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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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의 모습
1925년의 모습
'''Joseph Maurice Ravel'''
(1875.3.7~1937.12.28)
프랑스의 클래식 작곡가. 자주 인상파 작곡가로 불린다. 하지만 묘사적인 것은 원래 프랑스 음악의 특징이고, 사실은 고전주의적 경향이 더 짙다.
1. 생애
2. 작곡 성향
3. 다른 사람과의 관계
4. 재미있는 이야기
5. 주요 작품
5.1. 같은 제목의 피아노/관현악[1]
5.2. 관현악
5.3. 협주곡
5.4. 실내악
5.5. 피아노
5.6. 가곡
5.7. 합창
5.8. 오페라


1. 생애


1875년 스페인 국경 근처의 프랑스 시골 마을인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후 몇 달 안되어 파리로 이사를 가게 되어 그는 계속 파리에 살게 된다. 아버지는 프랑스스위스인, 어머니는 스페인[2]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후 '볼레로', '스페인 광시곡',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 등과 같은 스페인 느낌이 풀풀 나는 곡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3]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화성을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쌓았고, 14세 때 파리 음악원 피아노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원에서는 성적이 영 좋지 못했는데, 화성, 피아노 과목에서 낙제를 당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스무 살의 나이로 음악원을 자퇴하고, 그로 인해 교수들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다.
하지만 이 때부터 그가 작곡한 곡들은 충분히 그의 재능을 보였고, 2년 후 다시 파리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한다. 이 때 가브리엘 포레를 사사하고, 에릭 사티와 같은 비주류 음악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고, 이 당시 작곡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은 그 때 사망한 스페인의 왕녀를 추모하기 위해 헌정된 곡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26세, 그는 로마 대상[4]에 도전하는데, 첫 도전에는 2등, 이후 연달아 본선에서 탈락, 그리고 마지막 도전에는[5]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에 그가 충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대상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는 파리 음악원을 떠났다.
이런 일이야 이단자적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던 그의 혁신적인 음악이 인정을 못 받아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이 때의 라벨은 '물의 유희', '현악사중주 F장조' 등으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였다는 것. 당연히 이 사건은 언론의 지탄을 받았고, 파리 음악원 교장의 해임 등으로 프랑스 음악계에 대격변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대한 사과로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지만, 라벨은 이 훈장을 거절한다.
이후 그는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관현악곡 '스페인 광시곡',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 '소나티네' 등을 발표하면서 그의 창작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에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운전병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다리 부상 때문에 제대한다.
이후 창작 활동이 진척을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1차대전 참전 후의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 그러나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면서 극복한다. [6] 전후 프랑스 음악계에서 6인조(Les Six)[7]의 약진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재기한 라벨은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같은 화려한 테크닉의 피아노 협주곡과, '라 발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볼레로''''를 발표한다.
1932년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치게 되고, 이후 건강이 악화된다. 이 때 부상으로 더 이상 작곡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기억감퇴 및 온갖 병세로 사생활적으로도 어렵게 되었다. 1933년에는 신경계 계통의 질환을 앓고 1937년 뇌 수술을 받지만 건강은 여전히 악화되어 결국 그 해 62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2. 작곡 성향


라벨은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켰지만, 드뷔시와 달리 고전적 형식을 중시하였고 테크닉을 객관적으로 표기했으며 감정을 절제하는 신 고전주의적 성향이 베이스로 깔려 있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아주 정교한 면을 보이는데, 특히 관현악법면에서는 근대 관현악법을 완성시키다시피 하여 '관현악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며[8][9], 화성면에서도 새로운 화음을 많이 선보였기 때문에 '근현대 화성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 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악을 많이 작곡하여 피아노곡 작곡가로도 이름이 높다. 후기의 작품의 경우 재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그의 피아노 협주곡.
참고로 피아노곡과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Samson François)[10]가 남긴 녹음이 유명하다. 특히 난곡으로 유명한 "밤의 가스파르"같은 경우 특유의 해석으로 필청곡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3. 다른 사람과의 관계


  • 디아길레프:라벨이 디아길레프의 요청으로 "라 발스"를 발레곡으로 작곡했을 당시, 디아길레프는 이 곡을 "발레곡이 아니라 발레를 표현한 곡"이라고 폄하하여 라벨은 굉장히 화가 났다고 한다. 그 이후 둘의 사이는 벌어지게 되고... 심지어는 디아길레프가 인사했는데 라벨이 무시했다는 이유로 결투할 뻔 했다고도..
  • 드뷔시: 인상파 음악의 선배인 클로드 드뷔시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뷔시의 성격이 상당히 거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벨은 본의아니게 드뷔시의 아류라는 오해를 사고 있었기 때문인데[11][12], 이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큰 오해다. 라벨의 초기 작품이 분명 어느정도 드뷔시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드뷔시가 라벨에게서 더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13] 예를 들면 "물의 유희"를 작곡했을 당시만 해도 드뷔시가 작곡한 피아노곡은 몇 곡 없었는데, 이후의 드뷔시 곡과 라벨의 곡을 비교해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꽤나 영향을 끼쳤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드뷔시는 로마 대상 사건 때 라벨을 옹호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1918년에 드뷔시가 죽자 라벨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소나타'를 지어 드뷔시에게 헌정했다.
  • 토스카니니: 1930년 5월 4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뉴욕 필의 프랑스 공연에 라벨이 참석했다. 그 공연에서 토스카니니는 볼레로를 연주했는데, 라벨은 공연이 끝난 후 토스카니니의 템포가 너무 빠르고 피날레를 아첼레란도로 마무리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자신이 설정한 템포가 곡에 더 적합하다고 고집을 굽히지 않았으며 (작곡가의 의도를 중시한다면서 면전에서 작곡가 무시...) 몇 달 후 라벨은 당대의 지휘자와 척을 져봤자 좋을 것 없다 생각했는지 자신의 신작(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지휘를 부탁하며 화해를 시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오히려 볼레로의 명성을 더 높여 주는 결과를 낳았다.[14] 그 후로도 토스카니니는 볼레로는 빠른 템포를 고수했는데 (오히려 더 빨라졌으면 빨라졌지...) 그의 볼레로 연주는 음반으로도 남아 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느긋하게 연주하는 타 지휘자들의 연주에 비해 몇 분 이상 빠르다. (후대에는 더 빠르게 연주하는 사람들도 좀 있다.)

4. 재미있는 이야기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나오는 죽은 왕녀의 정체: 놀랍게도 실존 인물이다. # 이 초상화에 나오는 공주의 이름은 마가리타 공주로, 벨라스케즈가 초상화로 그린 것(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라벨이 이 곡을 쓴 것이다.[15]

5. 주요 작품



5.1. 같은 제목의 피아노/관현악[16]




거울 모음곡 중 '바다 위의 작은 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어미 거위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
  • 고풍스러운 미뉴에트 M. 7(피아노-1895, 관현악-1929)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 19(피아노-1899, 관현악-1910)
영화나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으로 자주 느장하는 등, 대중문화에서 꽤 많이 나오는 곡이다. 또한 그만큼 대중들에게 친숙한 라벨의 곡들 중 하나이다.
  • 거울 모음곡 M. 43(피아노-1904~5, 관현악-바다 위의 작은 배(1906)[17],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18] (1918))
  • 어미 거위 모음곡 M. 60(피아노[19]-1910, 관현악-1911)[20]
같은 이름의 샤를 페로의 동화 등을 소재로 한 곡이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M. 61(피아노-1911, 관현악-1912)
  • 쿠프랭의 무덤 모음곡 M. 68(피아노-1914~7, 관현악-1919)

5.2. 관현악



  • 셰에라자드 서곡 M. 17
첫 번째 관현악 작품. 원래 오페라를 작곡하려다가 서곡만 만든 것으로, 관현악 편곡이 아닌 순수 관현악 작품은 이 작품 이외에 밑의 5곡(모음곡 2곡 포함)에 불과하다.
  • 스페인 광시곡 M. 54
4곡으로 구성된 광시곡 또는 교향시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다른 곡에서도 스페인적인 감성을 자주 묻어내던 라벨의 성향[21]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 발레 모음곡 '다프니스와 클로에' 1,2번 M. 57a,b
원래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몽환적인 발레곡이나 원곡에 합창단이 동원되고 곡 길이도 50여분이나 되는 대서사곡이기에 모음곡 형태로 자주 연주된다.(그마저도 합창을 생략하는 경우가 번번하다.) 모음곡의 마지막곡이자 실제 풀버전의 피날레이기도 한 'Danse generale' 는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데 무려 5/4박자로 붕 뜨는 느낌의 리듬과 웅장한 관현악과 함께 몇분동안 경쾌하게 연주되다 화려하게 끝난다.
  • 라 발스 M. 72
La Valse. La는 정관사이고 Valse는 왈츠의 프랑스어이다. 피아노 편곡 역시 자주 연주된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애니나 게임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5.3. 협주곡


  •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치간 M. 76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 M. 82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작곡한 곡이다. 라벨 이외에 파울 힌데미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야나체크,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등 저명한 작곡가들이 이 사람을 위해 곡을 썼다.
참고로 라벨은 연합군, 비트겐슈타인은 동맹군으로 참전했다. #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곡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들어도 치기 어렵겠다고 생각될 만큼 곡의 난이도가 높다. 그런 곡을 왼손으로만 쳐야 하니 연주자들은 죽어나간다. 이에 대한 일화도 있는데, 정작 자신을 위한 피아노 곡이라는 작품을 받은 파울 비트겐슈타인마저도 처음엔 어려움을 토로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알프레드 코르토마저도 양손을 위한 곡으로 편곡을 제안 했을정도였으니## 하지만 이와 같은 편곡 제안이나 연주 난이도에 대한 의견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4. 실내악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단조 M. 12
  • 현악4중주 F장조 M. 35
  • 서주와 알레그로 G플랫 장조 M. 46[22]
  • 피아노 3중주 A단조 M. 67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M. 73
  • 치간느 M. 76[23]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G장조 M. 77

5.5. 피아노



베르트랑의 같은 이름의 산문시집에서 3개를 발췌하여 만든 곡이다. 1곡은 4대 정령 중 물의 정령의 이름인 '옹딘(Ondine)[24]', 2곡은 '교수대(Le gibet)'[25], 3곡은 장난꾸러기 요정의 이름인 '스카르보(Scarbo)'이다. 특히 스카르보는 더럽게(...) 어려운 곡으로 유명하다. 난곡으로 유명한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도 어려운 곡을 만들려고 라벨이 작정한 결과물이다.
  • H.A.Y.D.N 음에 의한 미뉴에트 M. 58
  • 보로딘/샤브리에 풍으로 M. 63
  • 전주곡 A단조 M. 65
27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소품이다.

5.6. 가곡


  • 셰에라자드 M. 41
  • 박물지 M. 50
  • 말라르메의 3개의 시 M. 64
  • 돈키호테 M. 84

5.7. 합창


  • 오로라 M. 45
  • 밤 M. 33
  • 3개의 노래 M. 69

5.8. 오페라



[1]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였기 때문에 자기가 작곡한 피아노곡을 (몇몇 작품 빼고) 관현악으로 편곡했다.[2] 정확히 말하면 바스크족.[3] 그래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는 그를 스페인 작곡가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4] 이름은 로마 대상이지만 이태리와 관계없는(...) 파리 음악원 주최다. 우승하면 로마로 보내주는 것 같긴 하더라..[5] 로마 대상에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30세의 라벨은 이번에도 떨어지면 끝인 상황이었다.[6] 여러 곡을 모은 모음곡이다. 각 곡은 전사한 친구들에게 헌정되어 있다.[7] 다리우스 미요, 프랑시스 풀랑크, 아르튀르 오네게르, 루이 뒤레, 조르주 오리크, 제르맹 타유페르로 구성된 반바그너, 반인상파 조직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음악을 주장한 단체이다.[8] 이런 솜씨로 후에 자신이 만든 피아노곡을 관현악으로 다시 편곡한다. 때문에 같은 곡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두 개의 버전으로 있는 게 많으니 음반 구입시 잘 봐야한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의뢰받아 관현악으로 편곡하기도 했다.[9] 1928년 조지 거슈윈이 그에게 사사를 청하지만, '''"당신은 이미 일류 거슈윈인데 왜 이류 라벨이 되려 하느냐?"'''라 하며 그의 청을 거절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이 일화에 대하여 다른 버전도 있다. 조지 거슈윈 항목 참조.[10]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쇼팽, 슈만, 드뷔시, 라벨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유명했으며, 특히 자유로운 박자감을 의미하는 템포 루바토(Tempo Rubato)의 천재로 불렸으나, 특유의 낭비벽 때문에 어렵게 생활하다 46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사망했다.[11] 당대에는 라벨이 드뷔시를 표절했다는 논란도 있었다.[12] 특히 드뷔시와 라벨의 현악 4중주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13] 특히 영상1,2집은 라벨의 물의 유희에서 영감을 받고 쓴 작품이다.[14] http://en.wikipedia.org/wiki/Bol%C3%A9ro#Toscanini[15] 다만 라벨은 이것은 부정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16]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였기 때문에 자기가 작곡한 피아노곡을 (몇몇 작품 빼고) 관현악으로 편곡했다.[17] 현대 LF 소나타의 광고음악으로 사용되어 국내에서 이 곡이 주목을 받은 바 있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연주된 곡이다.[18] 스페인 감성을 받아 처음에는 피아노가 기타(기타 자체가 스페인에서 유래되었다.)처럼 연주되는 곡이며 중반부는 플라멩코 스타일로 작곡되었다.[19] 네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20] 1곡: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반, 2곡:난쟁이, 3곡: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 4곡:미녀와 야수의 대화, 5곡:요정의 정원[21] 볼레로, 스페인의 한 때 등[22] 마감이 끝나기 일주일 전에 완성했으며, 라벨 자신은 이 작품을 죽기 전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작 현재 꽤나 사랑받는 라벨의 작품중 하나가 되었다...[23]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가지 버전이 있다. 난이도가 매우 극악하고 완성도도 대단한 곡이지만 라벨이 이 곡을 쓸때 바이올린 파트가 하도 이상해서 친구가 도와줬다는 일화가 있다.[24] 프랑스어의 발음이고, 원어는 독일어인 '운디네(Undine)'이다.[25] 이 곡을 8비트로 어레인지하고 역재생하면 디아블로 3에 나오는 알록달록동산의 bgm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