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무어

 

'''게리 무어
Gary Moore
'''
[image]
'''본명'''
로버트 윌리엄 게리 무어 (Robert William Gary Moore)
'''출생'''
1952년 4월 4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사망'''
2011년 2월 6일, 스페인 말라가 에스테포나
'''국적'''
'''아일랜드''' [image]
'''활동'''
1968년~2011년
'''직업'''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장르'''
하드 록, 재즈, 팝, 블루스
'''악기'''
기타, 보컬, 베이스, 하모니카, 키보드 등등
1. 개요
2. 생애 및 작품
3. 평가
4. 그의 기타
5. 여담


1. 개요


영국 북아일랜드 출신의 블루스/하드록/ 기타리스트.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쳤던 사나이.'''[1]

2. 생애 및 작품



그의 대표곡인 Still got the blues. -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90년대 국내 디스코클럽, 나이트클럽에서는 블루스 타임에 반드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에도 나온다.
70년대에는 그의 절친인 필 리놋[2]이 이끄는 하드록 밴드 '씬 리지'에서 자주 활약하며 하드록 연주를 들려주였으며, 80년대 초엔 프로그레시브 재즈록 밴드인 '콜로세움 2'에서 열정적인 재즈록를 연주하였다.[3] 또 역시 그의 절친이었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출신의 그레그 레이크, 크림의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나 유명 세션 드러머 코지 파웰의 앨범에서도 연주를 해주었다.[4]
그리고 80년대 초중반부터는 솔로로 활동하면서 딥 퍼플 출신의 이안 페이스나 로저 글로버 등과 함께 격정적인 헤비메탈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 당시 최대의 히트곡은 Empty Room이라는 하드 록 발라드이다. 한국에서는 KAL기 격추 사고를 노래한 Murder in the sky도 대단히 관심을 모았었다. 이 시기 또 한 가지 특징은, 대단히 파워풀한 보컬을 직접 맡아 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블루스를 꽤 많이 연주하긴 했다. 씬 리지 역시도 블루지한 느낌의 하드록 밴드였기 때문에 그 시절에 유명한 Parisienne Walkways[5]가 씬 리지의 앨범에서 발표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블루스 계통의 곡들을 연주했다.
90년대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블루스에 팝 취향을 잔뜩 가미한 곡들과 팝 발라드들을 모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Still got the Blues'가 이때 발표한 대표곡 중 하나다.[6] 그래서 게리 무어는 이런 달콤한 음악만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시기조차도 그는 크림의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와 함께 'BBM'이란 밴드를 만들어 크림 시절에 유행했던 사이키델릭 하드록과 정통 블루스 록을 연주했다.
2011년 스페인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향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자연사로 추정되나 원인은 아직까지 불명이다. 다만 2000년도부터 급격히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 사망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적지 않다. 2010년도 라이브 영상만 봐도 노래 부를 때 숨이 차서 서브 보컬들이 급하게 매꿔주는 장면도 있다.

3. 평가


에릭 클랩튼과 함께 백인 블루스 기타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이 뷰캐넌과 함께 기타가 운다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 기타리스트. 피킹 할 때마다 기타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 또한 인상적.
특유의 한이 서린듯한 음의 표현력에 있어서는 세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을 들었으며, 이미 트렌드에서는 멀어진 블루스지만 게리 무어 사후에도 그의 음악을 듣는 대중은 많을 정도로, 그의 음악에는 단순히 악보 위에 펼쳐진 노트 그 이상이 있다고 평가 받는다.
물론 좀 과장이 있기는 하다. 80년대 이후 당대의 블루스,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라면 저 로이 뷰캐넌도 아직 건재하고 있었고, 역시 요절한 스티비 레이 본, 로리 갤러거, 자니 윈터 등등 게리 무어에 견줄만한 인물은 많이 있다. 다만 그들보다 상업적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서 상당 부분은 블루스 그 자체로 성공한것이 아닌, 블루스를 팝발라드화 시켜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원래 게리 무어는 하드록/헤비메탈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에[7], 원래부터도 정석적인 블루스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70년대에서 80년대 당시 대부분의 하드록 기타리스트가 그러하였듯이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록 뮤지션이었으며 그 위에 자신만의 애절함을 녹여낸 기타리스트라 평가할 수 있겠다. 그 외 재즈 뮤지션들과 많은 재즈록 음악 협연도 하였고 여러 장르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였다.

4. 그의 기타


Gibson에서 시그네춰 기타가 출시되었을 정도로 레스폴을 애용했다. 스무살때 전설적인 깁슨 레스폴 그리니를 피터 그린에게 팔아달라고 졸라서 구입하고 사용했으며 그리니는 게리무어가 일생동안 가장 좋아했던 기타이다.[8] 그리고 72년도에 찍힌 사진속 게리무어[9]는 그리니가 아닌 레스폴을 들고 있음에 미루어보아 10대 때부터 레스폴을 사용했었다는걸 알 수 있다. 그가 헤비메탈을 하던 시기에는 1961년Fender [[Stratocaster], Jackson 솔로이스트 또한 애용하였으며, 초기 유명 연주곡인 ''The Loner''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솔로이스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HAMER 기타를 사용하였다.

5. 여담


  • 핀란드 국민밴드 나이트위시의 대표곡 중 하나인 Over the Hills and Far Away의 원곡자이기도 하다. 대부분 나이트 위시 버전을 먼저 접해서 잘 모르는 사실.
  • 이름 Gary는 개리도 아니고 게리도 아닌 어중간한 발음이고, 게어리 gέəri, gέəri 비슷하게 발음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영국인의 발음은 개리에 가까운데, 국내에서는 국어원 심의에 의해 게리로 쓰기로 되어 있어 원어 발음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이 국어 표기법 덕분에 배우 개리 쿠퍼도 게리 쿠퍼로 쓴다.

  •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상술했듯 KAL기 폭파사건을 비판하는 곡 'Murder In the Skies'를 발표했다. 그는 한국 언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당한 공격에 대해 어떻게든 항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0년 4월 30일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첫 내한 공연에서 “천안함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며 'Still Got the Blues'를 연주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에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젊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다니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며 "공연에서 이들을 위로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 #
[1] Parisienne Walkways만 들어봐도 기타음이 상당히 구슬프다. 마치 서럽게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2] 영문 위키백과에 나온 발음은 '필 라이넛'이라고 나와있으나, 정작 아래 동영상을 보면 본인은 필 리놋이라고 발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왜인지 '필 리'''뇻''''이라고 잘못 알려졌다.[3] 필 리놋은 1985년도에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면서 둘이 같이 무대에 서는 일은 없어졌다.[4] 코지 파웰과 게리 무어가 참가한 돈 에어리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 K2에는 겐키 히토미가 보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5] 중간에 하울링을 이용한 피드백 주법이 들어가 있다. 무려 30초가 넘어가는데, 라이브에서는 더 늘리기도 한다. 그 덕에 난이도가 꽤 높은 곡 중에 하나다.(실은 장비도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김태원이 콘서트에서 많이 보여준다.[6] 곡 구성과 기교에서 많은 유사성이 보이는, 79년 파리지앤의 워커웨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축소 버전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다.[7] 그가 초창기에 주로 사용했던 기타인 잭슨 솔로이스트를 만든 잭슨 기타가 바로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기타 브랜드이다.[8] 그리니는 2004년 게리 무어의 손목 부상으로 취소된 몬스터즈 오브 락의 위약금을 물기 위해서 2004년에 매각 되었다가 10년간 유랑 신세 후 2014년 7월 메탈리카커크 해밋이 인수한다.[9]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