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제임스
1. 소개
1990~2000년대 EPL에서 맹활약한 도미니카 연방계 잉글랜드인 골키퍼. EPL에서 통산 572경기에 출장하여 역대 4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클린시트 170회를 기록해 페테르 체흐가 2015년 12월 28일에 경신할 때까지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또한 2012년 6월자 서훈명단(2012 Birthday Honours)에 올라 대영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다.링크
2. 선수 경력
2.1. 클럽
2.1.1. 왓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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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1970년 8월 1일 영국 하트퍼드셔 주 웰윈가든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루튼 타운에서 성장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웠고 루튼 타운의 라이벌 팀인 왓포드의 유스팀에 소속되어 골키퍼 훈련을 이수했다. 1989년, 제임스는 1군 팀에 처음으로 선발되었고 유스팀에서 왓포드가 FA 유스컵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90년 8월 25일 밀월과의 경기 도중 토니 코튼 골키퍼가 퇴장당하자 교체 출전함으로서 리그 데뷔전을 치뤘지만 왓포드는 2:1로 패배했다. 이후 제임스는 잉글랜드 U-21 축구대표팀에 소집되어 아일랜드와의 경기를 치뤘고 이후로도 U-21 팀에서 총 10번 출전했다.
제임스는 1990-91 시즌부터 왓포드의 주전 골키퍼로 발탁되어 89경기에 출전했으며 특히 1990-91 시즌에 팀이 2부리그 강등을 모면하는데 큰 기여를 하면서 왓포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그는 1992년 7월 6일 이적료 125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리버풀로 이적했다. 왓포드는 그가 이적한 후에도 그를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했고 2008년 왓포드 명예의 전당에 제임스를 등록시켰다.
2.1.2. 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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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1992년 8월 16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 리버풀 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뤘지만 1:0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는 처음에는 상반기 11경기에 출전하여 20실점을 허용하고 클린시트는 한 차례도 거두지 못하는 부진을 겪어 베테랑 브루스 그로벨라에게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1993년 1월 31일 아스날을 상대로 선발 출전해 폴 메르손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등 신들린 선방을 여러차례 선보여 리버풀의 1:0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경기는 제임스가 리버풀에서 거둔 첫번째 클린 시트이기도 했다. 이후 제임스는 리버풀의 핵심 골키퍼로 자리잡았고 그로벨라는 1993년 여름 스토크 시티로 임대되었다.
그러나 1993-94 시즌, 제임스는 뜻밖에도 부상과 부진에 휩싸여 14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로벨라는 리버풀에 조기 복귀하여 그를 대신해 골문을 지켰다. 이후 그로벨라가 1994년 여름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하여 다시 리버풀 주전 골키퍼가 된 제임스는 절치부심하여 42경기에 출전하여 탁월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그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팬들을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후 제임스는 1994년 FA컵 결승까지 리버풀을 이끌었지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러나 제임스의 리버풀 경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리버풀 팀동료 스티브 맥마나만, 제이미 레드냅, 로비 파울러와 함께 "스파이스 보이즈(Spice Boys)"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당시 영국 최고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별명은 경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여자들과 함께 파티하는 것을 즐기는 그들을 비꼬는 것이었다. 또한 팬들은 그가 평소엔 잘 막다가 종종 치명적인 실책을 범한다며 "재난의 제임스(Calamity James)"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대표적인 실책이 1996/97 시즌 막판 안필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우승을 다투는 중요한 맞대결에서 크로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2차례의 실책을 범하며 리버풀의 우승 희망을 날린 것이다.
그래도 그는 1999년까지 리버풀의 주전골키퍼로 활동하며 277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브래드 프리델이 리버풀에 입단하면서 밀려버렸고 결국 1999년 6월 23일 1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2.1.3. 아스톤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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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1999년 8월 7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출전하면서 아스톤 빌라 선수로서의 데뷔전을 치뤄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2000년 FA컵 준결승전에서 볼튼 원더러스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지만, 결승전에서 첼시에게 패배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아스톤 빌라에서 2년 동안 85경기를 뛰었고 2001년 7월 11일 350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웨스트햄으로 이적했다.
2.1.4.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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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2001년 여름 웨스트햄으로 이적했지만 국가대표에 소집되었다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 바람에 몇달동안 결장해야 했다. 2001년 11월 24일 토트넘 핫스퍼와의 홈경기에서 비로소 데뷔전을 치룰 수 있었지만, 정작 웨스트햄은 1:0으로 패배했다. 이후 2002-03 시즌, 웨스트햄은 챔피언쉽으로 강등되었다. 제임스는 그래도 팀에 남아서 주전 골키퍼로 활동했지만 2004년 1월 14일 비공개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그는 웨스트햄에서 통산 102경기에 출전했다.
2.1.5. 맨체스터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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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2004년 1월 17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맨시티 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맨시티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맨시티는 제임스가 출전한 17경기에서 겨우 4번 승리했고 그 중 2번은 제임스가 울버햄튼 원더러스와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막아낸 덕분에 이긴 것이었다.
그 다음 시즌인 2004-05 시즌 마지막 날, 맨시티는 유로파 대회 진출권에 합류하기 위해 미들즈브러를 격파해야 했다. 경기가 1:1로 승부가 나질 않던 후반 85분 경, 맨시티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아주 기괴한 전술을 단행한다. 미드필더 클라우디오 레이나를 서브 골키퍼 니키 위버로 교체하고 '''제임스를 공격수 자리로 올린 것이다!''' 이 특이한 작전은 인저리 타임 때 미들즈브러 수비수 프랑크 케드루가 제임스를 향해 겨냥한 크로스를 차단하려다가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효과를 발휘하는 듯 했다. 그러나 로비 파울러가 찬 페널티킥이 미들즈브러 골키퍼 마크 슈워처에게 저지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고, 결국 맨시티는 유로파 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 8월 10일, 제임스는 가족과 떨어진 채 맨체스터에서 사느라 힘들었다며 런던에 살고 있는 그의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맨시티는 그를 이적시키기로 결심했고, 8월 12일에 12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포츠머스로 이적했다.
2.1.6. 포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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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포츠머스에서의 첫 5경기에서 모두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포츠머스에서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4월 22일, 아스톤빌라와의 0:0 무승부 경기를 치르면서 프리미어리그 통산 142경기 출전을 달성, 데이비드 시먼이 보유했던 141경기를 갱신했다. 그후 그는 2006-07 시즌 포츠머스 올해의 선수로 지명되었다.
제임스는 이후로도 꾸준히 출전하였고 2008년 1월 30일 통산 500경기 출전을 돌파해 게리 스피드, 라이언 긱스에 이어 3번째로 500경기 출전을 달성한 EPL 현역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2008년 FA컵 결승전에서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그동안 번번이 획득에 실패했던 FA컵 우승 트로피를 마침내 획득했다.
2009년 2월 14일, 제임스는 맨시티 전에 출전하면서 통산 536번째 프리미어리그 출전을 기록, 게리 스피드의 기록을 경신했다. 그후에도 제임스는 포츠머스를 FA컵 결승으로 인도했지만 이번엔 첼시에게 1:0으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2010년 포츠머스가 구단주 문제로 인해 선수단 운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자, 제임스는 자유계약 선수가 되어 포츠머스를 떠났다.
2.1.7. 브리스톨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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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2010년 7월 30일 챔피언쉽 축구 클럽인 브리스톨 시티와 1년 계약(조건 충족시 2년차로 연장)을 체결했다.그는 축구 클럽에서 가능한 빨리 퍼포먼스를 선보여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발탁되기를 희망했으며 데본에 있는 그의 집이 브리스톨 시티와 가까운 점도 그가 브리스톨 시티를 선택한 원인 중 하나였다.
제임스는 2010년 8월 7일 밀월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지만 브리스톨 시티의 3:0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 그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했고, 2011년 2월 11일 통산 850번째 출전을 달성하면서, 브리스톨과의 계약 기간을 2012년 6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2012년 3월 10일, 제임스는 카디프 시티와의 경기에서 900번째 출전을 달성했다.
제임스는 2012년 5월 1일 브리스톨 시티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고 2012년 7월 엑스터 시티의 트레이닝에 참가해 엑스터 시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이수했다.
2.1.8. 본머스
2012년 9월 27일, 제임스는 Dean Court에서 본머스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고 다음날 본머스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는 19경기를 출전한 후 2013년 3월 상호 동의하에 본머스를 떠났다.
2.1.9. 말년
2013년 4월 2일, 제임스는 아이슬란드 축구 클럽 IBV와 2013 시즌말까지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시즌을 소화하여 IBV가 리그 6위를 차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뒤 은퇴를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인도 슈퍼 리그 축구팀 케랄라 블래스터스와 선수계약을 맺고 한 시즌을 소화하며 ISL 토너먼트 준우승을 차지했다. 제임스는 시즌이 끝난 뒤 마침내 선수 인생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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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1997년 3월 글렌 호들 감독의 부름을 받고 3월 29일 멕시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 데뷔전을 치뤘다. 이로서 제임스는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흑인 골키퍼로 기록되었다. 이날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테디 셰링엄과 로비 파울러의 골로 멕시코를 2:0으로 물리쳤다.
이후 제임스는 수년 동안 데이비드 시먼의 백업으로서 벤치를 지켰다. 그러다가 2002년 마케도니아와의 평가전에서 시먼이 큰 실수를 저지르자, 제임스는 시먼을 밀어내고 영국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그는 웨스트햄이 2003년 챔피언쉽으로 강등된 후에도 잉글랜드의 주전 골키퍼로서 자리를 지켰고 유로 2004 대회에서 전 경기를 출전했다.
그러나 2004년 9월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2:2 무승부에 그치고 말자, 그는 토트넘의 폴 로빈슨에게 밀렸다. 그후 2005년 8월 17일 덴마크와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었으나 잉글랜드는 4:1로 완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는 잉글랜드로서는 덴마크와의 25년 대결사상 최악의 패배였다. 그래도 제임스는 여전히 잉글랜드 대표팀에 남아있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로버트 그린과 함께 로빈슨의 백업 골키퍼로 뽑혔다.
2006~07년, 제임스는 데이비드 베컴, 솔 캠벨과 함께 스티브 맥클라렌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2007년 8월 22일, 제임스는 독일과의 친선경기에 발탁되었다. 그는 후반전에 폴 로빈슨과 교체 투입되었고 잉글랜드는 독일에게 2:1로 패배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2007년 11월 21일 크로아티아와의 유로 2008 지역 예선 경기에서 스콧 카슨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잉글랜드는 유로 2008 진출에 실패했고, 맥클라렌은 경질되었다. 제임스는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대표팀 골키퍼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2008년 2월 7일, 제임스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팀 첫번째 경기인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에서 선발 출전했다. 이후 그는 카펠로호가 이끄는 첫 13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함으로서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서 자리를 확고히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을 여러번 겪으면서 곤경에 처했고, 결국 제임스는 2009년 4월 1일 우크라이나와의 월드컵 지역 예선 종료 후 2010년 5월 30일 일본과의 월드컵 대비 친선경기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 6월 3일, 제임스는 월드컵 본선 스쿼드에 포함되어 등번호 1번을 획득했다. 이때 그는 2010 월드컵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제임스는 미국과의 월드컵 첫번째 예선전에서 로버트 그린의 백업으로서 벤치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그린은 미국의 클린트 뎀프시가 멀리서 약한 슈팅을 날렸을 때 이를 잡으려다가 그만 뒤로 흘려 골을 허용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그린은 주전 골키퍼 자리를 박탈당했고, 제임스는 2010년 6월18일 알제리와의 예선 2차전에 선발 출전해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5일 후, 제임스는 슬로베니아와의 예선 3차전에도 출전해 1:0 승리를 거두면서 또다시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월드컵 16강전에서 독일에게 4:1로 완패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후 제임스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의 삶
제임스는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사는 동시에 예술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여러 작품을 제작하여 경매에 올림으로서 많은 수익을 거뒀는데, 그 중 일부는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또한 제임스는 '옵저버'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기고문을 올리고 기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자선 단체에 지불했다. 또한 그는 친구 스티브 피어슨이 쓴 어린이 책 '해리의 마술 포켓'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유로 2012 대회를 앞두고 BBC의 방송 프로그램 'Euro's Most Shocking Moments'에 출현해 진행을 맡기도 했으며 2013년 여름엔 BT 스포츠의 TV 패널로서 프리미어리그와 컨퍼런스 프리미어 경기를 리뷰했다. 또한 그는 유로스포츠사의 패널로서 2014 월드컵 경기를 리뷰했고 Sony Ten에서 2018 월드컵 경기를 맡았다.
그런데 이렇듯 은퇴 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듯 했던 제임스는 2014년 5월 느닷없이 파산을 선언했다. 그는 축구 선수 시절에 무려 2억 파운드를 벌여들었지만, 2005년 아내 타냐와 이혼한 이래로 빚이 늘어났고 2014년 무렵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후 2014년 11월, 제임스는 빚을 탕감하기 위해 선수 경력 동안 수집한 수백개의 축구 기념품을 판매했다. 이 기념품엔 150개의 서명된 셔츠, 반바지와 경기 공 뿐만 아니라 맞춤형 복스홀 아스트라 벤과 롤리 초퍼 바이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4. 수상
4.1. 클럽
- 풋볼 리그컵 우승: 1995년(리버풀)
- FA컵 우승: 2008년(포츠머스)
4.2. 개인
1991년 툴롱 토너먼트 최고의 선수 선정
[1] 2012년 수훈, 5등급 대영제국 훈장 Memb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