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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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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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이름
마크 제이슨 크룬(Marc Jason Kroon)
생년월일
1973년 4월 2일
국적
미국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투구스타일
우완 오버스로
프로입단
1991년 (뉴욕 메츠, 2라운드 전체 72순위)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5, 1997~2003)
신시내티 레즈 (1998)
콜로라도 로키스 (200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05~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0)'''


1. 소개


미국, 일본에서 뛴 前 프로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 이전의 일본프로야구 최고구속 기록 보유자[1]이자, 오승환데니스 사파테 이전의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외국인 최다세이브 기록 보유자였다.

2. 커리어



2.1. 메이저리그


1991년에 처음으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1993년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당했고 그 곳에서 데뷔했다. 1998년에는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는데, 상대는 엘지에서도 뛴 적이 있는 버디 카라이어.
속구 구속이 150을 웃도는 파워피쳐임에도 고질적인 제구 불안과 팔꿈치 부상 때문에 미국에서의 선수생활은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고, 당시 선수생활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
메이저 통산 26경기 무승 2패 ERA 7.43의 보잘 것 없는 성적을 거두며 지내다가, 2005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하며 일본 생활을 시작하는데...

2.2. 일본프로야구



2.2.1.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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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룬은 요코하마에서 처음에는 셋업맨으로 기용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 투수로 낙점받는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던 대마신 사사키 카즈히로가 노쇠화로 먹튀 테크를 타면서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았고, 대체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였다.
이 결정은 적중하여, 평균 152km/h, 최고 161km/h를 기록하는 광속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다. 이 해 요코하마의 계투진은 크룬 이외에도 카와무라 타케오, 카토 타케하루, 키즈카 아츠시 등이 맹활약하며 탄탄한 모습을 보였고, 이들 구원투수의 성이 모두 'K'로 시작했기에 이 해 요코하마의 필승계투조는 '''콰트로 K'''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안정된 구원투수진과 미우라 다이스케, 카도쿠라 켄이 활약한 선발진을 바탕으로 요코하마는 이 해 3위의 호성적을 거두었다.[2]
이후에도 강속구와 일본에서 습득한 포크볼을 활용하며 요코하마의 마무리 자리를 지켰고, 2007년 10월 8일 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에서 당시 일본프로야구 최고구속 기록을 경신하는 161km/h를 기록했다. 하지만 제구불안은 일본에서도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았고, 방어율도 2점대 후반에서 3점대까지 오르는 등 그렇게 안정감을 주는 마무리 투수는 아니었다.

2.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콜을 받고 이적한다.[3] 요미우리의 관례상 턱수염을 면도했고 레게머리로 길렀던 헤어스타일도 단정하게 정리했다.
2008년에는 당시 외국인 최다 세이브 신기록이던 41세이브를 기록하면서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한다. 팀이 기대한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완수하며 요미우리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한다. 2009년 6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는 162km/h를 던지며 역대 일본프로야구 최고구속 신기록을 세웠고, 2009년과 2010년 요미우리의 2년 연속 리그-일본시리즈 제패에도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시즌 후반기부터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며 전선에서 이탈했고, 11시즌 스프링캠프에 참여했지만 구속 하락이 눈에 띄어 재계약을 받지 못하고 일본 생활을 마감한다.[4]
일본프로야구 6년간 304게임 14승 18패 177세이브 19홀드 ERA 2.68의 기록을 남겼다. 막판의 1시즌을 제외하면 일본프로야구가 타고투저에서 투고타저로 바뀌던 시절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다만 제구불안은 끝내 고쳐지지 않아 요미우리 시절에도 크룬 극장이라는 소리를 심심치않게 들었다.
11시즌이 끝난 뒤 은퇴선언을 하였지만, 마음이 바뀌었는지 2012년 돌연 복귀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AAA 팀에서 뛰었다. 하지만 49시합 2승 5패 11세이브 방어율 5.11로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진짜 은퇴를 하였다.

3. 기타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안지만처럼 삐딱하게 모자를 쓰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로 팬서비스에도 충실했다고.
국내에서는 엉뚱하게도 선동열의 안티들이 선동열을 깔 때 주로 언급되는 선수. 이유인즉, 선동열의 NPB 커리어는 MLB 7점대 폐급 투수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별 것 아니라는 이유..[5]
[1] 2000년대에 일본프로야구에서 160km/h를 넘긴 투수는 임창용과 크룬 뿐이었다. 2010년대에는 오타니의 등장과 메이저리그 발 구속 향상 열풍으로 160km/h를 넘기는 투수들이 꽤 늘었다. [2] 하지만 승률 5할이 안 됐던데다 이 해 센트럴리그에는 아직 플레이오프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요코하마에게 가을야구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요코하마는 11년이 지난 2016년에야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해 가을야구를 했고, 이는 요코하마에게 1998년 일본시리즈 이후 '''18년만의 가을야구'''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3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홈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의 경기는 없었다...[3] 당시 요미우리는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토요다 키요시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마이클 나카무라를 데려오는 등 여러 구단에서 난다긴다했던 마무리 투수들을 대거 수집중이었다. 물론 요미우리의 돈지랄이 대체로 그렇듯 대부분은 말년에 먹튀로 전락했다...[4] 2010년 시즌 종료 후, 동료들이던 세스 그레이싱어, 이승엽도 함께 방출을 당했다. 그레이싱어는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했고, 이승엽은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1년을 뛴 뒤 끝내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였다.[5] 정확히는 선동열의 일본기록을 근거로 MLB에서도 통할거라는 낙관론에 대한 반박 근거로 언급된다. 선동열의 일본시절 기록이 크룬에게 크게 밀린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크룬은 요코하마와 요미우리에서 타자친화구장을, 선동열은 투수들에게 유리한 나고야돔을 홈으로 쓴걸 고려하면 비슷한 클래스의 활약으로 볼 수 있는데, MLB에서 폐급이었던 크룬을 보면 선동열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논리. 실제로 MLB에는 크룬이나 선동열을 능가하는 괴물들이 매년 데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