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뉘엘 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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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시의원이다.
현재는 프랑스인이지만, 원래 태어날 때는 스페인인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카탈루냐계 부친과 스위스 이탈리아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출생 당시의 풀네임은 Manuel Carlos Valls Galfetti이며 원래 "마누엘 카를로스 발스 갈페티"라고 읽어야 한다.[1] Galfetti는 모친의 성인데 스페인어권에서는 부모의 성을 둘 다 쓰기 때문에 성씨가 Valls Galfetti가 된 것. 훗날 프랑스로 귀화하면서 이름은 Manuel Valls로 짧아졌다.
프랑스어외에도 영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
2. 생애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해 귀화했다.
1980년 18세의 나이로 사회당에 입당했다. 미셸 로카르를 지지하며 입당했기에 로카르계로 분류될 수 있는데, 정확히는 "제2좌파"로서 프랑수아 미테랑보다 좀 더 우파적인 축이다. 이후 더 우경화하여 나중에는 사회당 내의 우파에 이르게 된다.
2001년 에브리 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이듬해 에손 주 제1선거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원내에 진입했다. 2008년 사회당 경선 당시 세골렌 루아얄 전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었다.
2011년 처음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경선에 도전했으나, 6%밖에 얻지 못해 탈락했는데, 이는 안그래도 군소 후보로 추락한 루아얄보다도 낮은 득표율이었다. 대신에 결선에 진출한 프랑수아 올랑드를 지지했으며, 올랑드는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을 누르고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올랑드는 발스를 내무장관으로 지명했으며, 이에 따라 에브리 시장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2014년 장마르크 에로 총리의 뒤를 이어 신임 총리로 지명되었다. 이로서 에두아르 발라뒤르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귀화자 출신 총리가 되었으며, 발라뒤르는 우파였기 때문에 좌파로서는 처음이었다. 이 시절 올랑드와 더불어 혹평을 받았는데, 안그래도 우경화하는 올랑드 정권의 우경화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 바로 발스이기 때문이다.[2] 실제로도 발스는 그렇게 좌파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으며 오히려 중도우파에 가까운데, 별명이 "사회당의 사르코지". 이민 문제 앞에서는 우파들만큼이나 단호했으며, 이민 쿼터제에 찬성하거나 무슬림 불법체류자를 조금의 용서도 없이 강제 추방하는 등 매우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당시 단호한 대처로 지지율이 올랐으나, 얼마 못 가 다시 하락했다. 게다가 올랑드의 지지율 또한 하락하면서 발스의 지지율도 동시에 하락했다. 일부를 중심으로 총리 교체론이 나왔으나, 올랑드와 코드가 잘 맞았는지 무사히 잘 지냈으며, 이 때문에 올랑드 정권의 마지막 총리가 될 듯 싶었다.
2.1. 2017년 대통령 선거
2016년 12월 6일 차기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총리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총리직은 베르나르 카즈뇌브가 대신하게 되었는데, 올랑드가 재선을 포기하고 사회당을 탈당한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5개월 밖에 안 걸리면서 카즈뇌브는 최단기 재직 총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한때 올랑드의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하는 굴욕을 겪었고, 이런 와중에 마땅한 주자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발스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주자로 거론되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전 경제장관인 마크롱이 있었는데, 마크롱은 비록 무소속이지만 사회당 경선에 도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사회당 후보로 나서는 것을 고사하면서, 당에서는 괜찮은 후보를 찾아야 했는데 문제는 '''죄다 상처투성이'''라는 점(...). 게다가 그 누가 나가도 결선 진출은 어려워 보이는 상태였다.
그런데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프랑수아 피용이 공금횡령 의혹을 받게 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고, 이에 따라 사회당에서는 나름의 반등 기회가 생겼으며 발스가 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렇게 잘 가고 있었으나...
비주류인 브누아 아몽이 깜짝 돌풍을 일으키면서 1차에서 2위를 기록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부진하기에 이르른다. 게다가 3위로 탈락한 아르노 몽트부르가 아몽 지지를 선언하면서 먹구름이 제대로 끼었고, 결국 2차에서 약 41%를 득표해 후보가 되지 못한다.
그간 당 내 주류들의 전폭 지지를 받던 발스가 떨어지고 비주류인 아몽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주류에 속하는 올랑드가 국가와 사회당을 몰락에 빠뜨렸으며, 무엇보다도 발스가 나갈 경우 본선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나마 흠결이 적은 아몽을 밀어주려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발동된 것이 주 원인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강성우파인 피용이 나섰고, 피용이 극우인 마린 르 펜과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좌파 진영에서도 스펙트럼이 불분명한 발스보다는 좌파 색채가 뚜렷한 아몽을 밀어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 것.
하지만, 발스가 경선 결과에 불복하며 '''아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내놓았고, 피용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마크롱의 지지율이 대신 상승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사회당에서는 누가 나와도 결선 진출은 요원해 보였으나, 그래도 마크롱이 경쟁력이 있었기에, 마크롱과 성향이 비슷한 발스가 선출되었을 경우 마크롱이 대신 출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곧 사회당이 진출할 가능성이나마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필 발스가 탈락하면서 마크롱이 완주 의지를 굳히게 되었으며, 아몽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발스 입장에서는 경선 불복을 한 것. 물론 아몽이 당 내에서도 배척받던 비주류였던지라 주류들은 아몽을 지지하기에 뭣했으나, 그래도 아몽이 경쟁력이라도 있었으면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지지했을 것이다. 허나 현실은 시궁창이었기에...
게다가 마크롱의 지지율이 1위를 기록하기 시작하고, 곧바로 앙 마르슈라는 신당을 창당하면서, 발스는 결국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이미 올랑드도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고, 사회당의 주류들이 십중팔구 마크롱을 지지했다. 결국 아몽은 지지율이 급락했고, 본선에서 '''5위'''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다만 사회당은 이미 사실상 야당으로 추락한 상태나 다름 없었고, 실질적인 여당은 앙 마르슈였으며, 마크롱이 1위로 무난히 진출했기에, 발스를 포함한 주류들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후 마크롱은 2차에서 무난히 당선된다.
2.2. 스페인에서의 정치
마크롱 취임 직후 총선이 치러지게 되자, 발스는 37년간 사회당을 탈당하고 앙 마르슈로 입당을 시도했다. 그 말은 즉슨, 발스가 앙 마르슈 소속으로 국회의원 재선을 노리려 했던 것. 그러나 앙 마르슈 입당이 '''불허'''되었다. 아무리 마크롱이 올랑드계에 속하고 발스와 마크롱이 친분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일종의 "부역자"인 발스를 대놓고 받아주기에는 뭣했던 것.
결국 발스는 무소속으로 도전해 재선에 성공했다. 상황상 앙 마르슈 재입당 신청을 안 한 듯하다.
프랑스에서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건만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시장을 노리고 시의회 선거에 출마 의지를 비쳐 잠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3] 카탈루냐 독립 반대를 주장했으며, 유럽연합 시민이면 스페인 지방선거에 출마가 가능하다. 그리고 9월에 시우다다노스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총리까지 한 사람이 다른 나라의 공직 선거에 나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논란이 좀 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시우다다노스의 지지율이 낮아 당선 확률은 낮은데, 2019년 5월 치뤄진 시의회 선거에서 시우다다노스가 4위를 하며 시장직에선 더더욱 멀어졌다. 전 선거에 비해 2.1% 득표율과 1석을 추가하는데 만족해야했다. 그나마 발스는 시의회 의원은 될 수 있었는데, 이 때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당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