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헬튼

 

'''토드 헬튼의 수상 경력'''
[ 펼치기 · 접기 ]



'''2000년 ~ 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J.T. 스노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데릭 리
(플로리다 말린스)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데릭 리
(플로리다 말린스)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데릭 리
(시카고 컵스)



<colbgcolor=#33006f> '''콜로라도 로키스 No. 17 '''
'''토드 린 헬튼
(Todd Lynn Helton)
'''
'''생년월일'''
1973년 8월 20일 (50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테네시 주 녹스빌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번 (COL)
'''소속구단'''
'''콜로라도 로키스 (1997~2013)'''
'''수상'''
'''5x All-Star (2000~2004)'''
'''4x NL Silver Slugger Award (2000~2003)'''
'''3x NL Gold Glove Award (2001, 2002, 2004)'''
'''NL Hank Aaron Award (2000)'''
1. 개요
2. 커리어
3. 연도별 기록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5. 이모저모


1. 개요


산사나이.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활약한 前 야구선수. 또한 전 구단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의 실질적인 첫 번째 영구결번자이자 구단 역사에 남을 프랜차이즈 스타.[1] 별명은 "The Toddfather"[2]
쿠어스 필드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로 남아있다. 현재 로키스에서 가장 많이 홈런을 치고 있는 현역인 카를로스 곤잘레스는 200개를 막 넘겼다.

2. 커리어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 둘 다 재능이 있었다. 미식축구 경기를 뛸 때는 쿼터백을 맡아 2772야드를 전진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야구 역시 고교 통산타율 6할 5푼의 고타율을 자랑했다. 하지만 미식축구는 테네시 대학교 입학 후 주전에서 밀려났는데, 이때 헬튼을 밀어내고 주전 쿼터백이 된 인물이 바로 페이튼 매닝.[3] 슬럼프를 겪으며 미식축구에서는 기량은 떨어젔지만 야구는 최고 유망주에게 주는 상인 딕 하우저 트로피를 수상할 정도로 일취월장을 거듭해 실력을 쌓았다. 그 결과 1995년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다.
[image]
본격적인 빅리그는 1997년부터 출장했다. 첫 풀타임인 1998년부터는 꾸준히 성장을 하며 3할 중반대의 타격과 30~40홈런을 기록하며 팀 동료인 래리 워커와 함께 팀의 주포로 자리 매김하였고 데뷔 해 신인왕 후보로도 선정되었으나 시카고 컵스의 케리 우드에 밀려 아쉽게 2위에 그쳤다. 2000년에는 커리어하이를 찍게 되는데 타율 0.372, 안타 216개, 홈런 42개, 147타점, 2루타 59개, 그리고 OPS가 1.162였고 타격 1위/ 홈런 공동 7위[4]/ 타점 1위/ 2루타 1위/ 최다안타 1위를 기록하며 웬만한 타격기록은 다 휩쓸었다.[5]
하지만 2000년 중반부터 노쇠화가 진행되어 홈런 생산이 줄기 시작하고 잔부상에 시달리지만 꾸준한 안타 생산능력은 시들지 않아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10년 연속 35개 이상의 2루타를 기록하기도 한다. 리그의 전형적인 더블머신. 그리고 알버트 푸홀스가 1루수로 정착하기 전까지 내셔널리그에서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1루수였고 골드글러브를 3회 수상했다.
[image]
200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마지막 송구를 포구하고 포효하는 헬튼
통산 타율은 0.316로 이보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 이보다 높은 타율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알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조 마우어, 스즈키 이치로 정도 밖에 없었다. 뛰어난 컨택 실력 외에도 눈야구에도 뛰어나서 출루율도 좋고, 부상 전에는 홈런 생산력도 빼어났기에 장타율도 좋았다. 하지만 2005년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등부상을 당하면서 과거와 같은 파워를 보일 수 없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러 자연스러운 노쇠화까지 겹치면서 헬튼의 장타력은 크게 감소하게 된다.[6]
사람에 따라 헬튼의 기록을 '구장빨'이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에서 경기는 통산 타율이 3할 4푼을 상회하지만 원정경기는 2할 8푼으로 3할이 채 안된다. 통칭 '산사나이'. 헬튼의 성적이 타율에서 알버트 푸홀스, 스즈키 이치로, 조 마우어랑 비교되는 수준이고 콜로라도에서만 10년 넘게 뛰어서 대표적인 산사나이 취급을 당하지만, 콜로라도에서 뛰는 시절 홈과 어웨이의 타율 차이가 1할에 육박하는 맷 홀리데이와 래리 워커도 있었다.[7] 상대적으로 그리 심할 정도로 산사나이에 가까운 타입은 아니다.
록토버라는 기적같은 연승을 달린 팀과 함께 2007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이것이 토드 헬튼 커리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2011년에는 다시금 회춘해서 부활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홈런 생산은 나이 때문에 떨어졌지만, 고타율은 여전했다. 결국 1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2, 14홈런, 69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2012년에는 부상이다 뭐다 해서 말아드셨고, 2013년 초에는 음주운전 적발이라는 악재를 만나게 되었다.
본인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인 2013년에는 그냥저냥 통산 스탯 까먹지 않는 선에서 다른 선수들과 출전 기회를 나눠받으며 평범한 성적을 냈다. 필요할 때 대타카드로도 나오며[8] 시즌 최종 124경기 출전에 99안타 15홈런 61타점 41득점을 올렸다. 9월 1일 對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MLB 통산 85번째로 2500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지시각 9월 14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17년간의 선수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한다는 발표를 했다. 치퍼 존스마리아노 리베라처럼 떠들썩하게 작별하는 것보단 조용히 떠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 헬튼의 은퇴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느꼈다. 오랫동안 산신령으로서 산동네를 지켜오던 그도 오랜 산생활을 마치고 하산하게 됐다. 무슨 승부조작이나 약물 스캔들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그의 등번호는 (재키 로빈슨을 제외할 경우) 로키스 프랜차이즈 최초의 영구결번 지정이 확실했다. #
9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펼치는 인터리그 홈 경기에서 가족을 동반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시구는 그의 딸이 맡았고, 헬튼은 시포를 맡았다. 경기 내에서는 홈런을 포함한 2안타 3타점으로 마지막 은퇴경기를 개인 유종의 미로 장식했다.
[image]
2014년 8월 17일[9] 신시내티 전에서 그의 등번호 17번의 영구결번식이 진행되었다. 윗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가족들이 참석했고, 그와 6년간 선수생활을 같이했던 브래드 호프, 현역 콜로라도 선수인 벨라일이 그의 영구결번을 축하해주었다.

3.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7
COL
35
101
26
2
1
5
13
11
0
8
11
0.280
0.337
0.484
0.821
-0.2
1998
152
595
167
37
1
25
78
97
3
53
54
0.315
0.380
0.530
0.911
3.2
1999
159
657
185
39
5
35
114
113
'''7'''
68
77
0.320
0.395
0.587
0.981
2.9
2000
160
697
'''216'''
'''59'''
2
42
'''138'''
'''147'''
5
103
61
'''0.372'''
'''0.463'''
'''0.698'''
'''1.162'''
'''8.9'''
2001
159
697
197
54
2
'''49'''
132
146
7
98
'''104'''
0.336
0.432
0.685
1.116
7.8
2002
156
668
182
39
4
30
107
109
5
99
91
0.329
0.429
0.577
1.006
6.3
2003
160
703
209
49
5
33
135
117
0
111
72
0.358
0.458
0.630
1.088
6.3
2004
154
683
190
49
2
32
115
96
3
'''127'''
72
0.347
0.469
0.620
1.088
8.3
2005
144
626
163
45
2
20
92
79
3
106
80
0.320
0.445
0.534
0.979
4.6
2006
145
649
165
40
5
15
94
81
3
91
64
0.302
0.404
0.476
0.880
2.3
2007
154
682
178
42
2
17
86
91
0
116
74
0.320
0.434
0.494
0.928
4.5
2008
83
361
79
16
0
7
39
29
0
61
50
0.264
0.391
0.388
0.779
1.0
2009
151
645
177
38
3
15
79
86
0
89
73
0.325
0.416
0.489
0.904
3.3
2010
118
473
102
18
1
8
48
37
0
67
90
0.256
0.362
0.367
0.728
0.2
2011
124
491
127
27
0
14
59
69
0
59
71
0.302
0.385
0.466
0.850
2.2
2012
69
283
57
16
1
7
31
37
1
39
44
0.238
0.343
0.400
0.743
0.1
2013
124
442
99
22
1
15
41
61
0
40
87
0.249
0.314
0.423
0.738
-0.4
<color=#373a3c> '''통산(17시즌)'''
<color=#373a3c> 2247
<color=#373a3c> 9453
<color=#373a3c> 2519
<color=#373a3c> 592
<color=#373a3c> 37
<color=#373a3c>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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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37
<color=#373a3c> 1335
<color=#373a3c> 1175
<color=#373a3c> 0.316
<color=#373a3c> 0.414
<color=#373a3c> 0.539
<color=#373a3c> 0.953
<color=#373a3c> 61.2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로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다가 암흑기와 록토버 시절을 모두 경험한 선수로서 그의 등번호는 로키스의 영구결번이 되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입성은 조금 불안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
사실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제공하는 통계에 따르면, 헬튼의 명전입성은 사실상 보장된 상황이라 봐도 무방하다. Hall of Fame Career Standard 지수에서 59point를, Hall of Fame Monitor 지수에서 175point를 기록중이기 때문.[10] 두 수치 모두 명전 100% 확정지었다는 아드리안 벨트레짐 토미보다 높다.
하지만 문제는 2가지인데,
  • 하나는 1루수라는 포지션.
통산 비율 스탯만 보면 3-4-5라는 실로 아름다운 성적이지만 문제는 누적 스탯인데, 산동네에서만 뛰었고 커리어 내내 1루수였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통산 2519개의 안타와 369개의 홈런은 아무래도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벨트레는 3루수, 짐 토미도 1991~1996년까진 3루수였는데 각각 3000안타와 600홈런을 기록했다.
  • 두 번째는 그놈의 쿠어스 논란.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만 쓰는 콜로라도 로키스 프랜차이저라서 스탯 거품, 쿠어스 홈보이, 홈원정 편차가 진짜 홈빨인지 여부 등이 검증이 안되었다는 게 아쉽다. 래리 워커가 산에 올라오기 전과 내려간 이후에도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쿠어스 필드를 써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손해를 본 것이 현실인 터라 헬튼이라고 다를 것이냐가 문제.
하지만 한 팀에서 뛰었던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명전투표에서 좀 유리하다는 걸 감안했을때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고, 스테로이드에서 자유로운 것도 일단 호재. 1회차(2019년)에는 득표율 16.5%를 기록했다. 2회차(2020년) 득표율은 29.2%.
한 동안은 래리 워커의 명전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여겨졌기에 헬튼이 만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면 최초로 로키스 모자를 쓰고 갈 선수가 될 뻔했지만, 2020년 1월 21일 래리 워커가 마지막 10회차에 약 76% 득표율로 극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로키스 모자를 선택하면서 최초의 타이틀은 뺏겼다. 하지만 헬튼에게 오히려 호재인 것이 워커가 쿠어스빨이라는 오명을 벗고 당당히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에 헬튼 또한 쿠어스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프랜차이즈+실력으로 당당히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커의 명예의 전당 헌액 이후 많은 언론과 팬들이 헬튼에게 주목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2019년 3월 27일에 음주운전이 걸리면서 명전 입성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여기에 1년 뒤인 2020년 4월 7일에 다시 음주운전이 적발되면서 체포되었고, 이틀간 감옥에 구류되었다. 이미 2013년에도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벌써 음주운전만 3번째라 명전 입성에 정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쿠어스빨이라는 시선 때문에 명전 투표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로 계속 오르내리면서 스스로 득표율을 깎아먹고 있다.
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도전은 무려 44.9%의 고득표율을 기록했다. 7~8번째 투표쯤에 명예의 전당에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5. 이모저모


  • 로키스의 리더답게 선수들은 물론 구단 직원들에게도 살갑게 대하기로 유명했다. 그 일화로 김병현이 로키스로 이적을 했을 때 선수로서는 가장 먼저 다가가서 반겼다고 한다.
  •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헬튼 버거를 팔고 있다.
  • 미모의 아내 덕분인지 산신령이 되어버린 본인과 달리 딸들의 외모는 어머니를 닮아 출중하다.
  • 1993년 창단된 콜로라도 로키스와 역사를 함께한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스타에 걸맞는 커리어를 보냈다. 포스트시즌 경험은 2007년과 2009년 2번.[11]
전설적인 1루 견제 페이크 장면.
  • 2012년에 콜츠에서 덴버 브롱코스로 오게된 페이튼 매닝은 1년 대학 선배인 헬튼을 응원하기 위해 쿠어스필드를 찾았고 헬튼이 2013년에 은퇴하자 은퇴식에도 참석하는 등 돈독한 우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 후 매닝은 2016년 브롱코스에게 슈퍼볼 우승을 안기며 은퇴하게된다.
  • 2018년 12월 중순에 기재된 마이크 햄튼의 잔여 연봉 분할 지급 관련 기사에 따르면 로키스가 헬튼에게도 분할 지급 방식을 택해 2023년까지 연간 1.3M을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 2018-19시즌 개막 직전에 음주운전으로 걸려 곤욕을 치뤘다. 본인은 수면제인 졸피뎀을 복용했다 주장했지만 경찰이 그의 트럭을 조사하자 술이 든 플라스틱컵을 발견하여 음주운전임을 알아냈다. 은퇴했다 하더라도 아직 30년이 되지않은 구단의 대표격인 인물이니만큼 구단도 팬들도 실망이 큰 듯. 명예의 전당 입성에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 추가되었다. 2020년에도 또 음주운전을 해서 체포되었다. 거기다가 2013년에도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만큼 벌써 3번째로 걸린 것이라, 실로 굉장히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1] 그의 뒤를 이어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있던 트로이 툴로위츠키는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아마 중간에 트레이드 되지 않는한 장기계약을 맺은 놀란 아레나도가 뒤를 이어서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듯 하다. 하지만 아레나도 역시 2021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이제 트레버 스토리 정도만이 가능성이 남아 있다.[2] <대부>(The Goddather)에서 따온 별명으로, 로키스의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클럽하우스 리더였던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할 수 읶다.[3] 이 후 페이튼 매닝이 선수 말년에 로키스의 연고지인 덴버에 위치한 미식축구팀 덴버 브롱코스에 영입되어 슈퍼볼 50에서 팀을 우승시킨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인연이다.[4] 투고타저인 2010년대 후반 내셔널 리그라면 여유 있게 홈런 1위였겠지만 이 해의 내셔널리그에는 배리 본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제프 배그웰, 새미 소사, 게리 셰필드 등의 슬러거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갑툭튀 플루크 시즌을 보낸 리차드 이달고에게까지 밀렸다.[5] 하지만 NL MVP는 쿠어스 필드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너프 먹고 팀 성적이 너무 개판이었던 이유로 또 너프 먹어 제프 켄트한테 헌납했다.[6] 이후 등부상으로 고생하던 헬튼은 2008년 최종적으로 디스크 판정을 받은 후 확연한 하락세를 타게 된다.[7] 이 두 명은 모두 산을 내려왔고, 공교롭게도 (가장 표준적 구장이라 불리는 부시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2명 모두 활약하면서 산동네 임팩트는 그냥 홈빨이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결과적으로 산에서 내려오기 전이나 후나 잘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 대체적으로 선구안으로 바탕으로하는 라인 드라이브형 타자들의 경우는 산을 내려와도 무난한 성적을 찍어주는 경향을 보였다. 본문의 토드 헬튼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 반면 얻어 걸려라 방식의 어퍼 스윙 위주의 타자들은 모두 시망이었는데, 이 경우의 대표적 타자는 비니 카스티야.[8] 대표적으로 5월 31일에 LA 다저스 전에서 브랜든 리그 상대로 날린 동점 투런포를 들 수 있겠다.[9] 17년을 뛰었고 등번호 17번에 17일로 맞춘 의미있는 영결식이었다.[10] 앞의 수치는 실제 명전에 입성한 선수들 평균을 50이라 봤을 때 비교할 만한 수치라는 것이며, 뒤의 수치는 대충 말해 100정도는 되어야 명전급이라는 것.[11] 1995년 포스트시즌에는 로키스 소속이었지만 빅리그 경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