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부르바키

 

1. 소개
2. '원론' 시리즈


1. 소개



니콜라 부르바키(Nicolas Bourbaki)는 20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수학자들의 '''단체가 사용한 필명'''이다. 즉, 앨런 스미시, 야타테 하지메, 토도 이즈미, 혼고 아키요시, 야츠데 사부로와 비슷한 성격의 가상의 인물이다. 원래는 19세기 프랑스군 장군[1]의 이름에서 따온거라고 하는데,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라울 위송이라는 역덕(!)이 갓 입학한 신입생들의 첫 수업 때 제복을 입고 수염까지 붙인채 뉴비들이 알아들을 턱이 없는(...) 어려운 정리를 칠판에 적어두던 장난을 앙드레 베유가 보고 감탄(...)한 데서 유래했다.
한편,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도록 배려하였고, 프랑스는 젊은 과학자들이 직접 나가 싸우게 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수학계는 1차 대전 직후 전전세대 교수와 공부를 막 시작하는 학생들로만 구성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수학을 이끌어 나갈 중간 허리가 없는 공백을 갖게 되었다. 이에 앙드레 베유 등의 수학자들은, 당시 50세 이상의 대가들에겐 자신들에게 새로운 학문의 조류인 폴란드의 수학을 소화해 전달해 줄 능력이 없다 판단하였다. 이에 수학자들이 현대 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인맥, 학맥을 동원하여 프랑스의 수학자들을 불러모아 팀을 짜기 시작했다. 이 팀원들은 1935년부터 현대 수학을 집합론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저술 활동을 시작,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이름으로 책을 발표했다.[2] 그들의 저술은 최대한의 엄밀성과 일반성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르바키는 철저하게 다비트 힐베르트의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현대수학을 통일성있게 체계화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수학이 수학자들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화되고, 또 그 목적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수학자들이 서로 완전 고립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체계적인 저술을 통해 현대수학을 자기완비적으로 총정리하기로 하였다.
1939년 이후 부르바키라는 이름으로 40여권의 책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한 전직교수로 알려져 있었으나[3] 후대에야 여러 명의 수학자 모임의 가명임이 알려졌고[4], 앙리 카르탕, 클로드 슈발레, 장 쿨롱, 장 델사르트, 장 디외도네, 샤를 에레스만, 르네 드 포셀, 숄렘 만델브로이트, 앙드레 베유 등의 창립멤버가 알려졌으며, 50세 이상 나이를 먹으면 물갈이를 결의하는 암묵의 룰[5]에 따라 합류한 2세대 이후 로랑 슈바르츠, 장피에르 세르,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사무엘 에일렌베르크, 서지 랭, 로제 고드망 등의 다른 참가자들도 알려졌으나, 초창기의 멤버들 중엔 아직 신원이나 참가 여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들이 남아있다.
전간기에 발족하여 늦게는 1980년대까지 저술을 이어간 니콜라 부르바키의 영향으로 현대수학에서는 학술언어로 영어 못지 않게 프랑스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6] 다만 오늘날의 부르바키 수학자들은 그냥 정기 세미나에서 최신 연구 동향을 공유하고 토론하는데에 치중할 뿐 옛날처럼 부르바키 명의로 교과서나 논문을 내는데엔 관심이 덜한 듯 보인다. 아무래도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지식재산권, 저작권에 관한 학계의 전반적인 인식이 진일보했기 때문이리라. 이들의 영향으로 수학 외의 분야에서도 이 이름을 따서 각종 모임의 이름을 짓는 예도 있다. (의료법 스터디 모임 니콜라 부르바키에 관한 기사)

2. '원론' 시리즈


1. Set theory(집합론)
2. Algebra(대수학)
3. Topology(위상수학)
4. Functions of one real variable(실해석학)
5. Topological vector spaces(위상 벡터 공간)
6. Integration(적분)
7. Commutative algebra(가환 대수학)
8. Lie groups and algebras(리군과 대수학)[7]
9. Spectral theory(스펙트럼론)
10. Algebraic topology(대수적 위상수학)

[1] 샤를드니 부르바키(Charles-Denis Bourbaki)라는 장군으로, 크림 전쟁, 보불전쟁 등에 참전했다.[2] 초창기엔 소련 혁명에서 희생된 러시아 수학자의 유고라는 기믹을 내세웠으나, 폴란드인 회원들이 기분나빠해서인지 그냥 프랑스의 노교수 기믹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멤버들은 가짜로 러시아 학회원 명함 등을 논문과 함께 갖고 다녔는데, 하필 2차대전(...)기에 눈치없이 신원불명의 러시아인 명의 논문과 명함을 갖고 다닌 앙드레 베유는 핀란드를 방문했다가 핀란드 정보부에게 소련 간첩으로 몰려 코렁탕을 들이킬 뻔 했다. [3] 2차대전기에 유럽 전선에 참전한 수학자 출신 미군 장교들이 부르바키라는 노교수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당연히 행방을 알 수가 없어서 전쟁 중에 행방불명되거나 멀리 피난간 줄로만 알고 부르바키 저술 서적만 챙겨서 귀국했다는 일화도 있다.[4] 1950년 전후로 Mathematical Reviews 에디터였던 Ralph Boas가 이를 공개 저널에 폭로했는데, 부르바키는 이에 "ㅋㅋㅋㅋ사돈 남말하고 있네여 Boas야말로 여러 이름 갖고 조합한 역 두문자어잖아!!!"라는 가짜 뉴스로 보복했다.(...) 참고로 이 보아스는 수리물리학 교재 저자로 유명한 Mary Boas의 남편 되시는 분.[5] 수학계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나이가 들면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부르바키 원년멤버들 역시 고인물을 대신하여 현대수학을 일신하자는 의도로 시작한 것이기에 자신들도 나이가 들면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의했다. [6] 1980년대 이후로는 부르바키 명의의 저술이 많이 뜸해졌다. 마지막으로 니콜라 부르바키 명의의 저술이 나온건 2016년인데, 이 책은 대수위상수학에 관한 책으로, 아직도 영역이 안 된 상태다! [7] 이임학이 발견한 리군(Ree grop)은 리군(Lie grop) 중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