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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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옛 서독과 현 독일의 자유민주당(FDP)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독일 사회민주당과 더불어 독일연방공화국 성립 당시부터 활동했던 주요 정당 중 하나인데 이들과 달리 당명에 '독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진 않으니 주의. 그리고 영국이나 일본의 자유민주당들과 달리 liberal(e)(영어: liberal)가 아닌 frei(영어: free)를 당명에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공화국을 지지한 3개 정당 중 하나인 독일 민주당 출신 사람들이 2차대전 후 많이 참여했으며 상징색인 황색을 이어받기도 했다.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이끌었던 중도우파~우파 독일 인민당의 리버럴 성향의 당원들도 주로 FDP에 가담했다.
2. 성향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 성향을 대변해 왔고, 이 점이 같은 우파 계통의 정당인 기민련/기사련과의 차이다. 그래서 독일 정치계에서는 사민당과도 연정하는 등 중도 기믹을 맡기도 한다. 보수주의나 기독교 민주주의적인 성향은 적고, 자유주의적인 정강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대표적으로 경제 운용에 있어서 규제 철폐를 통한 성장 달성과 같은 정책에서 자민당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반대로 다른 보수정당과 달리 기본권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정도로 역시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도청 허용 범위를 넓히는 것에 대한 반대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우파 정당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대목이 있고, 반대로 좌파 정당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대목이 있다.[1]
그렇기 때문에 1949년 창당한 이래 단독으로 집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역시 거의 대부분의 시절을 어떤 형태로든 연정을 통해 정부에 참여해 왔다. 1961년 이래 1966년~1969년의 대연정을 제외하고는 1998년까지 내각에 참여. 물론 연정에 참여한 대부분의 기간은 기민련/기사련과의 연정. 아무래도 자유주의적인 태도는 세금과 정부 지원을 통한 복지 강화를 추구하는 좌파/진보 계열과는 맞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2] 하지만 1969년 2당이었던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사민당과도 연정을 한 것을 보면, 기본권 중시와 같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보일 때 역시 연정을 만들 수 있는 행보를 취한다. 자유민주당이 복지의 완전한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보육이나 이민자 정책에서는 진보적으로 보일 정도로 4세 이하 의무 보육 확대나, 이민자 자녀에게도 보육 혜택을 주는 것을 찬성하고 있기도 하다.[3]
앙겔라 메르켈 집권 이후 기민련이 중도화된 반면 자민당은 기업 규제, 난민 문제 등에서 기민련보다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린트너의 연정 협상 결렬 이후 더욱.
당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이 때문에 사민당+녹색당(적녹연정)+노란색으로는 "신호등 정부(Ampelregierung)"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뤄진 적은 없으나, 2017년 총선 국면에서 적적녹연정(사민+좌파+녹색)의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정책을 취할 수 있고, 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스펙트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대신 색깔이 모호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약점이 녹색당의 약진과 맞물리고, 사민당과의 "신호등" 연대를 거부. 2000년대 초반에는 그 어떤 정당과도 함께 하지 못하며 완전한 야당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자유주의적인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은 있지만, 독자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지는 아니라는 점이 약점.
분명한 것은 적어도 수십년간 군소정당이 자리잡기 힘든 독일 정치에서 대단히 성공적으로 당세를 유지해 온 정당이라는 점이다.
3. 2010년대의 대몰락
2000년대 초반의 적녹연정 이후에는 기민/기사당 쪽에서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선택하면서 야당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가 2009년 총선에서 47세 귀도 베스터벨레 당수의 인기로 14%의 득표율을 얻으며 93/662석을 확보, 다시금 기민/기사당과 함께 연정의 파트너로 합류할 수 있었다. 귀도 자민당 당수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았다. 이는 직전의 좌우대연정으로 기민당의 보수성향이 희석되면서 지지율이 이탈했고 11년간의 오랜 야당 행보로 자민당에게 동정표가 모아진 이유가 크다. 귀도 당수는 2001년 당시 39세 당시의 선출 이후로 8년간을 자민당의 당수로 있으면서 세번의 선거를 치렀는데, 끝까지 강경한 자유주의 보수성향을 내세운 것이 빛을 본 것이다.
2011년 독일 정당 역사상 최초로 베트남(정확히는 남베트남) 입양아 출신의 필리프 뢰슬러를 새 당수로 선출했다. 최초의 아시아계 출신 내각 각료[4] 이기도 하다. 가톨릭 교인. 하지만 귀도 때와 마찬가지로 연이은 지방선거 참패로 위기에 물렸고 2012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에서 득표율이 5%에도 못미쳐 의석을 얻지 못할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당시엔 예상을 깨고 1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기민당 지지자들이 자민당에게 투표해서 올라간거라 그 반작용으로 기민련의 득표율이 5%나 떨어졌다. 결국 1석 차이로 집권 연정이 패배했고 사민-녹색 연정이 집권. 필리프 뢰슬러 당수는 책임지고 사퇴하고 말았다. 필리프 뢰슬러는 메르켈 2차 내각에 입각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잘 나가다가 브뤼덜레 신임 당수의 성희롱성 망언(가슴드립)으로 지지율은 폭망했으며, 2013년 바이에른 주와 하원 총선거에서 5%에 못미치는 득표를 하는데 그치면서 93석에서 '''0석으로''' 완전히 '''망했어요'''[5] 그나마 총선과 같은 날 치러진 헤센주 의회 선거에서는 5%에 간신히 턱걸히하며 의석을 얻긴했다. 결국 자민당의 몰락으로 인해 메르켈 임기 두 번째로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4. 2017년 총선에서의 부활과 이후 정체
2017년 9월 예정 총선 여론조사에서 안정적으로 7~10% 지지율을 찍고 있어서 연방의회 재진입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다시 기민당과의 연정이 성립될 확률이 높다. #
왜냐하면 사회민주당은 색깔이 다른 기민련/기사련과의 연정에 회의적이며, 기민련/기사련은 4기 정부에서 자민당과의 연정을 바라고 있고, 실제로 2017년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지방선거 결과 사민당-녹색당 연립정권을 탈환하며 기민당-자민당 연립정부를 수립했다.#
2017년 9월 24일 제19대 독일 연방하원 총선거에서 무려 '''80석'''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거기다 사회민주당의 거부로 대연정이 일찍이 무산된 상황이라 기민당/기사련 중심 자메이카 연정이든, 사민당 중심의 선인장 아이스크림 연정이든 연립여당으로서 정권 창출에 함께하게 됐다. 지난 선거의 대부진을 딛고 완벽하게 부활한 셈.
그러나 같은 해 11월 20일 자메이카 연정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린트너 대표 왈 "나쁜 정부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정부를 구성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녹색당과 기민당은 아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난민 문제나 기후변화 문제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번에 연정에 참여했을 때 역대 최악의 결과를 얻은 것도 비타협적인 태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메르켈이 정권 구성에 실패해 재선거가 시행된다면 연정 성립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자민당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슈피겔 등 일부 언론들은 벌써부터 린트너가 진지하게 연정 협상에 임할 생각이긴 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 기성정치를 대표하는 메르켈 정부에 대항하는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강한 조건을 내세우고 협상을 질질 끌었다는 것이다. 린트너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를 지적하지 않은 것 또한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기민련 의원들 사이에서는 자민당이 고의로 독일 민주주의를 사보타주한 나르시스트들이라는 과격한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는 상황.
2018년 3월, 결국 사민당이 당원들의 반발에도 기존 당론을 바꾸면서까지 대연정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자민당은 야당으로 남았다. 대표인 린트너가 2019년 4월 26일 재신임 투표 역시 단독 입후보해 86.6%의 지지를 받으면서 현재의 자민당 당론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민련-사민당 연정이 지지율을 빠르게 까먹는데도 수혜를 못 누리고 녹색당이 약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총선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긴 어렵지 않냐는 분석도 있다.
2020년 들어서 코로나19 위기로 여론이 결집하면서 기민기사련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반대 급부로 다른 야당들은 지지율이 정체 상태로 자유민주당은 5%선이 다시 간당간당한 상황이다.
5. 이후
2020년 2월 치뤄진 함부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봉쇄조항 5%를 넘지 못해 지역구에서 한 석만 건진 채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잃었다.#
6. 여담
학생/청년조직으로 Junge Liberale(젊은 자유주의자들)이 있는데 반-사회주의에 기반한 고전적 자유주의 성향을 띄는 당 주류와 달리 사회적 시장경제에 우호적이며[6] 동시에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 더 급진적인 성향을 띄는 등 중앙당보다 좀 더 중도적인 성향을 띤다.
[1] 자유주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좌우파 양쪽과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규제완화,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 최소화, 친기업 위주의 경제관은 우파와 유사하고,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통제 반대, 절대적인 기본권 옹호, 인권 최우선은 좌파와 동일하다.[2] 자유주의 우파는 사회주의와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민주의 또한 자유주의 우파 입장에서는 멀게 느껴지는 사상이다.[3] 당시 당수였던 발터 셸이 자민당 당수로서는 예외적으로 복지 확대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개방적이었던 영향도 있다.[4] 보건부 장관 → 경제기술부 부총리[5] 기본적으로 1960년대부터 지역구 당선자가 하나도 없이 전국 득표율 5% 초과 만으로 의석을 확보하던 정당이라 언제든 의석수가 0이 될 위험을 안고 지금까지 온 것이었는데,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6] 참고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은 사회관에 있어서는 자민당보다 보수적이지만 경제 정책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지향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식 사회자유주의인 질서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