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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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살았던 사람인데 사진이 꽤 남아있다. 다만 가장 밑에 있는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Robert Louis Stevenson'''
1850.11.13 ~ 1894.12.3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1850년 11월 13일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보물섬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전 분야에 걸쳐 좋은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와 똑같은 경우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두 작가 모두 알고 보면 어린이가 보기 좋은 글만 쓴 건 아니다.
마크하임(Markheim)이라는 단편은 영문학에서 보기 드문 명문으로도 유명하다.
성격이 좋고 사람들에게 매우 자상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여 투병 생활을 했다. 그 영향으로 모험을 동경했고, 이는 보물섬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에든버러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나 변호 업무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하였다. 20대 중종반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여행을 즐겨 했다. 이때 프랑스에서 10살 연상인 유부녀 마틸다 반 더 그리프트 오스본을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당시 남편의 바람기 등의 원인으로 별거 중이었다. 2년 뒤인 1878년에 이혼한 그녀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그 뒤에 미국으로 가서 1879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여담으로 오스본에게는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이소벨과 아들 로이드가 있었는데, 아들과 스티븐슨은 18살 차이였지만, 딸과 스티븐슨의 나이 차는 고작 8살(!)이었다고.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아꼈기에 부부 관계는 무척 좋았다고 한다. 의붓딸과 그녀가 바람과 술 문제가 원인이 되어 이혼한 전 남편 조셉 드와이트 스트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오스틴 스트롱, 의붓아들도 스티븐슨의 집필 활동을 돕기도 했고, 사모아에서 함께 산 적도 있다.
1887년부터 여러 건강 문제를 보였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 권유했다. 회복을 목적으로 미국과 영국 시골에서 오가며 지냈다. 1888년에는 오세아니아의 사모아로 여행했는데, 머무르는 동안 마음이 편하고 사람들도 좋다고 해서 아예 정착했다. 매우 인간적으로 섬 사람들에게 대해줘서 백인들에게서 온갖 차별을 받던 그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1][2] 사모아 사람들에게서 그가 불리던 이름은 이야기꾼, 책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Tusitala'이며, 아내가 불리던 이름은 날아다니는 구름이라는 뜻의 'Aolele'.
하와이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죽은 가톨릭 선교사인 다미앙 신부를 장로교 목사인 하이드가 비난하자, 장문을 써서 다미앙 신부의 삶을 찬양하였다.
세상에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에다가 의식 있는 지식인이었다. 스티븐슨은 사모아 섬에서 살아가면서 조국 영국이나 유럽 열강이 저지른 식민지 약탈 및 차별 대우, 부족끼리 이간질시켜 내전을 일으키는[3] 등의 모든 만행을 목격하고 분노하여 글로 고발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그의 고발이 통할 리가 없었다. 열심히 식민지를 만들어간 조국 영국에선 스티븐슨의 고발을 무시했고, 그는 영국 어디에서도 글을 연재하지도 못했다. 이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상은 부조리하며 하이드와 같은 게 바로 내 나라, 그리도 문명국이라 자부하는 나라들의 실체라며 한탄했다.
그가 쓴 편지 중 조지 고든 바이런이 잔 다르크를 광신적인 프랑스 창녀라고 말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바이런을 두고 첫째로 위대한 시인으로서, 둘째로는 귀족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깠다. #
친하게 지낸 이웃집 꼬마 여자 아이가 자신은 생일이 2월 29일이라 4년에 1번씩만 생일이 온다고 슬퍼하자 웃으면서 이 아저씬 다 컸으니까 내 생일인 11월 13일을 대신 네 생일로 주고 내가 2월 29일 생일을 맞이하겠다는 글을 써서 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물론 기뻐했다고 한다.
1894년 12월 3일 저녁, 아내 패니 스티븐슨과 사모아 섬에 있던 집에서 정답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만으로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아쉽게 요절한 것이다.
스티븐슨이 죽자 사모아 섬 마을의 여러 부족장들이 슬퍼하였다. 그들은 사모아 섬에서 존경받는 위인만 묻힐 수 있다는 성지 바에아 산에 그가 묻히길 바랐다. 아내가 허락하여 그는 그곳에 묻혔다. 그녀는 홀로 사모아에서 몇 해 동안 살다가 외로움을 참을 수 없었는지 미국으로 돌아갔고, 1914년 생일 한 달 전에 미국에서 73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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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살았던 사람인데 사진이 꽤 남아있다. 다만 가장 밑에 있는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Robert Louis Stevenson'''
1850.11.13 ~ 1894.12.3
1. 소개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1850년 11월 13일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보물섬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전 분야에 걸쳐 좋은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와 똑같은 경우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두 작가 모두 알고 보면 어린이가 보기 좋은 글만 쓴 건 아니다.
마크하임(Markheim)이라는 단편은 영문학에서 보기 드문 명문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
성격이 좋고 사람들에게 매우 자상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여 투병 생활을 했다. 그 영향으로 모험을 동경했고, 이는 보물섬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에든버러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나 변호 업무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하였다. 20대 중종반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여행을 즐겨 했다. 이때 프랑스에서 10살 연상인 유부녀 마틸다 반 더 그리프트 오스본을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당시 남편의 바람기 등의 원인으로 별거 중이었다. 2년 뒤인 1878년에 이혼한 그녀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그 뒤에 미국으로 가서 1879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여담으로 오스본에게는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이소벨과 아들 로이드가 있었는데, 아들과 스티븐슨은 18살 차이였지만, 딸과 스티븐슨의 나이 차는 고작 8살(!)이었다고.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아꼈기에 부부 관계는 무척 좋았다고 한다. 의붓딸과 그녀가 바람과 술 문제가 원인이 되어 이혼한 전 남편 조셉 드와이트 스트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오스틴 스트롱, 의붓아들도 스티븐슨의 집필 활동을 돕기도 했고, 사모아에서 함께 산 적도 있다.
1887년부터 여러 건강 문제를 보였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 권유했다. 회복을 목적으로 미국과 영국 시골에서 오가며 지냈다. 1888년에는 오세아니아의 사모아로 여행했는데, 머무르는 동안 마음이 편하고 사람들도 좋다고 해서 아예 정착했다. 매우 인간적으로 섬 사람들에게 대해줘서 백인들에게서 온갖 차별을 받던 그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1][2] 사모아 사람들에게서 그가 불리던 이름은 이야기꾼, 책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Tusitala'이며, 아내가 불리던 이름은 날아다니는 구름이라는 뜻의 'Aolele'.
하와이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죽은 가톨릭 선교사인 다미앙 신부를 장로교 목사인 하이드가 비난하자, 장문을 써서 다미앙 신부의 삶을 찬양하였다.
3. 일화
세상에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에다가 의식 있는 지식인이었다. 스티븐슨은 사모아 섬에서 살아가면서 조국 영국이나 유럽 열강이 저지른 식민지 약탈 및 차별 대우, 부족끼리 이간질시켜 내전을 일으키는[3] 등의 모든 만행을 목격하고 분노하여 글로 고발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그의 고발이 통할 리가 없었다. 열심히 식민지를 만들어간 조국 영국에선 스티븐슨의 고발을 무시했고, 그는 영국 어디에서도 글을 연재하지도 못했다. 이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상은 부조리하며 하이드와 같은 게 바로 내 나라, 그리도 문명국이라 자부하는 나라들의 실체라며 한탄했다.
그가 쓴 편지 중 조지 고든 바이런이 잔 다르크를 광신적인 프랑스 창녀라고 말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바이런을 두고 첫째로 위대한 시인으로서, 둘째로는 귀족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깠다. #
친하게 지낸 이웃집 꼬마 여자 아이가 자신은 생일이 2월 29일이라 4년에 1번씩만 생일이 온다고 슬퍼하자 웃으면서 이 아저씬 다 컸으니까 내 생일인 11월 13일을 대신 네 생일로 주고 내가 2월 29일 생일을 맞이하겠다는 글을 써서 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물론 기뻐했다고 한다.
4. 사망
1894년 12월 3일 저녁, 아내 패니 스티븐슨과 사모아 섬에 있던 집에서 정답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만으로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아쉽게 요절한 것이다.
스티븐슨이 죽자 사모아 섬 마을의 여러 부족장들이 슬퍼하였다. 그들은 사모아 섬에서 존경받는 위인만 묻힐 수 있다는 성지 바에아 산에 그가 묻히길 바랐다. 아내가 허락하여 그는 그곳에 묻혔다. 그녀는 홀로 사모아에서 몇 해 동안 살다가 외로움을 참을 수 없었는지 미국으로 돌아갔고, 1914년 생일 한 달 전에 미국에서 73살로 세상을 떠났다.
5. 작품 목록
- 보물섬
- 지킬 박사와 하이드
- 하룻밤 묵어가기
- 마크하임
- 악마가 깃들인 병
- 목소리의 섬
- 해변가 모래언덕 위의 별장
- 시체 도둑
- 자살 클럽
- 오랄라
- 꿈에 관하여
- 유괴
- 물레방앗간의 윌
- 목이 돌아간 재닛
- 메리 맨
- 프랑샤르의 보물
- 말트루아 경의 대문
- 존 니컬슨의 불행한 모험들
- 사람을 죽이다
- 한 어린이의 시 정원(시집)
- 나에게 더 이상 고향은 없네
- 아메리카행 이민선
- 색깔이 없는 것은 1페니, 있는 것은 2페니
-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 당나귀와 함께 한 세벤느 여괴
- 잠의 땅, 꿈의 나라
- 타샤의 어린이 정원
[1] 친구가 편지로 "야만인들과 같이 살면 불편하지 않나?"라고 글을 쓰자 “남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사람이 바로 야만인이네. 이들은 친절하고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그리고 이곳이 바로 천국이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2] 스티븐슨의 사상은 그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이었는데, 정글북을 쓴 백인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백인의 짐이라는 작품까지 쓸 정도였다) 러디어드 키플링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세상에, 지식인이나 시민들이나 유색인종이나 비백인을 야만인 취급하던 세상에서 저런 사상은 진보적이라 할 만 하다.[3] 제국주의 시대에 흔하디 흔한, 아니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이제이 수법이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가 오세아니아의 섬 나라에서 자주 벌이던 짓이다. 우선 부족끼리 사이가 안 좋다면 총을 판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화폐는 받지 않았다. 대신 농업이나 어업 허용권과 같은 섬에 대한 수많은 권리를 가져갔다. 그렇게 야금야금 압박하면서 섬을 차지하는 수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