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메트로 5000계 전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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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4년 제도고속도교통영단(현 도쿄메트로)가 도자이선에서의 운용을 위해 도입한 지하철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로, 기존 3000계 전동차를 바탕으로 제작한 전동차이다.
국철 노선과의 직결운행을 대비하여 등장한 '''영단지하철 출범 후 첫 20m 4도어 대형 전동차'''로 10년 후 등장한 한국의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에서 운영한 '초저항'전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전두부가 인상적이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6000계의 양산 지연으로, 1969년 치요다선 개통 당시 처음 투입된 영단의 전동차이기도 하다.[6]
1971년부터 치요다선과 일본국철 조반 완행선의 직결과 동시에 직결운행하기 시작했고, 6000계가 투입되는 와중에도 1981년까지 치요다선 본선에서 운행되었다. 그러나 치요다선용 5000계는 처음부터 미래에 도자이선으로 이적하는 것을 염두했기 때문에, 오다큐 전철의 신호장비를 설치하지 않아서 오다큐 전철 구간은 직결하지 않았다.
아야세 지선에서는 1979년부터 3량 1편성으로 더 오래 운용하다가, 2002년에 원맨화 개조(ATO 설비도 설치)까지 받고 2014년에 최종 퇴역하였다.
2. 개발 배경
제도고속도교통영단(현 도쿄메트로)에서는 지하철 도자이선의 개통에 대비하여 기존 3000계의 설계를 답습하되, 국철 츄오선과의 직통운전을 위하여, 그리고 출퇴근시간의 탄력적인 전동차 운행을 위하여 20m 4도어 규격의 경제적이고 범용성 있는 전동차를 제작하게 된다.
당초에는 3000계의 후속작이라는 뜻으로 4000계로 붙이려고 하였으나, 히비야선 3000계의 중간차 차량번호로 4000계를 지정하게 되자 5000계로 바꿨다는 후일담이 있다.
3. 형식
1964년 최초로 등장한 3량 6개편성을 시작하여 1981년까지 들여온 "지하철계의 103계"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많이, 그리고 오래도록 생산되었다.
5000형, 총 51량(스테인리스 차량: 5001-5048호, 알루미늄 차량: 5150-5152호)
운전실이 딸린 동력차이며, 초창기에는 모든 5000형은 팬터그래프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먼 훗날 도자이선에 들어가는 차량에 한해서 팬터그래프가 제거되었다.
5200형, 총 174량(스테인리스 차량: 5201-5365호, 알루미늄 차량: 5450-5458호)
팬터그래프가 있는 중간차이다. 생산량이 100량을 초과하여 5300형도 있다.
5600형, 총 96량(스테인리스 차량: 5601-5690호, 알루미늄 차량: 5750-5755호)
동력차이다.
5800형, 총 51량(스테인리스 차량: 5801-5848호, 알루미늄 차량: 5950-5952호)
앞서 설명한 5000형과 같은 운전실이 딸린 차량이나, 얘는 무동력차이다.
5100형, 총 27량(스테인레스 차량만 생산했다. 5101-5127호)
간이 운전대가 딸린 중간차이다
5900형, 총 27량(스테인레스 차량만 생산했다. 5901-5927호)
간이 운전대가 딸린 전동차이다.
3.1. 1차차(1964년) (스테인레스)
5001~5006호, 5201~5206호, 그리고 5801~5806호 총 18량이 1차 도입분에 해당된다.
1964년 타카다노바바역 ~ 쿠단시타역 간 개통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18량 모두 스테인레스 차량이었다.
처음 도입할 당시에는 3량 6편성으로, [7] 또한, 역시 당시 지하철 전동차의 트렌드(?)가 그렇듯이, 무냉방 차량이다. 그 대신 천장에는 히비야선 3000계에 장착된 팔각형 환풍구가 장착되었다. 도색의 경우 당시 '''전동차 제작기술이 빈약한 관계로''' 차체 외부에 도자이선 노선색인 '''하늘색을 칠한 철판'''을 붙였다.[8]
도입 초기에는 전면부의 띠가 차체 측면과 같은 두께였다.
이후 은색의 차체 특성상 흐린날에는 차량 전두부의 띠가 잘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는 작업원들의 요청과 역시 흐린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안전문제로 1971년~1973년에 걸쳐 하늘색 철판의 크기를 늘리는 개조를 했다. 치요다선용 5000계도 비슷한 시기에 개조했다. 초창기에는 국철구간 입선용 ATS-B와 신호염관이 장착되지 않았으나,1966년 개조를 시행함과 동시에 5000계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인 퍼런 바탕에 은색 영단로고가 그려진 검은 철판을 선두차 운전실 유리창 윗부분에 장착했다.
이 차량이 도입될 당시의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도입 당시에는 지상 검차구가 없었기에, 전동차를 차량기지로 보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타 노선과의 연결선로가 없었기에, 결국에는 쿠단시타역-타케바시역 사이 본선 터널 상부에 커다란 반입구를 만들어서 열차를 1량씩 크레인을 이용해 집어넣었다고(...) 한다.트레일러로 운반되는 모습땅속으로 열차를 넣는 모습[9]
게다가, 지하 검차구가 이다바시역에 작게나마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대차 교체 등 중정비가 불가능해서 가능한 대차 손실을 줄이기 위해 열차 최고 운행속도는 40km/h로 제한했었다(...).
퇴역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이 폐차되었으나 일부 차량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수출되어 2018년 현재도 열심히 달려주시고 계시는 상황.
여담으로 치요다선 지선용 차량이었던 51, 52편성은 투핸들 운전대에 ATO장치만 추가되어 ATO 자동운전을 했었다.
3.2. 2차차(1966년) (스테인레스/알루미늄)
2차차는 스테인레스 차체 차량과 알루미늄 차체 차량 두가지가 도입되었다.
스테인레스 차량은 5007 - 5018호, 5207 - 5254호, 5601 - 5636호, 그리고 5807 - 5818호 총 108량,
알루미늄 차량은 5150호, 5450 - 5452호, 5750, 5751, 그리고 5950호 총 6량, 합계 114량이 2차차에 해당된다.
1966년 쿠단시타역 ~ 타케바시역 및 나카노역 ~ 타카다노바바역 간 개통을 위해 도입되었다.
9, 16, 17편성은 자카르타로 수출되었으나 현재는 17편성만 운행중이다.
3.3. 3차차(1967년) (스테인레스/알루미늄)
3.4. 4차차(1968~1969년) (스테인레스)
3.5. 5차차(1977년) (스테인레스)
3.6. 6차차(1979년) (스테인레스)
3.7. 7차차(1981년) (스테인레스)
4. 토요 고속철도 1000형 전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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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고속철도 1000형 전동차는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운행했던 토요 고속철도의 차량이다. 1996년 토요 고속철도 토요 고속선이 개통되면서 제도고속도교통영단 (현 도쿄메트로)에서 5000계 차량을 10편성 100량을 토요 고속철도에 양도 후 개조된 차량이다. 2004년에 토요 고속철도 2000계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순차별로 퇴역했고 2006년 12월 3일 운행을 끝으로 전량 퇴역했다.
5. 사건사고
1978년 2월 28일 (쇼와 53년) 열차가 도자이선 카사이역을 출발하여 니시카사이 역에 가던 도중 철교에서 태풍에 의한 엄청난 강풍으로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10량중 2량이 탈선[10] 하였으며 폐차. 같은해 12월 21일 대체 차량이 편성 되었다고 한다.영상출처 빠르면 5분 26초부터 보는것을 추천한다. (일본어)
6. 관련 문서
[1] 아야세 지선용 차량에만 해당[2] 미타카역까지 각역정차 등급으로 직통운전. 평일 출퇴근시간 한정으로 도자이선 기종점인 니시후나바시역에서 소부선 츠다누마역까지 연장 직통운전.[3] 1969년 치요다선 개통 당시부터 1981년까지 치요다선 본선에서 운행.[4] 오다큐 전철 노선에는 직결하지 않았다.[5] 1972년 가와사키 중공업에 흡수합병[6] 6000계는 1970년부터 양산되어, 1971년 치요다선 오테마치-카스미가세키 구간 개통 시부터 투입되었다.[7] 그래도 긴자선, 마루노우치선과는 달리 승강장은 10량 편성으로 건설되었다. 사실 개통 구간이 너무 짧아서 전동차를 짧은 편성으로 도입한 것에 가깝다.[8] 이 도색 방식은 6000계, 7000계 뿐만 아니라 8000계까지도 쓰였다. 6000계, 7000계, 8000계는 B수선 공사를 받으면서 도색 방식이 필름을 붙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9] 이 스킬은 20년 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5호선, 8호선 전동차들을 반입하는 데 써먹었다. 다만, 당시 5000계 전동차는 3량 1편성이었지만, 5,8호선 전동차들은 각각 8량, 6량으로 반입되어서 난이도가 더 빡셌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 5000계는 대차와 차체를 분리해서 땅속에 넣었지만 5, 8호선 전동차들은 그냥 통째로 땅 속에 넣었다. 출처[10] 사실은 탈선하면서 넘어진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