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자
1. 개요
미국의 한국계 언론인이다. MBC, 경향신문 등 한국 언론의 미국 특파원을 역임했고, 1961년부터 2001년까지 40년간 백악관을 출입했다.
2. 상세
1930년 10월 28일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상당한 지주 집안의 3녀로 태어났다.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영문학과에 재학하다 한국 전쟁 발발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상학과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공부했다. 1956년 여성지 <여원(女苑)>의 도쿄 지국장으로 언론에 입문해 1961년 조선일보 주미 특파원으로 워싱턴 D.C.에 부임했다. 1961년부터 백악관 출입을 시작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1967년부터 1971년까지는 경향신문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했으며, 1971년 MBC로 이직해 워싱턴 특파원으로 재직했다. 1965년 육영수를 단독 인터뷰할 정도로 원래는 박정희 일가의 지지를 받았지만 MBC 재직중이던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은 중앙정보부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단독보도하며 살해 위협을 받았고,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정치망명했다.
MBC를 퇴직한 후 아시안 뉴스 서비스를 설립했고, 미국 워싱턴외신기자클럽 부회장, 미국 여기자단 단장, 미국 여기자협회 회장, 미국 기자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1980년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해 덩샤오핑을 인터뷰했고, 1992년에는 김일성을, 2000년에는 김정일을 인터뷰했다. 대지를 쓴 펄 벅 작가와도 친분이 깊었다. 미국명은 줄리 문(Julie Moon)인데, 줄리라는 이름을 펄 벅 작가가 지어준 것이다. 1999년 회고록 격인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을 출간했다. 2001년 일선에서 은퇴했고, 2008년 7월 2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기타
- 박완서 작가와는 숙명여자고등학교 동창으로 같은 문예반 소속이었다.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미국 주류 사회에 일찍이 발을 들인 성공한 재미언론인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 명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상술한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단독보도 사건으로 인하여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그의 이름이 한국에 알려지는 것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 김대중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김대중이 박정희 기념관을 설립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했다.
- 서울신문 기자와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쳐 훗날 이낙연 밑에서 국무총리비서실장을 지내게 되는 정운현을 비롯해 연령대가 높은 진보 언론인들은 문명자를 상당히 존경한다.#
[1]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한 언론인