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캠벨

 


'''솔 캠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토트넘 홋스퍼 FC 역대 주장'''
게리 마버트
(1990~1998)

'''솔 캠벨
(1998~2001)
'''

테디 셰링엄
(2001~2003)

'''솔 캠벨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1998-99 · 2003-03 · 2003-04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 이름 '''
'''솔 캠벨'''
'''Sol Campbell'''
''' 본명 '''
설제어 제레미아 캠벨
Sulzeer Jeremiah Campbell
''' 출생 '''
1974년 9월 18일 /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 런던시
''' 국적 '''
영국 (잉글랜드 ) | [image] 자메이카
''' 신체 '''
188cm | 체중 100kg[1]
''' 직업 '''
축구선수 (수비수[2]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88~1989 / 유스)
토트넘 홋스퍼 (1989~1992 / 유스)
'''토트넘 홋스퍼 (1992~2001)'''
'''아스날 FC (2001~2006)'''
포츠머스 FC (2006~2009)
노츠 카운티 FC (2009)
아스날 FC (2010)
뉴캐슬 유나이티드 (2010~2011)
'''감독'''
매클즈필드 타운 FC (2018~2019)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2019~2020)
'''국가대표'''
73경기 1골 (잉글랜드 / 1996~2007)
''' 주발 '''
오른발
1. 개요
2. 특징
3. 선수 경력
3.1. 클럽
3.2. 국가대표
3.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4.1. 매클즈필드 타운
4.2.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


영국(잉글랜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직을 맡았다.

2. 특징


  • 터프하고 강인한 외모와 덩치에 비해 다소 성격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편이라고 한다.
  • 전성기 때 키 189cm 에 100kg 의 육중한 체격을 가졌으나 100m 를 10초대에 주파하는 괴랄한 피지컬을 가졌었다.
  • 피파 온라인 3에서는 1레벨 몸싸움이 99인 괴물수비수로 유명했다.
  • 아스날의 유일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득점 선수이다. 2005-06 시즌 FC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전반전 옌스 레만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처해있던 아스날은 결국 1-2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아스널 FC와 포츠머스 FC, 그리고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토트넘에서 프로데뷔를 하고 이후 9년 간 활약하던 시절에 그는 팀의 상징적인 선수였으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주장'''이었다. 토트넘의 팬들이 캠벨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캠벨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2001년... 계약 만료가 눈앞에 다가온 시즌 팬들의 초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캠벨은 재계약을 미루고 있었다. 이전부터 계약기간과 급료협상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캠벨의 재계약은 양측의 너무나 다른 입장의 차이로 도무지 좁혀지질 않았다. 계약만료는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고, 캠벨은 국내외 수 많은 클럽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도 하였던 캠벨은, 계약이 만료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아스날 FC와 새 계약을 채결한다. 같은 리그, 같은 지역'''웬수같은 팀'''으로 이적을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적료 땡전 한 푼 남겨주지 않는 '''자유계약'''이라는 형태로. 이후에도 주장으로서 팀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팬들의 기대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이런 행위에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요약하자면 '''성골유스 + 주장 + 라이벌팀 이적 + 자유계약 이라는 통수계의 4관왕.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지금도 역대 최악의 이적 중에 하나로 화자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배신 행위는 토트넘 팬들에게 있어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 중 하나이다. 당시 캠벨은 수많은 이적설에 휩쓸리면서도 침착하게 "내가 토트넘의 영원한 주장이다." 같은 식의 언플을 일삼았고, 팬들은 팀에 애정을 보여주는 그를 끝까지 믿고 있었다. 자유계약 신분 이후 아스날 이적 직전까지 절대 아스날로 이적하는 일은 없을꺼라고 얘기했고, 팬들은 "캠벨이 어디로 가든 우리는 그가 새로운 팀에서도 잘 되길 바란다."는 성명도 냈었다.
하지만 결국 캠벨은 원수같은 라이벌 아스날로 이적하였고, 토트넘의 팬들은 그를 유다라고 불렀다. 루이스 피구 등과 함께 역대 최악의 배신자로 손꼽히는 남자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후 토트넘의 팬들은 캠벨의 유니폼을 불태워 버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였고, 이후 그의 유니폼과 함께 살해 위협이 담긴 편지까지 보내진 일이 있었을 정도로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었다.[3]
이후 캠벨은 맹활약하며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스, 프레디 융베리, 콜로 투레 등과 함께 '''무패 우승'''의 주역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아스날의 팬들의 자부심은 갈수록 높아졌고, 지역 라이벌인 토트넘의 팬들을 조롱했다. "우리는 솔 캠벨을 얻었다. 레인[4]에서 솔 캠벨을 뺐어왔다. 솔 캠벨은 더블을 했다. 레인에 있는 녀석들 중 더블을 해 본 녀석이 있냐? 솔 캠벨은 했다. 이봐 토트넘 친구들,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주장은 어디에 있지?" 당시 아스날 팬들이 토트넘의 팬들을 조롱하는 노래 가사 중의 일부이다.
지금까지도 토트넘 팬들에게 그는 유다, 배신자, 로 불리며, 캠벨이 나온 모든 사진에는 솔자이크/캠자이크 처리를 한다. 피파 온라인 4 유저들이 성능을 보고 캠벨을 토트넘 스쿼드에 넣으면 온갖 쌍욕과 함께 빼라고 하며, 캠벨에게는 토트넘 팀컬러를 적용해주면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캠벨이 인터뷰를 하면 대다수 비꼬는 반응이며, 어느 팀의 감독이 되면 바로 망하길 기원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스널에서 5년 동안 활약한 이후 2006년에 여름에 포츠머스로 이적하였다. 포츠머스 이적도 약간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이적인데 벵거 감독에게 국내 팀으로는 이적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후에 실행한 이적이다(...). 그래서 벵거는 이를 갖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구단주가 포츠머스를 외국에 팔아버렸나?" 라는 조크를 남겼다. 그리고 포츠머스에서 3년 간 뛴 후 캠벨은 2009년 4부 리그인 노츠 카운티 FC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데뷔전에서 4초만에 백패스 실수를 범해 팀의 패배에 기여했고(...) 그 직후 계약을 해지당했다. 2010년 겨울 이적시장에 이전에 그가 활약했던 아스널로 다시 재이적하여 리그에서 11경기를 뛰었다.
2010년 6월 아스널과의 계약이 만료된 캠벨은 7월 28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7개의 리그 경기에서 모습을 보였다. 2011년에 계약은 만료되었고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12년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3.2. 국가대표


캠벨은 잉글랜드에선 유일하게 국제 대회에 6번 연속 출전한 선수이다. 또한 바비 무어 다음으로 역대 2번째로 어린 대표팀 주장이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득점을 하기도 했다.
유로 2004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존 테리-리오 퍼디난드 조합에, 레들리 킹, 제이미 캐러거 등의 등장으로 국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3차전 스웨덴전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3.3. 플레이 스타일



캠벨의 최고의 장점은 바로 '''피지컬'''. 몸싸움이 가장 거친 리그 중 하나인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그를 피지컬로 이길 수 있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190에 달하는 키, 그에 걸맞는 건장한 체구 덕에 벽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비단 덩치뿐만 아니라, 점프력, 주력 등 모든 신체적 능력이 굉장히 우수했다. 특히 주력이 덩치에 맞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스피드 측정 결과 100M 10초대 중반을 끊은 같은 팀의 티에리 앙리와 같은 속도였다고 한다. EPL의 발 빠른 센터백의 대표주자인 리오 퍼디난드, 버질 판데이크보다 빠른 수준이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최고의 공격수로서 상대방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공격적인 수비수가 아닌지라 득점 수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헤딩으로 득점한 적이 있다.
빅 클럽 주장을 맡은 경력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십도 가지고 있고, 수비 조율 역시 수준급이다. 수비 시에는 골키퍼 다음으로 내려앉아 있는 편. 팀의 최후방을 책임졌다. 다른 센터백 한 명이 뚫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수비하는 스타일이었다. 실수도 거의 범하지 않았으며, 신체적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센터백으로서 큰 단점은 없었다.

4. 지도자 경력



4.1. 매클즈필드 타운


EFL 리그 2로 승격한 이후 팀은 2승만을 거두었고, 결국 마크 예이츠를 경질하고 매클즈필드 타운 FC은 대체자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캠벨로 낙점되었고, 11월 28일 감독에 부임했다.
매클즈필드 타운을 리그 2에서 잔류시키는 등 안정적인 지도력을 보였다. 2019년 8월 상호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4.2.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이후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3부 승격~중위권 팀을 4부 리그로 강등시키며 지도자 커리어 강등의 쓴맛을 봤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아프리카계 영국인, 그것도 스포츠계 유명인으로서 좀 의외라고 할 만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2016년 런던 시장 당내경선에 출마한 적이 있다.

2009년부터 "Kids go Live"라는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시권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한다.
감독 선임에 있어 인종차별을 보이는 영국 축구 풍토를 비판했다.

FIFA또는 PES시리즈에 수록되어있다. 엄청난 수비력과 속도 압도적인 피지컬때문에 1티어 센터백으로 꼽힌다.
[1] 선수 시절 기준.[2] 센터백[3] 심지어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한테,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큰 액수의 이적료라도 주고 레알로 이적했다. 허나, 국물도 없는 자유계약으로 이적한 캠벨은...[4] 토트넘의 옛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