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

 



바스크
Euskal Herria
[image]
'''주기'''[1]
'''국가'''
스페인[2]
'''면적'''
7,235km²
'''인구'''
2,206,965명
'''인구밀도'''
305명/km²
'''최대 도시'''
빌바오
'''행정 수반'''
이니고 우르쿨류 (Iñigo Urkullu, 바스크 국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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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정치와 분리주의
4. 경제
5. 축구팀
6. 출신 인물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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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어
Euskaldunak (민족)
Euskal Herria (지역)
스페인어
Vascos (민족)
País Vasco (지역)
프랑스어
Basques (민족)
Pays basque (지역)
영어
Basques (민족)
Basque Country (지역)

유럽의 민족 바스크인, 혹은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 넓은 의미의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령의 남부 바스크 지방과 프랑스령의 북부 바스크 지방까지 통틀어 가리킨다.(사진의 지도 전체로 노란색 부분은 프랑스령 북부 바스크, 초록색 부분은 나바라 광역자치주.) 좁은 의미로는 남부 바스크 지방 중에서도 기푸스코아(바스크어: Gipuzkoa / 스페인어: Guipúzcoa), 아라바(Araba / Álava), 비스카이아(Bizkaia / Vizcaya) 3도로 구성된 바스크 광역자치주(Euskal Autonomia Erkidegoa / Comunidad Autónoma del País Vasco, 사진의 지도에서 분홍색 부분.)만을 가리킨다. 분리주의 성향을 보이는 지방이라 한다면 스페인령의 바스크 자치주에 해당한다.
기푸스코아의 대표적인 도시는 도노스티아(Donostia) /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아라바의 대표적인 도시는 가스테이스(Gasteiz) / 비토리아(Vitoria), 비스카이아의 대표적인 도시는 빌보(Bilbo) / 빌바오(Bilbao)이다.[3] 이 중 빌바오에 있는 아틀레틱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에 있는 레알 소시에다드, 비토리아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는 지역의 대표적인 구단으로 바스크 더비를 이룬다. 이외에도 바라칼도, 게초, 이룬같은 도시가 중소규모 도시로 연담되어 있고 소규모 도시로는 피카소의 걸작으로 유명한 게르니카와 라 리가 최소규모 연고지를 자랑하는 SD 에이바르의 에이바르 등이 있다.
이들 바스크 민족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민족 중 하나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등 게르만·라틴족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4] 오늘날 스페인에는 약 240만명의 바스크인이 살고 있고 프랑스에는 약 20만명이 살고 있다. 바스크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이 정도라는것이고, 조상 중에 바스크인이 있다거나 바스크계 성씨를 가지고있는 사람을 더 한다면 이보다 더 많아진다. 또한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중남미 콜롬비아, 칠레,필리핀 카나리아 제도 등 해외에도 바스크인들이 이주했는데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추산하면 수천만명 이상에 달한다. 스페인 해외 식민지들이 독립한 이후에도 상당수의 바스크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하기도 했다. 칠레 같은 나라는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이 인구의 27%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바스크인들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혈액형 중에서 Rh- 형 혈액형이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Rh- 형 비율은 16% 정도라고 하는데 바스크인들은 무려 36%나 된다.

2. 역사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바스크인들은 최소 기원전 3천년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는 단일 정체성과 문화가 분명한 민족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주민들이다.
이들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다양한 설들이 내려오고 있다.[5] 확실한 것은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신석기시대에 피레네 산맥 부근에 몇천년 이상 고립되어 살던 바스크민족과 인도유럽어족을 쓰는 이주민(스페인인, 프랑스인)들 간의 혼혈화된 후손이라는 것이다.
선사시대 유적을 통해 보면 전통적인 바스크인의 거주 지역은 피레네 산맥을 중앙에 두고 남프랑스의 가스코뉴와 아키텐, 스페인 북부 산악 지대와 해안에 걸쳐 있었다. 이들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기원전 3,000년~5,000년부터 현재까지) 정착민으로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바스크인의 조상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 시대 유적들은 청동기 시대에 점점 산지로 이동하며 요새화되는데 다른 유럽계 민족들과의 마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언어 에우스카라(Euskara) 어족은 유럽의 다른 언어와 연관성이 없고 완전히 다르다. 또 혈액형 비율에 약간 차이가 있는데 이건 오랜 고립으로 설명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아메리카 도달 이전부터 바스크족 어부들이 대서양에서 참치잡이로 부를 축적하는 와중에 신대륙까지 비공식적으로 갔다온 적이 여러번 있다. 확실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참치잡이를 위해 먼 바다까지 갔다가 우연히 아메리카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5세기 포르투갈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것 역시 당시 포르투갈의 국가 기간 산업이던 어업을 후원하던 엔히크 왕자가 참치 어장을 찾아서 어선을 이용해 대서양을 뒤지다가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고학 연구를 통해 관련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면서 사실임이 입증된 빈란드와는 달리 바스크인들의 아메리카 도달설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바가 없어서 아직 가설에 머무르고 있다[6]. 이는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구를 잡기 위해 다른 나라의 선박들이 캐나다 동부로 몰려와서 대구의 어획량이 줄어들 위험을 우려해서였다.출처 이런 속사정은 바스크족 뿐만 아니라, 고대 청동기 시대에 오늘날 영국 서남부 콘월 지역까지 주석을 구하기 위해 다녀온 페니키아 상인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콘월주석 광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외부인들한테 문제의 주석 광산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았고, 오히려 먼 바다에는 바다괴물들이 있다는 식의 헛소문까지 퍼뜨려서 그 존재를 숨기려고 한 일과 같다. 바스크족은 참치 뿐만 아니라 대구잡이로도 유명했다. 당장 스페인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생선 요리가 바로 말린 대구인 바칼라우(Bacalhau)였다.
특수부대에서 쓰는 베레모의 유래가 이들의 전통모자인데, 유럽에서 강한 불굴의 전투 민족으로 유명하다. 많은 전쟁을 거치며 바스크족을 건드리는 군대는 이기든 지든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로마군단이 바스크족을 동맹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이베리아 반도곳곳의 다른 켈트족과 이베리아인 성읍들을 복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로마 군단병으로 입대해 오늘날 영국땅인 브리타니아 정복때도 활약했다. 샤를마뉴의 프랑스군 또한 이들에게 호되게 당했고, 이슬람이 서고트 왕국을 침공해 전선이 북부 피레네까지 밀렸을 때도 방어에 한 획을 담당했다. 프랑스 남부 카타리파 준동에 프랑스의 용병으로 참전에 활약한 바 있으며, 위그노 전쟁에 프랑스 왕실의 외가로 참전해 왕가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랬고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점령시 이들의 게릴라 전술로 힘겨워 했다.[7] 최근까지도 ETA 등 테러 단체로 활동한 바 있다.[8] 이들은 이슬람을 상대로만 700년 동안 방어 전선을 형성하였고, 통합 스페인 왕국 창립이후 16~18 세기 유럽 최강 스페인 육해군의 일익을 담당했다.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면서도 여전히 많은 바스크인들은 산지에 있는 성읍의 자치권을 얻어 고유문화를 지키며 살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는 로마인으로써 완전히 동화되었다. 로마가 망하고 난 한참 이후까지도 가톨릭으로 개종이 상당히 느렸다가 중세 초기에 유럽의 대세를 따라 결국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중세 시대 때는 소수 민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동맹 등으로 외교적으로 자주성을 지켜내면서도 스페인 왕국 성립에 참여해 스페인 시민이 되어 동화되는 등 유연한 면모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전신인 아라곤 왕국, 카스티야 왕국, 나바라 왕국의 왕가들은 모두 바스크 민족의 왕이였던 산초 3세의 후손들이다. 이렇게 스페인 제국 출발의 핵심에는 바스크 민족이 있고 스페인계와 독일계 합스부르크 가문에도 이들의 혈통이 들어간다, 게다가 프랑스에 여왕을 시집 보냄으로써 결혼 동맹으로 동군연합이 되었고 위그노 전쟁에서 부르봉 왕가의 외가로써 참전해 부르봉왕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9] 바스크인들이 유럽 강대국들과 결혼 동맹과 군사적 지원에 성공한 결과 많은 유럽 강대국들의 왕가에 바스크인의 핏줄이 흘러서 현재까지도 바스크족을 소수 민족이라 낮춰 보는 국가는 없고 스페인 내에서도 꽤나 위상이 높다.
중세 시대 바스크족은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바이킹들과 평화적으로 교류했는데 이들로부터 조선술, 항해술을 전수받았고 바이킹 몰락 이후에는 대서양의 주인으로 불렸던 만큼 조선술과 항해술에 매우 뛰어났다.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의 후원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도 이미 신대륙을 다녀왔던 바스크족이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당시 어획,고래잡이, 선박, 철광석 수출 등의 사업을 했고 영국, 북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무역 흑자로 막대한 수입을 올려서 당시부터 꽤나 부유한 지역이였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지만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다만 통일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연합체였기 때문에 지방 분권성이 강했고 다른 지방들이 그러하듯 바스크 지방 또한 폭넓은 자치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의 군주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바스크 지방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 바스크 지방에는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19세기 말 산업 혁명 시기 영국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했고 금융 쪽에 강하다는 점은 지금도 남아 BBVA 은행(라리가 공식 스폰서인)과 이베드롤라(Ibedrola) 은행의 본사가 빌바오에 위치하고 있다. 바스크인들이 경영하는 몬드라곤 협동 조합은 독특한 운영방식으로 대부분의 근무처와 다른 장점을 내세워 웬만한 대기업 이상의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 또한 우수하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원래 바스크 지역은 자치권 확대 약속 때문에 공화 진영에 가담했지만 공화 진영 중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은 지역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바스크 지역은 전쟁 전부터 중앙 정부와 멀찌감치 떨어져 나머지 유럽, 아메리카와 장사해 번 돈을 지역 사회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현지 산업 노동자들과 소위 '민족 자본가'의 갈등이 심하지 않은 편이었고 바스크 가톨릭 사제들 또한 스페인 전국 규모의 극우 정치판과 거리를 두어 바스크 지방 자체가 전반적으로 스페인 다른 지방보다 좌우 계급/이념 갈등, 세속주의/가톨릭 교권 사이의 갈등이 확연하게 적었다. 이러니 대외적으로는 자치권 확대를 위해 군인들이 미는 스페인 중앙 집권적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공화국 정부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머지 스페인 공화파 진영을 휩쓸었던 주로 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한 사회 혁명과 무관하게 돌아갔다.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졌던 로마에 동화되면서도 특유의 전통적인 남녀 평등 상속 문화를 중세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고수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전통적으로 살리카법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 유래가 되었던 민족으로, 크루세이더 킹즈 2에도 여성 상속이 가능한 민족으로 나온다.

3. 정치와 분리주의



1937년에 국민군이 바스크 지역을 원정할 때 바스크 지역 군인들에게 평화적인 대우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그 약속은 무참히 짓밟혔다. 유명한 게르니카가 바스크 지방의 도시다. 프랑코 정권 수립 후에는 중앙 집권화 정책 때문에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바스크인의 무장 투쟁 단체인 ETA#s-3가 등장해 2017년에 해체될 때까지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쪽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독립을 요구했던 카탈루냐보다 더 적극적이었는데 중앙 정부 인사를 납치해서 죽이거나 정부 건물에 폭탄 테러를 하는 등 무력 투쟁이 주류였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분리주의 테러리스트 중 가장 악명 높았던 지역 중 하나가 바스크였다.'''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 <현대문명진단>에 따르면 1992년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및 세비야 엑스포,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기 때문에 ETA의 테러를 예상했으나, 정작 ETA는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죽은 뒤 민주화가 진전되고, 주민들 중에 스페인과 화해하고 무장투쟁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일자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신입 전사가 오지 않고, 혁명세도 걷히지 않아 쇠퇴해갔다. 이것 때문인지 폭력투쟁은 완전히 사라졌고 스페인 정부의 통치에 순응하고 있지만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더불어 스페인 정부에서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지역이다.

4. 경제


스페인에서 경제 수준이 월등히 높은 지역이고 부자 동네임을 자처하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보다도 1인당 GDP가 훨씬 높다.[10]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주(州)에 속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 사정이 나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 예로 2010년 기준 안달루시아의 1인당 GDP가 22,000$인 데 비해 바스크는 41,000$다. 바스크의 경제력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실업률의 경우 2012년 바스크의 실업률이 14%였다면 안달루시아의 실업률은 35%였다. 그렇지만 급여 수준은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서 발간한 Encuesta anual de estructura salarial(연간 임금 구조 조사)을 보면 País Vasco의 평균 임금은 26,535유로, 스페인 전체 평균은 22,726유로다. 먼저 언급된 안달루시아는 20,891유로. 제일 못 버는 것은 19,278유로의 카나리아 제도다. 어쨌든 스페인에서 소득이 제일 높고 전체 평균보다 20% 가까이 높으니 경제력이 제일 우월한 것은 맞다. 실업률 격차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고...[11]
고래잡이 산업으로도 유명했다. 9세기부터 시작된 바스크 지방의 포경 산업은 주 본거지인 비스케이 만의 고래가 줄어들자 아이슬란드나 심지어 북아메리카뉴펀들랜드 섬까지 진출했다고. 나중에는 영국네덜란드에 뒤쳐지기는 했지만 이들도 바스크 출신 포경 선원들을 상당히 많이 고용했다고 한다.[12] 그래서 아이슬란드로 진출한 선원들 사이에서 아이슬란드어-바스크어피진어가 생겨나기도 했고 북아메리카에 남은 유일한 프랑스 식민지인 생피에르 미클롱의 국기에 바스크 지방기가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13]

5. 축구팀


  • SD 에이바르
  • 아틀레틱 빌바오 - 오직 바스크 지역 출신이나 바스크 이민자 출신만을 선수로 받아들이는 순혈주의의 대표적인 구단이다. 다만 2010년대에 들면서 조금 유해져서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 중 유소년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냈다면 준 바스크 취급을 해주는 것 같다.
  • 레알 소시에다드
  •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 CA 오사수나 - 바스크 민족의 팀이란 점에서는 넣을 수 있지만 지방 행정 구역으로는 나바라의 팀이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마찬가지로 바스크인들이 많이 지지하는 편인 팀은 맞지만, 마드리드로 유학 또는 정착한 사람들이 대신하거나 함께 지지하는 팀으로 내세운 팀으로 마드리드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6. 출신 인물


오랫동안 한 국가를 이루어 교류하고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의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많든 적든 바스크 혈통이 섞인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가르시아(García)도 바스크계 성씨다. 스페인 정복자의 자손들이 주류인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도 바스크계 혈통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베리아 연합 시절에 바스크인이 포르투갈이나 지금의 브라질 땅으로 이주하기도 했기 때문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에도 바스크계 혈통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바스크 계열 사람들은 미남 미녀라는 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7. 여담


스페인에서 이 지방에서만 한국을 Korea라고 표기한다.(나머지 지역은 Corea) 바스크어와 로망스어권의 철자 선호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보물찾기 시리즈 스페인 편에서 나오는 훌리오와 악역 바울이 바스크인이다. 둘 다 바스크 분리 독립 운동을 하지만 둘의 노선은 정반대.
영화로는 바스크인의 애환이 그린 스패니시 어페어가 유명하다.[15] 2편까지 나왔고 스페인 영화의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산세바스티안은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8. 관련 문서



[1] 생피에르 미클롱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2] 표는 협의의 바스크 자치 지방 기준. 광의의 바스크 지방은 나바라프랑스령의 북부 바스크 지역도 포괄한다.[3] 이웃 나바라 광역자치주의 주도도 비슷하게 '바스크어 / 스페인어' 양 언어 모두 병기하면 이루냐(Iruña) / 팜플로나(Pamplona)가 된다.[4]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바스크어는 다른 어떤 유럽인들과는 다른 어족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계통상의 고립어이다.[5] 외국의 재야사학자들 중에는 대륙 아틀란티스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도 하나의 가설로 여겨진다.[6] 심지어, 이들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매우 강력한 증거도 있는데, 바로 캐나다에 있는 바스크족의 포경기지 유적인 레드베이 기지가 그 증거다. 이 유적을 캐나다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해서 분석해본 결과, 아무리 건설 시기를 이르게 잡아도 1530년 이전으로는 거슬러올라가지 않음이 밝혀졌기 떄문이다. 즉, 1492년에 아메리카에 도달했던 콜럼버스보다는 진출이 늦었던 셈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아메리카 진출을 시도한 건 맞지만 말이다. 일단은 바스크족들이 스스로 주장한대로, 바스크족 포경업자들이 타국의 지원도 없이 독자적으로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받고 있다.[7] 게릴라 어원의 유래가 된 민족이다.[8] 돈키호테에서도 비스카야(바스크)인 호위 무사가 기사가 아니지만 상대해 준다는 돈키호테의 말에 '비스카야인들은 어디를 가나 기사'라고 말하면서 싸운다. 작중에서 말도 안 타고 방패 대신 마차에 있던 방석을 썼음에도 돈키호테를 거의 죽일 뻔했으나 방석 위로 내리친 칼을 맞고 기절한다.[9] 현재 스페인 왕가는 부르봉 가문이다.[10] 카탈루냐의 경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카탈루냐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공업 단지 조성을 해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지만 바스크는 그러지도 않았다.[11] #[12] 출처: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 '고래의 삶과 죽음'[13] 1950년경까지 이곳에 이주한 바스크계 주민들이 바스크어 방언을 사용하기도 했다.[14] 그래서 바스크 지방의 전통과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영화들을 많이 찍었다.[15] 참고로 스페인 영화들은 국제판 제목명이 발번역으로 악명 높은데, 이 영화도 원래 제목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의미가 와 닫지만 외부인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든 "8가지 바스크어 성씨 (Ocho apellidos vascos)"란 제목이다. 스페인 내부 사회적 인식상 바스크 같은 북부 지방하곤 완전 반대인 안달루시아 세비야출신 주인공이 여주인공 찾아 난데없이 온 바스크 지방에서 불평을 하면서 "어차피 바스크인들은 전부 다 (스페인에선 거의 볼 일이 없는) tx, k자 많이 들어간 8개 성씨밖에 없잖아!"라 드립 치는걸 묘사한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