(Bobo)인형 실험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게임을 비롯한 여러 폭력적인 매체들이 시청자/사용자들의 폭력성을 증대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을 꾸준히 모아 왔다.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적 연구, 보완적 연구 또한 역시 만만찮게 모아진 상태이다. 이 주제에 대한 분야는 흔히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이라 불리는데, 불행히도 이를 토대로 한 사회운동이나 입법활동에서는 온갖 왜곡과 억지로 얼룩지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중독을 게임 중독과 헷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폭력성의 관찰학습을 우려한다면서 가정폭력이나 학교의
체벌과 같은 대표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체벌과 폭력성, 체벌의
대물림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관찰학습을 잘못 시행하면 '
제가 한번 PC방의 전력을 차단해보겠습니다'와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
해당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국내에는
최재천 교수 내지 전중환 교수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히 진화심리학 전문가라 할 만한 인물이 없는 실정이다. 해당 분야가 굉장히 젊은 학문이기도 하거니와, 심리학계 내에서 회의적인 여론도 은근히 적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호응이나 섣부른
설레발은 진화심리학의 발전에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네티즌들이 진화심리학을 언급하며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거나 과격한
통섭론을 주창하곤 하는 사례도 있다.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 좌우라는 병맛 기사는 바로 이 진화심리학 관련 논문을 왜곡한 사례다.
기존의 심리학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간의 병리적인 측면, 부적응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후 이에 대한 자성이 이루어지면서, 인간의 잠재력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일례로 칙센트미하이(M.Csikszentmihalyi)의 몰입(flow)이나 셀리그먼(M.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이런 방향의 연구의 결과물.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도 바로 이 분야의 핵심 화두이다. 그러나 덮어놓고 무조건 "긍정의 힘" 만을 외치는 것은 결코 심리학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런 건 짤없는 유사과학.
[9] 미국의 유명한 목사인 오스틴(J.Osteen)이 이 바닥에서 유명하다.
한때 셀리그먼 본인도 과도하게 나갔다가 대차게 까이기도 했으며, 학계에서는 긍정심리학이라는 학제에 대한 회의적 여론도 솔솔 일고 있는 중. 긍정심리학은 최근 들어 심리 전문가나 상담을 요구하는 계층이 이전까지 주요 수요자였던 '병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를 가지고 오는 경우로 늘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및 연구를 위해 성장한 분파이다. 이런 분야를 공부해 보면 앞에 나온 적용가능 대상과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고 혹시 내담자의 문제가 심각한데 본인이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병원이나 전문적으로 심리학적 병리를 다루는 훈련을 받은 전문가/기관으로 넘겨야 한다고 배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 전에 마음이 심란한 "모든" 학생들에게 항우울제나 항 불안증약을 처방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문 상담가가 아닌 주변 지인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정도도 큰 힘이 되기도 하니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이런 역할을 좀 더 광범위하게 지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대상이 환자가 아니다 보니 일반인들이 가볍게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그만큼 오해와 왜곡이 일어나거나 뭣도 아닌 전문가가 남발할 확률이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지난 1970년대
로젠한(D.Rosenhan)의 유명한 연구는, 도대체 무엇이 "장애" 인가에 대한 해묵은 논쟁과 함께 정신의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반정신의학은, 어떤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내부에서 찾는 전통적 심리학의 접근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와
낙인 이론에 결부지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정" 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중들에게 "반" 에 대한 지식이 먼저 들어가면서, 종종 반정신의학은
정신과에 대한 불신을 낳기도 한다.
[10] "정신과? 거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 만드는 곳이야!" 정도의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게다가 정작 그 사건이 터진 후 로버트 스피처 등에 의해 정신병 진단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바꿨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Slater,2005] Lauren Slater,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조증열 역, 에코의서재, 2005, p.194
간혹 정신과의 장애진단을 받은 사람이 반정신의학에 심취하면 이건 거의
주화입마 수준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소속의 인지심리학자 기거렌처(G.Gigerenzer)는 의사결정과
휴리스틱 연구의 권위자로, 그의 저서 《생각이 직관에 묻다》와 같은 책들에서 직관의 능력과 힘에 대해서 서술한 적이 있다. 그의 뛰어난 인지심리학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곧 "당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와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대중서들이 줄줄이 나타났으며, 심지어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CEO들에게 "복잡한 데이터는 제쳐두고, 처음 느낌이 막 간 쪽을 고르세요. 당신의 직관을 믿으세요" 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조언을 하는
좆문가들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휴리스틱과 연결하여 이해할 때, 기거렌처가 말한 직관이란 결국 신속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의사결정 방식에 불과하다.
[11] 예를 들어, 외야수가 자기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움직일 때, 외야수는 풍향이나 공의 포물선, 각도와 속도 등을 면밀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공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의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극도로 단순한 전략만을 채택한다.
3.7. 심리학이라는 정원의 흔한 잡초들
이하의 모든 진술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심리학 관련
편견 및 고정관념들 중 그 과학적 근거가 아주 없거나 굉장히 부족한 것들이다. 심리학은 이하의 진술들에 대한 그 어떤 긍정적 언급도 하지 않는다.
[12]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명제들도 있지만 아예 다루는 분야가 아닌 명제들도 있다. 대답은 NCND.
항목명은 이하의 진술 중 "인간은 인간의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에 대한 맥버니(D.McBurney)의 일침에서 따온 것.
심리학에 대한 오해라기보다는 정치사회적
편견이나 단순한
일상이론,
미신,
스테레오타입에 해당하는 사례들, 심리학의 영역이라고 보기 힘든 주제들까지 무분별하게 추가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 즉 심리학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없으면서 이론적 근거가 있는 양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고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들만 기재할 것.
(가나다순)
➜ 대부분의 경우 마약의 중독성을 게임의 중독성이 절대 따라갈 수는 없다. 다만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행위는
행위중독이 될 수 있고,
도박중독처럼 그 행위에 대한 중독이 마약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완전한
정신증처럼 의지가 개입되기 힘든 증상을 제외한 정신병리적 증상 중에서도 특히나 의지로 극복하기 어려운 증상으로
강박증이 있는데, 강박증은
중독의 일종으로 보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이다. 그래서 DSM-V에서는 기존의 불안장애 하위 분류에서 독자적 분류로 이동하였다. 현재로는 DSM-V에서 행위중독에 대한 구체적 항목은 도박중독밖에 없지만, 따지고보면 유사성을 지닌 증상들은 여럿 있으며, 행위중독에 대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저 법안은 의사라는 사람이 발의한 주제에 학문적 근거도 미약하지만 정치사회적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담뿍 섞었기에 특히 문제가 되고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다.
- 긍정적 태도를 지니는 것만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
➜ 심리학만의 주제가 아니라
의학에 관련된 것이라서 여기서 논하기는 좀 애매하다. 확실한 것은 긍정적 태도
만으로 암을 비롯한 중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유사의학임이 명백하나, 심리적 태도가 인간의 건강과 치료경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실증적 근거가 많이 나와 있고 대다수의
의사들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단지 정신과 신체의 연결고리에 대한 주제는 의학/심리학/생물학/철학 등의 뜨거운 화두이나 여전히 구체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너무도 적을 따름이다. 물론 긍정적 태도
만으로 치료될 리는 만무하니 치료를 받으면서 강한 의지를 가지라는 말이다. (실증적 연구결과는 아니지만) 대체로 가장 장수하는 직업군은 재벌회장이나 거물 정치인 같은 부유층보다도 학자라고 보고, 그 이유를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죽기 직전까지도 남아 있는 직업이라서 그렇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된다.
➜ '역행성'이라 불리는 일부 기억상실증만이 그렇다. 이 경우에도 상식의 부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많이 겪는다. 사실 완전히 과거의 에피소드 기억을 잃는 사례는 드물게 있으나, 그럴 경우에도 과거의 지식, 상식적 기억까지 완전히 잃고 뇌가 리셋되어서 백치 상태가 되는 경우는 사실상 존재하기 힘들다. 차라리 뇌가 물리적으로 손상되는 경우는 있더라도 말이다.
- 꿈의 상징해석을 통해서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통찰할 수 있다.
➜ 이것은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정신분석학에서 유래한 기법이다. 관점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꿈이 평소의 기억, 감정상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복잡한 상징적 해석을 인정하지 않을 뿐, 수면에 들기 전에 걱정하던 일을 꿈 속에서 겪는다든지 하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 사실 난독증이 어떤 질환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심리학자들 중 누구도 의지만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의지(willpower)라는 단어를 쓴 학자가 없었던 건 아닌데, 그 사람들이 의지드립을 주장했던 건 당연히 아니다. 대표적으로 로이 바우마이스터(R.Baumeister)는 《의지력의 고갈》 이라는 저서에서 의지가 기합 좀 넣는다고 무한정 쏟아져나오는 게 아니라고 못박았으며, 저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왈터 미셸(W.Mischel)은 아예 인지적 처리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쉽게 말해 마시멜로를 있는 대로 노려보면서 식욕을 참으려고 한다면 그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떠올라, 누구라도 그 유혹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
➜ 흔한
노력드립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의 귀인(attribution)이라는 개념은 일견 "노오력을 하란 말이야!" 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만, 귀인의 권위자인 버나드 와이너(B.Weiner)는 그렇게 무분별한 노력드립은 오히려
심리치료 대상이라고 본다.(…) 그의 요지는, "내가 못하고 내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노력드립을 치는 건 괜찮고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남이 못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노력드립을 함부로 쳐서는 안 된다" 는 것으로, 그는 80년대에 이미 각각의 노력드립에 대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심리적 모형까지 만들어놓은 바 있다.
➜오히려 심리학자들은 의지라는 수수께끼 같은 개념보다는 계획, 동기부여, 목표, 방략 등의 심리적 과정을 연구한다. 이 주제의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피터 골위처(P.M.Gollwitzer). 그의 대표적인 업적인 마인드셋 이론(Mindset theory)은 어째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지를 설명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심지어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는 비유까지 활용될 정도이다. 또한 성격심리학 분야의 찰스 카버(C.S.Carver)와 마이클 샤이어(M.F.Scheier) 역시 의지 따위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로 목표추구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아무튼 심리학이 이런 주제의 연구를 안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또한 이 명제는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에서도 나름의 관점을 갖고 새로운 방향으로 비판할 수도 있다.
- 뇌파를 분석해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
2015년 기준으로는 아주 극히 초기적인 단계일 뿐이다. 아, 에, 이 3종류 생각을 했을 때 뇌파로 겨우 이 셋을 구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 머리를 세게 때리면 기억상실을 겪으며, 다시 머리를 세게 때리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
➜ 실제로 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어 성격이 크게 변한 사례로 유명한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인물이 있긴 하다. 하지만 흔히 비참하게 요절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얼마 뒤 회복되었으며, 회복 기간 중에 보였던 성격 변화에 대해서도
난폭한 사람이 순해지는 식으로 묘사되는 창작물의 클리셰와는 정반대로, 피니어스는 사고 이전까지는 성실하고 온순한 성격이었지만 사고 이후 한동안 동물적인 욕구에 충실하고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한 성격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 모든 청소년들은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를 경험하며, 이것은 불가피하고 보편적이며 정상적인 것이다.
➜ 정체성의 위기는 사회가 개인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정체성이 개인이 그 스스로에 대해 갖는 자기개념(self-concept)과 충돌할 때에만 나타나며, 그러한 충돌이 없는 청소년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않는다. 반대로,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성인도 이러한 충돌을 경험하고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학쪽에서 바라보는 것은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학문의 목적 자체가 다른 관계로 약간 초점이 다르다는 것도 잊지 말자.
➜ 청소년기 정체성 위기는 에릭 에릭슨(E.Erikson)의 영향을 받은 초기 발달심리학자들이 주목한 내용이기는 하나, 이를 극복한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정체감 형성이 그보다는 능동적인 문화적 적응이라고 본다. 또한 교차문화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의 정체감 형성과정이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획일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모든 사람들은 중년으로 들어갈 때 중년의 위기를 겪는다.
- 모차르트의 음악은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 단기적인 집중력 향상에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성에 의한 것으로 차리리
커피를 마시는 게 훨씬 도움된다. 적어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다른 음악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 분노를 참는 것보다는 분노를 시원하게 표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분노를 줄이기 위해 분노를 방출하는 것은, 불을 끄기 위해 가솔린을 붓는 것과도 같다." ㅡ B.부시먼[13]
차라리 참을 忍자를 세 번 새겨서 서서히 가라앉게 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 참고로 이 인물은 폭력적인 대중매체가 개인에게 폭력을 학습시킨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관찰학습 항목도 함께 참고. 사실 폭력적인 대중매체가 개인에게 폭력을 학습시킨다는 주장은 범죄학쪽에서도 많이 나오는 주제이다. 물론 반론도 역시 많이 나온다.
➜ 이는 전통적으로 믿어져 왔던 "카타르시스" 요법과도 관계가 있다. 오늘날 자주 보도되는 난타 공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런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정 제대로 된 해소방법은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결코 심리학적인 분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분노라고 할지라도 극히 다양한 개인과 상황조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다룰 때에는 극도로 통제된 조건 하에서만 다룰 수있다는 큰 한계를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키배를 뜨다 생긴 분노와
성범죄 피해자의 분노. 식탁에 고기가 없다는 분노 등은 양상과 해결방법이 다른데다가, 누가 느끼는 분노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 일단 IQ는 인간의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인위적이고 매우 제한적인 기준임은 별론으로 하고, 아직까지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물론 명확히 아니라는 근거도 없고
인지과학쪽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 어떤 사람은 좌뇌형, 어떤 사람은 우뇌형이다. 좌뇌형은 이성적이고 우뇌형은 감성적이다.[14]
이 이론이 옳다는 전제 하에 이 문장은 옳은 말이 될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의 성격을 좌뇌 혹은 우뇌 만이 담당한다면. 성격을 여러 상황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뇌의 사용에서 선호하는 부분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끼치거나 성격을 설명하는데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성격은 뇌의 어느 특정 부분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부분에서 담당하고 있는지 아직도 다 모른다. 즉, 좌우뇌의 사용 선호도에 따라 성격을 설명하는 방법은 가능해도 이 문장처럼 '좌뇌형은 이성적, 우뇌형은 감성적'이라 나누는 것은 그냥 일반인들 귀에 잘 들어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인지 양식에서 좌우뇌 분할이야말로 방종해지기 십상인 생각이다." ㅡ R.스페리
➜ 프랑스에서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는 크리스탤 프티콜랭의 저서 <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에는 우뇌형 인간과 좌뇌형 인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 책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저서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최근 미국의 과학 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에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좌뇌는 이성적, 우뇌는 감성적이라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도 이를 심도있게 비판하는 관련기사를 냈다.
## 수십 년 전 당시에는 권위 있는 과학자가 제시한 가설이라서 신뢰를 받았지만, 후속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 "이 주장의 일부는 부정되었고, 일부는 검증되지 않았으며, 일부는 검증 불가능하다." ㅡ E.로프터스
➜ 항목 참조. 이것도 기본적으로
정신분석학에 가깝기 때문에 심리학적인 근거는 미약하다. 치유 및 상담을 전적으로 심리학이 담당해야 하는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심리학이라는 한 연구 분과에서 지지하지 않는 치료법이라면 주변 연구 분과에서도 무분별한 수용을 자제하고 조심스럽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각종 상담학은 응용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론적 검증과 엄밀한 근거기반 연구로 뒷받침되는 협업이 중요하다. 각 분야의 상담학 하는 사람들이 상담심리학의 주요 연구성과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상담심리학 하는 사람들이 각종 상담 테크닉 관련 워크숍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인간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며 통계적으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이다.
➜
근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의 여러 저명한 사상가들 그리고 여러 참혹한 역사적 사건들에 의해 흔들리게 된 신념이다. 물론
근대에도 모든 사람이 저 명제를 100% 믿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하여간 현대 심리학 역시 인간의 이성에 대해 결코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는
행동과학.
행동경제학,
게임이론 등의 학문에서 널리 차용해 간 부분이기도 하다. 수십 년 전에 나온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이 이것을 정교하게 모델링한 이론 중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은 심리학이라는 이름의 정원에 돋아나는 잡초들 중 가장 질긴 것이다." ㅡ D.맥버니
➜ 대부분은 저 명제를 인용할 때 인간에게는 잠재된 능력, 혹은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의미에서 인용하지, 정말로 전두엽, 측두엽 등으로 구성된 생물학적 뇌의 10% 부피만큼 사용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뇌의 부피 전체를 고루 사용하는 건 스캔만 해봐도 나온다. 그러나 이를 두고 허수아비 치는 비판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이미 이 속설이
10%라는 구체적 수치를 아무 근거없이 내세웠다는 점에서 실드쳐 줄 수 없기에 잘못된 반론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숫자가 포함되었을 때" 그것을 실제로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며
[15] 이 속설도 "10%" 라는 구체적 수치가 포함되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심리학자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만 들어도 뇌의 10% 사용 이론이 뭔가 이상하단걸 느낄 수 있다.
- 인간은 자신과 정반대인 성격의 이성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낀다.
➜ 이것은 약간 입지가 애매하다.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주제를 재조명하는 연구들도 다시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해당 문서 참고.
- 자존감이 낮으면 심리적인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
긍정심리학을 잘못 받아들여 주화입마한 저자들이 쓴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나오는 레파토리인데, 정치적 의도까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명제이다.
➜ 다만 자기 전에 학습을 하고 자면 그 내용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는 기억의 메커니즘에 의한 것으로, 특히 자기 직전에는 암기가 효과적이다. 이 가설은 의외로
멋진 신세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 전기충격 요법은 지극히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치료법이다.[16]
원리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우울증 치료의 한 방편으로 제안된 요법. 대중매체에서는 종종 잔인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 ##
➜ 전기치료는 지금도 자주 쓰이며,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는 하지만 부작용이나 환자의 고통 등에서 약물치료보다 오히려 낫다. 다만 자의로 치료를 받지 않고 강제로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인격적 모멸감이 남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사실 대중매체에서는 과거
정신병원(그리고 지금도 일부 존재하는)의 인권유린적인 모습을 나타내려는 의도 때문에, 한편으로는 과거에 정말로 존재했던 생체실험 수준의 정신병 치료 기법의 사례와 혼동한 탓에 이런 이미지가 차용된 듯하다. '뻐꾸기 둥지 너머로 날아간 새' 같은 외국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전기고문이라는 일제의 악습 탓에 더더욱 이미지가 좋지 않다. 실제로 고통은 전혀 없다. 보통 정신과 레지던트 2-3년차가 되면 배운다.
➜ 범죄통계 등으로 보면 비장애인들보다 폭력적이거나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언론의 자극적 속성과 대중의
엄벌주의적 태도 때문에 그런 인식이 널리 펴져 있다. 정작 정신장애로 저지른 범죄는 법적, 윤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데, 대중들은 정신병자라고 비하하면서도 책임을 묻는 이중적인 태도가 많은 편.
- 죽음을 앞둔 사람은 모두 상실의 5단계를 겪게 된다.
➜ 한국에서는 암 말기 환자 등을 다룬 90년대 건강 관련 프로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속설이다. 자세한건
죽음의 5단계 항목 참조.
- 최면 요법을 통해 전생이나 잃어버린 기억이나 억압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
➜ 최면은 분명 의학적으로 인정받고 쓰이는 기법이다. 그러나 정작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어떻게 했을 경우 어떻게 되더라 정도를 알고 있을 따름. 게다가 전생은 말할 것도 없고 억압된 기억을 되찾는다는 것도 현재로서는 의학적, 심리학적 근거가 없다.
➜
셜록 홈즈에서도 등장하는 주장. 실제로 홈즈가 이 주장에 입각하여 필체분석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현재도 필적감정사는 전국적으로 얼마 되지 않고, 도제식으로 전수받는 탓에 범죄수사학적 연구보다도 경험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성격을 추론한다고 주장하는 필적감정사는 찾아보기 힘들며, 그런 감정 결과가 형사소송법적으로 의미있게 쓰이지도 않는다. 필적은 동일성을 확인할 따름이다. 심리학에서 성격에 관한 정설은 '성격은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이며, 개인의 성격을 특정짓기 위해 수많은 이론이 나왔지만 그 이론들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필체로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아동학대나 아동 성범죄를 경험한 아동들은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망가지며 다시는 외상을 회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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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항목도 참조. 그렇게 될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으며,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 더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메갈리아에서도 스스로를 아동 성범죄 생존자('영혼 살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므로, '생존자'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라고 밝힌 회원이 '아동 성범죄도 별거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가 맥락을 이해 못한 회원들에게 욕을 얻어 먹고 '강간당해서 정신까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라는
2차 가해성
조리돌림까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 회원의 발언 의도는 '강간' 당했다고 반드시 인생이 망가진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고, 또한 살면서 행복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왜 행복하지? 나는 이상한건가? 나는 탕녀인가?' 라는 식의 자책이 생긴다는 것에 문제점을 느꼈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었을 따름인데도 말이다.
4. 나무 위키에 등재된 대중심리학의 사례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