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마르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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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멕시코 축구의 철인.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5회 연속 주장 완장을 차고 대회에 참가'''한 선수다.
2. 클럽
2.1. AS 모나코 FC
멕시코의 명문 클루브 아틀라스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AS 모나코로 이적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아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2.2. FC 바르셀로나
한때 바르셀로나의 주전 수비수로써 카를레스 푸욜과 합을 맞추어 드림팀 2기를 이끌어갔으나 06-07시즌에 들어서면서 점점 유리몸 기질이 다분해져갔다. 당시 대체 불가능이었던 푸욜에 비해 잔실수 같은게 많았던 선수이기에 결국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고 드림팀 멤버들이 물갈이 될때, 본인도 젊은 제라르 피케에 밀려 MLS로 떠난다. 하지만 중앙수비수라는 포지션이 선수생명이 평균적으로 긴편인걸 감안하면 당시 겨우 30에 들어섰던 선수치고는 유럽에서 생활을 너무 빨리 접고 MLS로 떠난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당시 유벤투스에서도 오퍼가 왔었는데 멕시코 현지팬들은 아직도 이 결정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는 의견이 많다. 물론 바르셀로나에서 뛰면서 이룰 수 있는건 모두 다 이뤘기에 미련이 없을만 했을 수 도 있겠다.
킥력이 좋아 프리킥도 찬적이 많다. 당시 호나우지뉴, 데쿠, 챠비 등 팀내에 걸출한 프리키커들이 많았음에도 마르케스에게도 기회가 꽤 주어진 편이었다. 특히 04-05 시즌 자력우승의 기회가 있던 레반테 원정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와중에 마르케스가 프리킥으로 동점을 만들고 이후 바르셀로나가 마지막 10분간 공돌리기만 하며 무승부를 굳히고 우승을 결정지은 적도 있다.
2.3. 뉴욕 레드불스
09-10시즌 후 이적하여 12년까지 활약한다.
2.4. 클럽 레온
2.5. 엘라스 베로나 FC
2014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며 30대 중반에 다시 유럽을 밟는다.
2.6. 클루브 아틀라스
그후 마르케스는 자신의 고향팀인 아틀라스로 이적해서 활약하고 있다. 자기관리를 매우 철저히 하는 것 같고 본인이 은퇴할 의사가 보이지 않으니 못해도 2년은 더 뛸듯. 마르케스는 최근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도 골을 넣었는데, 올드 축빠들의 반응이 일품이다. 아직도 뛰고 있냐 또는 내가 아는 바르셀로나의 마르케스냐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와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1997년 2월 5일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마르케스는 비록 1998년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2] 이후 꾸준하게 멕시코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왔다. 멕시코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하였고, 2003, 2011년 CONCACAF 골드컵에서 우승하였다. 2011년 3월 29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 경기에서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이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도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줬다.
3.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멕시코 최연소 대표팀 주장직을 맡은 마르케스는 뛰어난 수비를 통해 멕시코를 16강으로 이끄는 활약을 펼쳤지만 16강에서 만난 미국과의 경기에서 상대 미국 선수의 옆머리를 향해 비신사적인 헤딩을 하고 퇴장을 당하며 팀이 16강에서 탈락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3.2. 2006 FIFA 월드컵 독일
조별리그 모두 출장하여 16강에 진출하였고, 16강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연장 승부 끝에 역전패하여 16강에서 탈락한다.
3.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개막전 남아공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주장으로써 팀의 패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일조했다. 참고로 개막전 경기 주장은 부주장인 토라도가 대신 완장을 찼다.
3.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별리그 3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팀의 16강 진출에 큰 기여를 하며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상대로 벌여진 16강전에서 후반 92분경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아르연 로번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페널티 킥을 허용하였고 클라스얀 휜텔라르가 페널티 킥을 성공시킴으로써 멕시코는 2-1로 탈락했다.
3.5.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1차전 독일전 1:0으로 앞선 후반 27분에 교체 출전하였다. 마르케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컵 5회 연속 출전자는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 마르케스의 대선배인 멕시코의 안토니오 카르바할 뿐이다.
대한민국과의 2차전 역시 2:0으로 앞선 후반에 교체 출전하였다. 전체적으로 주장이자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선발출장한 뒤, 유리한 상황에서 경기를 걸어잠글 때 같은 포지션에서 좀 더 수비적인 성향을 띠는 베테랑 마르케스가 주장 완장을 넘겨받아 마무리를 짓는 패턴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다만 연로하신 나이로 인한 순간 집중력 저하는 어쩔 수 없는지 한국을 상대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약하게 줘서 일촌패스로 인터셉트를 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비록 황희찬의 자신감 부족과 기묘한 판단으로 일대일 찬스 허용에도 불구하고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스웨덴 전에서는 반복되면 안될 실수.
러시아 월드컵 16강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주전 수비수 엑토르 모레노의 결장으로 인해 선발로 출전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대표팀과 더불어 현역에서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은퇴 후에는 멕시코 명문 클럽 아틀라스에서 행정 업무를 맡게 된다고.
4.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센터백치고는 단신[3] 이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다만 그로 인해 부상을 달고 살아 커리어를 망쳐버린건 흠. 파트너인 푸욜에 비해 잔실수가 잦았고 당대 최고 수준의 수비력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맨투맨 수비, 깔끔한 태클,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볼을 전개시키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수비수로서 깔끔한 패싱 센스를 갖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동료였던 야야 투레는 '피케보다 열 배는 뛰어난 수비수'라 평가하기도 했다.
멕시코 국대는 국내에서 관심이 전무한데다 소속팀 바르셀로나에서는 레이카르트 시절 바르셀로나에선 수비수에게 빌드업을 시키지 않았으며[4] , 펩 시절엔 부상신이 강림한데다 비슷한 성향의 피케가 존재했기에 많은 출장을 하지 못해 독일 월드컵 이후로 축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패스도 전문 미드필더에 버금가고 활동량도 좋아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활동이 가능하다. 2010년대 많은 팀들이 도입한 라볼피아나 개념이[5] 이 멕시코 리그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역시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된 것. 실제로 미드필더진에 에드미우송 등이 부상으로 인해 빠지면 대체 투입된 경우가 잦았다.
잦은 부상으로 얼룩졌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오히려 말년에는 뛰어난 몸관리로 클래스를 유지하며 40세에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했고, 결국 역사상 세 명[6] 뿐이었던 월드컵 5회 출전자 명단에 4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동세대 미주의 간판 센터백들인 왈테르 사무엘, 디에고 루가노, 가브리엘 에인세, 루시우, 리카르도 오소리오 등이 진작에 국가대표는 물론 현역 은퇴까지 한걸 감안하면 확실히 발군의 자기관리.
멕시코에서는 굉장히 위상이 높은 선수다. 지능적인 수비수이며 리더라는 이미지가 대한민국의 홍명보와 비슷한면이 많다. 멕시코 내에서만큼은 마르케스가 월드 클래스였음은 물론 역대 최고의 수비수들과 어께를 나란히 한다며 신격화 시키는 의견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마르케스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축구 커뮤니티 글에는 멕시코인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병림픽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린다. 과소평가를 받았던 정상급 수비수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당시 대체할만한 선수가 없어서 주전을 유지했다는 의견도 있다.[7][8][9]
5. 우승
- AS 모나코 (1999~2003)
- 리그 1 : 1999-00
- 쿠프 드 라 리그 : 2002-03
- 트롱페 데 샹피옹 : 2000
- 바르셀로나 (2003~2010)
- 라리가 : 2004-05 , 2005-06 , 2008-09 , 2009-10
- 코파 델 레이 : 2008-09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2005 , 2006 , 2009
- UEFA 챔피언스리그 : 2005-06 , 2008-09
- UEFA 슈퍼컵 : 2009
- 클럽 월드컵 : 2009
- 클럽 레온 (2013~2014)
- 프리메라 디비시온 : 2013 아페르툴라 , 2014 클라우수라
-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 북중미 골드컵 : 2003 , 2011 , 2015 / 준우승 : 2007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999
6. 기타
자신의 성을 딴 마르케스 재단을 만들어 축구교실과 아동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재단명의로 축구와 심장(Futbol y Corazon)이라는 아동자선단체를 2005년에 세웠고,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축구교실 등 기관을 9개로 확대해 운영 중이다. 운영 중이었는데...
마약 조직의 앞잡이가 될 위험에 빠져있다. 현지시간으로 8월 9일, 미국 재무부에서는 수사 결과 마약 제재 연루 혐의자 22명을 밝혔고, 거기에 마르케스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축구팀과 카지노 등 43개의 단체도 연루되어 있다고 밝혔다.
현재의 이 자선단체들도 마약조직의 자금 세탁용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마르케스는 현재 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1] 멕시코 국가대표 통산 최다 출장, 멕시코 국가대표 통산 최다 월드컵 경기 출장[2] 만약 선발이 되었다면 안토니오 카르바할, 잔루이지 부폰 그리고 필드 플레이어로써는 로타어 마테우스에 이은 2번째로 월드컵 5회 연속 출전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멕시코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이 기록은 이루게 되었다.[3] 아무래도 파트너였던 푸욜도 단신이었다보니 공중볼이나 피지컬적인면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4] 당시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데쿠가 있었다. 차비는 능력이 완전히 개화하기 전.[5] 변형 백3를 활용한 전방 압박 회피와 빌드업 개념[6] 잔루이지 부폰, 로타어 마테우스, 안토니오 카르바할[7] 2000년대 바르셀로나는 당시 레알 마드리드 등 흔히 우리가 부자클럽이라고 인식하는 클럽들에 비해 씀씀이가 적은면이 있었고 스타플레이어를 간간히 영입하되 라 마시아에서 유스를 끌어올려 키워내는게 주 전략이었다. 특히 리그 2연패와 챔스 우승 1회를 달성한 04/05-05-06 시즌에는 호나우지뉴가 공격을 이끌고 데쿠와 챠비가 있는 중원은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수비진은 푸욜에게 의존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시절이었다. [8] 수비진 뎁스나 무게도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 비교해봐도 굉장히 가볍다. 레프트백인 판브롱호스트나 라이트백 줄리아누 벨레티는 정상급 풀백이라 평가를 받은 선수들은 아니며 백업등으로 울레게나 본업이 수미였던 에드미우손이 다였다. 가브리엘 밀리토를 영입했던 것도 수비진 뎁스를 위함도 있었지만 바르셀로나가 당시 데려올때 큰 기대를 안고 영입했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마르케스를 대체할 선수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밀리토가 심한 유리몸이었다는 점.[9] 피케가 마르케스를 주전에서 밀어낸건 과르디올라가 바르사 유스출신을 선호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고 피케가 포텐이 터지면서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 축구팬들은 여전히 의견충돌이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