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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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Schulz'''
독일의 정치인.
무명의 고졸 축구선수 출신으로 시의원, 시장직을 거쳐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입지전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한다.#
1955년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소도시 헬라트(Hehlrath)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 알베르트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하위직 경찰공무원이고, 전업주부인 모친 클라라는 기독교 우파로 기독교민주연합의 창립 멤버이면서 골수 기민련 지지자였다고 한다.[1]
어릴 때는 축구에 미쳐 지역 하위리그 팀인 RHENANIA Würselen 팀의 유스팀에서 활동했고, 1972년 서독 연방 유소년 축구대회 준우승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훗날 슐츠는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대해 "그 때는 축구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당시 나의 성경은 키커였고, 나의 신은 볼프강 오베라트였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5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로 인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고[2] , 고등학교 때 축구에 올인한 터라 대학 진학 시험에도 낙방했다. 이 후 1975년에서 1977년 사이에 도서판매인 직업교육을 이수한 후 5년 동안 다양한 출판사와 서점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82년 그의 누나 도리스와 도서중개회사를 만들어 1994년까지 운영한다.
197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민당에 입당했고, 그 때부터 사민당 청년조직(Jusos)에서 적극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984년 처음으로 Wurselen 시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87년에는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시의회 추천으로 시장에 당선되어 1998년까지 시장직을 겸임한다. 1996년에는 사민당 아헨시지부장에 취임하며 사민당 내에서 젊은 유망주로 주목을 받는다.
1994년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 2000년~2004년까지 유럽의회 내 사민당 대표 의원을 지낸 뒤, 2004년 사회민주주의 성향 당들의 교섭단체인 '사회민주진보동맹'의 원내대표로 당선되어 2012년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2012년 1월 의회 내 진보, 사회자유주의, 중도보수파의 합의로 의장 후보로 추대, 당선되었고, 2014년 7월 재선되어 2017년 1월까지 의장직을 맡았다.
2016년 11월 14일, 차기 의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차기 독일 총선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사민당 비례대표 1번으로 입후보할 계획을 밝혔다.
2017년 1월 24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의 후임으로 당대표 겸 총리후보로 입후보, 1월 29일 사민당 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당대표 겸 총리후보에 당선된다. 이 후 유럽의회에서의 20년 간 의정활동으로 다져진 '참신한 외교전문가' 이미지와 'EU의 수호자' 이미지를 바탕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끼는 무당파층에게 어필했고, 그 결과 2017년 2월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의 지지율이 무려 15년 만에 기민당을 앞서나가는 결과를 낳아 향후 독일 총선의 승패를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전후 최저 득표를 기록하며 사민당은 대패했다'''. 이번 총선은 집권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역시 득표율이 줄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하여 원내 3당으로 진입하는 등 전반적으로 독일 정계의 스펙트럼을 뒤흔드는 충격적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총선 이후 정당 간 입장 차로 기독교민주연합과 자유민주당, 녹색당의 '자메이카 연정[3][4] ' 이 결렬되면서 독일 정국이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자, 대연정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버리고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5일 기자회견에 나온 슐츠는 30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회동할 것임을 밝히며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을 것" 이라면서도 "협상이 곧 대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경우 당원 투표를 거칠 것" 이라고 밝혀 기민련-기사련-사민당의 대연정 체제가 연장될 가능성이 다시 보이는 상황이다.
2월 7일 기민련과의 대연정 협상이 타결되었다. 슐츠는 당수직을 사퇴하고 외무장관으로 입각할 전망이다. 외무,재무장관 등 주요 장관직을 얻어내며 협상 승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대연정은 없다는 자기 말을 뒤집었다는 비판 또한 나오고 있다.
대연정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갈등을 진화하기 위해서 결국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장관직도 역시 포기했다.
'''Martin Schulz'''
1. 개요
독일의 정치인.
무명의 고졸 축구선수 출신으로 시의원, 시장직을 거쳐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입지전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한다.#
2. 정치인이 되기 전
1955년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소도시 헬라트(Hehlrath)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 알베르트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하위직 경찰공무원이고, 전업주부인 모친 클라라는 기독교 우파로 기독교민주연합의 창립 멤버이면서 골수 기민련 지지자였다고 한다.[1]
어릴 때는 축구에 미쳐 지역 하위리그 팀인 RHENANIA Würselen 팀의 유스팀에서 활동했고, 1972년 서독 연방 유소년 축구대회 준우승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훗날 슐츠는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대해 "그 때는 축구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당시 나의 성경은 키커였고, 나의 신은 볼프강 오베라트였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5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로 인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고[2] , 고등학교 때 축구에 올인한 터라 대학 진학 시험에도 낙방했다. 이 후 1975년에서 1977년 사이에 도서판매인 직업교육을 이수한 후 5년 동안 다양한 출판사와 서점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82년 그의 누나 도리스와 도서중개회사를 만들어 1994년까지 운영한다.
3. 독일 사회민주당 입당
197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민당에 입당했고, 그 때부터 사민당 청년조직(Jusos)에서 적극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984년 처음으로 Wurselen 시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87년에는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시의회 추천으로 시장에 당선되어 1998년까지 시장직을 겸임한다. 1996년에는 사민당 아헨시지부장에 취임하며 사민당 내에서 젊은 유망주로 주목을 받는다.
4. 유럽의회 시절
1994년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 2000년~2004년까지 유럽의회 내 사민당 대표 의원을 지낸 뒤, 2004년 사회민주주의 성향 당들의 교섭단체인 '사회민주진보동맹'의 원내대표로 당선되어 2012년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2012년 1월 의회 내 진보, 사회자유주의, 중도보수파의 합의로 의장 후보로 추대, 당선되었고, 2014년 7월 재선되어 2017년 1월까지 의장직을 맡았다.
2016년 11월 14일, 차기 의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차기 독일 총선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사민당 비례대표 1번으로 입후보할 계획을 밝혔다.
5. 독일에 귀국
2017년 1월 24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의 후임으로 당대표 겸 총리후보로 입후보, 1월 29일 사민당 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당대표 겸 총리후보에 당선된다. 이 후 유럽의회에서의 20년 간 의정활동으로 다져진 '참신한 외교전문가' 이미지와 'EU의 수호자' 이미지를 바탕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끼는 무당파층에게 어필했고, 그 결과 2017년 2월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의 지지율이 무려 15년 만에 기민당을 앞서나가는 결과를 낳아 향후 독일 총선의 승패를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전후 최저 득표를 기록하며 사민당은 대패했다'''. 이번 총선은 집권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역시 득표율이 줄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하여 원내 3당으로 진입하는 등 전반적으로 독일 정계의 스펙트럼을 뒤흔드는 충격적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총선 이후 정당 간 입장 차로 기독교민주연합과 자유민주당, 녹색당의 '자메이카 연정[3][4] ' 이 결렬되면서 독일 정국이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자, 대연정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버리고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5일 기자회견에 나온 슐츠는 30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회동할 것임을 밝히며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을 것" 이라면서도 "협상이 곧 대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경우 당원 투표를 거칠 것" 이라고 밝혀 기민련-기사련-사민당의 대연정 체제가 연장될 가능성이 다시 보이는 상황이다.
2월 7일 기민련과의 대연정 협상이 타결되었다. 슐츠는 당수직을 사퇴하고 외무장관으로 입각할 전망이다. 외무,재무장관 등 주요 장관직을 얻어내며 협상 승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대연정은 없다는 자기 말을 뒤집었다는 비판 또한 나오고 있다.
대연정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갈등을 진화하기 위해서 결국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장관직도 역시 포기했다.
[1] 물론 기민련은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이름을 올려 창당했던 민중운동정당으로서 창당 멤버라고 정치적으로 거창한건 아니다.[2] 독일은 2010년까지 징병제 국가였다. 스포츠빠라면 잘 알겠지만 한국도 전/현직 운동선수들이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병역 면제와 함께 선수생활도 꼬인 예가 많다. 물론 병역 면제를 계기로 재기하는 선수들도 있지만...[3] 기민련의 상징생 검정색과 자민당의 노란색, 녹색당의 초록색을 합하면 자메이카 국기 색이 된다는 데에서 유래.[4] 연정 협상의 결렬은 주로 친기업-감세 정책을 주장하는 자유민주당과 그를 절대 수용하지 못하는 녹색당 간의 마찰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