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드라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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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 선수로, '''먹튀와 유리몸계의 전설로 남을 선수.'''
위치타 주립대학 시절, 마운드에서 26승 5패, 17세이브, 2.24의 가공할만한 평균자책점과 '''타석'''에서는 314타수에서 '''0.318의 타율과 25홈런, 89타점'''을 올리며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와 로터리 스미스 어워드[1] 를 동시에 수상한다. 한마디로 투타만능이었는데,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는 사실상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겸업하는 야수였기 때문에 투수로 들어올 것이냐 야수로 들어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2]
1993년도 드래프트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전체 2순위로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며, 데뷔 시즌인 1994년에는 '''박찬호'''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3]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다.
당시 LA 다저스는 그를 선발 투수로 키울 것인지 마무리 투수로 키울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4] 강력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였지만, 선발투수로 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으며 야수 겸업을 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것 때문에 선발보다는 불펜 쪽에 적합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입단 후 기대치에 비해 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995 시즌에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1년을 날렸다.
이후 1998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1999 시즌과 2000 시즌에 각각 13승과 12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이포트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000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었는데, 사실 선발로서 평균자책점은 4점대로 썩 인상적이지 못했으나 당시 28세인 젊은 나이와 잠재력 등을 이유로 '''5년간 5,500만달러'''라는 거액에 재계약하게 된다. 드라이포트와 박찬호는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는데,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케빈 브라운의 7년 1억50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연봉 때문에 LA 다저스는 사실상 둘 중 한 명만 데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해 먼저 FA가 된 드라이포트가 고액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LA 다저스의 페이롤이 심각하게 치솟았고 박찬호는 자진해서 연봉을 깎지 않는 한 다저스 잔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 계약은 그 자체로 칼럼니스트들의 무한 까임의 대상이었는데, 2001 시즌에 팔꿈치 부상으로 4승 7패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며 먹튀로서의 출발을 알린다. 게다가 2002 시즌에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재활로 인하여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2003 시즌을 앞두고 다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무릎과 엉덩이가 말썽을 일으키며 10경기 등판 4승 4패에 그쳤다.
다행히도 수술 결과가 좋아서 2004 시즌에 돌아올 수 있었으나 선발 투수로 뛰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5,500만 달러짜리 중간계투'''[5] 가 되었다. 성적은 60경기 등판 1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4였는데, 50.2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63개나 잡아냈을 정도로 구위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부상만 더 없었다면 괜찮은 불펜 투수로서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 법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부상이 재발, 결국 2004년 말 엉덩이 수술, 2005년 초양 무릎 수술과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05 시즌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시즌 후 계약기간이 끝나며 은퇴하게 되었다. 물론 돈은 다 받았다.
통산 성적은 48승 60패 11세이브 ERA 4.36. 먹튀 치고 통산 방어율은 평균 수준인데, 사실 드라이포트가 먹튀로 불리는 이유는 성적이 완전 폐급이라서가 아니라 성적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은 데다가 잦은 부상으로 선발로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불펜으로도 자주 나오지 못해서 먹튀로 칭해지는 것이기 때문. 연 500만 달러 정도만 되었어도 출장이 적었으니 먹튀는 먹튀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위상은 아니었을 텐데, 연 11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하고 툭하면 드러누운 것도 모자라 돈은 다 받아먹었으니 역대급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허나, 먹튀 논리라는 것은 순전히 팬의 입장일뿐, 그래도 그는 갖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마무리했다. 단지 박찬호를 잡지않고 큰 계약을 했다고 까이는것은 온당치 못하다. 박찬호도 결국 허리부상으로 인하여 재계약하지 못한것 아닌가.
이후 드라이포트라는 이름은 먹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통하게 되었다.[6]
1. 소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 선수로, '''먹튀와 유리몸계의 전설로 남을 선수.'''
2. 선수 시절
위치타 주립대학 시절, 마운드에서 26승 5패, 17세이브, 2.24의 가공할만한 평균자책점과 '''타석'''에서는 314타수에서 '''0.318의 타율과 25홈런, 89타점'''을 올리며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와 로터리 스미스 어워드[1] 를 동시에 수상한다. 한마디로 투타만능이었는데,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는 사실상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겸업하는 야수였기 때문에 투수로 들어올 것이냐 야수로 들어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2]
1993년도 드래프트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전체 2순위로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며, 데뷔 시즌인 1994년에는 '''박찬호'''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3]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다.
당시 LA 다저스는 그를 선발 투수로 키울 것인지 마무리 투수로 키울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4] 강력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였지만, 선발투수로 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으며 야수 겸업을 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것 때문에 선발보다는 불펜 쪽에 적합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입단 후 기대치에 비해 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995 시즌에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1년을 날렸다.
이후 1998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1999 시즌과 2000 시즌에 각각 13승과 12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이포트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000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었는데, 사실 선발로서 평균자책점은 4점대로 썩 인상적이지 못했으나 당시 28세인 젊은 나이와 잠재력 등을 이유로 '''5년간 5,500만달러'''라는 거액에 재계약하게 된다. 드라이포트와 박찬호는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는데,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케빈 브라운의 7년 1억50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연봉 때문에 LA 다저스는 사실상 둘 중 한 명만 데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해 먼저 FA가 된 드라이포트가 고액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LA 다저스의 페이롤이 심각하게 치솟았고 박찬호는 자진해서 연봉을 깎지 않는 한 다저스 잔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 계약은 그 자체로 칼럼니스트들의 무한 까임의 대상이었는데, 2001 시즌에 팔꿈치 부상으로 4승 7패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며 먹튀로서의 출발을 알린다. 게다가 2002 시즌에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재활로 인하여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2003 시즌을 앞두고 다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무릎과 엉덩이가 말썽을 일으키며 10경기 등판 4승 4패에 그쳤다.
다행히도 수술 결과가 좋아서 2004 시즌에 돌아올 수 있었으나 선발 투수로 뛰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5,500만 달러짜리 중간계투'''[5] 가 되었다. 성적은 60경기 등판 1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4였는데, 50.2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63개나 잡아냈을 정도로 구위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부상만 더 없었다면 괜찮은 불펜 투수로서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 법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부상이 재발, 결국 2004년 말 엉덩이 수술, 2005년 초양 무릎 수술과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05 시즌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시즌 후 계약기간이 끝나며 은퇴하게 되었다. 물론 돈은 다 받았다.
통산 성적은 48승 60패 11세이브 ERA 4.36. 먹튀 치고 통산 방어율은 평균 수준인데, 사실 드라이포트가 먹튀로 불리는 이유는 성적이 완전 폐급이라서가 아니라 성적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은 데다가 잦은 부상으로 선발로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불펜으로도 자주 나오지 못해서 먹튀로 칭해지는 것이기 때문. 연 500만 달러 정도만 되었어도 출장이 적었으니 먹튀는 먹튀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위상은 아니었을 텐데, 연 11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하고 툭하면 드러누운 것도 모자라 돈은 다 받아먹었으니 역대급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허나, 먹튀 논리라는 것은 순전히 팬의 입장일뿐, 그래도 그는 갖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마무리했다. 단지 박찬호를 잡지않고 큰 계약을 했다고 까이는것은 온당치 못하다. 박찬호도 결국 허리부상으로 인하여 재계약하지 못한것 아닌가.
3. 기타
이후 드라이포트라는 이름은 먹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통하게 되었다.[6]
[1] 대학 야구선수들한테 주는 최고의 상이다.[2] 똑같이 대학에서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하다가 들어온 사례는 토드 헬튼이 있다. 이쪽은 1루수를 선택해 1997년 데뷔 이후 2013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3] 미국에서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로 간 선수는 1871년부터 약 140여년간 메이저리그 역사 이래 17명 뿐이다. 박찬호 역시 '''140년 역사의 17명 중 1명이다.'''[4] 여기에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개입해 선발 투수로 뛰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스캇 보라스는 고객의 고액 계약도 잘 뽑아내지만 구단에 선수의 대우에 대해 으름장을 잘 놓기로 유명하다.[5] 참고로 2018년 현재 역대 불펜투수 평균 최고액 계약이 웨이드 데이비스의 3년 5,200만 달러인데, 웨데의 경우 FA였던데다 다들 알다시피 로열스 불펜 3대장의 일원이었다.[6] 이상목의 별명인 DDSM의 DD가 대런 드라이포트의 약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