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 랠리
1. 개요
'''인간이 엔진 달린 지상용 탈것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레이싱 중 하나.''' 1978년부터 시작한 경기이며 지금은 개최지가 바뀌었지만 대회 개최 초기만 해도 다카르 랠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지브롤터 해협과 사하라를 넘어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르를 '''반환점으로 돌아''' 다시 파리까지 되돌아오는 연례 횡단 랠리를 뜻했다.[2] 드라이버들의 꿈의 경기이기도 하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멀쩡한 길을 달리는 서킷 레이싱과는 다른 로망이 있는 경기이다. 이 대회는 FIA의 공인 대회가 아니지만 자동차로 벌이는 오프로드 레이스중에서는 FIA 공인 WRC보다도 한국내 인지도가 높은 단일 대회이다.
1.1. 상세
거리도 상당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코스가 오프로드인데다 개발이 안 되어 지천이 흙밭인 개발도상국을 경유하는 경우가 많아 선진국의 고상한 오프'''로드'''와는 차원이 다른 '''오프'''로드를 달려야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다카르 랠리는 최소 3일, 기본 15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리는 장거리 코스이다.
대체적으로는 첫 대회인 파리 - 다카르의 노선을 따르려고 하나, 여러가지 제반사정으로 코스는 해마다 달라지고 있으며, 출발지와 도착지도 수시로 바뀌고 있으나 도착지의 경우는 대개 다카르인 경우가 많아, 해당 대회 출발지-다카르 랠리라는 명칭이 일반적이다.[3] 대개 코스는 유럽에서 시작하여 서북아프리카를 거쳐가는 코스로 짜이는 경우가 많고, 각종 외부 요인(유가, 랠리에 대한 비난 등)으로 코스가 전년도 대회보다 극단적으로 짧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방송은 헬리콥터 촬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안보이는 경우가 많다.
2009년부터는 테러 위협 때문에 이젠 더 이상 '''순수한''' 다카르 랠리를 볼 수 없다. 사실 1980년대 중반 차드 리비아 분쟁 때부터 사하라 사막내의 내륙국들의 정치적 불안으로 테러행위가 빈번하면서 안전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이 리비아 내전, 남수단 독립 문제 등으로 인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아예 아프리카에서 남미(아르헨티나-칠레)로 코스를 변경한 것. 완전히 다른 대륙에서 열림에도 다카르 랠리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는 것으로 볼 때, 다카르 랠리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듯 하다. 2020년에는 무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잡기까지 하였다.
대회마다 사망자가 속출하기에[4] 프랑스의 일부 국회의원 및 교황청에서는 대회 폐지를 종용하고 있지만[5] , 그런 경고를 귀담아들을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대회를 시작하거나 참가했을 리가 없다. 이 다카르 랠리의 주최자는 프랑스인 티에르 사빈인데 본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다가 길을 잃고 스틱스 건널 뻔한 이후로 오히려 이런 극한의 레이스에 빠져서 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197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개최자인 티에르 사빈 본인도 1986년 14명 가량이 숨졌던 당시 랠리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 다카르 랠리에는 '''상금이 없다.''' 자기 돈 내고 생고생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참가자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물론 스폰서 협찬 등으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또한 차량 제작사들 입장에서도 좋은 것이 랠리를 통해 자사와 자사 차량을 홍보 할 수 있고 랠리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차량 연구개발에도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회 특성상, 기계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사용하기에 아무리 잘 만든 차라도 한 스테이지를 끝내고 나면 너덜너덜해진다고 한다. 이 정도로 가파른 사막의 사구를 종횡무진 돌파해나가면서 끝없는 널뛰기(...)를 해대는 통에 WRC조차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게 바로 다카르 랠리다.[6] WRC도 차체의 부담이 엄청나지만, 다카르 랠리는 한번 하고 나면 백만km를 달린 차보다 차체 피로가 더 높아진다는 얘기도 있다. 당연 모노코크 바디차량 무개조로 굴리다가는…
또 기계 뿐 아니라 참가자들도 극한까지 몰고 가는지라 완주율이 50%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때문인지 프로 레이서들들도 많지만 아마추어들도 많이 참가한다.[7] 아시아 쪽에서는 모터스포츠의 강국인 일본이 적잖게 출전을 해왔지만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지진 등의 여파로 그 유명한 미쯔비시 파제로팀마저 2010년에 개최된 시즌부터 자취를 감춘 상태다. 그 대신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중국 쪽의 출전이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일본 팀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배기량 10리터 이하 트럭부문에서 토요타의 자회사인 히노 트럭 팀에서 지속적으로 T4 카테고리에 출전중이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73세의 드라이버 스가와라 요시마사가 아들과 함깨 출전해 클래스 6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험난한 질주를 하는 레이서들이기에 결승점을 통과하는 그 순간, 입상여부를 떠나 극한의 환희를 맛본다고 한다. 엄청난 참가비용[8] 에도 불구하고 도전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다카르 랠리만의 흡입력 때문이거니와 세계 각국의 열띤 성원에 힘입어 상당히 큰 광고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경주부분은 1회 때는 자동차와 2륜 모터사이클만 있었지만 2회인 1980년부터 트럭이 추가되었다. 2009년 대회부터는 4륜 바이크(쿼드)가 추가되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랠리들과 비슷하게 개조부분과 비개조부분으로 나뉜다.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모터사이클
- G1 - 상용차 비개조.
- G2 - 상용차 개조. (2012년부터 450cc이하)
- G3 - 쿼드. (500cc이하)
- 자동차/트럭
참가하는 유명 브랜드로는 미쓰비시 자동차[11] , BMW, 폭스바겐, 닛산자동차 등이 있다. 과거에는 '''7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미쓰비시가 강세였지만, 남미로 경기가 자리잡은 이후 폭스바겐이 3년 연속 종합 우승 을 달성하면서 미츠비시의 기록을 따라잡는 중이었다. 그것도 사상 최초로 디젤 엔진 차량으로 3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후 재미없어진 VW가 폴로를 들고 WRC에 출전 하기로 하면서 불참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로 WRC에서 스팟으로 출전하며 몸풀던 미니가 2012년과 2013년에 컨트리맨으로 연속해서 1위를 차지했다. 바이크는 오스트리아의 바이크 메이커인 KTM이 출전 바이크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12] 실제로 2001년부터 1위는 도맡아서 하다가 2020년에 혼다가 겨우 꺾었다. 현재 2021년 시즌에는 혼다가 1, 2위를 차지하고 3위가 KTM이 될 정도로 잘 나가는중. 트럭분야에는 러시아의 카마즈가 딱히 대적자가 없을 정도로 기염을 토하고 있다. 2012, 2016년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독주하고 있다.[13] 쿼드 부분은 야마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역대 드라이버중 최다 우승자는 프랑스인 페테르 한셀인데 완주조차 힘들다는 이 다카르 랠리에서 무려 11회나 우승을 한 선수이다. 나이도 40대 중반인 선수인데 미니 쿠퍼 컨트리맨으로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우승하였다. 2012년에는 전성기가 한참 지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우승함으로서 1자리수 우승수를 두자리수로 바꾸어 놓았다. 초창기에는 모터사이클로 출전에서 우승했고, 나중에는 자동차로 분야를 바꾸어서 우승을 했다.
최근에는 토요타 하이럭스 4WD 버기, 푸조 3008 RWD 버기, X-레이드 미니 RWD 버기와 컨트리맨 4WD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편이지만 예전과는 달리 4WD 차량보다 RWD 버기가 더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중이다. 이전 우승차량인 푸조의 설명에 따르면 후륜구동 버기카가 더 큰 타이어와 더 가벼운 무게를 가질 수 있는 규정에 맞춘다면 버기카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X-레이드 미니 군단은 기존 사륜구동 차량뿐만 아니라 후륜구동 버기도 동시에 선보였고 오랜만에 다카르에 복귀하는 쌍용 티볼리DKR 역시 후륜구동 버기 카이다.
한편 푸조는 2018년을 마지막으로 철수한다고 밝혔는데, 세간에는 후륜구동 버기카가 지나치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최측이 후륜구동 버기카에 규제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담이지만 랠리를 쫓아다니는 기자들도 프레스 등록 비용이 들고 이 비용이 약 천만원정도라고 한다. 제약도 심해서 사막에서 주행장면을 촬영하다가 랠리 운영팀의 메인카메라(헬기나 차량)에 걸리면 프레스자격을 박탈당한다고 한다.
모터사이클 부문의 경우 차량을 사람이 끌어서 이동할 수 있어 차량이 고장나면 운전자가 끌어서 도달해도 완주취급을 해준다.
2. 역대 랠리 코스
3. 한국의 참여
한국 레이서로는 '1988년 박정룡, 1993년 황운기[28] , 1996년 김한봉[29] '이 참가했으며, 국내 브랜드 쌍용과 기아, 현대도 해당 대회에 간간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 차의 첫 출장은 1988년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가 박정룡[30] 을 주축으로 해 랜드마스터라는 록스타[31] 의 프로토타입 차량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으며 이후 1993년 황운기 선수가 도전, 스포티지가 출시 직전에 참가한 바 있으나 양쪽 다 공식 완주에는 실패[32] 했다.
한국차의 첫 완주는 쌍용자동차가 이뤄냈는데, 1994년 대회에서 코란도 훼미리가 완주에 성공, 국내 최초의 공식 완주 기록을 세우고 그룹 T3(완전개조) 부문 5위, 종합 순위 8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 1995년 대회에서부터는 무쏘 3대로 공식 참가해 2대가 공식 완주했고, 그중 이전 대회에서 코란도 훼미리로 종합 순위 8위를 기록했던 이탈리아 드라이버 Giacomo Vismara가 이번 대회에서도 종합 순위 8위를 기록했다. 1996년 대회에서 쌍용차는 무쏘 6대로 공식 참가해 종합 8위(G.Vismara), 24위[33] , 66위를 기록하였고, 3년 연속 상위 입상의 쾌거를 이루었다.[34] [35] 특히 1996년 대회에는 한국인 최초의 완주자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그리고 이때 운이 좋게 성룡 주연의 영화 CIA에 찍혀 쌍용차가 약간 알려지게 된다.
국내 선수가 완주한 사례는 1996년에 열린 제18회 대회에서 김한봉 선수가 이뤄낸 것이 유일한데, 당시 이 대회에서 코-드라이버로 참가한 김태옥 선수는 리타이어했다. 당시 김한봉 선수의 차량은 체어맨에 얹힌 3.200cc 가솔린 엔진을 개조한 쌍용 무쏘로 클래스는 T2(부분개조), 순위는 클래스 9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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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의 제18회 다카르 랠리 완주기념 기자회견. 앉아있는 사람 중 레이싱 슈트를 입은 남성이 김한봉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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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완주에 성공한 김한봉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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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기자 간담회 사진.
2012년 현재까지 국내 메이커 차량으로 완주한 것은 쌍용과 기아로 기아는 본사가 부도난 뒤인 2000년과 2001년에 미주 법인이 스포티지로 참가해 완주한 바가 있다. 특히 2001년 기아 스포티지는 완전 개조부분에 참가해 6위까지 올랐다. 2007년에는 한 개인 참가팀(외국팀)이 기아 쏘렌토로 참가했으나 막판에 탈락했었다. 2008년은 테러 위협으로 대회를 하루 앞두고 대회가 전격 취소되기도 했다. #[36] 2009년 랠리는 대회장소를 아예 아르헨티나로 바꾸어 개최하였으며, 개인 참가팀으로 나선 기아 쏘렌토와 쌍용 카이런이 각각 45위, 82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쌍용 카이런의 경우 장애인 드라이버가 참가해 완주한 기록을 가진 차량이 되었다[37] . 2010년 랠리에는 현대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가 참가했으며, 쏘렌토만이 완주에 성공했다. 완주에 성공한 드라이버는 2009년에도 쏘렌토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드라이버이다. 참고로 쏘렌토로 두 팀이 참가했으나, 한 대는 리타이어했다. 그러나 리타이어된 차량이 더 신형이었다고 한다.[38][39]
쌍용자동차 9년 만인 20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다카르 랠리에 참여하여 완주했다. 2018년에는 스페인에서 9년만에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다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티볼리DKR을 공개했고 # 종합 32위로 완주했다. 2019년에는 렉스턴DKR으로 나가서 33위, 2020년에는 코란도DKR로 종합 24위로 들어왔다. 차량은 양산 차량 개조형이 아닌 랠리용 크로스버기 차량을 이용하여 이름과 일부 외형만 자사의 차량으로 바꾼 것으로 6.2L 8기통 가솔린엔진에 2륜구동으로 다카르 랠리의 자동차 T1.3부문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 운전자는 세 번 다 외국인 드라이버.
2020년 충청남도 청양군 출신인 류명걸 선수가 한국 최초로 450cc 바이크 부문으로 참가한다. 타이틀 스폰서는 처갓집 양념치킨이고 허스크바나 코리아에서 협약을 통해서 바이크는 임대형식으로 지원받고 체코의 클림치브팀과의 협약을 통해서 단독 첫 출전임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지원하에서 랠리에 참여할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해도 랠리에 참가하는 비용만 3억 정도라고. # 그리고 2020년 1월17일 사우디에서 무사히 결승점을 통과하며 자동차 부분에서 1996년 김한봉 선수가 완주한 이후 한국인 최초로 바이크 부분에서 완주하였다. 종합 40위 (非엘리트 25위, 루키 5위)로 대형 스폰서 없이 12일 동안 7,800여 km를 달려 이룩한 성과인 셈.[40] 특히 류명걸 선수는 1996년 김한봉 선수의 완주를 보고 자란 셈이라 의미가 깊다.
3.1. 무한도전의 참여 선언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WM7 당시 종목 선정에서 다카르 랠리가 잠깐 소개되었는데, 2014년 3월 15일자 방송에서 실제로 다카르 랠리 참여를 선언하였다. 일단은 출전 자격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2014년 7월에 열리는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에 우선 참여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위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프로 레이스 경력이 상당한 선수들도 학을 떼고 포기할 만큼 극한의 상황에서 랠리 경주가 벌어지는 터라 무도 멤버들&촬영팀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 여러 가지 특이한 스포츠에 도전하는 걸 의의로 삼는 무한도전이지만, KSF와는 달리 관계되는 사람들 모두가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하기에 무리수라는 평가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경기에 나가려면 몇 주~몇 달의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되는데, 멤버들 대부분이 타 방송에 고정출현하는 터라 스케쥴상 도저히 조정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단 참여 선언만 한 것일 뿐,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없기에 두고봐야할 부분이다.
또한 2014 KSF에서 단 1명의 멤버마저도 제대로 된 완주를 해내지 못하고 리타이어라는 성적을 거둔 데다[41] , 시청률이나 평가 및 결과도 엄청 안 좋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산된 이야기다. 자세한 것은 무한도전 스피드 레이서 문서 참고.
4. 우승 차량
[1]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로 곤칼베스(히어로 모터스포츠), 네덜란드 출신의 에드윈 스트라버(팀 KTM). 모두 바이크 부분이다.[2] 지금은 아래에도 나오지만 내전과 테러 위협 때문에 아프리카권에서는 개최가 불가능하다.[3] 1996년도에는 파리 대신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출발한 적이 있다.[4] 레이서들뿐만 아니라 관람객이나 원주민, 기자, 지원팀원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코스가 미칠 듯이 험하고, 오지인 곳이 많아서 코스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맞는 것.[5] 이와 관련해서 한때 국내개봉명 '둘이 합쳐 아이큐 100'(93~4년쯤에 난데없이 평일 저녁에 MBC에서 더빙 방영하기도 했다. 탁원제와 탁재인이 주인공 둘을 맡음.)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산 논스톱 코미디 영화인 'Le Comiche'의 에피소드 중에 파파모빌을 타면서 사막지역을 순방한 교황이 난데없이 주인공 콤비에 휘말리더니 랠리 대열에 껴버려 랠리 우승자가 되는(...) 시츄에이션이 있는데, 아마 이 점을 풍자했을 가능성도 있다.[6] 다만 WRC도 사파리 랠리라고 해서 아프리카 지역에서 열리는 오프로드 랠리가 시즌 스케줄에 끼어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2020년에는 다시 하게 되었다.[7] 단 참가조건 자체는 엄격하기때문에 생 초보들이 참가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른 랠리에서의 입상경력이 있어야만 참가신청을 할수 있다. [8] 순수하게 참가신청만 하는데 4천만원정도가 든다고 하며 체류비용, 장비 비용및 관련 서포트팀 등에 돈쓰는 것까지 감안하면 1억 중반은 가뿐히 넘는다고 한다. 후술되어 있지만 국내에서 단독출전했던 류명걸선수의 경우 참가 신청을 위해서 타 랠리에 출전하고 출전할 장비 및 정비팀을 수배하는등 해서 제반비용만 3억정도 들어갔다.[9] UTV등으로 불리는 차량으로 4륜을 동작하는 차량이다. 2017년 클래스가 생겼다. [10] 말 그대로 다른 부분의 차량을 지원하는 지원 트럭들이다. 차량에 대한 별다른 제한은 없는 듯 하다.[11] 미쓰비시 자동차와 절친한 관계인 성룡이 주연한 성룡의 CIA 초반부에서 다카르 랠리가 묘사되며 일본인 드라이버-코드라이버가 성룡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의 스턴트 추격 씬도 등장하는 등 미쓰비시 팬으로서는 요기거리가 많은 영화. 당시 다카르 랠리를 묘사하는 와중에 쌍용 무쏘도 한 대 등장한다.[12] 오프로드 레이싱이 격렬한 만큼 주요부품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급하면 다른 워크스 팀에서 구해올 수 있는 장점이 된다.[13] 물론 MAN이나 르노, 심지어 히노(!)같은 유명한 브랜드들도 많이 참여한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참가를 안하는데, 이는 카마즈가 벤츠의 자회사가 되었기 때문.[14] 스페인 남부의 도시[15] 니제르 중부의 도시[16] 프랑스 북부의 도시[17]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단의 도시[18] 프랑스 중부의 도시[19] 칠레 중부의 항구도시[20] 칠레 북부의 항구도시[21] 칠레 해안 최북단의 항구도시[22] 아르헨티나 중부 대서양 연안의 도시[23] 칠레 중북부 도시[24] 아르헨티나 북서부 내륙의 도시[25]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위치한 살타주의 주도[26] 칠레 북부의 도시[27] 리야드 근교에 관광 자원 개발을 위해 2019년 초부터 건설되고 있는 신도시.[28] 카레이서 황진우 선수의 아버지.[29] 국내 최초의 여성 카레이서인 김태옥(1988년에 참가한 박정룡 선수의 아내이다.)이 1996년 제18회 대회 당시 6호차 코 드라이버로 참가한 전력이 있다.[30] 선수 은퇴 후 자동차학과 교수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기아자동차 직원인 테스트 드라이버였다. 직원 신분일 때부터 오프로드/온로드 경주에 참가하였고 퇴사 후 전업 드라이버가 되었다.[31] 이 차의 군용 버전이 4인승 1/4t 트럭 맞는다.[32] 박정룡 선수의 랜드마스터는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제한시간 초과로 인해 비공식 완주로 취급된다. 1993년 대회에서는 두 대의 스포티지가 참가했는데 황운기 선수의 1호차는 엔진 트러블로 탈락, 영국인 드라이버가 운전한 2호차는 실격으로 비공식 완주 처리되었다.[33] 디젤 부문 1위.[34] 당시 자동차 변방국이었던 한국의 쌍용자동차의 3년 연속 상위 입상은 당시 1990년대 초~중반 시기 시트로엥과 미쓰비시의 양강 체제 속에서 기록한 것이라 그 의미가 충분하다 볼 수 있다.[35] 하지만, 쌍용차는 1994년 다카르랠리 출전을 앞두고 이탈리아 드라이버였던 G.Vismara의 튜닝회사(Vismara Tuning Co.)와 공동으로 랠리카를 제작했는데, 출전했던 랠리카들은 벤츠 G바겐 섀시와 프레임에 벤츠 엔진 올리고, 그 위에 바디를 얹어 위에다가 코란도 훼미리 또는 무쏘의 라디에이터와 헤드램프만 달았다. 그런데 코란도 훼미리 또는 무쏘로 출전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다카르 랠리의 T3(완전개조) 부문 규정이 바디의 모든 부분을 안전규정 내에서 개조를 가능하도록 했고, 양산차의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등만 사용하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독한 랠리 속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코란도 훼미리와 무쏘에 대한 쌍용차 자체의 기술력 인정 부분에 있어서는,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순위를 휩쓸던 시트로엥의 ZX나 미쓰비시의 파제로 모두 T3 부문이기도 했다.[36] 대회 4개월 전 갑작스런 참가의사를 밝히며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금호 타이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37] 드라이버인 Isidre Esteve는 본래 2007년 다카르 랠리 당시 오토바이로 출전했다가 사고를 당한 드라이버였다[38] 당연한 얘기지만 신형 싼타페, 쏘렌토의 경우 모노코크의 도심형 SUV다. 이런짓 하려고 만들어진 차체도 아니며, 구동방식도 기본은 FF 구동에 4륜 옵션타입(즉 전륜구동 기반에 후륜은 서비스). AWD라고는 하지만 본격 시스템도 아니고 4륜 락 타입의 동력전달도 아닌 어중지간한 4륜 구동이다. 이에 비해 FR베이스에 전륜을 전환식으로 입력하는 파트타임 4륜은 말그대로 본격파다. 거기다 구형 쏘렌토는 프레임 바디의 구조이니, 당연 이런 험난한 주행은 구형이 더 좋다.[39] 더 말하자면 구형 쏘렌토는 플랫폼부터가 스포티지의 프레임을 근간으로 했다. 이는 구형 쏘렌토의 초기 디자인을 확인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40] 동시에 그동안 바이크 클래스에 참전한 아시아인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41] 여기서 전원 DNF(Did Not Finish/완주못함)로 알고있는 시청자들이 많은데, 편집 될때 잘려서 그렇지, 모든 경기가 완전히 종료된 후 주최 측의 발표로 '''노홍철의 주행은 완주로 인정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노홍철이 14번째 랩에서 리타이어한 뒤 15번째 랩에서 여러 선수들이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해 '''적기'''가 발령되어 경기가 그대로 종료되었기 때문인데, KSF 규정상 적기가 발령되면 적기가 터진 랩에서 두 랩 이전 상황의 결과를 끌어와 공식기록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때의 아반떼 챌린지는 13랩으로 단축된 것. 단, 노홍철은 당시 선두와 한 바퀴 차이가 났기에 12랩까지만 기록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