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본명'''
Roy Fox Lichtenstein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23년 10월 27일, 미국 뉴욕
'''사망'''
1997년 9월 29일 (향년 73세), 미국 뉴욕 맨해튼
'''직업'''
화가, 아티스트
'''가족'''
배우자 이사벨 윌슨 (1949년~1967년), 도로시 헤르츠카(1968년~1997년)
자녀 밋첼 리히텐슈타인[1], 데이빗 리히텐슈타인
'''종교'''
유대교
'''학력'''
아트스튜던츠리그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미술학 학사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상세
3. 생애
4. 주요 작품
5. 경력
6. 기타


1. 개요


미국의 팝 아티스트.
독일계 성이라서[2][3] 독일식으로 리히텐슈타인이라고 읽는 사람이 많은데, 본인이 쓰던 영어 발음은 릭턴스타인이다.

2. 상세


'''주요 작품'''
[image]
[image]
'''음 어쩌면(m-maybe), 1965년'''
'''행복한 눈물(Happy tears), 1964년'''
만화의 한 장면을 따다가 확대해서 캔버스에 옮긴 그림으로 유명하며, 팝아트 계에서는 앤디 워홀과 함께 양대 거장 취급을 받는다. 초기에는 목동이나 인디언을 현대 미술 화풍으로 그렸다. 작품의 특징은 선명한 검은 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들이다.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하는 이 망점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하여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의한 것이다. 작품에 대해 어떠한 개성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은 팝아티스트의 중립적인 냉정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며 이것이 바로 추상표현주의와 구별되는 점이다.

3. 생애


1923년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1997년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가장 뉴욕적이며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1949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0여 년간 미술을 가르쳤다.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1960년 럿거스 대학교 교수 앨런 캐프로(Allan Kaprow)를 만나면서 팝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짐 다인(Jim Dine),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조지 시걸(George Segal) 등을 만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1961년 <이것 좀 봐 미키 Look Mickey>를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디즈니 만화 주인공 미키 마우스도날드 덕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실제 만화처럼 말 풍선을 그려넣고 대사를 적어놓았다. 또한 인쇄한 것처럼 보이도록 인쇄물을 확대했을 때 생기는 점까지 세밀하게 나타냈다. 미키 마우스를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 그려준 그림 한 점이 무명의 예술가를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 놓았다. 그 다음 해인 1962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은 개막도 하기 전에 영향력 있는 소장가들에게 모조리 팔렸다.
1965년에서 1966년 사이에는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제작하였다. 이후에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위시한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과 아르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재해석하는 것으로 작업 방향이 확대되었다. 표현방법도 훨씬 자유로워져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가장 미국적인 매스미디어를 가장 미국적인 매스미디어 방법으로 담아냄으로써 미국과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4. 주요 작품


'''키스
Kiss'''
'''제작 시기'''
1961년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203.2 x 172.7 cm
'''소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키스>라는 작품은 1961년부터 시작된 연작의 출발이다. 이 작품이 그 출발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행복한 눈물>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아닌 '환등기'를 사용했다. 캔버스에 환등기를 이용해 만화의 컷을 비추면 윤곽선과 색감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윤곽선을 더 짙게 그리고 명암을 강조해 사용했다. 특히 색채의 이용이 두드러지는데 대량 복제 사회에서 인쇄물은 표준화된 공정을 거치게 된다.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삼원색의 적절합 혼합이 바로 그 공정. 이 작품은 삼원색의 이용이 특히 강조되었다.
참고로 후속작으로 <키스 II>가 있는데 1990년에 600만 달러에 낙찰되며 2002년까지 리히텐슈타인 작품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된 작품이라는 기록을 보유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의미'''로 유명한데...[4]
'''그를 생각하다
Thinking of him'''
'''제작 시기'''
1963년
'''재료'''
캔버스에 마그나펜(Magna)
'''크기'''
172.7 x 172.7 cm
'''소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이 작품은 단순한 캔버스 구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눈물을 흘리며 말풍선 속의 남자를 생각하는 한 여성. 대표적인 대중문화로서 만화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인 간결함이 돋보인다.
'''행복한 눈물
Happy tears'''
'''제작 시기'''
1964년
'''재료'''
캔버스에 마그나펜(Magna)
'''크기'''
96.5 x 96.5 cm
'''소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워홀에 비해 덜 알려진 작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삼성 X파일 사건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은 덕분에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졌다(...). '''한국 한정으로 '비싼 현대 미술 작품'의 대명사.''' 오래된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십억 대를 호가해서, 작가로서는 진정 ‘행복한 눈물’을 흘려 마땅하겠지만, 미술에 문외한 일반인은 과연 이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졌다.
[image]
다만 행복한 눈물이란 그림은 본인의 창작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인데 어쩌다보니 남의 그림으로 유명세를 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원본이랑 비교해보면 리히텐슈타인 그림 실력 자체는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 어쩌면
m-maybe'''
'''제작 시기'''
1965년
'''재료'''
캔버스에 유채와 마그나펜(Magna)
'''크기'''
152.4 x 152.4 cm
'''소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이 작품에서 보이는 금발 여성의 생각이 말풍선을 통해 보는이 들에게 전달된다. 이처럼 만화 이미지와 문자를 사용했다. 말풍선은 확실하게 이미지를 전달하며 의도된 아이러니를 보는 이가 파악하지 못할 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게다가 특유의 삼원색을 이용한 강렬한 색채도 돋보인다. 마치 인쇄물을 보는 듯한 효과를 주어 대량생산에 의한 소비에 대한 의미를 강하게 보여준다.

5. 경력



6. 기타


  • 아들 밋첼 리히텐슈타인은 초기에 영화 배우로 활동했으나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15회 제라르메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2] 바덴-뷔르템베르크작센에 각각 리히텐슈타인이란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따온 지명이다. 국가 리히텐슈타인과는 첫 /ㅣ/의 길이가 다르고 그에 따라 표기도 다르다. 그쪽은 Li'''e'''chtenstein.[3] 정확히 말하면 독일어권 출신 유대인.[4] 앨범 표지로 사용된 <키스 II>는 좌우반전과 옷 무늬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