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피를로

 


'''안드레아 피를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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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유벤투스'''}}}
{{{-2 41대




'''안드레아 피를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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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2011-12 · 2012-13 · 2013-14
'''FIFA 월드컵 브론즈볼 2006'''



'''베스트팀'''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UEFA 유로 역대 베스트 XI'''[32]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6'''

'''안드레아 피를로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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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Juventus Football Club'''
<colbgcolor=#000> ''' 이름 '''
'''안드레아 피를로''' '''UOMRI'''
'''Andrea Pirlo UOMRI[1]'''
''' 출생 '''
1979년 5월 19일 (44세)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브레시아 도 플레로 시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 조건 '''
177cm | 체중 72kg
''' 직업 '''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 경력 '''
''' 선수 '''
브레시아 칼초 (1992~1995 / 유스)
브레시아 칼초 (1995~1998)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8~2001)
레지나 칼초 (1999~2000 / 임대)
브레시아 칼초 (2001 / 임대)
'''AC 밀란 (2001~2011)
유벤투스 FC (2011~2015)'''
뉴욕 시티 FC (2015~2017)
''' 감독 '''
유벤투스 FC U23 (2020)
유벤투스 FC (2020~ )
''' 국가대표 '''
116경기 13골 (이탈리아 / 2002~2015)
''' SNS '''

1. 개요
1.1. 상세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5.1.1. 2020-21 시즌
6. 전술 스타일
7. 기록
7.1. 대회 기록
7.1.1. 선수 시절
7.1.2. 감독 시절
7.2. 개인 수상
7.3. 수훈
7.4. 출전 기록
8. 피를로에 대한 말, 말, 말
9. 여담
10.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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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3]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유벤투스 FC의 감독직을 맡고있다.

1.1. 상세


피를로는 롬바르디아브레시아 현에서 태어났다.[4] 브레시아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인테르로 이적 후엔 레지나, 브레시아 등으로 임대를 거듭하다 2001년 AC 밀란을 거쳐 2011년 유벤투스 FC로 이적, 2017년까지 뉴욕 시티에서 뛰었다. 패스와 패스센스에 관해선 독보적인 수준으로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로 처음 국제무대에 데뷔했을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유망주들 사이에 월드클래스 미드필더가 하나 있었다.
안토니오니-알베르티니-피를로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레지스타 라인의 적통 계승자로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인정받는다. AC 밀란에서 밀란 제너레이션 2기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2회의 챔스 우승을 이끌었고, 유벤투스로 이적한 후에는 무패 우승과 리그 4연패를 이끌면서 3년 연속 리그 MVP를 수상한다. 2006 독일 월드컵UEFA 유로 2012에서의 활약을 통해 이탈리아 축구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위치에 올라섰으며, 2016년 UEFA에서 온라인 투표를 통해 유로 역대 베스트 11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지네딘 지단,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과 함께 그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자 '''21세기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별명으로는 (노)숙자, 피곤로 등이 있다. 인상부터 지쳐보이며 아래의 노예 역할 덕분에 더 심해진 것 같다. 최근에는 심지어 수염까지 기르기 시작해서 더욱 더 노숙자 포스를 풍긴다. 수염을 기르면서 생긴 별명이 축구 도인(또는 도사). 실력도, 외모도 도인 같아서 붙여졌다. 이 별명이 결정적으로 유행을 타게 된 계기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잉글랜드 vs 이탈리아 경기에서 "35세 177cm"라는 정보가 "'''177세 35cm'''(...)로 잘못 나온 것.
대대로 이어져 온 재벌가에서 태어났고, 유스 시절부터 리더를 맡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인테르 시절을 포함, 유망주 시절에는 최전방 바로 아래의 트레콰르티스타로 출장하였으나 현대 축구의 거친 압박을 이겨내기 위한 공격에서의 속도를 중시하는 조류에 비춰봤을때 피를로에게 적합한 포지션이 아니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AC 밀란으로 이적하고 레지스타 역할을 맡으며[5] 피를로를 포함해 후이 코스타, 클라렌스 세도르프, 카카 등 공격적인 포지션의 선수가 많던 팀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6]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피를로가 직접 수비를 이끈다기 보다는 볼을 배급하는, 공격 쪽에 더 치우친 역할을 맡고 있기에 보통 젠나로 가투소마시모 암브로시니 등의 수비를 주로 하는 미드필더와 같이 나와서 상호보완적인 플레이를 주로 보여준다. 유벤투스에서는 아예 공미를 두지 않고 양옆으로 아르투로 비달,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폴 포그바 등의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를 두어 공수 모두 상호보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태클이나 맨마킹 같은 수비적인 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수비시 위치선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며,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는 편이지만 활동량은 상당히 많아 더 많이 뛰는 선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경고나 퇴장을 받는 횟수도 적은편이다.
밀란의 동료 가투소는 '피를로가 공차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축구선수가 맞나 의심이 된다'라는 말로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2. 클럽 경력



2.1. 초창기


브레시아 칼초에서 데뷔한 피를로는 1998년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주전 경쟁에 밀려 레지나 칼초, 다시 브레시아 칼초로 임대된다.

2.2.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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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인터 밀란에서 AC 밀란으로 이적, 루이 코스타가 있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레지스타로 보직 변경 후 이적한 알베르티니의 공백을 우려하던 시각을 불식시키며 밀란의 주전으로 뛰면서 기량이 급성장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02-03 시즌 밀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다만 유망주에 불과하던 때이니 아주리의 일원으로 2002 월드컵에 참가하지는 못하여서 결과적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03-04 시즌에도 여전히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밀란과 아주리의 레귤러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였고 밀란은 스쿠데토(리그 우승)를 획득했다. 왕성한 활동량과 적지 않은 경기 출장 수를 보여 놀라움을 선사했다.
04-05 시즌엔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로 준우승에 그쳤고 리그에서도 2위에 그쳐 스쿠데토 역시 얻지 못했다. 피를로는 이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스탄불에서의 패배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듯하다. 은퇴할 생각도 했었을 정도라고 하니... 05-06 시즌 역시 뛰어난 활약을 했으나 챔스, 리그 양쪽에서 모두 타이틀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때 리그에 어마어마한 악재가 있기도 했다. 2006 월드컵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에 대한 우려를 받게 되었다. 이때의 피를로는 여러 시즌에 걸쳐 소속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왕성한 활동량에도 부상도 적었으니 피를로에 대한 평가는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해야 할 것이며 당대 동포지션 최고의 선수로 여겨질 정도였다.
특히 02-03~06-07 시즌까지의 밀란은 밀란 제너레이션 2기라고 불리며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와 준우승 1회를 기록, 유럽 무대를 호령하던 최강팀이었다. 피를로는 이 밀란 제너레이션의 빠질 수 없는 핵심 멤버였으며 세계 정상급의 미드필더로 도약하였다.
하지만 06-07 시즌 이후로 밀란의 스쿼드에 노쇠화가 시작됐고 제대로 된 리빌딩을 하지도 못했다. 비록 06-07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2년전 리버풀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며 우승하기도 했지만 당시도 이미 예전만큼의 강력함을 보이지 못하고 노쇠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밀란의 피를로에 대한 의존도도 당시에 이미 매우 컸으며, 결정적으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보낸 팀의 간판 공격수 안드리 셰브첸코의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도 못했다.[7] 밀란이 07-08, 08-09, 09-10 세 시즌간 실망적인 모습을 보일때에도 피를로는 왕성한 활동량과 존재감을 보였으며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케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휴식이 부족하여 거의 혹사에 가깝게 뛰며 피를로의 컨디션에 따라 팀 전체의 경기력이 달라진다거나 직접 프리킥 성공률이 낮아진다거나 피를로를 향한 압박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09-10 시즌에는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노인정으로 전락한 밀란의 스쿼드때문에 노예 수준의 혹사를 당하며(거의 전 경기를 풀타임 출장했으며 거의 매경기 활동량도 적지 않았다.) 예전 만큼의 폼은 보여주지 못하였다. 여전히 롱패스는 일품이지만 프리킥의 경우에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 것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이 시즌이 바로 박지성에게 삭제된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경기가 있었던 시즌. 박지성의 철저한 압박에 경기장 안에서 지워졌다. 인상에 깊게 남았는지 본인의 자서전에 이 경기와 박지성을 직접 언급하였다.
06-07 시즌부터 워낙 혹사를 당해와서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지만, 처진 플레이메이커 포지션에서 피를로와 동급 혹은 능가하는 선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피를로가 빠졌을 때 대체자를 구하기보단 전술을 고쳐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실패했고, 밀란이 세대교체를 위해 피를로를 놓아주는 원인이 된다.'''
단적인 예로, 남아공 월드컵 슬로바키아전때 피를로가 투입되자마자 공격의 활로와 볼배급이 원활해졌다. 피를로가 부상만 아니였다면 이탈리아가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했을지도... 사비 알론소가 피를로와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완전 대체가 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그 전에 현대축구에서 피를로와 같은 처진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하기 힘든 것도 그 원인. 중원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는 현대축구에서 보디가드(가투소, 암브로시니)를 두고 경기를 조율하는 처진 플레이메이커는 유용할 만큼의 플레이를 해 주는 선수는 정말 찾기 어렵다. 사비 알론소의 경우는 피를로보다 천재성과 킥력, 세밀함과 탈압박은 모자라지만 몸싸움,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뛰어나 보디가드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자족하고 있으며 사실 팀에서 보디가드 역할도 어느 정도는 맡고 있다.
안첼로티가 밀란을 떠나고 레오나르두가 감독에 부임해서도 부동의 주전을 꿰찼으나, 레오나르두 역시 성적부진이라는 베를루스코니의 개소리[8]로 경질시켜 버리고, 칼리아리에서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떠오르는 젊은 감독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부임하면서 밀란에서의 상황도 급변하게 된다. 알레그리는 피를로같은 딥 라잉 미드필더보다는 안토니오 노체리노, 케빈 프린스 보아텡, 설리 문타리. 마르크 판보멀같이 활동량 좋은 미드필더를 선호하였고, 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판 보멀이 영입되자 주전에서 밀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타팀에서 쩌리취급받던 보아텡, 문타리, 노체리노는 즐라탄과 환상적인 캐미[9]를 선보였으며, 보멀은 명불허전의 실력을 보이며 다시금 밀란의 미드필더진에 무게를 더했다.[10]
결국 10-11 시즌 밀란은 7년 만에 스쿠데토를 탈환했지만, 유벤투스 FC에서 영입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3년 계약이며 밀란은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피를로를 내줄 수도 있고, 피를로 본인도 이적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2.3. 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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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0-11 시즌이 끝나고 10년간 뛰었던 밀란을 떠나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3년. 이적 후 부활의 개가를 울리며 팀의 에이스로 빛나고 있다. 유베는 피를로의 창조적인 패스와 움직임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중원의 키플레이어를 얻었다. 델피에로가 맡아 차던 킥도 사실상 전담해가며 차는 중이다.[11]
11-12 시즌 유벤투스는 도움왕에 오른 피를로의 활약에 힘입어 클럽 역사상 최초로 '''무패 우승'''을 달성한다. 코파 이탈리아도 무패로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무패 더블'''까지 노렸지만 나폴리에게 패해 무산. 이 활약으로 피를로는 커리어 처음으로 세리에A 올해의 선수상을 받게 된다.
12-13 시즌에도 여전히 유베의 간판 에이스로 활약, 과거 밀란에서의 혹사로 떨어졌던 프리킥 정확도가 다시 상승하여 시즌 초반임에도 꽤나 많은 수의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다. 메시가 피를로의 프리킥을 참고해서 골을 기록하고, 서로 인터뷰로 존경을 표시하는 훈훈한 일화도 있었다. 최근 아탈란타전에서 또 골을 성공시켜 본인의 한시즌 최다 프리킥 골 타이를 기록, 소속팀 유베는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피를로도 2년 연속 세리에A 올해의 선수에 선정.
그러나 챔스 8강에서 만난 FC 바이에른 뮌헨이 강력한 중원 압박으로 피를로를 봉쇄하는 전술을 들고 나오면서 피를로에 대한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고, 유벤투스도 합산 스코어 4-0의 완패를 당한다. 이제 거의 모든 구단들이 對유벤투스전에서는 중원 세명으로 피를로 묶기라는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해 유벤투스의 안그래도 암걸리는 공격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만큼 피를로의 존재감이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엄청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12] 하지만 이 때 바이언은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고 경기력 자체에서 유베가 완전히 압도당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피를로 혼자서 어떻게 해 볼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천하의 메시조차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 팀이 아니던가?[13]
13-14 시즌에도 유베의 역대 최다 승점 우승(102점)을 이끌면서 개인 통산 3번째 세리에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다. 3년 연속 수상은 역대 최초.
14-15 시즌 들어서는 수비적으로 도움이 거의 안되고 있다. 그래도 비달의 트레콰르티스타 기용과 마르키시오가 수비적으로 많이 보조를 해주면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보여주고 있다. 다만 전 시즌에 비해 패스 미스가 늘고 압박이 거세게 들어오면 공을 뺏기는 모습이 자주 나오고 있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위험도가 많이 큰편. 부상으로 출장 못하던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교체되어 나가거나 때론 풀타임으로 출장하며 유베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다.[14] 유베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피를로가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전이 그 계기인듯. 유베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해서 바르샤와 트레블을 다투게 되었다. 피를로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풀타임 출장했으나, 경기력은 저조했고 팀은 3-1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피를로는 이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보였는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흔히 오지 않는, 자신에게 너무 아쉬운 기회여서 그랬다고 한다. 교체로 잠시 나와 다시 우승한, 이제 곧 팀을 떠날 바르샤의 주장 차비와 풀타임으로 출장해 준우승한 피를로가 대조되기도 했다. 다만 피를로 역시 이후로 유벤투스를 떠날 것으로 보였으나, 챔스 결승전을 다시 경험한 이후로 생각이 조금 바뀐듯. 앞으로 있을 유로 2016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피를로를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한 이탈리아는 스페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팀이었다. 유로 2008때 스페인과 8강전에서 치열한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패한 것도 그렇고,[15] 2011년 8월 10일에 벌어진 평가전에서도 피를로가 대활약하며 2-1로 승리를 거뒀다. UEFA 유로 2012에서도 스페인vs이탈리아의 조별 예선 경기는 팽팽한 긴장감과 전술싸움, 화려한 경기력으로 대회 최고 명경기로 꼽힌다.[16]여기까지는 좋았던 장면이고 결승전은 이것저것 악조건이 겹치는 바람에 대차게 털렸지만. 스페인의 감독 델 보스케는 이 당시 스페인의 대승에 대해 이탈리아가 휴식이 부족해 지친 덕분이라 말한바 있다. 그리고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이탈리아는 스페인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15-16 시즌 MLS 뉴욕시티로 이적이 유력해지고 있다. 뉴욕 시티 홈페이지에서 21번 등번호가 부여된 사진이 올라왔으나, 바로 삭제되었다. 유벤투스 스토어에서도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아, 발표만 안 되었을 뿐, 이적 확정인 듯 하다.

2.4. 뉴욕 시티 FC


2015년 7월 6일자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입단 직후 바로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하였으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뛰고 왔기 때문에 일단은 휴식을 취한 뒤 7월 26일 올랜도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MLS 데뷔전을 치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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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올랜도 시티와의 경기에서 홈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후반 교체 출전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5:3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특히 뉴욕 시티는 미드필더진에서 상대팀의 압박에 눌리는 모습이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었는데 피를로는 상대의 압박을 가볍게 피하면서 특유의 킬패스 한 방으로 곧바로 역습으로 전환시키는 등 클래스를 입증하였다. 7월 26일 경기에서 뉴욕 시티의 3번째 골과 4번째 골은 사실상 피를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 후 몬트리올 임팩트, 뉴욕 레드불스와의 경기에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8월 14일 DC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다비드 비야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간만에 클래스 입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깊숙이 내려와 빌드업 과정에도 참여하고 킬패스와 중거리슛, 가끔은 최전방까지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체적으로 고령의 나이와 14-15 시즌 세리에 A를 풀로 치루고 오면서 따른 체력적인 문제 때문인지 몇몇 번뜩이는 모습을 제외하곤 경기에서 지워지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최근엔 체력을 어느정도 회복했는지 골도 넣어주고 있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현지에서 "피를로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아니다. 이 돈 주고 데려올 필요는 없었다."라는 칼럼까지 나왔을 정도.
2017년 12월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0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고 득점왕+MVP를 싹쓸이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역시 우승이 기대되었으나, 8강전에서 스페인에게 패해 탈락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발탁되지 못했지만, 2002년 처음 성인 대표팀에 소집된 이후로는 꾸준히 대표팀에 차출되며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하였고, UEFA 유로 2004부터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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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지단과 함께 대회 최고의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이탈리아의 통산 4번째 우승에 공헌했다. 특히, 가나전, 4강, 결승 3경기에서 MOM에 선정되며 골든볼+발롱도르+피파 올해의 선수상 석권이 가능해 보였으나, 결국 골든볼은 지단이, 발롱+피올은 칸나바로가 가져갔다.
그 뒤 UEFA 유로 2008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이탈리아도 조기 탈락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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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UEFA 유로 2012에서 피를로는 스페인이니에스타와 함께 대회 모든 선수들을 통틀어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했고, 전세계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디 나탈레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크로아티아전에선 무회전 프리킥골, 아일랜드전에서 발로텔리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조율을 넘어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1-2로 뒤진 상황에서 파넨카 킥을 시도하는 대담함을 보였고 이후 잉글랜드는 거짓말처럼 애슐리 영애슐리 콜이 PK를 실축하면서 이탈리아는 4강에 진출한다.[19][20] 이후 독일과의 4강전에도 선발 출전해 팀의 2-1 승리를 이끌며 MOM으로 선정, 유력한 대회 MVP 후보로 떠오른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팀 전체가 체력적인 열세를 드러내며 0-4로 참패했고, MVP도 이니에스타에게 내줘야 했지만, 피를로는 '''MOM에 대회 최다인 3회''' 선정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서는 멕시코전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선보이며 이탈리아를 3위로 이끌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피를로는 아주리의 주전으로 출전, 1차전 잉글랜드전부터 마르키시오의 선제골 장면 때 환상적인 흘려주기를 시전했고, 경기 종료 직전엔 조 하트를 꼼짝 못하게 하는 프리킥도 선보이는 등 그 클래스를 입증한다. 그러나 팀으로서의 이탈리아는 부상으로 말미암은 선수의 이탈이라던가, 선수들의 폼 저하 등 여러모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피를로는 여전히 좋은 활약과 패싱 스킬을 선보였고 기대감도 보였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줄어든 활동량이라던가 여러모로 아쉬운 면을 노출했다. 결국 이어진 코스타리카, 우루과이전에서 연이어 0-1로 패하며 이탈리아는 2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면 대표팀을 은퇴하겠다고 하였으나, 새로 아주리의 감독이 된 콘테가 대표팀으로 부르면 다시 뛰겠다며 입장을 번복하였다.
UEFA 유로 2016에서는 미드필더롤을 맡는 선수들의 부상이 많아 승선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으나, 감독인 콘테가 선발하지 않아 결국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지 못했다. 이후 자국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후인 2017년 12월, 현역 은퇴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피를로를 볼 일은 영구히 없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2018 월드컵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스웨덴에 패하자 피를로는 벤투라에게 2차전에서는 4-3-3 포메이션을 쓰라고 조언했으나, 벤투라는 끝내 3-5-2로 일관하였고, 이탈리아는 6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된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패스 스킬과 넓은 시야, 번뜩이는 창조성으로 경기를 조율한 선수로 피를로의 상대 수비수를 살짝 넘겨 바로 득점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로빙 스루 패스는 그의 전매 특허로 동시대 선수들 중에서는 최고로 손꼽힌다. 그뿐만 아니라 시야가 넓고 숏패스, 롱패스의 정확도가 모두 뛰어나 게임을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해 피를로가 있는 팀은 거의 모든 팀이 피를로를 중심으로 게임을 운영한다. 패스 센스가 뛰어나고 상대 선수와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나 결정적인 패스 한번으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킬패스 능력 역시 탁월.
거기에 킥력이 워낙 좋아 중거리슛도 뛰어나서 과거에는 엄청난 초장거리골로 카시야스를 관광보낸 적도 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피를로는 그야말로 최고의 무기. 탁월한 롱패스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최고의 직접 프리키커이기도 하다. 주니뉴와 함께 최고의 무회전 프리키커로 평가받기도 했다.[21] 밀란 말년에는 이런 프리킥 득점 능력이 거의 사라져버려서 비판을 받았으나, 유벤투스 이적 후 직접 프리킥 능력 또한 부활해서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프리킥 골을 기록했다.
선수의 롱패스와 중거리슛의 정확도가 뛰어나다는 것은 '반코트 관광', 소위 가둬놓고 패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옵션이 된다. 중거리로 뜬금 득점을 노리거나, 상대가 중거리슛을 막으러 앞으로 달려나오는 상황을 만들수도 있고, 롱패스로 공격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교란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의 방향에 따라 상대 선수들이 압박을 펼치러 계속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유도할 수 있고, 추가적으로 그걸로 인해 생기는 빈 공간을 공격 자원들이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기 때문. 거기에 잊을 만 하면 터져나오는 정교한 중거리슛은 상대가 웅크리고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더더욱 힘을 발휘하는 전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둬놓고 패는 상황에서 피를로의 위력은 배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피를로의 진가는 사실 측면에서 부터 역습전개를 주로 하는 클럽에서 빠르게 역습전개의 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게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그간 피를로가 있었던 팀들은 대부분 측면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었던 팀들이었다. 그나마 02-04 시즌 즈음의 세르지뉴나 2006 월드컵 때의 마우로 카모라네시처럼 한쪽 사이드나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에 그치는 정도였기 때문. 패스를 축으로 하는 테크니컬한 미드필더들은 무엇보다 측면자원이 잘하면 잘할수록 필드 위에서 존재감이 극대화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피를로는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던 것인데, 이건 전적으로 피를로의 패스 스킬이 터무니 없이 높은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수비 라인 바로 위에서 활동하면서 전진이 제한되는 선수이기 때문에 패싱 스킬로 포워드 라인까지 포괄하는 찬스메이킹을 이루어냈고, 그것은 피를로로 하여금 2006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12 준우승의 주역으로 돋보이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뛰었던 팀들이 측면전술은 어느정도 포기하고 들어가는 제약까지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같은 점은 피를로의 패싱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입증하는 단적인 예.
패스 마스터로 일컬어지는 샤비 알론소는 물론이거니와 과거 펩 과르디올라,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등 거의 대부분의 앵커맨들과 차별화되는, 포백 앞 홀딩롤이면서도 찬스메이커로서 역량도 함께 지니고 있고 이걸 필드 위에서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피를로만이 지니고 있는 유니크성이다. 팀의 메인 포켓 플레이를 담당하는 홀딩이 팀의 메인 찬스메이커로서도 활약 가능하다는 건 여타 홀딩들과 분명 구별될만한 장점인데 최후방에서 발 끝으로 우군의 포워드 라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프란츠 베켄바워조차 피를로 만큼은 아니었을 정도.[22]
상대 공격을 끊는 볼란테로서 상대 공격의 경로를 차단, 수비진 앞에서 일격에 전개되는 패스는 피를로만이 가능한 플레이로써,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미드필더이며 경기 흐름을 읽고 동료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그가 레지스타(director)라 불리는 이유이다. 이전까지는 지네딘 지단을 위시한 플레이메이커의 존재가 당연시 되고 있었지만 피를로는 다른 방향으로 그 역할을 대신해 또다른 판타지스타의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밀란에선 공수 양면에 기여하는 피를로가 있어 비교적 수비적인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전술을 운용하면서도 공격 상황에서 상대의 수비 숫자에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피를로는 분명 수비형 미드필더면서 직접적인 찬스메이킹 또한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이는 때로 팀에 약점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수미면서도 팀내 찬스메이킹까지 도맡아하니 상대 입장에선 피를로만 마크하면 팀내 볼배급을 막을 수 있으며 때로 수비라인까지 직접 압박할 수 있기 때문.[23] 피를로가 볼을 쉽게 빼앗기는 선수는 아니지만 상대의 맨마킹을 간단히 이겨내며 본업인 볼배급을 정확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볼 간수능력이 절륜하냐면 그 정도는 아닌데, 박지성이나 07-08 시즌 UEFA 슈퍼컵에서 폴센이 피를로를 마크해 패싱을 막았던 것이 위의 단점을 잘 보여줬던 사례이다. 밀란에선 피를로를 전담 마크하면 셰도르프를 통해 우회해 이를 무력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24] 유벤투스로 이적 후 발 기술과 탈압박 능력이 좋아지면서 웬만한 압박에는 볼을 빼앗기지 않고 때때로 개인기로 상대선수를 간단하게 제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패싱력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 불려도 무방할 수준이며 활동량도 많아 공격과 수비 모두에 기여하는 선수지만[25],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볼탈취 능력이 탁월해 강고한 수비를 보여준다거나 스피드가 좋아 팀에 다이나믹함을 더하며 직접 공격이나 개인 전술에 위협적이지는 못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
피를로와 주로 비교 되어 온 선수는 피를로와 마찬가지로 패스에 강점을 지닌 선수들인 차비 에르난데스샤비 알론소와 같은 선수들이다. 차비와는 플레이 롤이 좀 다르고 전성기의 시점도 다른편이며 알론소와는 비교적 유사한 포지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외에 동시기 같은 리그 내의 에스테반 캄비아소다니엘레 데 로시, 혹은 타 리그의 존재감을 과시하던 선수들인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 과거 선수 중에서는 피를로 이전의 레지스타의 대표격이었던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그리고 비록 플레이 스타일은 다르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 당대 EPL 최고였던 로이 킨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인 페르난도 레돈도 등을 비교 대상으로 꼽을만 하다.
패스 센스 역시 세계 최고 레벨. 어떤 이는 차비 에르난데스가 그보다 뛰어난 패스를 선보인다고 하지만 최전방을 향하여 찔러넣는 킬패스만큼은 피를로가 앞선다. 사비의 경우 패스 외에도 최상급의 탈압박 능력이 주무기이며 플레이 스타일상 중원에서 바로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보단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 특유의 짧은 패스를 이용한 공격에 가장 적합한 선수이다.[27]
피를로는 민첩하긴 하나 주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고, 매경기 많은 활동량을 보이는 선수이니만큼 체력에 약점을 보이기 쉽다. 이는 볼 키핑 능력이나 패싱(프리킥) 능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며 피를로의 플레이는 그를 쉽사리 대체할 수 없는 선수로 만들었으니 선뜻 휴식을 주기도 어려운 것이다.[26] 가장 중요한 롤을 맡는 선수가 활동량이 가장 많다는 점에 문제의 원인이 있었다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벤투스 이적 후 적은 경기수를 가졌을때 더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고.
동시기의 같은 팀, 전성기 시절의 카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중요한 선수였으며, 그 만이 가능한 유니크한 플레이를 통해 피치위에 영향력을 끼치던 존재감이 엄청난 선수였다.
여담으로 킥모션에서 백스윙이 상당히 간결하다. 롱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사비 알론소나 스콜스, 제라드 등과 비교해보아도 킥 동작이 상당히 작고 간결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흡사 칩킥을 시도하는 것 같은 모션에서 중장거리 패스가 나오는 듯한 모습. 프리킥도 동일 모션에서 임팩트 순간만 조절하여 감아차기와 무회전을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 지도자 경력


선수 경력 은퇴 이후 코칭 라이센스를 취득하며 감독 커리어를 예고했다.
2020년 7월 30일, 유벤투스 FC U23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써 유벤투스 2군들을 지도하며 커리어를 쌓아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5.1. 유벤투스 FC


[image]
'''유벤투스 FC 선임 오피셜'''
현지시각 2020년 8월 8일,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경질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U-23 감독직으로 선임 된지 약 9일만에 유벤투스 1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계약기간은 2년이며, 언론에서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현재 맡고 있는 팀이 없었기에 유력한 후보로 꼽았으나, 유벤투스 출신 레전드이긴 하지만 '''1군 감독 경험이 없는''' 피를로를 선임하자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전임 마우리치오 사리의 선수단 장악력이 부족했었던 점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고 또한 지속적으로 링크가 나던 펩 과르디올라의 계약이 끝나는 2022~23년쯤 선임하기 전 팀을 맡아줄 징검다리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연봉이 180만 유로로 사리감독 연봉인 550만 유로보다 매우 저렴해서 구단측에서 고연봉의 이름난 감독을 선임하기에 부담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도 나왔다.
피를로는 구단에게 케디라, 코스타, 이과인의 처분과 함께 토날리의 영입을 주문했다고 한다. 구단은 현재 단장역할을 파라티치에서 체루비니로 교체하며 영입기조의 변화를 예고하였으며, 임대이적을 줄이면서 호날두, 더리흐트 등의 빅사이닝으로 인한 스쿼드 불균형, 주급체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피를로가 삼고있는 첫 목표로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피를로는 관련 '''코치나 감독직을 단 한번도 맡아본적이 없는''' 초보 감독이라는 것이다. 팀 레전드가 감독으로 부임한 다른 감독들은 적어도 관련 직종을 한 번이라도 맡아본 적이 있다. FC 바르셀로나펩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팀 감독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으며, 레알 마드리드지네딘 지단안첼로티 시절 수석 코치 직책을 맡았고, 카스티야 팀의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올레 군나르 솔샤르 역시 맨유의 유소년 감독을 맡아서 유소년 FA컵을 우승한 바 있으며, 카디프 시티 FC몰데 FK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적도 있다. 첼시 FC프랭크 램파드 또한 더비 카운티 FC의 감독직을 수행한 바 있었다. 심지어 감독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아스날 FC미켈 아르테타조차 맨시티에서 3년 간 펩의 수석코치 역할을 맡으며 시티 왕조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바 있다. 이들과 달리 피를로는 U-23 팀을 10일 밖에 맡지 않고 바로 성인팀으로 넘어온 생 초짜라는 점이다. 말이 10일이지 부임이후 한 경기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 역할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심지어 P급 라이센스를 획득하지 못한 상태여서 10월까지는 수석코치가 대신 감독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시즌 개막 전에 UEFA PRO 논문을 제출, 무사히 통과를 한 덕분에 개막전부터 문제 없이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5.1.1. 2020-21 시즌


세리에 A 1라운드 삼프도리아와의 개막전에서 3:0을 만들며 감독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3-4-1-2라는 독특한 포메이션에 다닐루를 3백 중의 하나로 투입하는 독특한 전술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사리에게 중용받지 못한 아론 램지를 선발로 기용해서 부활시켜 맹활약을 펼치게 하는 등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라운드 로마 원정에서는 그래도 안정적인 4백을 꺼내들었고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마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선보일듯.
하지만 이후 리그 2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챔스 조별리그 2차전 바르셀로나에게도 홈에서 지고 말았다. 코로나19로 빠진 호날두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호날두 복귀 이후 스페치아전 4-1승, 페렌츠바로시전 4-1승, 대승을 2연속 기록하며 다시금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 후 디나모 키에프와의 홈경기에서 3-0으로 이기며 주전선수들 체력관리도 해주는 등 괜찮은 경기를 펼쳤다.
그 후 리그 토리노전에서 상당히 답답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0-1로 패하는 것 같았으나 매케니의 교체투입과 센터백을 적극적으로 공격에 올리는 전술이 맞아들어 아슬아슬한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강등권 팀들과의 대결에서 자꾸만 답답한 경기력이 나오고있어 팬들의 반응은 영 좋지않다.
토리노전 이후 챔스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를 3-0으로,[27] 세리에 11R에서 제노아를 3-1로 연속으로 이겼다. 토리노전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둔게 분위기 상승의 발판이 된걸로 보인다. 게다가 토리노전과는 다르게 저 두경기는 경기력도 꽤 준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발라가 멋진 득점을 하며 폼을 끌어올리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는게 상당히 긍정적이다. 긴 시즌을 치르는데 있어 디발라가 제 실력을 되찾는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후 챔피언스리그 16강 상대는 약체급인 FC 포르투로 결정됬다. 상당한 약체인 만큼 무난한 승부가 예상되나 당장 저번시즌에 올랭피크 리옹에게 광탈한 가슴아픈 역사가 있는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12R 아탈란타전에서는 공격수들이 골 기회를 계속 놓치면서 정말 아쉬운 1:1 무승부를 거뒀다. 1위 AC 밀란은 무승부, 2위 인터 밀란은 승리하면서 유베는 리그 3위가 되었다.
피오렌티나전 3대떡 대졸전 이후에는 밀란,사수올로 등 난적들을 3:1로 잡아내며 분위기를 어느정도 회복했다. 코파이탈리아도 16강에서 유스들을 대거 출전시키고 연장혈투끝에 3:2로 제노아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리그 18R 인테르전에서 2:0으로 패배하면서 순위는 5위까지 밀려났다. 이 페이스라면 리그 우승이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
수페르코파 결승전에서 나폴리를 2:0으로 잡고 감독커리어 첫 우승트로피를 들었다.
이후 볼로냐에게 2:0으로 승리하고 다른 강팀들이 다 미끄러지며 그나마 한숨 돌릴수 있게 되었다.
코파 이탈리아 4강전에서 라이벌 인테르를 만나 총합 스코어 2:1로 결승에 진출해서 여론이 좋아지는듯 했으나...
리그 우승 향방을 가를 나폴리전에서 0:1 석패를 당하고 다음 경기인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포르투전에서 챔스 대권을 노리는 팀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토나오는 경기력으로 포르투에게 1:2 패배를 당하며 팬들은 피를로 아웃을 외치고 있다.

6. 전술 스타일


피를로가 제출한 축구논문인 ''' Il Calcio che Vorrei'''[28]에 따르면 피를로가 추구하는 축구는 점유율을 중요시하고 전방압박과 수적우위에 기반한 공격작업을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인 축구이다. 이 과정에서 피를로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와 사수올로의 로베르토 데 체르비감독의 전술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피를로 감독은 3백과 2미들을 이용해 후방빌드업을 진행한다. 피를로 감독 아래에서 윙백은 높게 전진하며, 공격상황에서 수적우위와 침투를 통해 중앙에 공간을 유도한다. 중앙 미드필더와 투톱은 끊임없이 침투 움직임을 가져가며, 유기적인 스위칭을 통해 침투로 인해 발생한 빈공간을 공략한다.
피를로는 공격을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폭에 대한 중요성과 수적 우위를 강조한다. 윙백을 빠르고 드리블 돌파가 가능한 선수들을 기용하여 측면으로 수비를 이끌어 내고 이 빈공간을 수비수까지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통해 공략한다.
다만 이는 본인의 이상적인 전술철학이고 현실은 그렇지 못할때가 많다. 피를로 감독의 전술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포워드는 뛰어난 제공권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빈공간을 찾아들어가는 움직이 뛰어나고, 다른 선수들을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타겟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직접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완성형 포워드가 필요하다. 게다가 2미들 만으로 볼전개를 시도하다 보니 중원에서 뛰어난 탈압박 능력을 지니고 있고,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볼을 탈취하고 중원을 장악해줄 수 있는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결국 선수들의 역할이 극히 제한되어 있고, 개인기량이 뛰어난 몇몇 선수들에게 공격작업을 의존하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부재시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변칙적인 전술에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대표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페렌츠바로시 2차전과 세리에A 토리노 더비 등에서 선수비 후역습에 대한 대처를 전혀 하지 못했다. 경기가 안풀릴 경우 무한 크로스만 반복하다 끝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본인 전술에 대한 철학이 워낙 확고하다 보니 선수별 특성에 따른 세부적인 지시나 전술변화가 전혀 없어 보는 팬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7. 기록



7.1. 대회 기록



7.1.1. 선수 시절



7.1.2. 감독 시절



7.2. 개인 수상



7.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4등급: 2006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5등급: 2004

7.4.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4-95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A
1
0
0
0
-
-
1995-96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B
0
0
0
0
-
-
1996-97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B
17
2
1
0
-
-
1997-98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A
29
4
1
0
-
-
1998-99
인터 밀란
세리에 A
18
0
7
0
7
0
1999-00
레지나
세리에 A
28
6
2
0
-
-
2000-01
인터 밀란
세리에 A
4
0
1
0
3
0
2000-01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A
10
0
0
0
-
-
2001-02
AC 밀란
세리에 A
18
2
2
0
9
0
2002-03
AC 밀란
세리에 A
27
9
2
0
13
0
2003-04
AC 밀란
세리에 A
32
6
0
0
10
1
2004-05
AC 밀란
세리에 A
30
4
1
0
12
1
2005-06
AC 밀란
세리에 A
33
4
4
0
12
1
2006-07
AC 밀란
세리에 A
34
2
4
0
14
1-
2007-08
AC 밀란
세리에 A
33
3
1
0
9
2
2008-09
AC 밀란
세리에 A
26
1
0
0
3
1
2009-10
AC 밀란
세리에 A
34
0
1
0
8
1
2010-11
AC 밀란
세리에 A
17
1
3
0
5
0
2011-12
유벤투스
세리에 A
37
7
4
0
-
-
2012-13
유벤투스
세리에 A
32
5
2
0
10
0
2013-14
유벤투스
세리에 A
30
4
1
0
13
2
2014-15
유벤투스
세리에 A
20
4
2
0
10
1
2015
뉴욕 시티
메이저리그 사커
13
0
0
0
-
-
2016
뉴욕 시티
메이저리그 사커
32
1
0
0
-
-

8. 피를로에 대한 말, 말, 말


'''피를로에게 패스하는 것은 공을 금고에 넣어 두는 것과 같다.'''

-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그 누구도 피를로를 대신할 수 없다.'''

- 다니엘레 데 로시

'''피를로는 정말 환상적인 선수다. 그는 믿지 못할 만큼 엄청난 시야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어떤 곳으로든 공을 보낼 수 있다.'''

- 요한 크루이프

'''그는 밀란유벤투스에게 건넨 가장 환상적인 선물이다.'''

- 파비오 카펠로

'''그는 유벤투스를 구원했다. 예수의 재림이라는 찬사는 전혀 무리가 없다.'''

- 레오나르도 보누치

'''피를로는 입이 아닌 발로 말하는 조용한 리더이다. 그는 어떠한 전술적인 상황에도 완벽히 녹아들 수 있는 필드 위의 챔피언이며, 지능적이고 위대한 클래스를 지니고 있다. 어떠한 팀에서도 핵심적인 존재가 되는 법을 알고 있는 최고의 스타이기도 하다.'''

- 마르첼로 리피

'''안드레아 피를로는 축구사에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 체사레 프란델리

'''피를로를 바라볼 때면, 단지 그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진다.'''

- 폴 포그바

'''이탈리아는 오직 피를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피를로는 90분 내내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팀을 이끌어나가는 이탈리아의 진정한 핵심이다.'''

- 미셸 플라티니


'''피를로는 세계 최고를 말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를 상대로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름답고 경이롭다. 피를로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축복일 것이다.'''

- 티에리 앙리

'''내가 훈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 피를로가 프리킥을 차고 있었다. 나는 다시 축구화를 신고 필드에 올라가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알바로 모라타


'''안드레아 피를로는 그가 지닌 모든 훌륭한 재능과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함께 경기를 뛰면 모든 것이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다. 그는 늘 남보다 먼저 예측하고 경기를 조율한다. 그가 경기를 보는 시야와 창조력은 그를 진정한 슈퍼 스타로 만든다.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 로베르토 바조

'''피를로는 필드 위의 가장 완벽한 구심점이다. 그는 창조자, 건축가, 예술가이다.'''

- 프란츠 베켄바워

'''피를로는 더없이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런 수준의 패스와 시야를 보유한 선수를 완벽히 방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는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존 테리

'''피를로가 내게 우리 팀에 올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신은 존재한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계약이 세기의 이적이라고 생각한다. 피를로는 진정한 축구 천재 중 한 명이고, 그를 멈추려는 팀들의 플랜을 보는 것은 즐겁다. 그는 한순간 번뜩임으로 그들의 계획을 무너뜨리곤 하지.'''

- 잔루이지 부폰

'''피를로는 스펙터클한 축구 선수이다. 현 지구 상에 그의 재능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AC 밀란, 그리고 유벤투스를 상대로 경기를 뛰어 봤다. 나는 항상 피를로의 팬이고, 항상 그를 존경한다.'''

- 차비 에르난데스

'''피를로는 치명적인 선수다. 이번 시즌, 그는 밀란을 떠나는 쉽지 않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리더로서 유벤투스를 이끌며 우승시켰다. 피를로는 언제나 실력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 나는 피를로를 존경해 왔다.'''

- 샤비 알론소

'''밀란은 정말로 두려운 팀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단연 피를로의 존재였다.'''

- 스티븐 제라드

'''제라드도 위대한 선수지만, 피를로는 천재다. 그의 롤에서 피를로는 여전히 세계 최고다. 현존하는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피를로만큼 후방에서 롱 볼을 전개시킬 수 없다. 그가 순식간에 전방 3~40m의 패스로 공격수에게 전달하는 패스는 아름답다. 많은 선수들이 후방에서 활약하지만, 어느 누구도 피를로만큼 감각적이지 않다. 그와 다른 선수들과의 차이는 바로 상황마다 발휘되는 '직감'에 있다. 그는 이미 35살의 노장이지만, 아직 이탈리아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선수는 없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밀란은 피를로가 끝났다고 판단했고, 그가 유벤투스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어. 현재 그는 유벤투스 선수로서 우승을 차지했고, 조국을 결승전으로 이끌었어.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고, 밀란이 그를 판 것은 실수였어.'''

- 뱅상 콤파니

'''피를로는 위대한 선수지. 그는 이탈리아의 중앙에서 팀을 지휘해. 동료들은 그에게서 좋은 패스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어.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그의 발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 돼. 그를 어떻게 막느냐가 경기의 승패를 가를 거야.'''

- 이케르 카시야스

'''피를로가 공을 차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진짜 축구 선수가 맞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 젠나로 가투소

'''내가 보기엔 피를로가 차비 에르난데스보다 좀 더 시야가 좋다고 봐. 피를로는 좀 더 넓게, 그리고 긴 패스를 연결시킬 수 있어. 물론 사비가 좀처럼 패스에 실패하지 않는 놀라운 선수긴 해. 그러나 그것은 사비는 주로 짧은 패스를 즐겨 하고, 20m 내외의 패스를 연결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실패할 확률은 줄어들 수밖에. 피를로는 좀 더 어려운 패스를,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하는 스타일이지. 내가 보기엔 피를로가 사비에 비해 좀 더 완성된 스타일의 선수야. 피를로가 더 볼을 위협적으로 보낼 수 있고, 또한 더 좋은 프리킥 능력으로 골을 성공시키기도 해. 수비 시에도 사비에 비해 좀 더 나은 태클 능력을 가지고 있지. 반면에 샤비는 좀 더 좋은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둘이 팀을 바꾸더라도 둘 다 잘해 줄 거야. 그러나 샤비는 좀 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 적합한 반면, 피를로는 그의 동료들에 맞춰서 속도를 불어 넣을 수 있을 거야. 따라서, 프란델리 호의 피를로가 델 보스케 호의 사비보다 좀 더 중요하다고 봐.'''

- 루이스 수아레스

'''피를로는 축구 그 자체다. 그가 볼을 가지고 하는 플레이는 믿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선수 옆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이 난 정말 행복하다. 매일매일 그로부터 난 많은 것을 배웠어. 그는 내가 향상될 수 있도록 유용한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 알렉산더 메르켈

'''피를로의 패스가 대단한 건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볼을 가진 순간 적어도 패스 선택지를 3개는 가지고 있다.'''

- 크리스티안 키부


9. 여담


  • 어린 시절부터 인테르의 골수 팬이었지만 전성기를 인테르의 라이벌인 밀란과 유벤투스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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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3시즌 노숙자에서 도인으로 진화하였다.
그러던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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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로 아내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상황이 목격되었다!
요약해서 말하면, 피를로의 상대인 발렌티나 발비니는 전 유벤투스 회장 프란조 스티븐스의 아들 리카르도 스티븐스의 애인이었는데, 기혼자인 피를로가 발비니와 불륜관계를 맺어서 임신까지 시키는 상황이 일어났다. 이에 피를로의 아내 데보라도 맞바람을 피웠는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리카르도 스티븐스.
게다가 피를로의 불륜스캔들이 하필이면 잔루이지 부폰의 불륜스캔들과 겹친데다, 부폰이 집에서 쫓겨나서 찾아간 곳이 리카르도 스티븐스의 집이었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통째로 뒤집어놓은 대형 불륜 스캔들로 확대된 것.
결국 피를로와 데보라는 2014년 이혼하며 12년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었고, 지금은 SNS에 가 보면 알겠지만 새살림을 차린 듯 하다.
  • 2010년 2월 챔피언스리그 맨유전에서 박지성에게 완벽하게 지워졌던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한 커뮤니티 내에서 경비견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이 부분만을 가지고 비하한 내용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던 해프닝이 있었다.[29] 전반적으로는 박지성의 전술적인 헌신과 플레이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 가투소와 절친이다. 서로 장난을 많이 쳤다고.[30] 나이키 팬텀 비전 광고에서도 나란히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 상당한 게임덕후로 알려져 있다. AC 밀란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동료였던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 매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5시간 이상 위닝 일레븐을 돌렸을 정도. 자서전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바퀴 이후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또한 2006년 월드컵 결승전날에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막상 주팀은 밀란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였고 네스타도 바르샤 골라서 같은 팀끼리 붙는 경우가 많았다고...
  • 등번호인 21이라는 숫자를 몹시 좋아하는데 이를 행운의 숫자라 여긴다. 아버지의 생일, 자신이 결혼한 날, 세리에 데뷔일이 21일이다.
  • FIFA 20에 아이콘으로 출시된다. 그런데 뜬금없이 라이벌 게임 Pes 2020에 유벤투스 레전드로 출시되었다. 느린 속도와 부족한 수비 기여도, 준수한 볼 컨트롤과 베컴과 함께 게임 내 최상위권을 달리는 숏&롱패스 및 프리킥으로 그동안 많은 유저들이 염원했던 레지스타를 잘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31]
  • 피를로의 자서전에는 가투소에 대한 장난이 많이 쓰여있다. 대표적으로는 훈련 못나오게 가투소의 방문을 막아버린다던지, 단장에게 계약을 잘 해주면 여동생을 주겠다던지 등등... 물론 결과는 항상 가투소에게 얻어맞고 끝났다.
  • 20-21 시즌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때 현역인 잔루이지 부폰보다 나이가 한살 어려서 화제가 되었다.

10. 같이 보기




[1]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이다. 흔히 젠나로 가투소수비형 미드필더고 피를로가 중앙 미드필더라 착각하는데, 피를로의 공격 기여도가 더 높을 뿐 실제 포지션 상으로는 반대다.[3] 피를로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4] 피를로의 아버지는 두 개의 제철소를 소유하고 있으며, 형 이반은 브레시아에 있는 세리에 C2 소속의 클럽에서 뛰었다.[5] 레지스타는 선수의 배치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는 많은 패스를 뿌리며 팀의 경기를 조율하고 만드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고, 배치까지 생각한 용어는 후방(딥 라잉) 플레이메이커이다.[6] 밀란에서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맡게 된 계기는 그 포지션이 더 적합하다 생각한 본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다만 처음으로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뛰게 된 것은 2001년 브레시아에 소속되었던 시절부터이다.[7] 본래 밀란의 공격수 플랜 1순위는 칼치오폴리로 강등된 유벤투스의 주전 공격수 즐라탄이였고, 즐라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인테르가 즐라탄 영입에 참가, 때마침 언더독 기질이 발동하여 인테르로 가버렸다. 결국 차선택으로는 레알 베티스에서 나름 활약을 보여줬던 브라질 출신의 히카르두 올리베이라를 영입했는데 시즌 시작전부터 비판이 엄청났고, 모두의 예상대로 데뷔전 및 초반 반짝후 제대로 폭망했으며, 질라르디노 역시 카카의 미끼로 쓰이느라 파르마 시절의 파괴력이 줄어버렸고, 인자기는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카펠로에게 버림받은 호나우두를 영입하며 공격진이 안정된다.[8] 09-10 시즌 레알에 카카를 판 6800만 유로 중 일부인 2000만 유로로 팀 스타일과는 상극인 훈텔라르나 쩌리들만 업어와준 주제에 3위의 성적을 기록해놨더니 성적부진이랍시고 경질시켜버렸다. 그 전에 레오나르두도 예스맨은 아니라 베총리와의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9] 특히 노체리노는 시즌 10골을 기록하는 등 의외의 영입 수완으로 꼽혔다. 물론 보아텡은 공격전개도 못하고 조율도 못하고 패스도 못하고 공만 뻥뻥 날리는 즐라탄빨 스텟귀신이라 무지하게 까였지만 나름 쏠쏠하게 활약하였다. 쓰잘데기없이 섹스하다가 부상을 입어 큰웃음을 주는 등 예능감도 충만했다. 사실 밀란 공미의 전임자들이 카카, 루이 코스타, 보반, 리베라등 쟁쟁한 선수들이였기에 더 까인감이 없진 않다.[10] 암브로시니가 매우 준수하긴 했지만 기복이 있던 편이고, 가투소는 09-10 시즌의 부상으로 폼이 나락으로 떨어져 08-09 시즌 뮌헨의 오퍼를 받고 팔았었어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쩌리로 전락한 상태였다.[11] 이건 델피에로가 노쇠해서 출장시간이 많이 줄어든 탓도 크다. 혹사당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유럽 대회가 없는 까닭에 혹사까지는 아니다.[12] 피를로를 상대한 팀들은 경기 전에는 '피를로를 막아야 한다' 경기 후에는 '피를로를 막아냈다 혹은 피를로를 막아내는데 실패했다'하는 인터뷰를 항상 한다. 대표적으로 당해 챔스 뮌헨전 전후의 하인케스 인터뷰.[13] 물론 메시는 그때 부상으로 컨디션이 엉망이었다는걸 감안해야 한다.[14] 물론 비달과 포그바, 무엇보다 마르키시오와 테베스의 뛰어난 플레이가 있었으니 피를로의 활약도 가능했던 것이지만.[15] 이게 대단한 게 이 대회에서 스페인은 우승까지 차지한 것 뿐만 아니라 엄청난 파괴력으로 상대팀들을 몰아붙이는 막강한 팀이었다. 조별리그에서 독일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 준우승팀 프랑스를 각각 3-0, 4-1로 대파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네덜란드를 꺾고 4강에 오른 러시아는 힘 한번 못쓰고 3-0으로 완패했으며, 독일은 발락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했던 팀 답지 않게 경기력에서 완벽하게 밀리며 패배했다.[16] 이 경기는 21C 이래 FIFA 회원국끼리의 국가대표팀 경기 중 내용면에서 '''최고의 경기'''로 종종 손꼽힌다.[17] 그러나 팀은 프란체스코 토티덴마크크리스티안 폴센에게 침을 뱉고 출장정지를 당하면서 예선 탈락했다.[18] 유로 2008에서는 8강에 그쳤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예 광탈.[19] 재미있는 사실은 이 파넨카 킥이 즉흥적인 슛이었다는 것이다. 공을 향해 달려가는 중 조 하트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가볍게 차넣었다고 자서전에 서술했다. 그리고 그냥 찬 이 슛에 복수극이라느니 연습을 한 성과라거니 하는 기자들을 가볍게 디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20] 한편 이 대회 4강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도 세르히오 라모스파넨카 킥을 선보였고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에 진출한다.[21] 피를로는 여러 유명 선수들의 프리킥을 분석하기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주니뉴의 프리킥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22] 물론 순수 롱패스 능력만 따진다면 이런 말이 나올수도 있지만 둘은 후방 깊숙한 곳에서 플레이메이킹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빼면 포지션도 달랐고 플레이 유형도 완전 달랐으니 직접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베켄바워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 먼곳에서 롱패스를 찔러주는 능력도 갖추긴 했지만 그는 주로 롱패스를 하기보다 상대방에게 공을 뺏으면 화려한 발재간과 더불어 동료 선수들과 연속된 2대1 패스, 혹은 3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가 채 정비되기도 전에 뚫어버려 골이나 어시스트를 올리는걸 선호했다. 결코 피를로와 같은 타입은 아니다. 더구나 그의 포지션은 피를로와 같은 레지스타가 아닌 최후방의 리베로였고, 이 분야에서 축구 역사상 따를 자가 없는 권위자이기 때문에.[23] 이건 피아가 모두 아는 문제이니 실제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것은 피를로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고,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나 전술적 실패, 혹은 팀 전체의 수준이 밀리는 것에 가깝다.[24] 애초에 탈압박 능력도 프레싱을 이겨내기는 어려운 정도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며 볼을 뺏기지 않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탈압박 능력까지 요구하게 되었다.[25] 전성기때에는 활동량이 많은 편이었지만, 활동량이 줄어든 이후엔 수비 기여가 줄어 예전에 비하면 반쪽짜리에 가까운 선수가 되었다. 주로 언급되는 단점도 주로 전성기에서 내려온 이후에 제기 되어 온 것이다.[27] 물론 차비도 팀의 플레이가 답답할 때 얼마든지 피를로가 선보이는 퍼포먼스에 꿀리지 않는 자로 잰듯한 킬패스를 찔러대는 선수이다.[26] 뭐 그래도 그런걸 관리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기는 하다. 선수의 잘못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27] 챔피언스리그 캄프 누 원정에서 원정팀이 3골차 승리를 거둔건 2012-13 시즌 4강 2차전 바이에른 뮌헨 이후 7년 만이다.[28] 내가 하고싶은 축구[29] 박지성처럼 뛰어난 선수가 그런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이는 나에게 지나친 행동이었다 정도의 내용.[30] 자서전에 따르면, AC밀란에서 항상 구들과 그가 문법에 맞는 말을 해도 틀리다고 하거나, 훈련 10분 전 그를 방에 가두고 방문 앞에 소파를 쌓아둔다거나, 이탈리아 대표팀에선 데 로시와 함께 그에게 소화기를 뿌린 적도 있었다고(...). 그러자 가투소는 칼(!)을 피를로가 숨겨버리자 포크를 들고 그들을 찌르려고 달려들었고, 결국 몇몇이 경기를 결장하기도 했다고 한다(...).[31] 피아니치는 체력과 속도, 수비 기여도는 낫지만 패스나 프리킥 등에서 피를로의 하위호환이고, 조르지뉴는 숏패스를 주로 하는 선수, 모드리치나 크로스, 데용과 베라티는 전형적인 레지스타와는 거리가 있는 등 기존 게임에 있던 플레이메이커형 미드필더들은 피를로와 같은 스타일을 구현하기엔 어딘가 좀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