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퍼디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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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ir Les
'''EPL 역대 최다 득점 10위'''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대영제국 훈장 5등급인 MBE를 수여받았으며 현재 QPR 의 풋볼 디렉터[2] 로 일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2.1.1. QPR
QPR에서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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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팀인 사우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유스팀인 헤이즈에서 1년간 활약한 후 1987년 QPR이 3만 파운드를 지불하여 이적한다. 첫 데뷔 당시에는 그의 능력은 가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능력을 꿰뚫어본 짐 스미스 감독은 1988년에 브렌트포드 FC에 임대 선수로 보냈고, 이어 베식타슈 JK로 임대시켜 그가 1년간 1군 출전 경험을 쌓도록 했다. 특히 베식타슈 임대 시절에는 엄청 성공적이었는데, 그는 1988/89 시즌 쉬페르리그에서 21골을 넣어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시키는데 공헌했다.
1989년 QPR로 돌아올 당시에는 감독이 트레버 프랜시스로 바뀐 탓에 레스는 1군 경쟁에서 애를 먹음으로써 별다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1989년 12월부터 돈 하우 감독으로 바뀌면서 출전 기회를 얻은 레스는 첼시 FC와의 대결에서 4-2로 승리하여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여 이후 2시즌간 로이 웨절리와 콤비를 이루어 수많은 골을 선사했다. 1991/92시즌부터 10골을 넣기 시작하더니 다음 시즌 20골을 넣으며 QPR이 리그 5위를 거두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 뒤에도 팀 내에서 득점왕의 입지를 고수하며 팬들에게 '레스 경'이라 불리면서 팀의 레전드로 사랑받았으나, 이와 동시에 여러 빅클럽의 구애를 받자 1995/96 시즌 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600만 파운드로 치열한 경합 속에서 레스를 낚아챘는데, 이 이적료는 QPR 역사상 최고액 기록이었다.
레스의 이적 이후 QPR은 레스의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공격력이 약해진 데다 퍼디난드를 판 돈으로 네드 젤리치와 사이먼 오스본 등의 선수들을 사는 데 낭비하여 결국 1995/96 시즌에 팀이 강등되고 말았다.
2.1.2. 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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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PR에서 대활약한 퍼디난드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600만 파운드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에 29골을 기록하였고, 팀이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에 도전하도록 힘을 보태며 우승을 노렸으나 우승은 맨유가 가져갔다. 이후로 퍼디난드는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뉴캐슬에서 퍼디난드는 전성기였고, 뉴캐슬에서만 84경기에서 50골을 기록했다. 이 공으로 레스는 PFA(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 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특히 1996/97 시즌은 앨런 시어러와의 투톱을 이뤘는데 이 투톱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이 둘이서 41골을 합작헤 뉴캐슬이 2위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퍼디난드가 토트넘으로 이적해 이 듀오는 1시즌 밖에 볼 수 없었다.
2.1.3. 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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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퍼디난드는 뉴캐슬로 이적했을 때와 똑같은 금액인 600만 파운드로 이적했다.
퍼디난드는 토트넘이 1999년 레스터 시티와의 캐피탈 원 컵 결승전에서 1-0으로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클럽에서 첫 세 시즌에서 단 12골에 그쳤다. 게다가 2001-02 시즌을 제외하고는 주전에서 밀려났으며 예전과 같은 실력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2001년 12월 15일에 풀럼 FC를 상대로 EPL 통산 10,000호 골을 성공시켰다.
2.1.4. 말년
노쇠화를 보였던 퍼디난드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팀도 강등되면서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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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에 있는 동안은 37살 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스를 보여준 시즌이였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14골을 넣었다.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퍼디난드는 새로운 계약을 거부하고 볼튼 원더러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퍼디난드는 레스터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준 채 2005년 1월 2일 팀을 떠났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퍼디난드는 12경기에서 한 개의 리그 골을 넣었다.
2005년 레딩 FC로 이적하지만 도중에 나가고, 같은 해 왓포드 FC로 이적했다. 비록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이겨 EPL로 승격했다.
2006년 퍼디난드는 40세 생일 몇달 전 20년 간의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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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데뷔골을 넣었으며, 이후 유로 1996과 1998 FIFA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통산 17경기 출장.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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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셔우드와 퍼디난드
2008년 11월 5일에 퍼디난드는 전 토트넘 선수이자 동료였던 팀 셔우드의 코칭 스태프로 일하였다. 퍼디난드는 2014년 1월 19일까지 일하였다.
이후 친정팀인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코치로 있었고, 해리 레드냅 사임 이후 감독 대행직을 맏았다가 퍼디난드가 QPR의 단장으로 취임했다. [3]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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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자서전인 "sir les"를 낸 적이 있다.
- 8~90년대 맹활약한 잉글랜드가 낳은 악마의 재능인 폴 개스코인이 잉글랜드 대표팀 시절에 레스 퍼디난드의 거시기를 항상 만지고 나서 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퍼디난드는 개스코인의 헛소리로 치부하며 이를 부정했다.
- 김종민과 얼굴이 닮았다.
5. 수상
베식타슈 JK
터키 컵: 1989
TSYD 컵: 1989
토트넘 핫스퍼 FC
풋볼 리그 컵: 1999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1995-96
PFA 올해의 팀: 1995-96
대영제국 훈장 5등급(MBE):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