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제임스 디오

 

'''로니 제임스 디오
Ronnie James Dio
'''

[image]
'''본명'''
로널드 제임스 파다보나
Ronald James Padavona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42년 7월 10일
미국 뉴햄프셔 포츠머스
'''사망'''
2010년 5월 16일(향년 68세)
미국 텍사스 휴스턴
'''소속 그룹'''
레인보우(영국 밴드)
블랙 사바스(밴드)
DIO 등
'''활동 기간'''
1957년 ~ 2010년
'''장르'''
하드 록, 헤비메탈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상세
3. 보컬
4. 투병과 사망
5. 디오의 대표곡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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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록/메탈 가수.[1] 서구권에서는 영국의 아이언 메이든과 더불어 파워메탈의 뿌리격 되는 인물로 본다.[2]

2. 상세


본명은 로널드 제임스 파다보나(Ronald James Padavona)로, 미국 뉴 햄프셔에 정착한 이탈리아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사족으로 그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 성향이었지만, 디오는 이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1942년생으로 보는게 합리적이지만, 후술되어있듯 메탈계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문한 것도 있고 해서 한창 활동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까지도 1949년생으로 활동했다. 허나 디오가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처음 낸 7인치 싱글이 1958년에 나왔고,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1942년생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타 설을 그대로 따르면 디오는 11세 혹은 3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이 된다.
음악 경력은 트럼펫 연주자로 스타트를 끊었으나 곧 가수로 전향, 엘프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리치 블랙모어의 눈에 띄어 레인보우의 초대 보컬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 후 블랙 사바스를 거쳐 자신의 밴드 '디오'를 만들어 활동. 2007년에는 블랙 사바스 시절의 오리지널 멤버와 헤븐 앤 헬이라는 밴드를 재결성했으며, 2009년 신보를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자신의 예명이자 자신이 이끌었던 밴드의 이름인 '디오'는 이탈리아어로 '신'을 의미하며, 실제로 그는 1970~80년대의 전성기 시절 락/메탈 씬의 본좌급 보컬리스트로 군림해 왔으며 많은 락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았다. 지금도 레전드 락커로 명성이 있기에 그의 곡은 많은 락/메탈 뮤지션들 사이에서 리메이크되고 있다.
보면 록 음악의 역사를 그대로 밟아 온 인물이기도 하다. 워낙에 활동을 일찍 시작한 탓에 젊었을 때는 R&B와 두왑, 로큰롤 성향의 음악을 했었고, 시대가 바뀌자 "비트 밴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머시 비트 사운드로 진화했으며 사이키델릭의 시대가 오자 사이키델릭 성향의 음악을 했다. 데뷔가 50년대 후반이지만 록 스타가 된 건 사실상 70년대가 다 되어서의 이야기. '''그만큼 인고의 세월도 오래 견딘 뮤지션인 것.'''
출생년도가 두 가지로 알려진 것도 사실 다른 장르를 하다가 록으로 전향한 터라[3],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20세기 말까지도 대중 어필용으로 나이 속이기가 횡행됐던 연예계에서 실제 나이인 1942년생으로 활동하기는 꽤나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 유명해지기 시작한 레인보우 시절에도 1945년생인 리더 리치 블랙모어보다 나이가 적은 1949년생으로 활동했고, 블랙 사바스 시절에도 1948년생인 토니 아이오미보다 적은 1949년으로 꿋꿋이 밀고 나갔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자신의 밴드 디오가 유명해지면서 헤비메탈 보컬의 1인자 자리에 오르고, 그러고도 한참 뒤부터 1942년생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메탈 팬들에겐 충격과 공포(?)의 60년대 디오
1965년작. 훨씬 원숙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역시 1965년작. 퍼즈톤의 기타를 쓴 '비트 밴드' 느낌의 곡.
1967년작
Elf의 'Hoochie Koochie Lady'(1972년작) 이때까지는 블루스 록 밴드로서의 엘프 음악을 느낄 수 있다.
Elf의 'Crosseyed Mary'(1972년 라이브)[4] 이때부터 이제 헤비메탈의 전설은 시작되고...
사생활도 깨끗하고 매너도 좋아서, 문란한 사생활이나 술, 마약 등으로 인한 가십거리가 비교적 흔한 락 씬에서 그는 농반진반 '성직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회적 활동도 해서, 1980년대 한창 활동할 당시 그의 주도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 'Hear 'n Aid'는 이른바 헤비메탈판 'USA for Africa' 프로젝트로 불렸다. 개성도 강하고 반항적인 당시의 수많은 락 뮤지션들이 기꺼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이때 번 음반의 수익금은 전부 아프리카의 기아 구제 성금으로 사용되었다.

3. 보컬


이안 길런, 로버트 플랜트 등과 함께 헤비메탈 보컬의 지존으로 평가받았다. 풍부한 성량과 힘 있고 육중한 음색, 센스 있는 표현력은 발군. 그의 기교와 스타일을 직접 잇는다고 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들을 찾기 힘든데,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도 있다.
힘이 넘치는 보컬로 유명하지만 사실 도저히 음반만 들어서는 상상이 안 가는 외모이다. 고작 163cm라는 작은 키에 얼굴이 잘생기거나 몸이 좋지도 않은 그냥 동네 아저씨같은 모습인데, 마이크를 들면 대체 어느 구석에서 그런 목소리를 뿜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5] 전성기의 보컬도 보컬이지만[6], 60세를 훌쩍 넘기면서도 목소리의 힘이 달리지 않는 완숙한 창법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현역으로 활동했다. 사실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하면 떠올리는 찢어지는 고음이나 샤우트 등은 말년을 제외하고 그의 곡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로니 본인은 오히려 흉성 기반의 탄탄한 중고음역을 바탕으로 한 두터움과 묵직함으로 각인되는 보컬리스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벨팅을 토대로 판소리의 단련법과 흡사한 성대갈이 훈련을 한 거다.
디오 본인은 젊었을 적 목소리가 너무 깨끗하고 음역이 좁아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최대 장점이 성량이라는 점을 깨닫고 '디스토션 건 일렉기타'를 이길 만한 사운드를 목에서 뿜어내는 쪽으로 연습하였다고. 그러나 실제로 그의 전성기 시절 보컬(레인보우+밴드 DIO 초기)을 들어보면, 일반 남성들의 파사지오 영역에 해당하는 음들을 가공할 만한 후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힘을 주어서 내는데[7], 이걸 따라하다보면 호흡이 딸려서 숨이 턱턱 차오르며 눈 앞이 노래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남성의 파사지오 영역이 일반적으로 F4에서부터 높으면 B4까지인데, 디오의 성종이 로우 테너 정도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일반인이 소리를 내는 게 힘든 구간은 아니다. 다만, 파사지오를 거친 하이 음역대(대략 C5, D5 이후의 초고음역대)보다도 파사지오에서 어마어마한 압력을 성대에 내는 게 '''더 빡세며''', 애초에 파사지오의 극복이 발성의 크나큰 과제인 것을 생각해보자면 이 구간을 자유자재로 음 하나하나 컨트롤해가면서 부르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작업인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호흡을 뱉어내는 샤우팅처럼 한순간에 확 분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색이 변해가는 구간에서 자기 목소리를 100% 내면서 고음 구간까지 똑같은 파워와 음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다. 즉, 100m 달리기처럼 완전히 풀전력은 아니지만 400m 달리기에서 거의 풀전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달리는 셈이다.[8] 성대 또한 근육이기에 한번에 땡겨주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고음역대를 낼 때 성대에 피로가 확 몰려서 풀리기 쉽다. 그렇기에 단시간 최고음을 내는 것보다 이 부분이 훨씬 어렵다.
레인보우의 명곡 'Kill the King'의 경우 거의 고함을 지르는 수준의 샤우팅으로 G4~C5 구간을 거의 똑같은 압력으로 음을 짚는다. 경악스러운 건 쩔어주는 성량에도 불구하고 음 하나하나의 처리가 굉장히 깔끔하고[9] 표현조차 생생하다는 것. 다시 말해, 음에 파워를 일정하게 거는 수준이 아니라 거기에 '''소리의 입자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 디오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 사실 디오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하고 자주 카피되는 'Holy Diver'은 디오의 곡 중 '''그나마 부르기 쉬운 거다'''. 레인보우 시절에 불렀던 'Stargazer'나 블랙 사바스 시절의 'Heaven and Hell', 동명 밴드 시절의 'Don't talk to strangers', 'We Rock' 'Rainbow In The Dark' 같은 곡들은 아예 파사지오와 그 이상의 음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것을 고려해 설계된 정신 나간 곡들이다.
락커치곤 고음을 잘 못낸다는 인식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중고음역대에서 음 하나하나를 강조하면서 파워를 계속 유지하는 차력쇼를 하는 괴물인데다, C5 이상의 고음이 많이 안나와서 그렇지 그의 노래도 꽤 음역대가 높은 편이다. 많은 트레이너들이 보통 고음을 잘 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고음역대의 정복이라 이야기한다.[10] 때문에 그런 음역대에서 40 넘은 나이에 차력쇼를 했던 디오에게 고음역이 약점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며,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고음을 포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고음을 포기했다고 보기도 뭐한 게, 2옥타브 시나 3옥타브 도 같은 음들은 곡의 최고음으로 한 번 찍을 때나 별로 높은 음이 아니지, 디오처럼 '''아예 그 음역대에서 주로 노는 건''' 고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디오는 나이 40이 넘은 80년대 초중반까지 그 음역대를 무난히 소화했고, 80년대 후반부터 앨범은 괜찮았으나 라이브에선 고음부에서 파워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50대가 된 90년대부터는 확실히 고음부가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84년에 발매된 The Last In Line 앨범에서 부른 "We Rock"을 84년에 라이브로 부른 것과 2002년에 라이브로 부른 것을 비교해보자. 후렴구에서 "We rock!"이라고 파워있게 음을 유지하지 않고 한껏 낮춰 부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93년 라이브에선 "We rock" 부분은 그대로 두고 "Sail on, sing a song, carry on" 부분을 낮춰 부른다. 물론 절대 오해는 말아야 할 것이, 디오는 93년 라이브에서 51세였고 02년 라이브 때는 '''60세'''였으며, 기량이 떨어진 저 상태에서의 라이브조차 굉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워낙에 정신나간 난이도의 곡들이라 난이도를 조금씩 낮춰 부르는 거지, 나이 육십을 넘겨서도 저 곡을 저렇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사실 디오가 워낙 늦게 빛을 봐서 그렇지 위에서 저 미친 곡들을 풀파워로 부르는 84년 라이브 영상 당시 그는 '''만 42세로''' 관리 안하는 웬만한 보컬들은 이미 노화로 기량이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할 나이였다. 사실 레인보우 시절과 비교한다면 저것도 살짝 저하된 것이다.
그의 보컬에 대해서, 스키드 로우의 보컬리스트인 세바스찬 바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롭 핼포드를 카피하는 것은 매우 굉장한 일이다. 브루스 디킨슨을 카피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로니 제임스 디오를 카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참고로 세바스찬 바흐의 저 말은 원문이 있는 말인데, 어떤 음악 잡지에서 헤비메탈 보컬 특집을 하면서 표현했던 '롭 핼포드는 완벽하다. 브루스 디킨슨은 따라할 수 없다. '''디오는 디오다''''에서 나온 말이다.[11]
의외로 말년에 이런 찢어지는 샤우트를 꽤 자주 보여줬는데, 그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 중 하나로 보인다. 10초부터. 뒤의 둘은 녹음된 곡이다. 중간중간 소리주의.

4. 투병과 사망


2009년 11월 25일, 그의 웹사이트에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으며 곧 항암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떴다. 그리고 결국 2010년 5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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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로니가 5월 16일 오전 7시 45분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눈을 감기 전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로니는 그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알 거에요. 저희는 여러분의 성원에 정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며칠 시간을 갖겠습니다. 팬들에 대한,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 웬디 디오[12] -
아래는 암 진단을 받은 후 가진 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5. 디오의 대표곡



1980년 10월 17일 뉴욕 라이브 공연에서 "Neon Knights"을 열창 중.

Dio 시절 그의 대표곡 'Holy Diver'의 뮤직 비디오. 사실 1집 'Holy Diver'와 2집 'Last in Line'이 너무 포스가 강했던 탓인지, 그의 이후 음반들은 다소 존재감이 약한 측면이 있다. 4집 정도까지 보통 전성기로 치는데, 사실 디오 본인의 작곡력은 불세출이었던 보컬 실력에 비해 다소 아쉬웠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는 여타 밴드들도 초반 커리어에 비해 후반부가 처지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Holy Diver'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선정한 역사상 최악의 뮤직비디오 1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다. 허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의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히는 'Rainbow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 역시 20위권 안에 랭크되는 신급의 센스를 보여줬다.
보다시피 그의 중세풍 뮤직비디오 센스는 최악이다. 심하게 말하면 병맛까지 느껴질 정도. 헌데 또 묘하게도 그가 몸담았던 블랙 사바스, 그의 밴드인 DIO, 그리고 새 밴드 Heaven and Hell의 신보 'The Devil You Know'까지 그의 앨범들의 아트워크들은 대부분 아주 멋지다.
디오는 Dio의 모든 곡의 멜로디와 가사를 스스로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데,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중세 영웅담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많으며, 본인 스스로도 이런 주제를 매우 선호한다. 그가 리치 블랙모어와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 레인보우를 떠나 블랙 사바스로 이적하게된 계기가 4집 이후 리치가 컨셉을 좀더 현대적인 걸로 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 아트워크 역시 판타지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오는데, 이 취향을 뮤직 비디오까지 적용하니 적은 예산+발연기 때문에 완성도가 많이 부족한 뭔가 병맛스러운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듯하다. 연출가로써의 역량까지는 갖추지 못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holy tiger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면 이런 영상이 뜬다. Holy Diver와 록키 3의 주제가 Eye of the Tiger가 bpm차이가 좀 나서 그렇지 기타리프나 곡 진행이 많이 비슷해서 둘을 매쉬업해도 티가 안날 정도로 잘어울려서 이런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 참고로 Eye of the tiger가 먼저 발표된 곡이다.

로니 제임스 디오 & 잉베이 말름스틴 -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
'''역사상 최강의 커버곡'''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서 소개된 헤븐 & 헬의 타이틀곡 'Atom & Evil'.

2002년 앨범 타이틀곡 'Push' MV 잭 블랙터네이셔스 D가 찬조출연.

그의 마지막 레코딩곡(2010) 중 하나인 "Metal Will Never Die". 이 곡에서도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데, 자칫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샤우트를 간간히 날려주면서 그 전보다도 더욱 중후해지고 연륜이 느껴지는 보컬을 들려준다.

6. 기타


  • 락의 상징이 된 로큰롤 사인(Rock & Roll Sign)으로 불리는 유명한 손 모양의 원조로도 알려져 있다. 디오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배웠다는, 악마의 눈을 찔러서 쫓아내는 손동작이라고 한다. 락이나 메탈이 안티들에게 '악마의 음악'이라고 까이기도 하는 걸 생각해볼 때, 락/메탈의 상징이 이런 의미라는 건 좀 아이러니. Sign of the horns 항목도 참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최소한 디오는 액땜으로 사용한 게 맞다. 메탈룰스닷컴과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유래에 대한 디오의 입장을 알 수 있다. [image]
  • 토니 아이오미나 비니 어피스 등 동료들에 따르면 공연 전에는 특별히 보컬 워밍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와인이나 맥주 한 잔에 심지어 담배 피우고 있다가 곧바로 공연을 시작하곤 했음에도 라이브에서 엄청난 성량을 보여줬으니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라고 하겠다.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 의외일 수도 있는데, 당장 레인보우의 유명한 라이브인 1977 Rockpalast 공연만 보더라도 앵콜곡인 Do You Close Your Eyes를 할 때 중간에 뒤에서 담배를 피다가 손에 담배를 든 상태 그대로 나와서 입으로 도넛을 만들어가며(...) 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Hear N' Aid의 메이킹 필름에서도 스튜디오 안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에 로니와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 덕 앨드리치[13]는 로니가 처음 곡을 만들 때는 작은 방에 베이스기타와 담배 한갑 들고 들어가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상기했듯 디오도 깨끗한 본인의 목소리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보컬들이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 담배를 피는 경우도 있긴 했다지만, 사실 현대 발성학에서 권장되는 사항은 아니긴 하다.(...)
  • Tenacious D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듯. 맨 위의 사진 배경이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 포스터이고, Tenacious D가 그의 최근 곡의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참여했다. 디오 본인도 그들의 영화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에 카메오로 참여했다. 영화 초반부에 어린 잭 블랙을 꼬드겨 집을 나가게 만드는 악마의 포스터가 바로 디오. 잭 블랙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는 듯. 실제로 그들의 곡 중 "Dio"는 그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 Band AidWe Are The World 등의 프로젝트에 감명받아 "Hear n Aid"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Stars'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1980년대 헤비메탈/하드록의 계보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멤버들을 끌어모아 만든 곡.
  • 2014년에는 메탈리카, 앤스랙스, 모터헤드,[14] 터네이셔스 D, 스콜피온즈, 롭 헬포드, 슬립낫, 스톤 사워의 코리 테일러, 헤일스톰, 킬스위치 인게이지, 도로 페스치[15], 마이크 포트노이가 있었던 아드레날린 몹, 딥 퍼플의 글렌 휴즈, 레인보우DIO 활동을 같이 했던 지미 베인, 헤이트브리드의 제이미 자스타 등 위에서 나온 hear n aid 수준의 쟁쟁한 밴드들과 메탈 보컬리스트들이 대거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디오의 미공개 곡도 포함되어 있어 그 이름에 걸맞는 후덜덜한 앨범이다. 다만 샤우팅에선 디오를 능가하던 롭 헬포드가 이젠 고음을 전성기만큼 내지 못해서 그 부분이 아쉽다는 평이 많다.
  • 2019년 홀로그램 라이브로 잠시나마 팬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기사가 떳다.#
  • 프런트맨으로써 너무 늦게 하드록씬에 들어왔고, 40살에 와서야 온 전성기를 남의 밴드 객원 보컬 신세로 지내서 그런 건지, 밴드보단 보컬이 부각되서 그런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명성과 경력, 실력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상복이 없다. 그 정도 나이대면 아직 세분화 되기 전이라 한번쯤 올랐을 법한 빌보드 1위나 그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디오가 하는 장르를 위해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얼터너티브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조차 1위를 먹은 적이 없는데다가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조차 아직 오르지 못했을 정도.

[1] 영국 밴드인 블랙 사바스레인보우를 거쳤고 NWOBHM가 태동하고 전성기를 맞이할 때 이름을 드높였던 인물이라 으레 영국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으나 실은 미국 출생인 인물이다. 아무래도 평소 어투에 영국 느낌의 억양이 살짝 묻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영국 억양이 아닌 뉴욕/뉴져지 토박이 특유의 발음이다. 단어 끝의 R을 희미하게 발음한다던지. R탈락 현상과 메리를 마리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 커피를 코피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은 전형적인 뉴욕 사투리이지만 디오가 워낙에 말을 조용조용하게 하는 성격이고 한국에선 뉴욕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지라 이런 혼란이 온 것. 보통 많이들 알려진 뉴욕 사투리는 뉴욕 출신인 두 명배우 알 파치노로버트 드 니로가 구사하는 말투인데, 이 둘은 갱스터 연기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이 말투 자체가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 갱스터식 말투로 오인받기도 한다. 참고로 미국의 표준어에 가까운 얌전한(?) 발음은 중서부식 발음이며, 뉴욕 사투리는 상당히 투박한 편이다. 조 페시의 툭툭 던지는 말투 역시 전형적인 뉴욕 말투인데, 우연에 가깝게도 페시, 드 니로, 파치노 모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인지라 이 발음 자체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까지나 뉴욕 지방에서 쓰는 사투리이다.[2] 파워메탈의 스테레오 타입인 판타지 서사와 이미지의 차용을 본격적으로 시도했고, 스피드와 멜로디의 훅이 강조된 메탈 넘버가 각 앨범마다 꼭 한곡씩은 삽입되었으며, 키보드의 비중 역시 높았다.[3] 사실 정확히 말하면 디오가 데뷔할 당시엔 아예 지금 우리가 아는 하드록이나 헤비 메탈이란 장르 자체가 없었다. 하드록의 시초를 보통 60년대 초반, 성장기를 60년대 중후반 이후로 보는데 디오는 1957년부터 가수 생활을 하던 사람이다. 게다가 하드록의 거의 조상격인 '''지미 헨드릭스와 동갑이며 음악경력만 따지면 오히려 선배격이다.''' 즉, 다른 장르로 전향했다기보단 초창기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대중적인 로큰롤에 가까운 음악을 하다가 이후 생겨난 하드록/헤비 메탈을 받아들인 셈. 장르 자체보다 디오 본인의 커리어가 오래됐다보니 생긴 일.[4] 제쓰로 툴의 aqualung에 수록된 곡으로, 아이언 메이든도 커버한 적이 있다.[5] 실제 평론가의 평을 그대로 실자면, "이 작고 볼품없는 사내의 어디에서 이런 웅혼한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6] 라이브에서 성량으로 다른 악기들을 관광 태우는 경악스런 모습을 보여준다.[7] 전문적인 단어로 '테누토'를 건다고 한다. 음 하나하나를 강조하는 방법 중 하나.[8] 실제로 계주 선수들이 하는 말 중 하나가 400m가 제일 빡세다고 한다. 풀전력을 걸기도, 그렇다고 1km 이상의 계주처럼 속도를 완전히 뒤로 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 간극을 컨트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9] 아이러니하게 Hear 'N Aid 프로젝트 녹음 도중 그가 삑사리를 내는 장면을 통해 그의 정확한 음처리를 알 수 있다. 4:34초와 4:48초에 보면 고음은 완벽하게 처리하고도 저음부에서 호흡이 제대로 안 들어가 삑사리가 나는데, 바꿔 말하면 디오는 평상시에 '''저렇게 평범한 음조차 호흡을 꽉차게 불어넣어 풍부한 소리가 나도록 처리한다는 말이다.''' 삑사리난 "Fire and '''stone'''" 부분을 4:45초에 제대로 부른 것을 한번 들어보면, 저음부의 정말 평범한 부분인데도 거기에 신경써서 음처리를 한다.[10] 성구전환이 이뤄지는 이른바 파사지오 구간이기 때문. 사실 음역대만 맞으면 성구전환이 된 3옥타브 이상이 더 노래하기 편할 수도 있다. 음색이 문제일 뿐.[11] 물론 주관적인 평인건 감안하자. 나머지 두 보컬도 커버하려면 피똥 싸는 건 매한가지다. 롭을 카피하자니 음 하나하나마다 일일히 거는 톱날 비브라토가 문제고, 브루스를 따라하자니 하이노트에서까지 100% 전달되는 딕션과 디오 맞먹는 숨 가쁜 호흡이 걸린다.[12] 디오의 아내이자 매니저.[13] 90년대에는 배드 문 라이징, 2000년대는 디오와 화이트스네이크, 2010년대 후반부터는 더 데드 데이지스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감성적인 솔로를 보여준 덕에 일본에서 지명도가 있는 기타리스트다.[14] 본래 보컬인 레미가 다들 알다시피 보컬에 멜로디가 거의 없는 고로 색슨의 보컬리스트 비프 바이포드가 함께 참여했다.[15] 80년대 독일 메탈 밴드 워락에서 활동한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메탈 보컬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