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힐

 


''' 로린 힐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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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그래미 시상식'''[11]
[image]
'''최고의 신인상'''
'''제40회
(1998년)'''

'''제41회
(1999년)'''

'''제42회
(2000년)'''
폴라 콜

'''로린 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역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image]
'''올해의 비디오상'''
'''24회
(1998년)'''

'''25회
(1999년)'''

'''26회
(2000년)'''
Ray of Light
'''마돈나'''

'''Doo Wop (That Thing)'''
'''로린 힐'''

The Real Slim Shady
'''에미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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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 힐 (Lauryn Hill)
'''이름'''
'''로린 힐 (Lauryn Hill)'''
'''본명'''
'''로린 노엘 힐 (Lauryn Noel Hill)'''
'''출생'''
'''1975년 5월 25일,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
'''활동기간'''
'''1989년 - '''
'''가수활동'''
'''그룹 The fugees 1994년'''
'''솔로 1998년'''
'''신체'''
'''161cm'''
'''학력'''
'''컬럼비아 고등학교 (졸업) (1989년-1993년)
컬럼비아 대학교 (중퇴) (1993년-1994년)'''
'''가족'''
'''전 남편 로한 말리[1], 4남 2녀[2]'''
'''직업'''
'''가수, 배우,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1. 개요
2. 활동
2.1. 데뷔 이전
2.2. Fugees
2.3. 솔로활동
2.4. 현재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3.1.1. 싱글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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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가수 겸 배우.
현재에는 활동하지 않고 간간히 공연을 하는 정도지만, 1990년대에는 릴 킴, 다 브랫, 미시 앨리엇과 함께 가장 잘 나가는 래퍼이자[3][4], 뛰어난 보컬리스트였다.
뛰어난 랩 실력과 소울풀한 음색 및 가창력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힙합을 기본으로 R&B, 소울,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5] 특히 라이브 실력도 엄청난데, 전성기 시절 라이브 영상을 보면 뛰어난 랩에 가창력까지 혼자 소화해 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자.

로린 힐의 대표곡인 Doo Wop.

작곡, 작사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솔로 앨범인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전곡의 작곡 작사에 참여했다. 직접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높은 퀄리티의 곡과, 다양한 장르,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현재까지도 명반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의 여성 래퍼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이다. 특히 윤미래가 특유의 나즈막히 정박으로 때리는 래핑 스타일 등 로린 힐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둘은 보컬리스트로서도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다만 둘의 차이점은 윤미래는 작사 작곡을 직접하지않는다

2. 활동



2.1. 데뷔 이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소울 음악에 관심을 가진 로린 힐은 탁월한 재능과 끼를 가진 소녀였다. 13살이었던 1988년 TV쇼 It's Showtime at the Apollo에 출연해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1993년에 첫 배우 데뷔작 시스터 액트2에서 불량학생 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예쁜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영화에서 부른 곡인 'Joyful Joyful'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2. Fu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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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막내가 된 로린 힐은 고등학교 친구인 Pras,Wyclef jean과 트리오를 결성한다. 이후 그룹의 이름을 Fugees로 바꾼뒤 1994년 1집 앨범 Blunted on reality로 정식 가수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1집 앨범은 예상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실패를 교훈삼아 1996년 2집 앨범 The score를 발매하는데, 단숨에 빌보드 200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의 수록곡이자 "Killing Me Softly"는 빌보드 Hot 100의 2위에 올랐고, R&B/Hiphop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동명의 로버타 플랙의 원곡을 재해석한 Killing Me Softly는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곡이자, 이들의 대표곡. Fugee는 몰라도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많을 정도다. 이외에도 Ready or not , Fu-gee-la등도 차트를 휩쓸었다. 앨범 역시 미국내에서 60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는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초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이러한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997년 돌연해체한다. 갑작스런 해체에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그들은 각자 다른 노선을 걷기위함임을 밝혔다. 이후 2004년, 7년만에 재결합하여 2006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MTV에서는 Fugees를 가장 위대한 힙합그룹 9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2.3. 솔로활동


'''1집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10위'''

'''NME 선정 500대 명반'''
'''8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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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gees의 해체 이후 1998년 솔로 앨범 1집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발매한다. 힙합부터 시작해서 R&B , 소울 , 레게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수록한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첫 싱글인 Doo wop은 2주 연속 1위에 머물렀다. 여성 래퍼가 빌보드 싱글 차트서 1위를 차지한것은 팝역사상 로린힐이 최초였으며, 이후에도 여성 래퍼가 피쳐링없이 솔로음원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한 경우는 한동안 없었다.[7] 이후 한참이 지난 2017년 카디비Bodak Yellow가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그 기록이 깨졌다.
[image]
이 앨범으로 힙합의 판도를 뒤엎은 로린 힐은 1999년에 열린 제4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무려 5개의 부문을 수상'''한다. 힙합 장르 앨범이 그래미상의 주요 부문을 수상한 것은 음악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것도 무려 5개 분야에서. [8]
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800만장, 전 세계적으로는 1300만장 이상 팔렸다.
이후 로린 힐은 북미, 일본, 유럽 등지에서 월드 투어를 진행했다.
4년의 공백 후, 어쿠스틱 기타로 대부분 솔로 연주를 한 라이브 앨범《MTV Unplugged No. 2.0》을 발매하였다. 또한, 2000년대 중반에 재결성하여 짧게 활동한 《Fugees》에 참여하기도 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개정 롤링 스톤 리스트에서 10위에 선정되어 힙합앨범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를 받았다.

2.4. 현재


라이브 앨범 발매이후 현재까지 솔로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 간간이 공연도 하는 듯.
2018년 서울재즈페스티벌로 첫 내한했다. 데뷔 후 첫 내한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전성기 기량을 뽐내며 히트곡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3.1.1. 싱글


  • Doo Wop (That Thing) (1998)

  • Ex-Factor (1998)[9][10]

  • Everything Is Everything (1999)


4. 기타


  • 니키 미나즈가 가장 존경하는 래퍼로, 데뷔 초부터 로린 힐을 항상 동경해왔다고 한다. 이후 니키가 크게 성공한 뒤, 로린 힐을 직접 만났을 때 감동하며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 2013년 거액의 탈세 혐의로 징역 3개월을 구형 받았고 복역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누린 래퍼 릴 킴, 다 브랫도 각각 2005년(위증혐의), 2007년(폭행혐의) 로 복역한 바 있다.
  • CL이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이다.
  •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1] 레게의 제왕 밥 말리의 친아들이다. 즉, 로린은 밥말리의 며느리인 셈. 로한은 1972년생으로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식축구를 하고 1995년 캐나다에서 데뷔했으나 부상으로 프로 데뷔시즌 은퇴하고 말리 커피와 더하우스오브말리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업가이다. 둘의 관계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이라 부르기도 뭐한 것이 이 둘은 대외적으로는 부부처럼 행동했지만 정식 부부는 아니었고 파트너 관계였다.[2] 막내아들을 제외한 다섯의 아버지는 로한 말리이고, 2011년 태어난 막내아들의 아버지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다.[3] 릴 킴은 2000년대 초까지 매우 잘 나갔고, 미시는 현재까지도 슈퍼볼에 서거나 꾸준히 음원을 내는 등 왕성히 활동중이다.[4] 로린힐은 여자래퍼 중 드물게 가창력도 매우 뛰어나서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도 보였다.[5] 이러한 점들을 빌어 국내래퍼 중 굳이 비교하자면 윤미래와 비슷한데, 애초에 윤미래가 로린힐과 다브랫을 롤모델로 삼고 동경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비슷한 음악 스타일의 여성래퍼는 90년대 초반에 왕성히 활동했던 퀸 라티파(Queen Latifah)가 있다.[6] 2002년 싱글 Work it이 에미넴Lose Yourself의 메가히트로 인해 10주동안 2위에서 머물렀다.[7] 릴 킴의 경우도 Magic Stick으로 2위, 타 여가수 3명과 함께한 리메이크 곡으로 Lady Marmalade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미시 앨리엇 [6], 니키 미나즈도 최고 2위에 머물렀다.[8] 다만 이 앨범이 힙합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장르가 혼합되었기에 훗날 나온 Speakerboxxx/The Love Below가 최초의 힙합앨범으로서 그래미를 석권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 앨범역시 힙합만 있는 앨범은 아니다...[9] 드레이크Nice For What이라는 곡에 샘플링하였다.[10] 비욘세가 콘서트에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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