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플로라 벨
1. 소개
Mary Flora Bell[1]
1957년 5월 26일생. 영국 출신의 최연소 연쇄살인자.[2] '''만 10살'''에 살인 2건을 저질렀다.'''살인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을 텐데요.'''(Murder isn't that bad, We all die sometime anyway)
ㅡ 유죄판결 후 인터뷰를 하며.
흔히 메리 벨이라고 줄여 칭한다.
2. 최연소 살인
메리 벨의 사이코패스 성향은 첫 살인 이전부터 종종 드러났다. 메리가 만 10세였던 1968년 5월 11일, 뉴캐슬 공습 대피소 위에서 메리는 자신과 함께 놀던 3세 소년을 밀어 넘어트려 심한 부상을 입혔고, 다음날인 5월 12일 소년의 어머니는 메리가 예전부터 아이들을 공격했다고 경찰에게 알렸지만, 메리가 너무 어려서 범죄 혐의는 받지 않고 종결되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25일, 첫 살인이 일어났다. 메리는 오래된 폐가에서 4세의 마틴 브라운(Martin Brown)을 질식사 시켜 살해한다. 경찰은 타살 증거를 찾지 못 하고 마틴이 사망한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채 발견된 병에 들어있던 약을 삼켜 질식사 한 것으로 추정하며 일단락 시켰다.
5월 26일, 메리는 친구 노마 벨(Norma Bell)[3] 을 불러내 함께 동네 탁아소에 침입한 뒤, '우리가 마틴 브라운을 죽였어, 엿먹어 개자식들아'라는 메모를 남기고 달아난다. 경찰은 필체를 보고 아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다.
5월 31일, 동네 탁아소에 새로 설치된 도난 경보기가 울려 순찰대원이 현장으로 출동했을 때, 메리와 노마가 달아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리는 아동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장난이 심하고 짓궂은 아이'로 간주되었고 모든 혐의를 피해갔다.
2개월 후 1968년 7월 31일, 메리는 같은 지역에서 3세의 브라이언 호우(Brian Howe)를 목 졸라 살해한다. 이때 수법은 더욱 잔인해져서, 가위로 브라이언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리의 피부를 긁어 내고, 그의 음경을 절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배에 칼로 M자를 새겼는데[4] 이런 행위는 연쇄살인마들에게서 흔히 보이는데, 자신을 과시하는 목적의 '시그니쳐'로 해석될 수 있다.
사체 검시관은 일반적인 살인사건과 달리 피해자에게 가해진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살인범이 어린이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형사들은 지역 어린이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전부터 의혹을 받아오던 메리와 노마에게 브라이언의 사망 당시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메리와 노마의 답변은 일치하지 않았다. 메리는 '어떤 청년이 브라이언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으나, 그에 반해 평범한 아이였던 노마는 경찰들의 추궁에 겁을 먹고 '메리가 브라이언을 죽이는 것을 지켜 보라고 했다'며 자백을 하게 된다.
1968년 12월 재판에서 노마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메리는 두 차례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메리는 정신과 진단에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법정에서도 죄의식 없이 교활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모든 청중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3. 메리의 성장 환경
그 나이 또래답지 않은 수준으로 똑똑했으며, 2세부터 정서적으로 불안정했고 폭력적인 경향을 내보였다. 4세 때부터는 만성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릴 때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메리는 '''또래 친구들의 목을 조르면서 '왜? 이러면 얘가 죽어?' 라고 묻는 등''' 죽음이란 것에 골몰했다고 한다. 분명한 건 메리가 살인이란 행위의 의미, 즉 도덕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메리의 가정환경에는 문제가 많았다. 생모 베티 벨은 매춘부였고 메리 벨을 원치 않은 상황에서 낳았다. 메리 벨 출산 당시 생모는 17세였다고 한다. 태어난 후 2년 동안 메리 벨을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나중에서라도 잘 키웠는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엄마는 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은 물론 다른 사람이 딸과 성관계를 하도록 허락하여 물질적인 이익을 얻기도 했다. 메리가 태어났을 때 "'''저것 좀 빨리 내 눈 앞에서 치워!'''"라고 말하기도 했고, 딸의 재판에 나타났을 때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재판에도 집중하지 않는 등 모친다운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메리 벨은 유아기 때 어머니가 상시 복용하던 마약을 주워 먹고 생사를 헤맨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물려받은 듯.
4. 석방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12년 만에[5] 가석방되었고, 사회로 나와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한 청년을 만나 임신을 하게 된다. 1984년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주위에서 두 아동을 살해한 여자가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벨 본인이 자기 자식을 지킬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했다고 한다. 현재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나, 메리의 신상정보와 주소 등의 여러 정보들이 퍼지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악마 취급 당했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 가도 마찬가지로 신상정보 공개크리가 터졌다.
그 때문에 메리 벨은 지금도 열심히 이사를 다닌다고 한다. 다만 사회적 감시와 신상 털이가 워낙 철저해서, 자기가 감시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두 아동을 살해한 뒤로 더 이상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1998년, 저명한 전기 작가 지타 세레니[6] 를 통해 자신의 살인 기록을 담은 책 <들리지 않는 외침>을 출간해 5만 파운드를 받아 많은 비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도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만큼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다만 이 전기가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위에 서술된 메리 벨의 막장 유년기를 최초로 묘사한 것이 이 '들리지 않는 외침'이었다. 즉 이 전기를 통해 메리 벨의 유년기가 얼마나 막장이고 처참했는지 처음 알려진 것이다.
사이코패스로 판명 난 데다 성인이 된 지 오래라 교정은 어려울 듯싶고, 그렇다고 죗값을 치렀는데 사이코패스라는 이유 하나로 이제 와서 어딘가에 가두거나 할 수도 없으며[7] , 메리 벨이 이 정도로 망가진 데는 사회적인 책임도 없지 않으니, 일반인으로 살아가도록 허락하되 자연사할 때까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한편[8] ,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격리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네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며 집까지 찾아와 시위를 하자 자신의 딸을 감싸안을 정도로 놀라운 모성애를 보여주었다고. 혈육까지 해친 엄인숙같은 경우는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드문 편이다. 2009년 메리 벨의 딸이 아기를 출산해서 할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5. 여담
- 메리 벨처럼 유명세를 타지 못했을 뿐, 전세계적으로 어린이 살인범 케이스는 굉장히 많다. 청소년 정도의 나이만 되어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지만, 어린이일 경우 한국,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는 아예 처벌이 불가하기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국민학교 학생이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 종종 일어났으며,#뉴스링크1#뉴스링크2 일본에서도 2004년 급우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11세 소녀가 있다. 사세보 소학교 동급생 살인사건 문서 참조. 2015년 중국에서는 11살~13살 나이의 초등학생 어린이 3명이 여교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뉴스링크
- 영미권 미성년자 살인사건은 워낙 사례가 많으므로 따로 링크를 참고.
- 만화 성 로잘린드의 주인공 로잘린드가 어린이의 몸으로 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다는 점 때문에 메리 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 메리 벨과 유사한 캐릭터를 다룬 어린이 살인범 영화가 꽤 있다. 맥컬리 컬킨과 일라이저 우드가 주연한 '좋은 아들(1993)', '오펀 천사의 비밀(2009)[스포일러] ' 등. 메리 벨 사건보다 무려 12년이나 앞선 1956년에 어린이 사이코패스를 다룬 '나쁜 종자(The Bad Seed)'라는 작품도 있다. 윌리엄 마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이전에 연극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오늘날 심리학자들이 자료로 활용할 만큼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다. 다만 당시 기준으로 소재가 소재다 보니 관객들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엔딩에서 꼼수를 부리긴 했다.[9]
[1] Marry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는 틀린 것이다.[2] 사실 살인 건수가 부족한 탓에 연쇄살인범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살인 3건 이상을 저지르는 경우를 연쇄살인이라고 칭한다. 단, 대한민국이나 싱가포르처럼 검거율이 높고 사회 감시망이 촘촘하게 깔린 국가에서는 미처 3명까지 죽이기 전에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정한 동기나 심리상태 등을 분석해 연쇄살인의 그것과 유사할 경우 2건만 저질러도 연쇄살인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3] 우연히 같은 성일 뿐,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녀는 메리의 살인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유일한 목격자였다.[4] 자신의 이름 첫글자를 의미하는 것 같다.[5] 도중에 몇몇 죄수와 함께 탈옥을 했는데, 이때 죄수들을 도와준 청년을 상대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인의 의지로)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청년은 그 이야기를 타블로이드 신문에 팔면서, 메리가 임신을 하기 위해 탈옥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메리는 임신을 했지만, 도덕적 위기감을 느껴 낙태했다고 한다.[6] 오스트리아 출신인 지타는 이미 1972년에도 메리 플로라 벨을 다룬 전기 <메리 벨 사건>을 저술했다. 이때는 벨의 어머니와 인터뷰한 자료를 기반으로 출판했다. 2년 후에는 나치 독일의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소장이었던 프란츠 슈탕글의 전기를 저술하는 등 전기를 다수 저술했다. 참고로 슈탕글 전기를 쓰고자 인터뷰 했을 때는 그를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져서 그가 사망하기 19시간 전에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일화를 남겼던 지타는 1995년에 나치 독일 군수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전기를 저술해 영국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고 2004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은 저명한 전기작가였다. 지타는 자신이 쓴 전기들을 통해 악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말 잘 묘사한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반대로 악마를 인간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7]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한 죄목에 형이 확정되어 이미 처벌받았으면,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이상은 해당 죄목을 이유로 다시 처벌할 수는 없다.[8] 다만 신상털이 등으로는 곤란하고, 경찰 차원에서 성범죄자를 감시하듯이 하는 게 합리적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고 생존의 한계로 내몰리면 윤리의식이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다.[스포일러] 이 경우는 범인이 성인이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9] 국내영화도 이런 케이스가 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판 '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