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대처
1. 개요
[image]
1953년 8월 15일~
마크 대처는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아들로 영국인이다. 적도 기니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가담한 범죄자이다. 어머니가 총리를 사임한 뒤 아버지가 받았던 대처 준남작 작위를 아버지 사후 세습해 현재 2대 대처 준남작 (Sir. Mark Thatcher, 2nd baronet, BT) 이다.
2. 생애 초반
마가렛 대처와 데니스 대처(1915~2003) 사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형제관계로는 이란성 쌍둥이 누나인 캐롤 대처가 있다.
대학 입학에 실패한 후[1] 카레이서로 활동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영국 및 해외의 이권에 개입하는 측근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 여러 번 물의를 빚었다.
어머니의 총리 재임기에 카레이서로서 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실종되어서 구조된 적이 있다. 그런데 모국인 영국을 뒤집어 놓고 아프리카 현지에서도 많은 인력이 자신을 찾느라 고생했건만, 구조된 후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든지 하는 말은 안 하고 이런 대환영은 처음이라고 비꼬는 투의 말을 해서 영국 내 여론을 악화시켰다.
사실 마크 구조 비용(1,191 파운드)을 '''대처가 개인 재산으로 전액 지불'''했기 때문에, 마크가 처신만 잘 했어도 마크 개인의 작은 구설수 정도로만 남거나, 잘만 했다면 총리를 하는 어머니를 향한 국민들의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인데도 이랬다는 것이 마크의 안 좋은 인성 및 무능함을 보여준다.
3. 적도 기니 쿠데타 개입
마크 대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자기 회사를 차리고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 전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무기 밀매와[2] 용병단을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던 자기 사업이 실패했다.
1996년에 적도 기니에서 마크 대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시몬 만이라는 또다른 영국 출신 용병이 자신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당시 적도 기니의 대통령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를 퇴진시키고 당시 스페인에서 따로 망명정부를 차리고 있던 적도 기니의 야당 대표인 세베로 모토를 옹립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시몬 만이 마크 대처에게는 적도 기니 본토에 있는 석유[3] 를 마음껏 캐가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마크 대처는 응하고 시몬 만과 같이 적도 기니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했다.
마크 대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용병을 공수해오기로 하고 헬기에 용병 70명을 실어서 적도 기니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나 이동하던 도중 용병을 실은 헬기가 짐바브웨에 억류되는 바람에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크 대처는 그 길로 도주했으나 2004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터폴에게 체포당했다.
이에 마가렛 대처는 부랴부랴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아들의 보석금을 마련했고 결국 그 거액의 보석금을 낸 뒤 마크 대처는 '''유죄 인정 대신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치계 최대의 거물의 가족이자 영국 왕실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정도까지 특혜를 받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 내에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신 미국에서는 '''입국불허자''' 명단에 등록되었다. 이제 마크 대처는 미국 정부에서 입국불허자 명단에서 본인의 이름을 삭제해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미국에 갈 수가 없다. 문제는 마크의 아내와 자녀들이 죄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인 마가렛 대처가 죽자 어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났다. 그 때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재회했다. 기사에 따르면 바베이도스에서 뉴스를 들었다고.
파나마 페이퍼 사건 때도 언급되었다.
4. 기타
- 마크와는 달리 쌍둥이 누나 캐롤은 유명 정치인의 딸이라는 사실에 힘들어하며 평범하게 살려고 애썼다. 대처 총리의 정책에 대해서는 영국 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특히 복지정책 축소 및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청년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반감이 대단했다. 그래서 대처가 총리로 있는 동안 대학을 다녔던 캐롤은 대처의 딸이란 이유로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조롱을 당했다. 졸업 후에도 평범한 사회인으로 자리잡으려 노력했지만 총리의 딸이란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4] 결국 호주로 이민을 가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돌아와 LBC, BBC 라디오 4의 아나운서가 되고 작가 활동을 했다. 부모님 전기를 여러권 저술했고, 아버지 데니스 대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 마가렛 대처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 철의 여인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마가렛은 치매 걸려서 자기 욕하는 신문기사도 못 알아보는 마당에 아프리카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아들을 보고 싶다고 떼를 쓰고, 딸 캐롤이 이제 마크 못 본다고 타이르는 패턴. 그런데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정신이 멀쩡하던 시절 대처는 가족끼리의 사석에서도 마크 얘기를 안 꺼냈는데, 정신상태가 혼미해진 때부터 대처는 애가 왜 엄마한테 연락도 안하냐며 징징댔다고(...).
- 일부 언론에서는 대처가 마크를 캐롤보다 편애해서 응석을 받아주며 키워 마크가 비뚤어졌다는 주장을 한다. 대처가 인터뷰에서 "마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구는 사람들이 따로 목적이 있어서 그런다는 걸 모른다"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처도 아들이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는 스타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는 무능력한 주제에 쓸데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어리석은 자로 묘사된다. 마가렛 대처가 마크를 편애했다는 주장을 반영해서 마크가 실종되었을 때 마가렛 대처는 거의 넋을 놓고 다닐 정도다. 이후에도 대처는 마크가 돌아오자 노골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대처의 딸이자 마크의 쌍둥이인 캐롤이 같은 자식인데 왜 한쪽만 편애하냐고 분노하자, 대처는 남자 자식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마크가 더 강해서 그런거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이후 마크의 인생을 알고 있을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쓴 웃음만 나오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