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로 카모라네시

 

'''마우로 카모라네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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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6'''



''' 이탈리아의 축구감독 '''
''' 이름 '''
'''마우로 카모라네시''' '''UOMRI'''
'''Mauro Camoranesi UOMRI[1]'''
''' 본명 '''
마우로 헤르만 카모라네시
(Mauro Germán Camoranesi)
''' 출생 '''
1976년 10월 4일 (48세)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탄딜
''' 국적 '''
이탈리아 | 아르헨티나
''' 신체 '''
177cm | 체중 72kg
''' 직업 '''
축구선수(라이트윙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CA 알도시비 (1995~1996)
산토스 라구나 (1996)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1997)
CA 반필드 (1997~1998)
크루즈 아술 (1998-2000)
엘라스 베로나 FC (2000~2002)
'''유벤투스 FC (2002~2010)'''
VfB 슈투트가르트 (2010~2011)
CA 라누스 (2011~2012)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 (2012~2014)
''' 감독 '''
코라스 데 테피크 (2015)
CA 티그레 (2016)
타파출라 (2016~2017)
''' 국가대표 '''
55경기 4골 (이탈리아 /2003~20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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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7번, 8번, 16번


1. 소개
2. 클럽 경력
2.1. 남미
2.2. 이탈리아
2.3. 이탈리아 이후
3. 선수은퇴 이후
4. 기타


1. 소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이중국적을 지닌 축구선수로 윙어들의 무덤 세리에 A에서 롱런한 측면의 테크니션[2]이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에서 클래식 윙어처럼 뛰지만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타입으로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테크닉이 뛰어나고 민첩하고 정확한 패스와 크로스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윙어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당대 세리에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윙어.

2. 클럽 경력



2.1. 남미


멕시코의 산토스 라구나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카모라네시는 13경기에서 1골을 넣어 리그우승을 견인하며 클럽의 첫번째 타이틀 획득에 이바지한다. 산토스 라구나의 팬들은 그의 별명을 "엘 촐로(El Cholo)"라고 붙여주었다. 이후 고향팀 반필드에서 뛰기 전에 우루과이 클럽인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잠깐 뛰었고, 중구난방이던 포지션을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굳혀갔으며, 38경기에서 16골을 넣었다. 다음 시즌 멕시코의 크루스 아슬로 이적하여 98-00시즌까지 활약하여 75경기 21골을 넣는다.

2.2. 이탈리아


크루스 아슬에서의 활약으로 카모라네시는 당시 세리에 A소속이였던 엘라스 베로나 FC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후 베로나와 계약했으며 2년동안 활약하였고 2002년 공동 소유권으로 유벤투스가 베로나에게 480만 유로를 지급하고 그들에게 맥스 비에리의 공동 소유권 역시 넘겨주었다. 2003년 6월 26일 유벤투스는 450만 유로를 추가로 지급하면서 비안코네리 군단에 합류하게 되었다.[3] 이후 기존의 주전 라이트 윙이였던 잔루카 잠브로타의 부상을 틈타 카모라네시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신임을 얻어, 잠브로타를 수비수로 전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후 칼치오폴리가 터지고 튀랑, 에메르송, 비에이라, 잠브로타, 즐라탄이 모두 떠나는 와중 여름에 리옹, 발렌시아, 리버풀등의 클럽과 접촉하기도 했으나, 그는 유베의 강등 이후인 9월에 잔류선언을 하고 유베 팬들에게 까방권을 획득한다.
승격이후 사실상 팀의 공격을 이끌던 에이스였다. 네드베드 은퇴이후 선수단에서 몇 안되는 귀중한(...) 월드클래스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피를로 영입 이전까지 유일하게 팀에 창의성을 불어넣어줄수 있는 선수였다.[4] 잭팟투스로 불렸던 시즌의 경기를 보면 카모라네시가 출전했을때와 출전하지 않았을때의 경기력에서 확연하게 구분됐을 정도.[5]

2.3. 이탈리아 이후


10-11 시즌을 앞두고 VfB 슈투트가르트로 자유이적 하면서 독일 무대에 도전했으나 전혀 적응하지 못했고 6개월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카모라네시는 CA 라누스와 계약을 맺으며 고국인 아르헨티나 무대로 돌아왔고 주전 선수로 활약하다 12-13 시즌 라싱 클럽으로 이적했다. 나이가 나이였는지라 측면 보다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출장했으며 2014년 은퇴선언을 했다.

3. 선수은퇴 이후


은퇴 이후 2017년까지 멕시코에서 감독직을 수행했고 그후에는 커피농장을 차렸다고 한다.

4. 기타


별명은 이름을 줄인 카모와 아줌마같은 외모(...)로 인해 카숙모로 불린다. 국내에는 실력에 비해 엄청나게 과소평가된 선수의 대표적인 케이스. 월드클래스급의 실력을 지니고 잠브로타 등 수많은 윙어를 묻어버린 카모라네시에겐 아쉬운 상황.[6]
사실, 국내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도 그 실력은 인정 받았지만 언론 주목도나 언급되는 정도가 실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아르헨티나 출신이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이 되지 못 했고, 같은 클럽에서는 외국인 대표로 언급되던 사람이 무려 네드베드라...
2006년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직후 다른 선수들이 카모라네시의 긴 머리를 자르는 이벤트를 즉석에서 벌인 적이 있다. 자른 머리카락을 들고 신나서 카메라 앞에서 "이탈리아 월드 챔피언" 이라고 선언한건 덤.
[1]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다만,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만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것도 포워드까지 올라가 공격수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기보다는 오른쪽 측면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역할에 능했다. 후술하겠지만 카모라네시가 저평가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3] 같은 날 마르코 디 바이오와 엔조 마레스카가 유벤투스와의 계약에 합의하였다.[4] 창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르더 브레멘으로부터 지에구를 영입했지만 기대이하의 활약으로 실패작이 되었다.[5] 당시 부상으로 두 시즌 간 거의 출전을 못하면서 유벤투스가 칠칠을 찍는데 큰역할을 하게 되었다... [6] 국내에선 해외축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에 칼치오폴리가 터져 세리에 A 출신의 선수의 평가는 엄청나게 박한편이다. 사실 2002월드컵 때 이탈리아전 혈투로 인한 반감이 대부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