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일본시리즈
1. 개요
1975년 10월 25일부터 11월 2일까지 개최되었으며, 이 해 드디어 첫 리그 우승에 성공한 센트럴 리그 우승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퍼시픽 리그 우승팀[2] 한큐 브레이브스가 맞붙어, 한큐 브레이브스가 4승 2무로 히로시마를 압살하며 과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5번 나간 일본시리즈에서 전부 우승을 내줘야 했던 가슴아픈 흑역사'''를 극복[3] 하고 첫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덤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 사상 최초의 일본시리즈였으며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처음으로 열린 일본시리즈였다.
2. 경기결과
홀수 해이기 때문에 이 해 일본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구단인 한큐 브레이브스가 홈 어드밴티지를 가졌다.
2.1. 1차전 : 10월 25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1회 초 히로시마의 게일 홉킨스가 중전안타로 선제점을 따내는데 성공하나, 곧바로 1회 말 한큐의 오오쿠마 타타요시가 동점 홈런을 터뜨리고 뒤이어 바비 마르카노가 2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한큐가 역전에 성공. 2점 우세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5회 초 히로시마의 미무라 토시유키가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만회, 뒤이어 8회 초 게일 홉킨스의 좌월 2루타에 뒤이어 야마모토 코지가 우월 3루타를 때리면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뒤로 양측 전혀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연장 11회까지 계속된 끝에 무승부로 경기 종료. 양측 모두 1승을 따지 못한 채 2차전으로 가게 되었다.
이 날 경기시간은 4시간 29분으로, 이 해 일본시리즈 1차전은 '''일본시리즈 최초의 4시간 경과시합''' 기록을 획득함과 동시에 시리즈 최장 경기시간을 1966년 이래[4] 9년만에 갱신했다..지만 '''일주일도 채 안 지나''' 하단에 나오다시피 4차전에서 이 기록을 또 갱신해버린다.
2.2. 2차전 : 10월 26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승리투수 : 야마다 히사시(한큐, 1승)
- 패전투수 : 사에키 카즈시(히로시마, 1패)
2.3. 3차전 : 10월 28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승리투수 : 야마구치 타카시(한큐, 1승)
- 패전투수 : 미야모토 유키노부(히로시마, 1패)
한큐가 2회 초 후쿠모토 유타카, 오오쿠마 타다요시, 카토 히데지의 3타자 연속 안타로 3점을 얻으며 크게 앞서나갔고, 3회 초 오오하시 유타카의 3루 쪽으로 향하는 2루타로 또다시 1점을 얻으며 4점이나 앞서는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6회 말, 히로시마가 야마모토 코지의 2점 홈런으로 점수차를 2점으로 줄이고 이어 7회 말 미무라 토시유키의 좌전 안타로 2점을 얻으며 동점에 성공한다. 다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큐는 4실점을 하며 동점을 만들어버린 선발투수 야마구치 타카시를 속투시키는 쪽을 선택하였는데, 이 배려(?) 덕택에 야마구치는 시리즈 1승에 성공하게 된다.
9회 초, 한큐가 나카자와 신지의 2점 홈런, 오오하시 유타카의 솔로 홈런으로 3점을 획득하며 다시 우세에 성공한 것. 그리고 9회 말 야마구치는 볼넷 1개만 내주며 완투승에 성공. 한큐가 2승으로 앞서나가게 된다.
그 후 다음날인 10월 29일에 4차전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해 경기가 하루 연기되었다.
2.4. 4차전 : 10월 30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우천으로 인해 10월 29일에서 하루 연기된 일본시리즈 4차전.
이번에도 한큐가 2회 초 모리모토 키요시의 솔로 홈런으로 선제점 획득에 성공한다. 하지만 곧바로 2회 말, 히로시마가 야마모토 코지, 야마모토 카즈요시의 솔로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 뒤이어 3회 말에도 야마모토 코지가 좌전안타로 또다시 1점을 따내면서 히로시마가 2점 앞서나가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7회 초, 카토 히데지의 1루쪽 희생땅볼에 뒤이어 나가이케 토쿠지의 좌전안타로 한큐가 2점을 얻으며 동점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뒤로 연장 12회가 되도록 양팀 다 점수를 따내지 못하다가 연장 13회 초, 7회부터 구원등판한 투수 야마구치 타카시가 좌전안타로 1점을 따내면서 한큐가 재역전에 성공한다. 13회 말이 되자, 한큐는 야마구치 타카시를 2차전처럼 속투시키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번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13회 말, 야마구치 타카시가 2사 만루지만 아웃카운트 1개만 더 잡으면 한큐가 2승을 챙기는 상황에서 대타 사노 요시유키에게 동점 중전안타를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저지르고 만 것(...) 하지만 중견수 후쿠모토 유타카가 2루주자를 홈에서 잡아내면서 역전까지는 가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4-4 무승부로 끝나면서 한큐는 2승 2무, 히로시마는 2무 2패가 된다.
이 날 경기 진행시간은 무려 4시간 49분으로, '''2차전에서 세운 최고기록을 또다시 갱신해 버렸다(...)''' 이 기록은 2010년 일본시리즈 6차전(5시간 43분) 개최 이전까지 역대 일본시리즈 최장 경기 진행시간으로 남게 된다. 덤으로 일본시리즈 최초로 무승부가 복수(2전 이상) 기록된 시리즈가 되었으며, 이 복수 무승부 기록은 현재까지 1975년 일본시리즈가 혼자 가지고 있다.
2.5. 5차전 : 10월 31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승리투수 : 야마다 히사시(한큐, 2승)
- 패전투수 : 사에키 카즈시(히로시마, 2패)
- 세이브 : 야마구치 타카시(한큐, 1승 1세이브)
2.6. 6차전 : 11월 2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승리투수 : 토다 요시노리(한큐, 1승)
- 패전투수 : 이케가야 코지로(히로시마, 1패)
- 세이브 : 야마구치 타카시(한큐, 1승 2세이브)
그 후 4회 말, 나카자와 신지의 2점 홈런, 후쿠모토 유타카의 1점짜리 우측 2루타, 카토 히데지의 2점짜리 투수 쪽 안타로 한큐가 5점을 대량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한다. 히로시마는 8회 초 게일 홉킨스가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점수차를 3점으로 줄였지만, 바로 8회 말 또 다시 5회부터 등판한 한큐의 구원투수 야마구치 타카시가 좌월 안타로 또다시 1점을 얻으며 사실상 한큐의 우승으로 경기가 기울어졌으며, 결국 9회 초 히로시마가 득점에 실패하면서..
'''한큐 브레이브스가 6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상단 각주에 나오다시피 이해 한큐 브레이브스의 페넌트레이스 순위 자체는 2위였기에, 한큐 브레이브스는 최초의 페넌트레이스 1위가 아닌 일본시리즈 우승팀이 되었다.[5]
3. 타이틀 시상
- 최우수선수(MVP) : 야마구치 타카시(한큐 브레이브스)
- 감투상 : 야마모토 코지(히로시마 도요 카프)
- 타격상 : 오오하시 유타카(한큐 브레이브스)
- 최우수투수 : 야마다 히사시(한큐 브레이브스)
- 기능상 : 후쿠모토 유타카(한큐 브레이브스)
- 우수선수 : 나카자와 신지(한큐 브레이브스), 소토코바 요시로(히로시마 도요 카프)
4. 기타
- 만약 이 해 일본시리즈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우승했을 경우, 카프의 모기업인 도요 공업에서 자사 자동차를 최우수상으로, 토요타 쪽에서 상금을 줄 예정이었으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우승하면서 토요타의 자동차를 상으로 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한큐 브레이브스가 유일하게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일본시리즈 우승기를 들어올린 시리즈이다. 이후 한큐 시대의 일본시리즈 우승기는 전부 당시 상대팀이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고라쿠엔 구장에서 들어올려야 했다.
- 2차전 당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측의 마지막 투수 등판했던 와코우 토모오는 과거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던 시기인 1964년 난카이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패전처리 투수로 등판한 이후 무려 11년만의 일본시리즈 등판이었다. 이 11년간의 공백기 이후 일본시리즈 재등판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 사실 이 해 일본시리즈는 규칙에 위배되는 사항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시리즈 개최조건은 관객수용량이 3만명 이상이고 야간경기 시설을 갖춘 구장이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시민 구장은 당시 관객수용량이 24,500명에 그쳐서 본래대로라면 일본시리즈가 개최될 수가 없었으나, 이 해 일본시리즈에서 히로시마 측의 홈경기는 페넌트레이스 때처럼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치뤘다. 아무래도 일단 야간경기와 올스타전 개최가 가능할 정도의 최신 시설은 어느 정도 갖춘 데다, 당시 히로시마 현에 이 구장보다 큰 야구장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 2018년까지 유일하게 무승부 경기가 두번 나온 시리즈이다.
[1] 우승기를 들고 맨 앞에서 행진하는 30번은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이다.[2] 당시 전후기 리그로 운영되던 퍼시픽리그에서 이 해 전기 우승을 달성. 그 뒤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한큐 감독 우에다 토시하루의 전임 감독이었던 니시모토 유키오 지휘하에 구단 창단 후 최초로 후기 우승을 달성한 킨테츠 버팔로즈를 누르고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참고로 이 해 리그 승률 1위가 바로 킨테츠 버팔로즈였고 한큐 브레이브스는 2위였다. '''근데 이건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전후기리그가 아닌 평범한 페넌트레이스 제도로 운영했을 시 킨테츠 버팔로즈가 1979년보다 4년 먼저 첫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을 거란 것이다(...)''' 킨테츠의 안습함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시..[3] 참고로 이 1975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구단 사상 처음으로 리그 꼴찌를 기록했다(...) 거기다 이 해 10월 15일엔 홈구장 고라쿠엔 구장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첫 리그 우승을 허용했다(...) 양팀 팬들 입장에선 아주 통쾌했던 상황.[4] 당시 일본시리즈 5차전이 가지고 있던 최장 경기시간인 3시간 50분을 갱신했다.[5] 페넌트레이스 1위가 아닌 팀이 일본시리즈에 진출한 사례는 1973년의 난카이 호크스(3위)가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