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바르본
1. 소개
쿠바 출신의 일본프로야구 선수, 지도자. 평소 '''치코'''(Chico, 스페인어로 꼬마, 도련님) 바르본 이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2. 현역 시절
11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바르본은 대부분의 쿠바 출신 선수들이 그랬듯 동네야구에 입문하여 야구에 눈을 떴다.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수로 1년 간 뛴 바르본은 한큐 브레이브스 스카우트의 입단 제의를 받고 1955년 일본으로 건너와 한큐 유니폼을 입었다.[1] 그러나 바르본은 난생 처음 살게 된 일본에서 통역도 없이 초장부터 개고생의 연속이었고, 식사도 입에 안 맞는 통에 한동안 치킨 라이스(닭고기와 토마토 케첩을 넣은 볶음밥)만 주구장창 먹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바르본은 입단 첫 해 주전 2루수에 1번 타자를 꿰차고 장타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주특기인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앞세워 타율 0.280에 49도루라는 준수한 성적에다가 163안타, 3루타 13개로 시즌 최다 안타 및 3루타 기록을 차지했고, 수비에서도 견실한 활약을 보이며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당초 바르본은 일본에서 1년만 뛰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출장 회수가 늘어가는 즐거움에 계속 일본에서 뛰기로 결심했고, 이후 3시즌 연속(1958~1960년) 도루왕을 차지했다. 1955년의 3루타 13개는 그 해 퍼시픽 리그의 개인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임과 동시에 팀 선배이기도 한 래리 레인즈(한큐)의 16개를 잇는 한큐 구단 2위 기록이며 퍼시픽 리그를 통틀어서는 공동 4위에 해당된다.[2] 1964년엔 통산 1000안타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 하며 한큐에서 딱 10시즌을 채우면서 준 프랜차이즈급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 1964년 시즌 출장기회가 현저히 줄어든 바르본은 1965년 킨테츠 버팔로즈로 이적하여 4년 만에 규정타석을 채우는 성과를 올렸지만, 타율 0.231, 출루율 0.271에 106안타, 1홈런, 15타점, 11도루라는 저조한 기록을 남겼고,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1시즌 동안의 통산 성적은 '''1353경기 출장, 1123안타, 타율 0.241, 33홈런, 260타점, 308도루.'''[3] 외국인 선수 하면 파워라는 이미지를 빠른 발로 깨버린 스피드 타입의 선구자 라고 볼 수 있으며, 2루수로서 경쾌한 풋워크를 앞세운 화려한 수비도 주목 받으면서 '''쿠바산 우시와카마루'''[4] 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3. 은퇴 이후
1959년 시즌 후 바르본은 쿠바로 돌아가려 했지만 하필 그 해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 으로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바르본은 교제하던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아예 일본에 정착해 버렸다.[5]
그라운드를 떠난 이후 바르본은 고베에서 스테이크 식당을 경영했고, 1974~1975년 2시즌 동안 친정팀 한큐의 코치로 활동하면서 1975년 일본시리즈 우승 멤버로 포함되기도 했다. 이후 한큐의 외국인 선수 통역담당 등 구단 직원으로 계속 근무했고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야구교실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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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단 초기에는 식사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이후 바르본은 점심 때 라멘을 즐겨먹고 일본어는 물론 칸사이벤 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일본 생활에 적응했다. 또한 중남미 사람 특유의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 현역 시절이던 1960년대 중반 영화배우 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그 외 광고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자주 얼굴을 비췄다.
- 일본 시절 초창기에 짓궂은 팀메이트 때문에 역도산의 분노를 샀던 에피소드가 있다. TV로 역도산의 시합을 보던 중, 동료 선수 한 명이 "이런 대단한 시합을 일본에선 야오쵸(八百長)라고 부른다" 라고 뻥을 쳤는데, 야오쵸는 다름아닌 승부조작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순진했던 바르본은 그 얘기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바람에 기자들 앞에서 역도산의 시합을 본 감상을 얘기하며 "리키(역도산), 야오쵸" 라는 폭탄발언(?)을 해버렸던 것! 그 이야기를 들은 역도산은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고, 기겁한 바르본이 역도산을 황급히 찾아가 야오초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며 사죄하자 역도산은 "어 그래? 모르고 그랬다면 봐줘야지" 라며 흔쾌히 없었던 일로 하면서 잘 마무리 되었다고.
[1] 당시 그 스카우트는 "일본은 기후가 따뜻해서 쿠바랑 별 차이가 없다" 라고 꼬드겼고 바르본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2] 참고로 NPB 최다이자 센트럴 리그 한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은 1951년 오사카 타이거스의 카네다 마사야스가 세운 '''18개'''이다.[3] 바르본의 1353경기 출장은 2007년 터피 로즈가 갱신하기 전 까지 외국인 선수 최다 출장 기록이었다. 또한 바르본은 1953년 시즌 퍼시픽 리그 도루왕 래리 레인즈와 더불어 유이한 시즌 최다도루 타이틀을 가진 외국인 선수다.[4] 우시와카마루는 한신 타이거스의 명 유격수이자 한신의 현재까지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인 요시다 요시오의 현역 시절 별명이기도 하다.[5] 바르본의 말에 따르면, 일본으로 간 이후 고향인 쿠바에 가본 적은 딱 한번 뿐이었다고 한다. 그 한번의 방문은 현역 은퇴 후 20여년이 지난 1988년의 일로, 당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으로 취임한 야마모토 코지가 쿠바 야구 시찰을 위해 바르본에게 통역 요원으로 쿠바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고 바르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