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퍼디난드
1. 소개
잉글랜드 출신의 축구 선수.
대인방어 능력이 대단이 뛰어나며, 활동적인 수비를 펼치며 공격수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여기에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공중볼 처리 능력이 뛰어나며, 세트플레이시 득점력도 뛰어나 공격 가담 능력도 출중하다. 게다가 빠르고 민첩하며, 파울 숫자가 굉장히 적고 롱패싱 능력이 대단하다. 또 중앙수비수와 오른족 윙백을 자유롭게 도맡아 볼 수 있는데다 리더십 역시 뛰어나 어린 나이임에도 곧잘 수비라인을 통솔한다.
세인트 루시아계 혼혈이며, 리오 퍼디난드의 동생으로 유명하다. 이들 형제의 사촌 형 레스 퍼디난드도 축구선수 였었다. 포지션은 리오, 안톤 형제와는 달리 스트라이커, 레스는 현역시절 QPR과 토트넘에서 활약했었고, 유로 1996과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뛰기도 했었다. 은퇴 후 친정팀인 토트넘과 QPR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현재는 QPR의 풋볼 디렉터[1] 을 맡고 있다.
레스 외에도 케인 퍼디난드 라는 사촌이 풋볼 리그 1 소속인 피터보로 유나이티드[2] 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고, 아일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으나 국가대표팀에는 소집 되지 못하고 있다.
2. 클럽
2002년 형과 마찬가지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스에 소속되어 성장했으며, 2003-04 시즌 개막전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경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에서 20경기를 뛰었으며, 2004-05 시즌에는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며 왓포드 FC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데뷔 이후 첫 골을 터뜨리며 팀이 2:1로 승리하는 데 일조하는 등 팀이 6위를 기록해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팀은 입스위치 타운과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차례로 꺾고 2시즌만에 1부 리그로의 승격에 성공했으며, 좋은 활약에 힘입어 퍼디난드는 2005년 7월 구단과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
팀 입단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맞는 첫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2006년 1월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견인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어 FC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며,[3][4] 퍼디난드의 활약에 힘입어 팀 또한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리버풀 FC와의 결승전에서 3:3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퍼디난드는 팀의 세 번째 키커로 나왔다가 실축해 결국 리버풀이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2006-07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으나,[5] 2007년 3월 할머니의 병문안을 핑계로 팀을 떠나 미국 나이트 클럽에서 생일파티를 즐긴 일이 들통나 2주치 주급을 벌금으로 냈다. 팀은 시즌이 시작되면서 에게르트 마그누손가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등을 영입하며 좋은 성적이 기대되었으나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강등권까지 떨어졌고, 결국 팀의 감독을 앨런 파듀에서 앨런 커비쉴리로 교체하는 강수를 둬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다.
20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 4백만 파운드에 토트넘 핫스퍼로의 이적설이 돌았으나 팀에 잔류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4월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직후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으며, 결국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사이 제임스 톰킨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자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했으며, 이번에는 6백만 파운드로 이적료를 올려 토트넘 핫스퍼가 다시 영입을 시도했으나 결국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시한 선더랜드 AFC와 4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이적 이후 맞이한 2008-09 시즌에는 로이 킨 감독의 전술에 잘 녹아들었으며, 같이 중앙 수비진을 구성한 대니 콜린스와의 호흡도 척척 들어맞았다. 시즌 도중 팀의 감독이 로이 킨에서 리키 사브라지아로 바뀐 이후에도 주전 자리를 공고히 했으며, 엘 하지 디우프와 다투며 디우프를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시키기도 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인 딘 화이트헤드가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자 나이론 노소르시가 화이트헤드의 번호인 6번을 이어받으며 퍼디난드는 노소르시의 번호인 5번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2009년 10월에는 이전에 동점골을 넣어 승리에 공헌한 바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자책골을 기록해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으며, 팀에 새로운 중앙 수비수인 존 멘사가 영입된 이후에는 스티브 브루스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6] 2010-11 시즌에는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공을 잘못 걷어내는 실수를 저지르며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골을 내주며 팀이 1:1로 비기게 되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슈팅이 자신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가 팀이 0:2로 패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악연을 이어갔다.
2011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팀이 존 오셔와 웨스 브라운을 영입하자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1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팀을 옮겼으며, 9월 12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이후 대니 가비동과 호흡을 맞추면서 빠르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2013년 1월 부르사스포르로 임대되어 7경기를 출장하였다. 2013년 8월 14일 터키의 안탈리아스포르와 3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으나 불과 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4년 6월 18일 태국 프리미어 리그 폴리스 유나이티드와 2년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안톤은 부인하였다. 8월 11일 레딩 FC와 2년계약을 맺었다.
3. 사건 사고
10월 23일 첼시 FC와의 경기 도중 존 테리가 자신에게 인종차별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7][8] 결국 11월 1일 경찰 당국이 수사를 하는 상황까지 번졌으며, 며칠 뒤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퍼디난드가 살해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다. 12월에는 검찰에서 다음 해 2월 1일에 존 테리를 기소한다고 밝혔으며, 2012년 1월 28일에는 퍼디난드가 총알이 담긴 소포를 배달받으며 다시 한 번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결국 존 테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잉글랜드 축협에 의해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박탈당했으며, 이 결정에 반발한 국가대표팀 감독 파비오 카펠로는 결국 감독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FIFA 회장 제프 블라터는 이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을 해도 경기장에서 악수하고 화해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을 했다가 안톤 퍼디난드의 형 리오 퍼디난드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영국 정부는 이 사건과 파트리스 에브라와 루이스 수아레스 간의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축구에서의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한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4. 국가대표
2004년 U-21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8월 17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07년 UEFA U-21 유럽선수권대회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었다. 경기에서 팀은 1:1로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12:12까지 가는 기록적인 상황에서 퍼디난드가 키커로 나서 실축해 네덜란드가 13:12로 승리하게 되었다.
5. 여담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라고 하며, 잭슨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추모 세리머니까지 계획하기도 했다.
지동원이 선덜랜드로 이적할 당시 잠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당시 지동원이 좋은 선수라는 칭찬을 해서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1] 단장[2] 알렉스 퍼거슨의 아들인 대런 퍼거슨이 감독을 했었던 팀이다.[3] 참고로 리오 퍼디난드와 안톤 퍼디난드는 '이달의 선수상' 제정 이후 상을 받은 최초의 형제로 기록되었다.[4] 또한 2001년 2월 스튜어트 피어스 이후 5년만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가 '이달의 선수상'을 받는 역사를 세웠다.[5] 중간에 잠시 슬럼프가 있었으나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식사를 하며 탈출했다고 한다.[6] 한때는 존 멘사가 퍼디난드의 5번을 달았으나, 이후 29번을 달게 되었다.[7] 이전에는 2006년에 있었던 독일과의 UEFA U-21 유럽선수권대회 예선 경기에서 마이카 리차즈와 함께 독일 선수들에게 원숭이라고 불렸다는 의혹도 있었다.[8] 그러나 이 주장은 날조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두 선수간에 이 발언이 오갔기 때문이다. 안톤 퍼디난드:"나더러 black c*nt라고 했어." 존 테리:"내가 언제 Black C*nt라고 했어." 심지어 퍼디난드는 2012년 7월에 있는 재판에서 인종차별 사건이 일어난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