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
'''Regnum Ostrogothorum'''
'''Regnum Italiae'''

[image]
493년 ~ 553년
라틴어
Regnum Ostrogothorum / Regnum Italiae
이탈리아어
Regno ostrogoto / Regno d'Italia
위치
이탈리아, 발칸 서북부
수도
라벤나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주요 국왕
테오도리쿠스 대왕
언어
고트어, 라틴어
종족
고트족, 로마인 등
종교
아리우스파 기독교, 가톨릭
성립 이전
오도아케르의 왕국
주요사건
493년 건국
526년 동-서 고트족 분열
535년 벨리사리우스의 군대가 침공
536년 나폴리, 로마 함락당함
540년 라벤나 함락당함
552년 타기나이 전투의 패배와 토틸라 왕의 사망
552~553년 몬스 락타리우스 전투에서 패배해 멸망
멸망 이후
동로마 제국
1. 개요
2. 역사
2.1. 전성기
2.2. 몰락
2.2.1. 부흥?
2.2.2. 멸망
3. 역대 국왕
4. 기타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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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세기경 ~ 553년, 또는 493~553년[1]
고트족오도아케르의 왕국을 무너트리고 이탈리아 반도에 세운 국가. 오도아케르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칭 이탈리아 왕국이라고 했다.

2. 역사


3세기 즈음 동•서고트족 분열 이후 흑해 연안에 왕국을 건국한다. 에르마나리크(Ermanaric, ?~376) 시절의 동고트 왕국은 북쪽으로 발트 해, 남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우랄 산맥에 이르는 큰 세력 판도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직후 훈족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침입해 들어왔고, 동고트 왕국을 비롯한 동유럽의 게르만 왕국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후 동고트 왕국은 훈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고트족은 훈족의 기마술을 배우고 반란을 일으키는 등 훈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반복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유명한 아틸라 시절에 동고트족은 아틸라의 서방 원정대에 참여하여 친척 부족인 서고트족과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싸우기도 했다.[2]
453년 아틸라가 사망하자 훈족 밑에 있던 동고트족과 게피다이족을 비롯한 게르만족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이 게르만족 연합군은 네다오(Nedao) 전투에서 훈족을 크게 격파했으며 훈족의 왕 엘락(Ellac)은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전투 이후 훈족은 유럽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동고트족을 비롯한 각 게르만족은 2세기 만에 드디어 독립을 찾을 수 있었다.

2.1. 전성기


게르만 연합군이 훈족을 격파한 후, 당시 동로마 황제였던 마르키아누스는 동고트족을 제국의 영내인 판노니아 지역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식량을 지원하고 교류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마르키아누스가 죽고 레오 1세가 즉위한 후 이 지원이 중단되자 동고트족은 발라미르의 지휘 하에 반란을 일으켜서 459~462년 일리리쿰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레오 1세는 다시 동고트족에 대한 교류를 해 주기로 약속했으며, 대신 동고트 왕의 아들을 일종의 인질로 삼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머무르게 했다.
이 인질이 바로 동고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테오도리크 대왕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20년간 교육을 받은 그는 동고트인의 전사기질과 함께 동로마의 정치적, 문화적 식견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되었다. 475년에 부친 테오데미르가 죽고, 481년에 라이벌인 테오도리쿠스 스트라보가 죽자 사실상 동고트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왕이 된 직후 동로마 황제 제노는 동고트족에게 제국의 골칫거리가 된 오도아케르를 토벌하고 이탈리아에 이주해 살라고 제안했으며 테오도리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489년 오도아케르 축출을 위해 이탈리아 정벌을 시도하였으며 4년만에 오도아케르를 굴복시키고 살해하였다.[3] 테오도리크의 이탈리아 정벌은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행해진 것이었으나 일단 정벌이 완료된 후 테오도리크는 동로마 제국과는 별도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테오도리크는 후에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정도로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했으며, 군사적 정벌보다는 외교와 책략으로 동고트 왕국을 번영시켰다. 프랑크 왕국서고트 왕국의 싸움에서 서고트가 일방적으로 밀리자 중재를 서서 서고트 왕국의 몰락을 막아주기도 했다.[4]

2.2. 몰락


테오도리크 시절 동고트 왕국은 평온한 시기를 보냈으나, 그가 죽자마자 국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테오도리크 사후 그의 외손자인 아탈라릭(Athalaric)이 즉위했으나 즉위 당시 나이가 10살이었기 때문에 그의 모친이자 테오도리크의 딸이었던 아말라순타(Amalasuntha)가 섭정을 하였다. 그러나 아탈라릭은 즉위 8년 만인 534년에 사망했다. 이에 아말라순타는 스스로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공동왕으로 테오도리크의 조카 테오다하드(Theodahad)를 임명하는데, 아말라순타의 친로마 성향에 불만을 느낀 테오다하드는[5] 반란을 일으켜 그녀를 유폐시킨 후 이듬해인 535년에 살해했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 I)는 친로마 성향의 여왕이 시해당하자 이를 빌미로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앞세워 동고트족을 침략한다. 아말라순타의 딸 마타순타(Matasuntha)와 결혼한 비티게스(Witiges)는 테오다하드가 동로마군의 나폴리 공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이를 빌미로 왕에 오른 후 그를 살해했다. 하지만 비티게스 역시 동로마군에게 계속 밀린 끝에 540년 결국 수도 라벤나를 내주었고, 비티게스 부부는 동로마군에게 사로잡혀 콘스탄티노플에 압송되었으며 비티게스는 거기서 죽었다.[6]

2.2.1. 부흥?


하지만 벨리사리우스가 페르시아 전선에 참여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비운 동안 동고트는 541년 토틸라(Totila)를 새로운 왕으로 뽑은 후 다시 독립을 선언하고 동로마가 차지했던 이탈리아 반도를 유린했다. 벨리사리우스는 544년에 이탈리아 전선에 복귀했지만, 하필 이 시기에 동로마 제국에 심한 전염병(흑사병)으로 인한 기근이 들어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탓에 전황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결국 548년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인다.[7]

2.2.2. 멸망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제국의 국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551년에 나르세스(Narses)를 앞세워서 다시 이탈리아 점령을 개시했다. 벨리사리우스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던 나르세스는 552년에 일어난 타기나이 전투에서 토틸라의 동고트군을 격파하였고, 토틸라를 전사시켰다. 다음해인 553년, 몬스 락타리우스(Mons Lactarius)[8]에서 테이아(Teia) 왕이 이끄는 동고트군이 무참하게 패배하고 18년에 걸친 고트 전쟁이 동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동고트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60년이라는 짧은 치세를 보낸 동고트 왕국의 멸망 이후 동고트인들은 더 이상 독립된 정치 세력이 되지 못했다. 동로마 제국에서 용병으로 활약한 동고트인은 그리스인·알바니아인·남슬라브인·터키인 등 발칸 반도의 여러 민족에 동화되었고, 이탈리아에 남은 동고트인은 이탈리아인에 동화되었으며, 서고트 왕국으로 망명한 동고트인은 스페인인이나 포르투갈인에 동화되었다.

3. 역대 국왕


'''라틴어 이름'''
'''고트어 이름'''
'''재위 기간'''
테오도리쿠스 대왕
티우다릭스
493년 – 526년
아탈라리쿠스
아탈라릭스
526년 – 534년
아말라순타
아말라수인타
534년 – 535년
테오다하투스
티우다하투스
534년 – 536년
비티게스
위티기사스
536년 – 540년
헬데바두스[9]
힐디바두스
540년 – 541년
에라리우스[10]
에라릭스
541년
토틸라
토틸라
541년 – 552년
테이아
테이아
552년 – 553년

4. 기타


16세기까지 이들이 쓰던 고트어가 흑해 연안에 잔존해 있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3세기경 발칸 반도에서 서고트족과 갈라지면서 동고트족이 형성되었으나, 통상적인 동고트 왕국은 493년 이탈리아를 점령한 후 동로마 제국에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던 왕국을 가리킨다.[2] 동고트족은 아틸라의 편에서 싸웠고 서고트족은 로마 군단인 아에티우스 군의 지원군으로 참여했다.[3] 오도아케르를 살해하고 테오도리크가 이탈리아의 패자가 된 493년이 좁은 의미의 동고트 왕국의 성립년도이다.[4] 511년에는 아예 서고트 왕국의 섭정왕이 된다. 당시 서고트 왕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5] 아말라순타는 자신의 친로마 성향에 불만을 품고 있던 동고트족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동고트족을 이끌고 있던 테오다하드를 공동왕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테오다하드는 실권을 얻자마자 그대로 그녀를 숙청해 버렸다.[6] 미망인이 된 마타순타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조카 율리우스 게르마누스와 재혼했다.[7] 분명 기근도 원인이 되긴 했지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기본적으로 벨리사리우스의 군사적 능력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에 항상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자칫하면 그가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차 이탈리아 침공 때에도 벨리사리우스는 1만 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15만에 육박하는 동고트족 병력을 상대해야 했으며 2차 이탈리아 침공 때에는 그 절반 수준의 병력으로 버텨야 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전공을 올린 것을 보면 벨리사리우스가 얼마나 뛰어난 군인인지 알 수 있다.[8] 베수비오 산 근처다.[9] 비티게스가 동로마로 끌려간 뒤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암살당했다[10] 토틸라에게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