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 크란차르

 


''' 크로아티아의 前 축구선수 '''
'''이름'''
'''니코 크란차르
Niko Kranjčar'''
'''출생'''
1984년 8월 13일 (40세)
SFR 유고슬라비아 SR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적'''
크로아티아 [image]
'''신체'''
186cm
'''직업'''
축구선수(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 소속 '''
''' 선수 '''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01~2005)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2005~2006)
포츠머스 FC (2006~2009)
토트넘 홋스퍼 FC (2009~2012)
FC 디나모 키예프 (2012~2016)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3~2015, 임대)
뉴욕 코스모스 (2016)
레인저스 FC (2016~2018)
'''국가대표'''
81경기 16골(크로아티아 / 2004~2013)


1. 소개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 선수. 잘생긴 축구선수 TOP10 안에 들어갈 만큼 멋진 외모를 자랑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의 뛰어난 창조성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지단으로 불렸던 선수이다. 한 감독과 다른 팀에서 3번이나 만나는 인연을 겪기도 했다. 디나모 자그레브 시절 자신의 백업이었던 루카 모드리치보다 일찍 이름값을 알렸다. 그러나 자신보다 불과 1년 늦게 태어난 모드리치가 토트넘에서 자신을 밀어내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급성장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빅이어를 들고 개인은 발롱도르 수상, 조국을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끈 반면 크란차르의 커리어는 전성기가 짧아 모드리치의 커리어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변방 우크라이나나 챔피언십, SPL을 전전하다 쓸쓸하게 커리어를 마감했다.

2. 클럽 경력



2.1. GNK 디나모 자그레브


니코의 아버지 즐라트코 크란차르는 축구 선수였고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팀의 레전드였다. 크란차르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디나모 자그레브 유스 팀에서 뛰었고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17살의 나이에 1군에 데뷔한 크란차르는 어린 나이에 팀의 주장을 맡았고,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크로아티아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2.2.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그러던 04-05시즌 보드진과 불화를 겪던 크란차르는 150만 유로라는 당시 크로아티아 리그 최대 규모의 금액으로 소속팀 디나모 자그레브의 최대 라이벌팀인 하이두크 스플리트로 이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04-05 시즌까지 크란차르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임대 생활을 하던 디나모 자그레브 소속의 미드필더 유망주 하나가 크란차르 이적으로 인해 그 다음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현재 두 선수의 위상 차이를 생각해보면...

2.3. 포츠머스 FC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던 크란차르는 2006 월드컵 이후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 당시 포츠머스는 갑부 구단주가 새로 팀을 인수하면서 폭풍 영입을 하고 있었고, 이전의 첼시 FC나 이후의 맨체스터 시티 FC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선수들을 수급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포츠머스가 영입한 선수들이 라사나 디아라, 데이비드 제임스, 솔 캠벨, 설리 문타리, 은완코 카누 등이었다. 해리 레드냅의 지휘 하에 포츠머스에서 크란차르는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팀의 FA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 팀의 성적은 떨어져 강등권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크란차르는 공개적으로 이적 요청을 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아스날 FC, 에버튼 FC, AS 모나코 등에서 크란차르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크란차르의 선택은 국가대표팀 동료 루카 모드리치, 베드란 촐루카가 있고 전 감독이었던 해리 레드냅도 있었던 토트넘 홋스퍼 FC 였다.

2.4. 토트넘 홋스퍼 FC


토트넘 이적 첫 시즌 크란차르는 부상으로 빠져있던 모드리치의 공백을 훌륭히 메꿨고, 모드리치가 복귀한 후에는 왼쪽 미드필더로도 출전하며 우려가 있었던 모드리치와의 공존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부터 크란차르는 주전 경쟁에서 밀린다. 해리 레드냅은 로테이션을 잘 활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인데, 가레스 베일의 성장과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의 영입이 겹치며 크란차르의 출전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결국 두 시즌 동안 벤치만 달구던 크란차르는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2.5. FC 디나모 키예프


크란차르의 다음 행선지는 우크라이나 명문 FC 디나모 키예프 였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크란차르는 연달은 부상으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한 시즌을 날렸다.

2.5.1.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임대)


그 다음 시즌 크란차르는 챔피언십리그 소속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임대를 떠나 다시 한번 해리 레드냅과 재회한다. 이번에는 토트넘 시절과 달리 주전으로 출전하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고, 임대 기간을 1년 연장하여 다시 한번 QPR에서 뛴다. 1년 연장 기간에는 준주전으로 뛰었으나 팀은 1년 만에 강등당하고 크란차르는 팀을 떠난다.
이후 디나모 키예프로 돌아갔으나 방출당하고 NASL뉴욕 코스모스로 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2.6. 레인저스 FC


크란차르의 새 행선지는 SPL의 레인저스 FC 였는데 반복된 무릎 부상으로 역시 별 활약을하지 못하고 2018년 3월 상호협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이렇다할 근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3. 국가대표 경력


[image]
2004년부터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2006 월드컵, 유로 2008, 유로 2012 등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2006 월드컵 때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아버지인 즐라트코 크란차르 였기에, 아버지 빨로 승선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잠시 있기도 했지만 실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2006 월드컵 때까지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모드리치의 입지가 에이스급으로 올라온 이후로는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그래서 제 2의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로 기대받았으나 본인의 폼이 떨어지면서 2013년 이후로는 대표팀에서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