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장 하이랑 공항
1. 개요
牡丹江海浪机场/Mudanjiang Hailang Airport
IATA: MDG, ICAO: ZYMD
중국 헤이룽장 성 무단장 시에 위치한 공항이다.
헤이룽장 성에서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의 공항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하이랑 육군 비행장(海浪陸軍飛行場)으로 불렀다.
2. 역사
만주국 시대에 일본 관동군에 의해 건설된 하이랑 육군 비행장이 이 공항의 시초이며, 완성 후 1937년 8월 2일에는 제2비행집단 제8비행단사령부가 있었다. 그 후 제2비행집단은 1942년 4월 15일에 제2비행사단으로 개편되고 하이랑 육군 비행장에는 여덟째 항공 지구 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태평양 전쟁에 소련이 참전하여 일본군이 패퇴하게 되어 1945년 8월 13일에 무단장은 소련군에 점령되었고 8월 15일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후 이 공항은 팔로군에 의해 접수되어[1] 동북 민주련군 항공학교의 훈련 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고 스탈린 격하운동과 수정주의 논쟁이 벌어지며 1960년대 들어 중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화되고[2] , 소련 국경에 가까운 무단장 하이랑 공항은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에 최전선 기지로 대형 기체 지원을 위한 확장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상태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1980년대가 되면서 중국에는 실용주의자로 서방과 화해를 추구하는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소련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일명 고르비가 집권하여 중국과 소련 간의 관계가 호전됨에 따라 1985년 국내선만을 민간에 개방했다.[3]
그리고 1991년 소련이 독립국가연합으로 찢어지면서 소련조차도 붕괴된 지 오래인 2000년에는 국제선도 해금시켜 터미널 빌딩을 확장한 후 러시아와 정기 항로를 개설했다.그 후 2005년에는 한국행 노선도 개설되어 2009년에 처음으로 외국 항공사로 한국 국적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 인천국제공항-무단장 간의 직항 노선을 취항했다.
대외 개방이 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현재까지도 인민해방군 공군 제21사단[4] 과 공군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즉 민간과 군이 공동으로 사용중인 공항이다. 이 점은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과도 똑같다. 신치토세 공항 역시 러시아 공군과 대치하는 항공자위대의 최전선으로 항자대가 주둔 중이다. 중국은 이제 러시아와는 우호 관계이기 때문에 최전선 개념은 사라졌고 예비대 성격이다.[5]
3. 취항 노선
3.1. 국내선
3.2. 국제선
[1] 팔로군에 인계하기 전 소련군이 점거했다.[2] 이 때 그 유명한 중소결렬과 중소 국경분쟁이 일어났다. 중소 국경분쟁에서 초강대국인 소련군에 참패한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후 중인 국경분쟁에서 훨씬 약한 상대인 인도에 화풀이를 하며 나중에 중국군이 현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미국 간 국교 정상화가 추진되어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한다. 그 전부터 밑밥은 닉슨, 카터 대통령이 소위 핑퐁외교로 깔았다. 시진핑과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미중 무역분쟁 이미지만 갖는 어린 세대들이 보기에 의아할 수 있는데 미국과 중국은 원래 협력관계였고 후진타오 때만 해도 중국은 굳이 미국과 대결하려 하지 않았으며 되려 미국이 대만 독립운동 성향의 천수이볜 당시 대만 총통을 외면했다.[3] 참고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해가 1979년이며 실제 외국인에게 개방은 그보다 훨씬 늦은 1987년 이후부터 추진해 왔다. 한중수교는 1992년이고 한국인이 중국본토에 본격적으로 여행이나 사업 등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시기가 1995년이다.[4] 전투기대로 구성된 비행단이다.[5] 현재 인민해방군 공군의 최전선은 역시 '''주적'''인 중화민국 공군 즉 대만 공군을 막아야 하는 남방전선이다. 여기에는 대만을 엄호하는 미국과 일본도 포함된다. 물론 정작 중국이 미국과 충돌은 또 원치 않아 실제 무력충돌로 가진 않지만 기싸움 식으로 양측 공군 대치는 늘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